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Tagged Sermons (Page 6)
20171022 형통의 비밀 / 창 39:1~6, 21~23
창 39:1-6, 21-23/형통의 비밀 171022 주일설교 요셉 성공의 비결 제가 LA영락교회를 섬길 때 차로 1, 2분 거리도 안되는 거리에 교회가 하나 있었는데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 하는 말이 저 교회 장로님이 엄청난 부자라는 것입니다. 교회이름도, 목사님 이름도 모르는데 그 교회 장로님이 포에버21의 회장이라는 것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포에버21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패션기업 중 하나로 장도원 회장 부부의 자산은 47억 달러가 넘고 한 때 LA지역 부호 10위에 랭크되었었다고 합니다. 장도원 회장 부부는 81년 무일푼으로 이민을 와서 쓰리잡을 뛰며 다른 이민자처럼 온갖 고생을 다하다가 작은 옷가게를 시작해 첫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성공에 취해 골프를 시작하면서 교회를 멀리 했다가 아내의 간곡한 부탁으로 나간 개척교회에서 잃어버렸던 첫사랑을 체험하고 신앙을 회복합니다. 중국 흑룡강성의 조선족 선교를 갔는데 부모가 모두 돈을 벌러가고 혼자 사는 아이들을 3주 동안 돌보다가 그 아이들처럼 외롭게 살던 자신을 돌보아주셨던 주님의 은혜를 떠올리고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다 버리기로 하고 그렇게 좋아하던 골프를 끊습니다. 2008명 경제위기가 와서 모두들 사업규모를 줄어야한다고 했을 때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게 해준 미국사회를 위해 회사가 손해를 보더라도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 해에는 매출 목표를 아예 잡지않고 7,000명을 더 고용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해에 오픈한 매장이 다른 곳보다 훨씬 잘 되었다고 합니다. 장도원 회장은 아마 한인 이민자들 중에 가장 성공한 사례일 겁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이런 장회장의 성공에는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일까요? 만나는 사람들마다 장회장에게 어떻게 비지니스를 그리 잘 하느냐고 묻는답니다. 그럴 때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예수 잘 믿는 것밖에 없다고 답하면 그거 말고 다른 비결이 없냐고 묻는 겁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면 결국 그거 뿐이더라는 겁니다. 그의 성공의 진짜 비밀은무엇일까요? 형통이란 오늘 본문 1-6절은 요셉 형들에게 팔려 이집트에서 노예의 삶을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그는 보디발이라는 이집트의 통치자 바로의 경호대장인 군인의 집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21-23절은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는 장면입니다. 두 경우 모두 인생에서 두번 겪기 어려운 힘든 사건이고 그 과정에서 요셉은 말로 다 못 할 배신감과 두려움 그리고 외로움에 떨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만, 어찌 된 일인지 성경은 그 두 경우 모두 ‘형통’했다고 선언합니다. 본문에는 3번의 형통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다른 번역본들은 형통을 성공적이었다,앞 길이 잘 열렸다 혹은 일이 잘 되었다 등으로 번역합니다. 누가 봐도 형통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성경이 요셉의 삶을 형통했다고 선언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경이 보는 형통과 세상이 보는 형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형통한 삶을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이 종종 세상이 말하는 형통일 뿐 성경이 가르치는 형통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이 성경이 가르치는 형통을 충만히 누리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자,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형통이란 무엇일까요? 고난이 없는 것이냐 첫째로 성경적인 형통은 고난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들에게 팔려서 낯선 이국땅에서 노예가 되고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히는 고난을 겪는 중에 일이 좀 잘 풀렸다고 한들 그것을 어떻게 형통하다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요셉이 형통했다는 것은 그 형통이 그런 고난의 유무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그를 형통하다는 평가를 받게 합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입니다. 본문에는 형통이 3번 나오는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4번이나 나오면서 매번 형통의 이유가 됩니다. (창 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 39: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 (창 39: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 (창 39: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성경적 형통의 조건은 고난의 유무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유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 중인데 형통할 수도 있고 아무 고난 없이 편안한데 형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감옥에 갇힌 세례 요한은 평안하고 형통했지만 그를 가둔 헤롯 안티파스는 불안했고 형통하지않았습니다. 역시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은 찬양했고 형통했지만 그를 때린 간수들은 불안했고 형통하지 않았습니다. 콜로세움에서 짐승 먹이로 던져지던 순교자들도 순결했고 형통했지만 그들을 죽인 네로는 미쳐갔고 형통하지 않았습니다. 변방의 유목민 아이가 대제국 이집트의 총리대신까지 도약한 형통의 비밀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시골 들판에서 양치던 어린 목동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이 된 형통의 비밀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형통을 원하는 우리 성도들이 구해야 할 것은 고난 없는 편안한 삶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삶임을 깨달으시기 축복드립니다. 우리는 자꾸만 엉뚱한 것을 구합니다. 고난이 빨리 지나가기를, 좀 더 부유하고 인기있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잘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임재를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형통한 삶을 누리지 못 합니다. 거기 있는 평안과 기쁨과 담대함을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미 임재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 말씀을 순종하고 가르치는 이에게 임재의 약속이 함께 합니다. 주님께 응답하여 늘 그 분과 동행하는 형통을 누리시기를 축복드립니다. 