20200823 구하라 좋은 것을 / 마 7:7~11

20200823 구하라 좋은 것을 / 마 7:7~11

마 7:7-11/구하라 좋은 것을

200823 주일설교/기도4
응답되지 않는 기도의 문제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꼽히는 C.S.루이스는 1898년 북아일랜드의 독실한 개신교도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9살 때 형 워니와 함께 교회를 더 이상 나가지 않기 시작했지만 33세 즈음 역시 형과 함께 다시 신앙으로 돌아와 남은 생애를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로 살았습니다. 24년 간 이 형제가 교회를 떠나있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기도에 대한 회의였습니다. 아름답고 재능이 넘치며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어머니 플로라 루이스의 암투병이 시작되자 9살인 루이스와 형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신다’는 하나님께 엄마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눈물 어린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슬픔과 낙심에 빠진 루이스 형제는 기도에 대한 약속을 진실이 아니며 하나님의 존재도 믿기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무신론자로 20여년을 보낸 이 형제가 신앙에 대한 생각을 되돌리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1929년 아버지의 죽음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루이스는 성경과 영적 거장들의 책을 읽기 시작하며 먼저 신앙을 회복한 형의 기도와 조언 가운데 자신이 그토록 외면하고자 했던 하나님의 임재를 피할 길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기독교인으로 회심합니다.
어린 잭 루이스와 워니 루이스 형제를 불신앙으로 밀어넣었던 기도응답의 문제는 사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회의에 빠뜨렸습니다. 간절한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을 겪으며 기독교인으로 살기 어렵다는 고백을 여럿 들었습니다. 신앙을 떠나지 않더라도 진지하게 기도하기를 어려워하는 신앙인들을 어렵잖게 만납니다. 정말 ‘구하는 대로 기도가 응답되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이 된 후에도 쉽지 않았던 이 문제에 대해 루이스는 ‘간구기도:해답이 없는 문제’라는 에세이를 쓰기도 했습니다. 루이스는 이 에세이에서 ‘어린아이나 이교도에게 기도를 가르칠 때 이것부터 가르치기 시작한다면 최악의 시작’이 될 것이라며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소설에서, 더글러스 부인이 허클베리에게 ‘무엇이든 기도하면 원하는 대로 얻는다’고 가르쳤고 허클베리가 실제로 몇 가지 실험을 해 본 결과 두 번 다시 기독교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마 여러분이 기도생활을 성실히 하지 못 하고 계신다면 이와 비슷한 실망이 한 몫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도에 반응하신다
이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산상설교 중 후반부에 속하면서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줍니다. 먼저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심이 의심할 여지 없이 확실하다고 선언하십니다.
(마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 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이 말씀은 자녀의 간구에 하나님이 분명이 반응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사랑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제게 와서 ‘아빠, 배 너무 아파서 숨을 못 쉬겠어요.’라고 합니다. 제가 어떻게 할까요? 힐긋 보고 못 본 척 제 일을 계속 할까요? 어떤 부모도 그렇게 할 수 없지요. 그 순간부터 저는 더 이상 일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모른 척 하고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저의 모든 신경은 사랑이에게 집중되어 단순 복통인지 혹은 맹장염 같은 것은 아닌지, 소아과 예약을 해야할지, 바로 응급실로 가야할 지 판단하기 위해 애를 씁니다. 사랑이 복통이 사라지고 별일 아닌 것이 확인될 때까지 엄마, 아빠의 마음은 쉬지 못 합니다. 부모는 자녀의 고통과 부름에 분명 반응합니다. 우리의 간구에 하나님이 이렇게 반응하신다는 뜻입니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렇게 자비로우신 아버지이심을 강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고 하늘의 새도 먹이시듯 자녀를 먹이고 입히시는 분이시고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모두 내려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아버지가 어떻게 자녀들의 간구를 모른 척 하실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이들이 먼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선하신 아버지 하나님이 자녀들의 기도를 결코 모른 척 하지 않으시고 귀 기울여 들으시고 그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그 분의 마음은 쉬지 못 하시고 결코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주신다
그럼 왜 우리들은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생각할까요?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9-11절입니다. 
(마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마 7: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의 응답은 ‘좋은 것으로 주심’입니다. 그 좋은 것은 우리에게 진짜 좋은 것, 유익한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의 혼란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구하는 것은 종종 우리에게 좋은 것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종종 우리에게 유익한 것과 필요한 것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구할 힘이 없습니다. 심지어 알면서도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은 것을 구합니다. 
부모된 이들은 압니다. 아이들에게는 책 읽고 공부하고 토론하는 것이 좋고 유익하고 필요하지만 게임하고 셀폰 만지고 유투브 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아이들만의 문제입니까? 성경 읽고 책읽고 영어공부하고 운동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드라마보고 수다떨고 빈둥거리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구하는 것과 우리에게 좋은 것은 종종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주십니다. 이 때 우리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세 가지 다른 방식으로 응답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구하는 것을 주신다
