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12 살 맛 나는 세상 / 마 5:13~16

20200112 살 맛 나는 세상 / 마 5:13~16

마 5:13-16/살 맛 나는 세상

200111 주일설교 산상설교10
백성을 지키는 교회
좀 오래 된 신문기사입니다. 지금부터 121년 전인 구한말 1897년 3월 1일자 대한그리스도인회보의 한 대목입니다. 
“이번에 새로 난 북도 군수 중에 유세력한 양반 한 분이 말하되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 수 없으니 영남 고을로 옮겨 달라’한다니 어찌하야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 수 없느뇨, 우리교는 하느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도라, 교를 참 믿는 사람은 어찌 추호나 그른 일을 행하며 관장의 영을 거역하리오. 그러나 관장이 만약 무단이 백성의 재물을 뺏을 지경이면 그것은 용이하게 빼앗기지 아닐 터이니 그 양반이 갈 수 없다는 말이 그 까닭인듯.”
쉽게 표현을 해보자면, 한 힘있는 군수가 북쪽지방에 발령을 받았는데 그 지역에 기독교인들이 있어서 못 가겠으니 남쪽지방으로 임지를 옮겨달라고 중앙정부에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사는 지역에는 못 가는지 그 이유를 신문이 설명하기를 기독교인들은 정부관리의 명령을 잘 따르는 충직한 백성이지만 부패한 관리들이 불법으로 백성들의 재산을 뺏으려 할 때는 순순히 빼앗기지 않고 저항하기에 관리로서는 무척 힘든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이 기사는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줍니다. 구한말 중앙정부고 지역정부고 할 것 없이 극심한 부정부패로 나라가 병들어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지역의 유지들은 중앙정부의 관리들에게 큰 돈을 주고 관직을 샀고 지역에 부임하면 과중한 세금은 물론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이 쓴 돈의 몇 배로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힘없는 백성들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기독교인들이 있는 마을에서는 교회가 앞장 서서 백성들을 보호해주어서 부패한 관리들이 마음대로 횡포를 부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장로교 소속으로 조선에 온 C.E.샤프 선교사는 그의 논문에서 한 지방관리가 주민들에게 정치적 보호를 받기 위해서라면 당시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친일단체인 일진회보다 교회를 찾아가라고 했다는 일화도 보고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일제와 탐관오리에게 겹으로 수탈당하던 백성들을 보호하는 공동체였다는 것입니다. 
1900년 전후 조선의 인구는 약 1,200만 명 정도인데 당시 기독교인은 만 명이 조금 넘었습니다. 전체 인구의 0.1%가 안 되는 수였지만 부패한 관리들이 두려워할 정도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교회를 빛과 소금에 비유하실 때 의미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산상설교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은 팔복을 선언하신 후에 바로 이어서 교회의 사명을 잊을 수 없는 비유로 설명해 주십니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 국민이든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가집니다. 천국백성들도 하늘의 복인 팔복을 누리는 동시에 땅의 사명인 빛과 소금됨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가 빛과 소금이라는 이 선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교회가 존재하고 사역해야 하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13, 14절입니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교회는 ‘세상에서’ 소금이고 ‘세상에서’ 빛입니다. 그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소금이 없어 부패하는 곳이고 빛이 없어 어두운 곳입니다. 죄로 오염되고 악으로 병들고 온갖 고난과 불의와 부조리가 가득한 곳입니다. 어떨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세상을 등지고 저 고요하고 평안한 곳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가 있지 않으신지요?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이런 세상이라 할지라도 그 세상 밖이나 종교적 황홀경으로 도피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세상이기에 더욱 교회가 필요합니다. 세상이 부패했기에 소금이 필요하고 가정과 일터가 어둡기에 빛이 필요합니다. 천국에는 빛도 소금도 필요없습니다. 빛으로 가득한 곳이 천국이고 은혜의 단맛으로 가득한 곳이 천국인데 빛과 소금이 왜 필요합니까? 교회가 필요한 곳은 바로 여기 세상입니다. 
 
