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6:13-20/반석 위의 교회
160807 창립 44주년 주일설교
창립 44주년
오늘은 우리 뉴저지장로교회의 창립 44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1972년 8월 13일에 창립하여서 뉴저지에서 가장 오래 된 한인교회 중 하나입니다. 우리 교회는 뉴저지의 교회들 중에서 역사로 보나 규모로 보나 책임 있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큰 분규 한 번 없이 건강한 사역을 하며 44년 간 지역복음화를 위해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의 제목이며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현재 뉴저지에는 교회가 약 260여 개 정도 있고 한인인구는 약 10만에서 11만 명 정도로 봅니다. 대략 380여명 당 한 개꼴로 교회가 있습니다. 정확한 한인 기독교인의 수는 파악된 바 없지만 대부분의 교회가 100명 미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독교인의 비율이 그리 높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선교의 여력이 많다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가 뉴저지교계에 건강한 영향을 미치고 선교의 열매를 계속 거두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합니까? 창립기념주일을 맞아 저는 먼저 바른 교회관을 가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교회란 무엇이고 오늘날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진리로 말미암는 행복(17절)
오늘 본문은 성경에서 교회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등장하는 대목입니다. 사도행전 이후부터는 교회라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 약 110회나 되지만 복음서에는 의외로 단 두 번 밖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두 곳 중 한 곳이 오늘 본문이고 또 다른 한 곳은 마 18:17입니다. 교회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배경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사건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라는 도시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어떤 존재로 이해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나서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답을 합니다. 이 대답을 흡족해하시며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17절입니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바요나는 요나의 아들이란 뜻이고 요나는 요한이라는 이름을 축약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복있는 사람으로 선포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우리는 돈을 벌고 집을 사고 자녀가 잘 되면 행복한 줄로 압니다만 그것은 세상의 행복이요, 소시민적인 행복입니다. 성도의 참 행복은 그것을 뛰어넘는 것인데 바로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 진리란 다름 아닌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 왜 행복일까요?
공자는 ‘조문도 석사가의’라고 하여 아침에 도를 듣고 깨우쳤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한 도는 세상을 사는 바른 이치입니다. 그 이치를 깨달으면 얼마나 기쁜지 죽어도 좋을만큼 기쁘고 좋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 이치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좋은데 만약 영원한 세상을 사는 이치와 그 세상에 들어가는 길을 깨달았다면 그보다 얼마나 더 기쁘고 좋겠습니까! 베드로는 이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그 분의 사랑과 공로로 인해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영생을 얻으며 천국의 문이 열렸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세상에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 진리를 깨닫고 이 기쁨 속에서 살며 고난과 핍박을 견뎌내고 순교마저 즐겁게 당하였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는 것이 너무나 행복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참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복드립니다.
그럼 이 진리를 어떻게 하면 깨달을 수 있을까요? 17절 후반부를 다시 보십시오.
(마 16: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는 혈육 즉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 이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고 있고 또 믿기를 원하는데 이런 기쁨을 못 누려보셨다면 하나님께 이 행복을 맛보게 해달라고 기도드려야 합니다. 선하고 너그러우신 하나님이 성령으로 말미암는 이런 기쁨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진리 위에 선 교회(18)
이 진리는 성도에게 구원과 행복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진리는 그 위에 교회를 세우는 반석이 되기도 합니다. 18절입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베드로라는 헬라어 단어 petros는 바위란 뜻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이름을 사용하셔서 일종의 낱말놀이를 하시며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베드로, 네 이름이 반석이지? 나도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교회를 그 위에 세우는 반석은 무엇입니까? 카톨릭에서는 인간 베드로를 그 반석으로 해석하여 그에게 부여된 권위를 후에 교황들이 계승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에서는 베드로가 고백한 진리 곧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선포된 진리를 반석으로 해석합니다. 즉 교회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진리에 대한 고백과 믿음 위에 세워졌다는 말이고, 이 고백과 믿음이야말로 교회를 지켜내는 진정한 반석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교회를 모든 이단적 가르침으로부터 구별해주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예수는 그리스도시라는 이 신앙고백입니다. 이런 참된 신앙고백이 여러분 모든 성도들의 입술에서 날마다 선포되기를 축복드립니다.