첫째는 구하는 것과 좋은 것이 일치할 때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구하는 것을 주십니다. 요 15:7입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가 주님의 가르침을 좇아 살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가득 할 때 자연스럽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합니다. 사장의 마음을 잘 아는 매니저는 매장관리를 사장의 마음에 쏙 들게 합니다. 사장이 뭐라 따로 지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매니저가 들고온 운영계획은 사장 마음에 쏙 듭니다. 매니저가 계획을 세우는 족족 사장은 허락해 줍니다. 이 때가 가장 신앙생활이 즐거운 때입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처럼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주님이 원하고 계획하신 것을 알고 구하는 정도까지 우리의 지혜와 성품이 성숙하는 것은 엄청난 은혜이기도 합니다. C.S.루이스는 이런 행복이 주님과 특별히 친밀한 관계에 이른 성숙한 성도들에게서 일어난다고 썼습니다. 아마 우리 대부분은 이런 수준까지 이르지 못 했을 터입니다. 먼저 주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지혜가 자라야 하고 다음으로 주님의 뜻에 우리를 굴복시키도록 의지가 훈련되어야 하고 종국에는 주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기까지 우리의 성품이 성숙해 가야 합니다. 이 수준이 바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일 것입니다.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시는 모범이 되셨습니다. 
(요 11:41) …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요 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리스도의 수준까지 성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개개인의 목표요, 교회가 짊어져야 하는 사명이기도 합니다. 이 사명 때문에 교회는 성도들을 가르치고 돌보고 격려하고 훈련시킵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께서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는 수준까지 성장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
둘째는 구하는 것과 좋은 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입니다. 성장의 과정에 있는 우리 대부분은 이 두 번째 상황을 자주 마주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는 배가 아프다고 떼굴떼굴 구르면서도 죽어도 병원은 안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사랑이가 싫어해도 병원을 데려가야 합니다. 그것이 좋고 유익하고 필요하니까요. 진리가 맛있는 것을 형, 누나와 나누지 않고 혼자 다 먹으려 할 때 저는 안 된다고 합니다. 진리가 원하는 것은 진리에게 유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싫어도 욕심을 제어하고 나누어 먹는 것을 배우는 것이 진리에게 유익하기에 저는 단호하게 No라고 말하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해시키려 애씁니다. 하나님도 당연히 그렇게 하십니다. 
때로는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구하는 때와 좋은 때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주님은 기다렸다가 다른 때에 응답하십니다. 아이들이 종종 어른들이 하는 것을 자신들도 빨리 경험해 보기를 원하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안전하고 유익합니다. 어떤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차운전을 맡기고 큰 돈을 쥐어 주고 바다에 혼자 내 보내겠습니까? 하나님도 당연히 그렇게 하십니다. C.S.루이스는 이렇게 씁니다. 
…학교 교장이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학생 여러분, 이러이러한 일은 정해진 교칙 상 자유로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러저러한 일은 위험하기 때문에 교칙으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 외에 어떤 일이든 하기를 원한다면 누구든지 나를 찾아와 요청하십시오. 그 문제에 대해 충분히 의논해 봅시다. 결과는 두고 봐야 합니다.’
물론 교장의 답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학생이 실망하듯 하나님의 반응이 우리를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말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불가피하게  No 하시거나 Wait 하신 것이지,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고 반응하지 않으신 것이 아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11절을 다시 보십시오.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기도응답이 우리에게 만족스럽지 않을 때조차도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며 그것이 선하신 하나님의 응답임을  믿으시기를 축복드립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셋째는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 모든 기도를 통해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가장 좋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이것을 주기를 원하시고 이것을 받는 것은 모든 기도응답 중 최고의 응답입니다. 오늘 본문과 병행구절인 눅 11장입니다.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똑같은 병행구절에서 마태복음은 좋은 것이라는 단어를 쓴 곳에 누가복음은 성령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성령충만임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성령충만을 늘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 시도때도 없이 주님은 성령충만을 자녀들에게 주십니다.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행 10: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행 8:17)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성령님은 신앙의 에너지가 되시며 진리에 이르는 지혜가 되시고 구원으로 인도하는 GPS가 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도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도록 도우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 닮도록 도우시고 구원의 풍요로움을 더욱 누리도록 인도하십니다. 그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충만한 삶보다 더 성도에게 좋고 필요하고 유익한 것은 없으며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가장 좋은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기도할 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습니까? 선하신 아버지 하나님은 자녀의 기도를 들으신 이상 결단코 외면할 수 없으시며 매우 신경쓰십니다. 그 결과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시거나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성령충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기도는 없습니다. 모든 기도는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도를 시작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응답을 기대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기도를 멈추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선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좋은 것을, 더 좋은 것을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을 쉬지않고 구하는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