이미 빛과 소금인 교회
둘째로 우리는 이미 빛이고 소금입니다. 다시 13, 14절을 보십시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우리는 소금이고 이미 빛입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받았다면 이미 우리는 빛이고 소금입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이 어떠하든 그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사자새끼는 아무리 작고 힘없고 큰 개보다 무력해보여도 그 DNA는 사자인 겁니다. 그 사자의 강함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14절입니다.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성)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어둠속에서 빛을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느냐? 산 위에 우뚝 솟은 성을 보지 못 하고 지나갈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은 너희의 존재를 모른 채 지나갈 수 없다. 너희가 알든모르든 원하든원하지않든 너희는 빛이고 산위의 동네여서 숨을 수 없는 존재이다.’ 여러분이 빛과 소금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맛잃은 교회
물론 예수님이 경고하셨듯 소금이 그 맛을 잃는 때가 역사에는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면 아무 쓸 데 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입니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요즘 한국교회가 맞이하고 있는 상황이 그러합니다. 교회세습과 재정비리, 힘겨루기와 물질만능주의와 성장제일주의, 기득권 옹호 종교가 되어버려 사회로부터 온갖 손가락질을 다 받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밖에 버려져 밟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민교회 사정도 그리 좋지 못 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초대교회 박형은 목사님이 오셔서 제직수련회를 인도해주셨습니다. 예전에 섬기시던 교회 이야기를 좀 해주셨는데요, 문제 많기로 이민교회에 소문난 교회의 청빙제의를 받았지만 고민 끝에 주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고 가서 첫 주 예배를 드리고 입구에서 인사를 하고 있는데 한 교인이 나가면서 고소장을 주더라는 겁니다. ‘아니, 절 언제 보셨다고 웬 고소장입니까?’ ‘당신이 우리 교회 오지 말라고 내가 반대했고 당신 집까지 찾아가서 우리 교회 오면 가만 안 두겠다고 경고까지 했는데 결국 와서 내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으니 그 피해를 보상하라’는 것입니다. 알고봤더니 목회자와 교인들을 다 내어쫓고나서 교회 건물과 부동산을 처분해 나누어가지려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정말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결국 깨어지고 문닫고 교인들이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가는 일이 우리 주변 이민교회들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빛을 내는 교회
그러나 일단 교회가 그 빛을 내게 되면 세상이 밝아집니다. 교회가 맛을 내게 되면 세상이 살 맛 나는 곳이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사명을 위해 교회를 부르셨습니다. 15절입니다.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어두운 방에서 등불을 켜면 높은 등경 위에 두어서 방 전체가 환해지도록 하듯이 하나님은 교회를 높이 들어 그 빛으로 세상을 밝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러므로 성도들은 해를 반사하는 달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순종으로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이 밝아지고 세상이 살 맛 나는 곳으로 바뀝니다. 
 
