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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4 천국같은 가정 / 엡 6:1-4

엡 6:1-4/천국같은 가정 230514 어버이주일 1. 불명예스러운 1위 한국은 확실히 열정적인 나라입니다. 그 열정은 세계 1위를 찍은 여러 항목에서도 드러나는데 그 중에는 자랑스러운 1위도 여럿 있지만 결코 자랑하고 싶지 않은 1위도 있습니다. OECD 국가 중 자살율, 대기오염율 그리고 노인빈곤율이 모두 1위입니다. 그리고 전세계 모든 국가를 통틀어 압도적인 1위 항목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 0.78명의 기록입니다. 가임기여성 한 명이 평생 출산할 것으로 기대하는 평균출생아 수로 한국에서는 여성 한 명이 평생 0.78명 밖에 낳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2위 일본도 넉넉히 따돌린 이 기록은 한국사람들이 결혼도, 출산도 기피하는 추세를 반영합니다. 이미 시작된 인구절벽은 미래한국사회의 침몰의 가장 확실한 원인이라고 꼽힙니다. 그 배경에는 가정의 붕괴가 있습니다. 작년 한국 통계청이 내놓은 한국사회 결혼건수와 결혼율은 모두 통계가 작성된 197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결혼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43%만이 그렇다, 51%는 안 해도 괜찮다고 답을 했습니다. 한국인들은 결혼과 가정을 점점 중요하지 않게 여기고 어떤 이유로든 독신생활을 점점 더 원한다는 뜻입니다. 유독 한국사회에 더 강하게 나타나는 이런 추세는 옳은 것입니까? 괜찮은 것일까요? 이런 시대의 풍조에 대해 성경은 무엇이라 가르칠까요?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왜 우리는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 그리고 가정의 달을 지킵니까? 가정의 중요성을 점점 상실해 가는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2. 가정의 가치 우리는 왜 결혼하고 왜 가정을 꾸립니까? 아마 진화론자들은 종족번식을 꾀하는 DNA의 맹목적 욕망 때문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낭만적인 이들은 사랑하는 이와 항상 함께 하고 싶어서라고 하겠지요. 혹 외로움을 덜거나 경제적 부담을 함께 지거나 부모님의 바람 때문에 혹은 사회적 요구 때문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창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은 본래부터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습니다. 그에게는 돕는 이가 필요합니다. 그 돕는 이로 하나님은 배우자를 주셨습니다.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은 그 가정이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 복이 무엇일까요?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복은 생육 곧 자녀를 낳아서 번성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기를 구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한 큰 행복이 뒤따릅니다. 이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인 동시에 하나님이 주신 복의 삶입니다. 3. 독신의 가치 그렇다면 독신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불순종입니까? 오늘날 급증하고 있는 독신생활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으로 혹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독신생활을 하는 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 19:12) “처음부터 결혼하지 못할 몸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사람의 손으로 그렇게 된 사람도 있고 또 하늘 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은 받아들여라.”(공동번역) 즉 사명을 전념해서 감당하기 위해 독신을 스스로 택하는 사람이 있는데, 억지로 그렇게 할 필요는 없고 기꺼이 그렇게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하라는 뜻입니다. 선교지에서 종종 독신으로 사역에 전념하는 여선교사님을 만납니다. 반면 남자선교사님은 독신이 잘 없습니다. 불필요한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결국 결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독신을 차선이거나 불순종하는 삶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와 달리 독신으로 선교사역에 전념했던 사도 바울은 독신이 은사라고 가르쳤습니다. (고전 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베드로)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고전 7: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독신)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결혼과 독신을 다양한 기질과 상황과 선택을 다른 것으로 이해해야지, 옳고 그른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결혼이 옳고 독신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결혼이든, 독신이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면 선합니다. 결혼이든, 독신이든 자신의 욕망을 위한 것이면 악합니다. 결혼이 선한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 곧 서로 돕고 사랑하고 새생명을 탄생시키는 놀라운 복을 세상에 퍼뜨리기 때문입니다. 결혼이 정욕이나 허영이나 경제적 필요를 채우는 도구로 전락할 때 그것은 악합니다. 독신이 선한 이유는 시간과 에너지를 하나님의 사역과 이웃을 섬기는데 더욱 집중하고 헌신할 수 있기 때문에 선합니다. 독신이 성가시고 부담스러운 의무를 피하고 방해받지 않는 자신만의 생활을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악합니다. 여러분의 결혼생활과 독신생활이 모두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거룩하기를 축복합니다. 4. 사랑의 사명  다음으로 가정의 사명을 생각해 봅니다. 모든 가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습니다. 가정이 이 사명을 감당할 때 행복하고 거룩하고 신성합니다. 부부는 서로 돕는 배우자로 창조되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서로 돕는 존재입니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고 서로 도와야만 가능한 이 가정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사랑입니다. (엡 5:33) …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부부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자연인으로 인간은 자기애의 감옥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기심의 감옥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경험을 연인과 사랑에 빠지면서 합니다. 그 사랑이 영원할 줄 알고 가정을 이루지만 곧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갈등의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웁니다. 