교회가 이 진리 위에 서면 어떻게 됩니까? 어떤 권세도 교회를 흔들지 못 합니다. 18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음부의 권세 즉 지옥의 권세는 교회를 흔들고 무너뜨리려 합니다. 그 이유는 지옥의 권세는 사람들을 멸망시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옥의 권세가 우리의 자녀들을 술과 마약과 음란에 빠뜨리고 우리의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폭력과 테러와 살인과 강도와 성폭행을 날마다 일으키고 있는 것을 봅니다. 신문에서 넘쳐나는 범죄와 테러기사들을 보고 우리의 사랑하는 이들이 이런 악의 희생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낙심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만 다시금 소망을 회복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암흑같은 지옥의 권세가 뒤덮은 세상에서 진리의 등불을 높이 든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빛을 밝혀 지옥의 권세를 몰아냅니다. 그러므로 지옥의 권세는 어떻게 하든지 진리의 등대인 교회를 무너뜨리려 뒤흔듭니다. 그러나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참 진리 위에 선 교회는 결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 합니다. 진리는 마침내 승리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진리의 편에 서셔서 승리를 함께 경험하시길 축복드립니다.
진리를 선포하는 교회(19)
그럼 이 진리의 반석 위에 선 교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그 진리를 세상에 선포하여야 합니다. 19절입니다.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교회는 천국 열쇠를 주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이 천국 열쇠가 바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교회는 이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선포하는 사역을 통해 매기도하고 풀기도 합니다. 매고 푸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국의 그린벨트 규정처럼 뉴저지에는 Wet Land규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개울이 흐르는 곳에서 300피트까지는 Wet Land로 지정되어서 내 땅이라도 마음대로 개발하지 못 하도록 하여 자연을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이 규정을 해석하고 감시하고 지키도록 하는 타운의 부서가 Department of environmental protection입니다. 한국말로 환경보호부, 자연보호부 정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개울이 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고 공유지와 사유지를 가리지 않고 흐르고 개울 주변에는 흙땅도 있지만 아스팔트도 있고 이미 건물이 들어선 지역도 있기 때문에 자로 잰듯이 300피트를 자를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윁랜드인지를 측정하고 해석을 해야 합니다. 이 부서가 측정, 해석하여 여기까지가 윁랜드라고 지정하면 그 땅은 개발이 금지된 묶인 땅이 됩니다. 반면 이 땅은 윁랜드에서 해제된다고 지정하면 그 땅은 개발이 풀린 땅이 됩니다. 이 환경보호부가 하는 일은 땅은 묶기도 하고 풀기도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은 수천 년 전 팔레스틴의 환경에서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선포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날 21세기 다원화, 다종교화, 세속화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해석하여 무엇이 성도의 바른 삶이고 무엇이 성도가 멀리해야 할 것인지를 해석합니다. 이 해석에 따라 성도들은 매인 일과 풀린 일을 구분하여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매고 푸는 것은 또한 교회를 흔드는 음부의 세력을 심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릇된 행위, 교회를 흔드는 행위를 분별하고 치리합니다.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두 번의 교회라는 단어 중 다른 하나는 18장에서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을 치리하도록 명하실 때 사용하십니다.
(마 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마 18: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이들은 교회가 치리하고 그 치리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천국문이 닫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진리를 맡기신 교회에 주신 권위입니다. 천국문을 열고 닫는 것이 얼마나 큰 권세입니까? 이런 권세를 교회에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첫째 진리의 말씀이 그만큼 큰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고 둘째 그런 권세를 교회가 가져야 진리의 말씀을 보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권세를 갖지 못 하면 음부의 권세가 겁도없이 교회를 드나들며 흔들고 무너뜨리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가진 진리의 말씀과 이 말씀으로 말미암는 권세가 얼마나 큰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창립 44주년을 맞는 우리 뉴저지장로교회는 진리로 말미암아 행복한 교회, 진리의 반석 위에 선 교회 그리고 진리를 선포함으로 이 세대에 빛을 밝히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