살 맛 나는 세상
지난 주에 한국의 한 피부과의사의 인터뷰기사를 읽었습니다. 박진모 씨는 4년전까지만 해도 남부러울 것 없는 강남의 인기 피부과 원장이었습니다. 한센씨병 즉 나병치료를 주로 하는 경남 진주의 한센복지협회 부설의원에서 박진모 씨에게 일할 피부과 의사를 좀 보내달라고 연락이 계속 오는데 아무도 가겠다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도그럴것이 한국사회가 부유해지면서 요즘 한국의 피부과의사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데다가 당연히 수입도 최고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의사가 서울의 좋은 자리를 내팽개치고 시골의 한센씨병 치료의원으로 내려가겠습니까? 내려가겠다는 사람도 없지만 추천하기도 도저히 미안해서 못 하겠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연락은 계속 오고 하니 박진모 씨의 마음에 슬그머니 ‘그럼 내가 가서 몇 달만 하고 올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훌륭한 신앙인인 어머니의 영향도 컸습니다. 박진모 씨가 의대공부할 때 순전히 수입이 많다는 이유로 피부과 지원을 했습니다. ‘진모야, 무슨과 넣었냐?’ ‘어머니, 피부과 넣었어요.’ ‘아들아, 실망이다.’ ‘왜요?’ ‘난 네가 빛과 소금 같은 의사가 되기를 오래동안 기도해 왔다.’ ‘어머니, 피부과 의사도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무 말씀을 안 하시더랍니다. 그 어머니의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어서 그랬는지 박진모 씨는 잠시만 가서 섬기고 오자 하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가보니 한센씨병자들도 치유하지만 도시의 피부과병원에서 치료를 안 해주는 난치성 피부병 환자도 많이 오더랍니다. 왜 이 먼 곳까지 오냐고 했더니 도시에는 유명한 피부과병원이라고 해서 갔더니 비싼 피부관리만 하고 정작 피부과의사는 없거나 의료수가가 낮다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첫 월급을 받고보니 원장 때 수입은 고사하고 전문의가 되어 받은 첫 월급보다도 훨씬 적더랍니다. 몇 달만 봉사하고 다른 의사가 오면 서울로 올라가자고 생각했는데 매주일 예배만 드리고 나오면 마음에 ‘진모야, 웬만하면 네가 해라’하는 주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은 겁니다. 그래서 다음 달에, 다음 달에 하다가 4년이 지났습니다.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센씨 병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제대로 치료해 보고 싶다고 답합니다. 수입이 적어서 힘들지 않느냐고 하니 살 집이 있고 가족들 생계를 해결할 정도이니 적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합니다. 
이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제 마음에 그래도 세상은 살 만 한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살 맛 안 나는 세상에 이 박진모 씨는 살 맛을 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금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것이 빛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누가 뭐래도 세상의 빛이고 소금입니다. 세상을 더 살 맛 나는 곳으로 만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20200112 살 맛 나는 세상 / 마 5:13~16

마 5:13-16/살 맛 나는 세상

200111 주일설교 산상설교10
백성을 지키는 교회
좀 오래 된 신문기사입니다. 지금부터 121년 전인 구한말 1897년 3월 1일자 대한그리스도인회보의 한 대목입니다. 
“이번에 새로 난 북도 군수 중에 유세력한 양반 한 분이 말하되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 수 없으니 영남 고을로 옮겨 달라’한다니 어찌하야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 수 없느뇨, 우리교는 하느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도라, 교를 참 믿는 사람은 어찌 추호나 그른 일을 행하며 관장의 영을 거역하리오. 그러나 관장이 만약 무단이 백성의 재물을 뺏을 지경이면 그것은 용이하게 빼앗기지 아닐 터이니 그 양반이 갈 수 없다는 말이 그 까닭인듯.”
쉽게 표현을 해보자면, 한 힘있는 군수가 북쪽지방에 발령을 받았는데 그 지역에 기독교인들이 있어서 못 가겠으니 남쪽지방으로 임지를 옮겨달라고 중앙정부에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왜 기독교인들이 사는 지역에는 못 가는지 그 이유를 신문이 설명하기를 기독교인들은 정부관리의 명령을 잘 따르는 충직한 백성이지만 부패한 관리들이 불법으로 백성들의 재산을 뺏으려 할 때는 순순히 빼앗기지 않고 저항하기에 관리로서는 무척 힘든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이 기사는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줍니다. 구한말 중앙정부고 지역정부고 할 것 없이 극심한 부정부패로 나라가 병들어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지역의 유지들은 중앙정부의 관리들에게 큰 돈을 주고 관직을 샀고 지역에 부임하면 과중한 세금은 물론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이 쓴 돈의 몇 배로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힘없는 백성들은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 기독교인들이 있는 마을에서는 교회가 앞장 서서 백성들을 보호해주어서 부패한 관리들이 마음대로 횡포를 부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장로교 소속으로 조선에 온 C.E.샤프 선교사는 그의 논문에서 한 지방관리가 주민들에게 정치적 보호를 받기 위해서라면 당시 막강한 힘을 발휘하던 친일단체인 일진회보다 교회를 찾아가라고 했다는 일화도 보고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일제와 탐관오리에게 겹으로 수탈당하던 백성들을 보호하는 공동체였다는 것입니다. 
1900년 전후 조선의 인구는 약 1,200만 명 정도인데 당시 기독교인은 만 명이 조금 넘었습니다. 전체 인구의 0.1%가 안 되는 수였지만 부패한 관리들이 두려워할 정도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이 교회를 빛과 소금에 비유하실 때 의미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산상설교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은 팔복을 선언하신 후에 바로 이어서 교회의 사명을 잊을 수 없는 비유로 설명해 주십니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 국민이든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가집니다. 천국백성들도 하늘의 복인 팔복을 누리는 동시에 땅의 사명인 빛과 소금됨을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가 빛과 소금이라는 이 선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교회가 존재하고 사역해야 하는 곳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13, 14절입니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교회는 ‘세상에서’ 소금이고 ‘세상에서’ 빛입니다. 그 세상은 어떤 곳입니까? 소금이 없어 부패하는 곳이고 빛이 없어 어두운 곳입니다. 죄로 오염되고 악으로 병들고 온갖 고난과 불의와 부조리가 가득한 곳입니다. 어떨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세상을 등지고 저 고요하고 평안한 곳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때가 있지 않으신지요?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이런 세상이라 할지라도 그 세상 밖이나 종교적 황홀경으로 도피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런 세상이기에 더욱 교회가 필요합니다. 세상이 부패했기에 소금이 필요하고 가정과 일터가 어둡기에 빛이 필요합니다. 천국에는 빛도 소금도 필요없습니다. 빛으로 가득한 곳이 천국이고 은혜의 단맛으로 가득한 곳이 천국인데 빛과 소금이 왜 필요합니까? 교회가 필요한 곳은 바로 여기 세상입니다. 
 
