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Tagged Sermons (Page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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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7 천국을 누리는 가정 / 창 2:18~25

창 2:18-25/천국을 누리는 가정 180107 주일설교 표어  우리를 내모는 위협 할렐루야! 2018년 첫 주일 예배를 드리는 성도 여러분의 심령과 가정과 일터 위에 은혜로우신 우리 주님의 기쁨이 넘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새해 벽두에 안타깝게도 우리 뉴저지를 포함한 미국 북동부에는 100년 만에 최고라는 살인적 한파가 덮쳤습니다. 눈폭탄과 한파으로 뉴욕, 필라델피아 등 여러 도시들이 마비되었고 나이아가라마저 얼어붙었습니다. 보스턴은 이 추위에 해일로 인한 홍수피해까지 겪고 있습니다. 미 전역에서 현재까지 17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계속 늘어날 전망입니다. 제일 걱정은 갈곳없는 노숙자들입니다. 지난 목요일에 잠시 눈을 치우러 나가도 눈폭풍이…

20171126 하나님이 나를 잊었다 / 창40:16~23

창 40:16-23/하나님이 나를 잊었다 171126 주일설교  침묵 작년에 명감독 마틴 스콜세이지가 만든 영화 사일런스, 침묵이란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원작은 엔도 슈사꾸가 쓴 동명의 소설 침묵입니다. 17세기 일본 나가사키 지방에 선교사로 온 포르투칼의 예수회 페레이라 신부는 봉건영주들로부터 상상을 초월하는 박해를 당하는 신도들을 마주합니다. 영주들은 페레이라 신부를 배교시키기 위해 그 앞에서 신도들을 천천히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고문하면서 죽입니다. 기도도 하고 호소도 하고 부르짖어보지만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신도들을 보면서 그는 신앙의 위기를 직면합니다. 당신의 자녀들이 이렇게 고통당하며 죽어가는데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 당신은 왜…

20171112 두개의 신분 / 창 40:1~15

창 40:1-15/두 개의 신분 171112 주일설교 요셉 맹의순 전도사 1988년 작가 정희연 씨가 발표한 ‘내잔이넘치나이다’는 맹의순 전도사의 일대기를 그린 실화소설입니다. 1926년 평양 장대현 교회 맹관호 장로의 아들로 태어난 24세의 청년 맹의순 전도사는 서울에서 신학교를 다니던 중 6.25 발발로 피난길에 오르지만 공산군으로 오인되어 거제도포로수용소에 갇힙니다. 피난길에 오른 주민이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믿지않는 군당국의 자세에 좌절하였지만 그 곳에 갇히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 믿고 풀려날 때까지 포로들을 돌보기로 작정합니다. 수용소의 천막병원에서 미군의사들의 통역을 하며 부상자들을 돌보고 주일에는 교회를 섬겼습니다. 일이 익숙해 진 후 그는 일과 후에…

20171105 거룩의 비밀 / 창 39:7~20

창 39:7-20/거룩의 비밀 171112 주일설교 요셉  성산 장기려 박사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성산 장기려 박사는 6.25 전쟁 통에 가족들과 월남을 계획합니다.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둘째 아들만 데리고 병원과 교회에 들러 짐을 꾸리고 늦게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해주 쪽으로 향하던 아내 김봉숙 씨는 중공군에게 막혀 북에 남고 결국 자신만 아들과 월남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995년 별세할 때까지 50여 년을 홀로 살았습니다. 그를 아끼는 많은 이들이 그에게 재혼을 권했지만 그는 언제나 같은 말로 거절하였습니다. “한 번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나는 한 여인만을 사랑하기로 이미…

