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8:31-39/영원히 우리편이신 하나님
160724 주일설교
흔들리는 세상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자민 프랭클린은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죽음과 세금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도 말하기를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반대로 이해하자면 죽음 빼고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확실한 것이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불확실합니다. 결혼서약을 하면서도 이 결혼생활이 지속될지 확신하지 못 합니다. 주식투자를 하노라면 이 회사와 경영진을 믿을 수 있을지 불안합니다. 꼬박꼬박 연금을 납입하면서도 과연 연금이 제대로 지급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 앞에서 굳은 약속을 하는 저 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을지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내가 누리는 이 풍요와 안전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도 불안합니다. 그런데 이런 불확실성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더욱 큽니다.
지난 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적 발견을 대체로 두 가지로 꼽습니다. 첫째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이고 둘째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원리입니다. 상대성원리란 절대적인 줄 알았던 시간과 공간이 사실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말이고 불확정성원리란 양자역학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원리입니다. 오늘날에는 과학적 발견과 철학이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즉 과학적 발견이 사람들의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입니다. 그 결과 이 시대의 사람들은 실제로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 무엇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는 진리라는 바위 위에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했습니다. 이제는 끊임없이 파도에 흔들리고 조류에 따라 흘러가는 배 위에서 살아갑니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갈지도 모른 채 쉬지않고 노를 젖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이봐요, 우린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도 몰라요, 각자 가고 싶은 데로 가고 하고 싶은 데로 하세요.’
그결과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열심히 살고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만 반면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불안과 염려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풍요와 안전을 누리고 있는 서구인들은 역설적으로 엄청난 양의 진통제와 항우울제를 삼키며 살아갑니다. 지진으로 쉴새없이 흔들리는 땅 위에서 살아가듯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편이신 하나님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도 바울이 던지는 소망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런 세상 속에서조차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우리들의 편에 서 계신다는 진실입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롬 8: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십니다. 전쟁같은 인생에서 하나님은 우리 편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므로 세상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말 우리 편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정말 그것을 확신할 수 있나요? 그 증거가 있습니다. 32절입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위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는 그 분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내어주셨는지입니다. 온전한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우리 인간에게도 가장 소중한 것은 자녀입니다. 부귀영화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도 자녀의 생명과 행복은 여간해서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위해 많은 희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온전한 사랑 그 자체이신 분에게 아들을 내어주는 일이 도대체 어떤 일이겠습니까? 그것은 정말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이 아니면 내릴 수 없는 결정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하셨다면 도대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신다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이 증거로 인해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 편이라는 사실이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도무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랑으로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시고 영원히 여러분의 편이 되어 주신다는 사실을 여러분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 모든 것이란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며 그들에게 주기를 원하셨던 세상의 모든 복지입니다. 에덴동산의 모든 열매를 마음껏 따먹고 땅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고 모든 짐승들의 이름을 짓도록 했던 그 주권을 성도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권세로 인해 새 하늘과 새 땅을 다스리는 복을 성도들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의 약속 또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죄가 막을 수 없는 구원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 편이라는 확실한 사실로 인해 더욱 분명해진 것은 바로 성도의 구원입니다. 성도의 구원을 위협하는 두 가지 권세가 더 이상 위세를 떨치지 못 합니다. 그 첫째는 죄의 권세입니다. 33-34절입니다.
(롬 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롬 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니라.
성도를 고발하고 정죄하실 이는 재판장이신 하나님이시고 그 권세를 위임받으신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성도의 모든 죄값을 치르셨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고 계시고, 그 희생과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그 성도들을 의롭다고 이미 선언하셨습니다. 기소하실 예수님과 판결하실 하나님이 무죄를 이루시고 무죄를 선언하셨는데 누가 더 이상 성도들의 죄를 문제삼을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떤 죄도 여러분의 확실한 구원을 막을 수 없음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고난이 막을 수 없는 구원
죄와 더불어 성도의 구원을 위협하는 둘째 권세는 바로 고난입니다. 35-36절입니다.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 8:36)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의를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은 도살 당할 양처럼 세상에서 위협을 받으며 삽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도 성도의 구원에 참된 위협이 되지는 못 하는데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37절도 이렇게 선언합니다.
(롬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모든 고난을 이기되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주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입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남자는 이기적이지만 아빠는 헌신적인 이유도 이것입니다. 죄인인 인간도 자녀 사랑으로 인해 이렇게 강해지는데 자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인해 얼마나 크고 강한 능력을 자녀들에게 부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넉넉한 사랑의 능력으로 인해 자녀들은 얼마나 고난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요! 38절 이하입니다.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영원히 우리편이신 하나님
제가 두레교회에서 부목으로 섬길 때 담당했던 교구장님 이야기입니다. 이 여집사님에게는 뇌의 혈관이 점점 좁아지는 소아뇌졸증으로 불리는 모아모아병이란 불치병으로 고생을 하는 동호란 초등학생 아들이 있었습니다. 대수술을 통해서 머리에 인공혈관을 삽입하였는데 얼마나 고통이 심한지 동호가 발버둥을 치며 엉엉 울어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동호는 엄마의 손을 잡고는 ‘예수님, 다시는 수술하지 않게 해 주세요.’하고 울며 기도를 드렸습니다. 1년 후 병원에서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하자 동호는 왜 예수님이 자기 기도를 안 들어주느냐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는 겁니다. 집사님도 너무 마음이 아파서 주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재수술이 끝나고 머리에 꽂았던 튜브 4개를 뽑는데 아이가 아프다고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우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이를 붙들고 조금만 참으라고 달래는데 갑자기 아이가 손을 하늘로 쳐들고는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진정시키려고 하자 오히려 동호는 엄마를 붙들고는 ‘엄마, 저기 예수님이 오셨어. 저기, 예수님이 나를 꼭 껴안고 동호야 참 잘 참았다. 내가 널 정말 사랑한단다.’고 했단 말이야. 저기… 예수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쳐댔습니다. 이 집사님이 놀라서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네가 얼마나 아이를 세뇌시켰으면 그런 헛소리를 다 하냐?’고 핀잔을 주더랍니다. 밤에 남편이 병원에 왔는데 옆 침대 환자들이 말하기를, ‘나는 교회에 안 다니지만 오늘 저 아이에게 뭔가 좋은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아파 울던 아이가 저렇게 기뻐할 수 없는 거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믿음이 없던 남편도 아이의 손을 붙잡더니 ‘동호야, 아빠 위해서 좀 기도해 주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 집사님도 이렇게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주님, 우리 동호를 찾아와 주셔서 위로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덕분에 온 가족이 하나님을 새로 만났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오직 한 가지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어떤 고난도, 권세도, 죄와 악의 세력도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자녀들을 붙들고 있는 한 내일 아침에 해가 여전히 떠오른다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이 성도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참된 평화와 소망을 누리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