이미 빛과 소금인 교회
둘째로 우리는 이미 빛이고 소금입니다. 다시 13, 14절을 보십시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금이 ‘되고’ 빛이 ‘되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우리는 소금이고 이미 빛입니다. 우리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받았다면 이미 우리는 빛이고 소금입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이 어떠하든 그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사자새끼는 아무리 작고 힘없고 큰 개보다 무력해보여도 그 DNA는 사자인 겁니다. 그 사자의 강함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14절입니다.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성)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어둠속에서 빛을 못 보고 지나칠 수 있느냐? 산 위에 우뚝 솟은 성을 보지 못 하고 지나갈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는 것처럼 세상은 너희의 존재를 모른 채 지나갈 수 없다. 너희가 알든모르든 원하든원하지않든 너희는 빛이고 산위의 동네여서 숨을 수 없는 존재이다.’ 여러분이 빛과 소금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맛잃은 교회
물론 예수님이 경고하셨듯 소금이 그 맛을 잃는 때가 역사에는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면 아무 쓸 데 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입니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요즘 한국교회가 맞이하고 있는 상황이 그러합니다. 교회세습과 재정비리, 힘겨루기와 물질만능주의와 성장제일주의, 기득권 옹호 종교가 되어버려 사회로부터 온갖 손가락질을 다 받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밖에 버려져 밟히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민교회 사정도 그리 좋지 못 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초대교회 박형은 목사님이 오셔서 제직수련회를 인도해주셨습니다. 예전에 섬기시던 교회 이야기를 좀 해주셨는데요, 문제 많기로 이민교회에 소문난 교회의 청빙제의를 받았지만 고민 끝에 주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고 가서 첫 주 예배를 드리고 입구에서 인사를 하고 있는데 한 교인이 나가면서 고소장을 주더라는 겁니다. ‘아니, 절 언제 보셨다고 웬 고소장입니까?’ ‘당신이 우리 교회 오지 말라고 내가 반대했고 당신 집까지 찾아가서 우리 교회 오면 가만 안 두겠다고 경고까지 했는데 결국 와서 내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으니 그 피해를 보상하라’는 것입니다. 알고봤더니 목회자와 교인들을 다 내어쫓고나서 교회 건물과 부동산을 처분해 나누어가지려는 사람들이 있더라는 겁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정말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결국 깨어지고 문닫고 교인들이 시험에 들어 교회를 떠나가는 일이 우리 주변 이민교회들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빛을 내는 교회
그러나 일단 교회가 그 빛을 내게 되면 세상이 밝아집니다. 교회가 맛을 내게 되면 세상이 살 맛 나는 곳이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사명을 위해 교회를 부르셨습니다. 15절입니다.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어두운 방에서 등불을 켜면 높은 등경 위에 두어서 방 전체가 환해지도록 하듯이 하나님은 교회를 높이 들어 그 빛으로 세상을 밝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마 5: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러므로 성도들은 해를 반사하는 달처럼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순종으로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이 밝아지고 세상이 살 맛 나는 곳으로 바뀝니다. 
 