20171022 형통의 비밀 / 창 39:1~6, 21~23

창 39:1-6, 21-23/형통의 비밀 171022 주일설교 요셉    성공의 비결 제가 LA영락교회를 섬길 때 차로 1, 2분 거리도 안되는 거리에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 하는 말이 저 교회 장로님이 엄청난 부자라는 것입니다. 교회이름도, 목사님 이름도 모르는데 그 교회 장로님이 포에버21의 회장이라는 것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포에버21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패션기업 중 하나로 장도원 회장 부부의 자산은 47억 달러가 넘고 한 때 LA지역 부호 10위에 랭크되었었다고 합니다. 장도원 회장 부부는 81년 무일푼으로 이민을 와서 쓰리잡을 뛰며 다른 이민자처럼 온갖 고생을 다하다가 작은 옷가게를 시작해 첫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성공에 취해 골프를 시작하면서 교회를 멀리 했다가 아내의 간곡한 부탁으로 나간 개척교회에서 잃어버렸던 첫사랑을 체험하고 신앙을 회복합니다. 중국 흑룡강성의 조선족 선교를 갔는데 부모가 모두 돈을 벌러가고 혼자 사는 아이들을 3주 동안 돌보다가 그 아이들처럼 외롭게 살던 자신을 돌보아주셨던 주님의 은혜를 떠올리고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다 버리기로 하고 그렇게 좋아하던 골프를 끊습니다. 2008명 경제위기가 와서 모두들 사업규모를 줄어야한다고 했을 때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게 해준 미국사회를 위해 회사가 손해를 보더라도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 해에는 매출 목표를 아예 잡지않고 7,000명을 더 고용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해에 오픈한 매장이 다른 곳보다 훨씬 잘 되었다고 합니다. 장도원 회장은 아마 한인 이민자들 중에 가장 성공한 사례일 겁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이런 장회장의 성공에는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일까요? 만나는 사람들마다 장회장에게 어떻게 비지니스를 그리 잘 하느냐고 묻는답니다. 그럴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예수 잘 믿는 것밖에 없다고 답하면 그거 말고 다른 비결이 없냐고 묻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면 결국 그거 뿐이더라는 겁니다. 그의 성공의 진짜 비밀은무엇일까요?   형통이란 오늘 본문 1-6절은 요셉 형들에게 팔려 이집트에서 노예의 삶을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보디발이라는 이집트의 통치자 바로의 경호대장인 군인의 집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21-23절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는 장면입니다. 두 경우 모두 인생에서 두번 겪기 어려운 힘든 사건이고 그 과정에서 요셉은 말로 다 못 할 배신감과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에 떨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만, 어찌 된 일인지 성경은 그 두 경우 모두 ‘형통’했다고 선언합니다. 본문에는 3번의 형통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다른 번역본들은 형통을 성공적이었다,앞 길이 잘 열렸다 혹은 일이 잘 되었다 등으로 번역합니다. 누가 봐도 형통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성경이 요셉의 삶을 형통했다고 선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경이 보는 형통과 세상이 보는 형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형통한 삶을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이 종종 세상이 말하는 형통일 뿐 성경이 가르치는 형통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이 성경이 가르치는 형통을 충만히 누리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자,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형통이란 무엇일까요?   고난이 없는 것이냐 첫째로 성경적인 형통은 고난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들에게 팔려서 낯선 이국땅에서 노예가 되고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겪는 중에 일이 좀 잘 풀렸다고 한들 그것을 어떻게 형통하다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요셉이 형통했다는 것은 그 형통이 그런 고난의 유무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그를 형통하다는 평가를 받게 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 본문에는 형통이 3번 나오는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4번이나 나오면서 매번 형통의 이유가 됩니다. (창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 39: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 (창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 (창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성경적 형통의 조건은 고난의 유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유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 중인데 형통할 수도 있고 아무 고난 없이 편안한데 형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평안하고 형통했지만 그를 가둔 헤롯 안티파스는 불안했고 형통하지않았습니다. 역시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찬양했고 형통했지만 그를 때린 간수들은 불안했고 형통하지 않았습니다. 콜로세움에서 짐승 먹이로 던져지던 순교자들도 순결했고 형통했지만 그들을 죽인 네로는 미쳐갔고 형통하지 않았습니다. 변방의 유목민 아이가 대제국 이집트의 총리대신까지 도약한 형통의 비밀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시골 들판에서 양치던 어린 목동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이 된 형통의 비밀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형통을 원하는 우리 성도들이 구해야 할 것은 고난 없는 편안한 삶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임을 깨달으시기 축복드립니다. 우리는 자꾸만 엉뚱한 것을 구합니다. 고난이 빨리 지나가기를, 좀 더 부유하고 인기있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잘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임재를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형통한 삶을 누리지 못 합니다. 거기 있는 평안과 기쁨과 담대함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미 임재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 말씀을 순종하고 가르치는 이에게 임재의 약속이 함께 합니다. 주님께 응답하여 늘 그 분과 동행하는 형통을 누리시기를 축복드립니다.   홀로 잘 되는 것이냐 둘째로 성경적 형통은 홀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 되는 것이 형통이 아닌가요? 