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39-56/주체할 수 없는 기쁨
161218 대강절4주
신앙의 동지
한국에서 망우교회 청년부를 섬길 때의 일입니다. 명문대 법대를 다니는 똑똑한 형제가 있었는데 어느 날 과 후배를 전도해 왔습니다. 태어나서 교회를 생전 처음 왔다는 그 후배 형제는 첫 몇 달 동안 예배를 마치면 얼마나 질문이 많은지 몰랐습니다. 그러더니 몇 달 만에 기쁨이 넘치는 얼굴로 저를 찾아와서는 자신이 복음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저나 그 선배 청년이나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리고는 몇 달이 더 지났는데 그 형제가 슬픈 얼굴로 저를 찾아와서는 말하기를 자신이 예수님은 변함없이 믿지만 교회를 옮겨야겠다는 것입니다.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이 형제가 셀모임에 적응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형제는 비슷한 또래로 구성된 셀모임 멤버들이 다 자기같은 줄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된 감격을 쏟아놓고 신이나서는 성경공부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고 하고 신앙을 더 알아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셀 멤버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그 교회에 출석한 배꼽친구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모르거나 안다하여도 그 형제가 가진 감격을 이해하지 못 하는 친구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셀모임을 빨리 마치고 1차로 떡뽁이집, 2차로 당구장 그리고 3차로 호프집을 가는 것이 일주일의 즐거움이었던 친구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믿은 것이 기뻐서 못 견디겠고 말씀공부가 재미있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그 새가족 친구가 낯설고 불편했던 것입니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그 형제든 자신이 이 셀모임에 겉도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이 이해받을 수 있는 교회에 속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은 모든 교회에서 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같은 교회에 몸담고 있지만 신앙에 대한 이해의 폭, 헌신의 깊이 그리고 열정의 크기는 천차만별입니다. 기독교 신앙으로 인해 누리는 기쁨의 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비슷한 영적 경험과 기쁨을 가지고 신앙적 대화가 통하는 교우를 만나는 것은 큰 행복이자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그런 친구를 만난 기쁨에 밤을 새며 신앙적 대화를 나누고 교제했던 행복한 기억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런 경험을 하는 두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두 여인의 기쁨
천사가 수태고지를 마치고 떠나가자마다 마리아는 일어나서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산지의 친척 엘리사벳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천사의 말대로 노인이 된 엘리사벳이 임신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제임스 티소의 그림을 한 번 보십시오. 마리아를 만난 엘리사벳은 큰 성령과 기쁨이 충만하여 소리칩니다. 41절을 보십시오.
(눅 1: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눅 1: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눅 1:44)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마리아도 엘리사벳의 임신사실을 확인하고 천사의 수태고지가 사실임을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그녀도 기쁨으로 찬송을 시작합니다.
(눅 1: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눅 1: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이 기쁨은 하늘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세상의 성공이 줄 수 없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이야말로 신앙인이 누리는 최고의 행복입니다. 그럼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이런 충만한 기쁨은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기쁨의 근원
첫째로 이 기쁨은 하늘의 생명을 잉태해야만 누릴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엘리사벳은 세례 요한을 잉태했습니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도 모두 인간의 힘으로 잉태된 이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된 하늘의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심령에 모심으로 하늘의 생명을 우리 안에 잉태하게 됩니다. 요일 5:11-12을 보십시오.
(요일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여러분의 심령에 모시면 하늘의 생명이 여러분 안에 잉태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생명으로 인해 하늘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이 기쁨은 성령으로 인해 누릴 수 있습니다. 41절을 보십시오.
(눅 1:41)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눅 1: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갈 5:22을 보면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 두 번째가 바로 기쁨입니다. 성령을 모시고 성령을 좇아가는 이들은 기쁨을 누립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님에 대한 순종이 충만하여 기쁨도 충만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셋째로 이 기쁨은 믿음으로 인해 누릴 수 있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눅 1: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믿는다고 고백하였을 뿐 아니라 그 믿음 때문에 속히 달려와 엘리사벳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확증되는 순간 넘치는 기쁨으로 찬양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 하면 불안합니다. 걱정과 근심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기쁨이 샘솟습니다. 평안과 감사가 넘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기쁨을 누리기 위해 무엇을 품어야 합니까? 믿음을 품고 성령님을 모시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삶의 모든 걱정, 근심의 어둠을 충만한 기쁨의 빛이 몰아내는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 대강절에 마리아와 엘리사벳에게 넘쳤던 기쁨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서도 충만하게 넘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