살 맛 나는 세상
지난 주에 한국의 한 피부과의사의 인터뷰기사를 읽었습니다. 박진모 씨는 4년전까지만 해도 남부러울 것 없는 강남의 인기 피부과 원장이었습니다. 한센씨병 즉 나병치료를 주로 하는 경남 진주의 한센복지협회 부설의원에서 박진모 씨에게 일할 피부과 의사를 좀 보내달라고 연락이 계속 오는데 아무도 가겠다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도그럴것이 한국사회가 부유해지면서 요즘 한국의 피부과의사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데다가 당연히 수입도 최고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의사가 서울의 좋은 자리를 내팽개치고 시골의 한센씨병 치료의원으로 내려가겠습니까? 내려가겠다는 사람도 없지만 추천하기도 도저히 미안해서 못 하겠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연락은 계속 오고 하니 박진모 씨의 마음에 슬그머니 ‘그럼 내가 가서 몇 달만 하고 올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훌륭한 신앙인인 어머니의 영향도 컸습니다. 박진모 씨가 의대공부할 때 순전히 수입이 많다는 이유로 피부과 지원을 했습니다. ‘진모야, 무슨과 넣었냐?’ ‘어머니, 피부과 넣었어요.’ ‘아들아, 실망이다.’ ‘왜요?’ ‘난 네가 빛과 소금 같은 의사가 되기를 오래동안 기도해 왔다.’ ‘어머니, 피부과 의사도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어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무 말씀을 안 하시더랍니다. 그 어머니의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어서 그랬는지 박진모 씨는 잠시만 가서 섬기고 오자 하는 생각으로 갔습니다. 
가보니 한센씨병자들도 치유하지만 도시의 피부과병원에서 치료를 안 해주는 난치성 피부병 환자도 많이 오더랍니다. 왜 이 먼 곳까지 오냐고 했더니 도시에는 유명한 피부과병원이라고 해서 갔더니 비싼 피부관리만 하고 정작 피부과의사는 없거나 의료수가가 낮다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첫 월급을 받고보니 원장 때 수입은 고사하고 전문의가 되어 받은 첫 월급보다도 훨씬 적더랍니다. 몇 달만 봉사하고 다른 의사가 오면 서울로 올라가자고 생각했는데 매주일 예배만 드리고 나오면 마음에 ‘진모야, 웬만하면 네가 해라’하는 주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은 겁니다. 그래서 다음 달에, 다음 달에 하다가 4년이 지났습니다.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센씨 병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제대로 치료해 보고 싶다고 답합니다. 수입이 적어서 힘들지 않느냐고 하니 살 집이 있고 가족들 생계를 해결할 정도이니 적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합니다. 
이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제 마음에 그래도 세상은 살 만 한 곳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살 맛 안 나는 세상에 이 박진모 씨는 살 맛을 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금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것이 빛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누가 뭐래도 세상의 빛이고 소금입니다. 세상을 더 살 맛 나는 곳으로 만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