그제서야 조금씩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는 훈련의 장입니다. 가정은 우리가 성숙해가는 훈련의 장입니다. 또한 가정은 우리가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자라가는 곳입니다. 이 과정을 부부는 서로 도우며 함께 갑니다. 5. 돌봄의 사명 둘째 가정의 사명은 돌봄입니다. (딤전 5: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가정이란 울타리에서 돌봄을 받습니다. 부부는 서로를 돌보고 부모는 자녀를 돌보고 자녀는 부모를 돌봅니다. 오늘날 선진국의 복지시스템이 이를 많이 해결합니다만 어디까지나 가정의 돌봄을 보완하는 것이지,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극단적 예입니다만 공산주의 사회에서 생산성을 증대시킨다고 모든 자녀돌봄을 정부가 운영하는 보육원에 맡기고 노인돌봄을 정부의 양로원에 맡겼습니다만 그 결과는 관계와 윤리, 도덕, 공동체성의 붕괴로 재앙과 같았습니다. 지금도 절대다수의 인류는 돌봄을 가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사회시스템이 발전해도 가정의 돌봄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 들어가서 청소년은 기숙학교에서 살고 청년시절엔 건강하니까 혼자 살다가 은퇴하고는 홀로 양로원에 들어가는 인생을 살고 싶은 분 계십니까? 인생은 서로를 돌보고 돌봄을 받으며 보람과 기쁨을 동시에 느낍니다. 이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에 가정만한 곳은 세상에 없습니다. 6. 양육의 사명  셋째 가정의 사명은 양육입니다. 여기서 양육은 정신과 신체가 건강한 다음 세대를 길러낸다는 의미입니다. 에베소 교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부모는 자녀를 신실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양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 양육은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으로 할까요? 각자의 주관과 경험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주관과 경험은 얼마나 많은 편견과 상처와 무지와 고집으로 얼룩져 있습니까? 거룩하고 바르고 풍성한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일꾼이 아니라 우리 자신처럼 편견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죄인을 또 한 명 길러낼 뿐입니다. 이런 양육에 주의할 것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자녀를 학대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언제 자녀를 학대합니까? 폭력이나 방임, 굶기는 것만이 학대가 아닙니다.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쏟아놓는 것도 학대입니다. 한국부모들은 안타깝지만 자녀를 학대하는 줄도 모르고 학대합니다. 자신도 학대당하며 컸기 때문에 그것이 학대인 줄도 모릅니다. 지난 세대 부모들은 아무 의식없이 화가 난다고 빌어먹을 놈, 나가 뒈져라 같은 저주를 자녀에게 쏟아놓곤 했습니다. 저주입니다. 자녀를 비하하고 다른 이와 비교하고 약점을 꼬집고 아픈 상처를 헤집는 것을 훈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깨진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주위에서 얼마나 많이 발견하는지 모릅니다. 물론 버릇없고 이기적인 자녀의 문제가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시작부터 성인과 미성년의 관계입니다.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 책임은 성인에게부터 시작합니다. 아이에게 건강한 관계를 세울 책임을 먼저 물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분노와 미움과 편견과 거짓이 있으면 절대 자녀를 건강하게 양육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치유받고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서야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할 수 있습니다. 7. 세상의 소망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가정의 가치를 깨닫고 사명을 이룰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소망을 발견합니다. 기독교를 박해했던 4세기 중반의 로마황제 율리아누스는 기독교를 공격하는 ‘갈리리인 공박론’을 남겼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기독교의 교리를 공격하면서도 적어도 그들의 삶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 있다고 이렇게 씁니다. “유대인은 아무도 구걸할 필요가 없고, 불경한 갈릴리인(기독교인)은 자기네 사람뿐 아니라 우리 중에 있는 가난한 사람도 돕는다. 우리 백성은 우리에게서 도움을 받지 못하는 형편이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기독교인들은 로마제국의 풍조를 따르지 않는다고 박해받았지만 적어도 그들의 구별된 삶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주후 40년 경 5,000명 정도였던 로마제국의 그리스도인은 주후 300년 경 500만 명으로 100배로 성장했습니다. 지금은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고백합니다. 우리는 세상풍조가 아닌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가정의 가치과 사명을 지켜감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20230108 성장하는 인생 / 엡 4:11-15

엡 4:11-15/성장하는 인생 230108 주일 설교 1. 인생의 목적  “우리는 마치 내일 죽을 것처럼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내일까지 살 수 있을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성도는 저절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월은 간혹 우리를 성화시키기보다 죄의 부담만을 키우기도 한다… 자신의 죽음과 매일의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리스도인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었다는, 15세기 수도사 토마스 아 캠피스의 책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한 대목입니다.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는 이 책을 가리켜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천 번을 거듭…

20220501 은혜와 진리가 기르는 자녀 / 엡 6:4

엡 6:4/은혜와 진리가 기르는 자녀 220501 어린이주일 1. 대를 잇는 상처와 아픔 고인이 된 이어령 박사의 딸 이민아 목사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그들의 간증집에 잘 나와 있습니다. 어린 시절 너무나 바쁜 아버지 이어령 박사의 뒷모습만 보고 자란 이민아 목사는 어떻게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심에 하기도 싫은 공부와 유학생활을 이를 악물고 감당했습니다. 자신이 겪은 애정결핍의 상처가 너무 커서 자녀에게는 그런 고통을 주지 않으리라 마음 먹고 온 힘을 다해 사랑으로 아들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사춘기의 방황하던 아들이 자신의 꾸지람을 듣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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