그것은 성경적 형통의 일부이긴 합니다만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적 형통은 내가 잘 될 뿐 아니라 나 때문에 이웃까지 잘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4절입니다. (창 39: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하나님이 그를 형통케 하시자 요셉은 주인 보디발에게 은혜를 입습니다. 그의 믿음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의 형통은  요셉에게서 멈추지 않고 다시 보디발의 집을 복되게 만듭니다. 5절입니다. (창 39: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요셉 때문에 또 요셉을 위하여 하나님이 보디발의 집에도 복을 내리십니다. 이웃에게까지 그 형통의 복을 나누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도의 형통입니다. 세상에서는 홀로 잘 되기만 해도 형통하다고 여기고 부러워 합니다. 그렇게 치자면 세상에서 가장 형통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 우리가 떠나온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양극화가 심한 나라들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OECD 국가들 중 양극화가 가장 심한 나라로 상위 10% 국민이 전체소득의 47.8%를 벌어들입니다. 나머지 90%가 남은 절반의 소득을 나누어가지는 것이지요. 한국도 상위 10%의 소득이 44.9%로 미국의 수준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22년 전인 1995년에는 29.2%였던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속도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토지의 양극화는 더 심각한데요, 지금 진행 중인 한국의 국정감사에서 제출된 자료를 보면, 개인토지의 경우 2012년 상위 1%의 인구가 전체토지의 55.2%를 소유하고 있고, 상위 10%가 97.6%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100명이 100평 땅에 사는데 1명이 50평을 차지하고 나머지 99명이 남은 50평에서 나누어 산다는 말입니다. 또 10명이 10평땅에 사는 것으로 설명하자면 1명이 9평을 차지하고 나머지 9명이 1평 안에서 나누어 산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소득과 토지의 집중이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혼자 잘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다른 이들의 희생을 대가로 풍요를 누린다는 말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사명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 비지니스를 통해 직원들과 거래처와 복을 나누겠다는 사명감, 나의 직업을 통해고객과 동료들과 복을 나누겠다는 사명감 그리고 나의 소비를 통해 기업과 이 사회와 복을 나누겠다는 사명감이 그것입니다. 요셉으로 인해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듯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의 동료들과 고객들과 기업과 이 사회가 복을 받는 형통을 누리시길 축복드립니다.   계획대로 다 되는 것이냐 마지막으로 성경적 형통은 내 계획대로 일이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도무지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중에 있습니다. 그는 변방이지만 유목민 부족의 도련님에서 노예로, 노예에서 죄수로 계속 추락하기만 합니다. 그런데도 왜 그는 형통하다고 성경이 말씀하십니까? 그의 추락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이집트의 왕궁으로 보내기 원하셨습니다. 그것도 어리버리한 철부지 도련님이 아니라 이집트 전역을 다스리는 총리로서 리더십과 재무능력과 행정력이 준비된 채로 보내셔야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온갖 모략과 권모술수가 판치는 정치판에서 오랫동안 인정받고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강인함과 인내력을 갖추어야만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기치못한 고난을 겪으며 배신감과 억울함과 외로움을 견뎌내고 보디발의 집과 감옥을 운영하는 경험도 갖추어야 했고 이 모든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의 단련도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야곱의 후손들이 이집트에 정착하도록 하여 가나안의 혹독한 흉년을 피하고 큰 민족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까지 계획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이 민족을 통해 메시야가 나게 하시고 그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는 것까지 계획하셨습니다. 요셉의 추락은이 거대한 계획 안에서 빈틈없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진행된 것이기에 형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형통이란 내 계획대로 인생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인생이 풀리는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힘겹게 기도하셨습니다. 할수만 있으면 십자가라는 고난의 잔을 피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작정하심으로 진정 형통의 길을 가셨습니다. 오늘 이 세대는 얼마나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가를 기준으로 인생의 성공여부를 평가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가장 인기있는 용어는 자아실현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휘하며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어갈 때 사람들은 커다란 성취감을 느끼고 자아를 실현했고 성공적인 인생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지 않다면 그것은 성공이라고 할 수도, 형통한 삶이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가장 자기 마음대로 산 존재가 바로 마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었기에 그는 마귀가 되었습니다.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20171015 누가 더 죄인인가 / 창 38:6~26

창 38:6-26/누가 더 죄인인가 171015 주일설교   마약에 중독된 아기들 오늘 설교의 서두는 좀 혐오스러울 수 있습니다. 먼저 한국뉴스에 소개된 미국소식을 영상으로 잠깐 보시겠습니다. (마약에 중독된 채 태어나는 아기들) https://www.youtube.com/watch?v=ur5R5q3TwXU 미국에서 마약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참으로 충격적인 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미국에서는 한 시간에 3명씩 마약중독 아기가 태어납니다. 건강하게 태어나도 만만치않은 인생을 마약에 중독된 채 시작한다면, 요행히 목숨을 건진다 하더라도 이 아기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이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당연히 임신상태에서도 마약을 복용한 그 엄마들이 비난을 받아야겠지요. 그러나 그녀들을 비난하는 것만으로 이 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