홀로 잘 되는 것이냐 둘째로 성경적 형통은 홀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 되는 것이 형통이 아닌가요? 그것은 성경적 형통의 일부이긴 합니다만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적 형통은 내가 잘 될 뿐 아니라 나 때문에 이웃까지 잘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4절입니다. (창 39: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하나님이 그를 형통케 하시자 요셉은 주인 보디발에게 은혜를 입습니다. 그의 믿음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의 형통은 요셉에게서 멈추지 않고 다시 보디발의 집을 복되게 만듭니다. 5절입니다. (창 39: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요셉 때문에 또 요셉을 위하여 하나님이 보디발의 집에도 복을 내리십니다. 이웃에게까지 그 형통의 복을 나누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도의 형통입니다. 세상에서는 홀로 잘 되기만 해도 형통하다고 여기고 부러워 합니다. 그렇게 치자면 세상에서 가장 형통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 우리가 떠나온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양극화가 심한 나라들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OECD 국가들 중 양극화가 가장 심한 나라로 상위 10% 국민이 전체소득의 47.8%를 벌어들입니다. 나머지 90%가 남은 절반의 소득을 나누어가지는 것이지요. 한국도 상위 10%의 소득이 44.9%로 미국의 수준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22년 전인 1995년에는 29.2%였던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속도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토지의 양극화는 더 심각한데요, 지금 진행 중인 한국의 국정감사에서 제출된 자료를 보면, 개인토지의 경우 2012년 상위 1%의 인구가 전체토지의 55.2%를 소유하고 있고, 상위 10%가 97.6%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100명이 100평 땅에 사는데 1명이 50평을 차지하고 나머지 99명이 남은 50평에서 나누어 산다는 말입니다. 또 10명이 10평땅에 사는 것으로 설명하자면 1명이 9평을 차지하고 나머지 9명이 1평 안에서 나누어 산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소득과 토지의 집중이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혼자 잘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다른 이들의 희생을 대가로 풍요를 누린다는 말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사명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 비지니스를 통해 직원들과 거래처와 복을 나누겠다는 사명감, 나의 직업을 통해고객과 동료들과 복을 나누겠다는 사명감 그리고 나의 소비를 통해 기업과 이 사회와 복을 나누겠다는 사명감이 그것입니다. 요셉으로 인해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듯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의 동료들과 고객들과 기업과 이 사회가 복을 받는 형통을 누리시길 축복드립니다. 계획대로 다 되는 것이냐 마지막으로 성경적 형통은 내 계획대로 일이 풀리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은 도무지 자신의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중에 있습니다. 그는 변방이지만 유목민 부족의 도련님에서 노예로, 노예에서 죄수로 계속 추락하기만 합니다. 그런데도 왜 그는 형통하다고 성경이 말씀하십니까? 그의 추락이 하나님의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이집트의 왕궁으로 보내기 원하셨습니다. 그것도 어리버리한 철부지 도련님이 아니라 이집트 전역을 다스리는 총리로서 리더십과 재무능력과 행정력이 준비된 채로 보내셔야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온갖 모략과 권모술수가 판치는 정치판에서 오랫동안 인정받고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의 강인함과 인내력을 갖추어야만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기치못한 고난을 겪으며 배신감과 억울함과 외로움을 견뎌내고 보디발의 집과 감옥을 운영하는 경험도 갖추어야 했고 이 모든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의 단련도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야곱의 후손들이 이집트에 정착하도록 하여 가나안의 혹독한 흉년을 피하고 큰 민족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까지 계획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이 민족을 통해 메시야가 나게 하시고 그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는 것까지 계획하셨습니다. 요셉의 추락은이 거대한 계획 안에서 빈틈없는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진행된 것이기에 형통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형통이란 내 계획대로 인생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인생이 풀리는 것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힘겹게 기도하셨습니다. 할수만 있으면 십자가라는 고난의 잔을 피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작정하심으로 진정 형통의 길을 가셨습니다. 오늘 이 세대는 얼마나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가를 기준으로 인생의 성공여부를 평가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가장 인기있는 용어는 자아실현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휘하며 자신이 세운 목표를 이루어갈 때 사람들은 커다란 성취감을 느끼고 자아를 실현했고 성공적인 인생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지 않다면 그것은 성공이라고 할 수도, 형통한 삶이라고 부를 수도 없습니다. 가장 자기 마음대로 산 존재가 바로 마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었기에 그는 마귀가 되었습니다.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20171015 누가 더 죄인인가 / 창 38:6~26
창 38:6-26/누가 더 죄인인가 171015 주일설교 마약에 중독된 아기들 오늘 설교의 서두는 좀 혐오스러울 수 있습니다. 먼저 한국뉴스에 소개된 미국소식을 영상으로 잠깐 보시겠습니다. (마약에 중독된 채 태어나는 아기들) https://www.youtube.com/watch?v=ur5R5q3TwXU 미국에서 마약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참으로 충격적인 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영상에서 보신 것처럼 미국에서는 한 시간에 3명씩 마약중독 아기가 태어납니다. 건강하게 태어나도 만만치않은 인생을 마약에 중독된 채 시작한다면, 요행히 목숨을 건진다 하더라도 이 아기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이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당연히 임신상태에서도 마약을 복용한 그 엄마들이 비난을 받아야겠지요. 그러나 그녀들을 비난하는 것만으로 이 악의…
20170917 과학과 신앙 / 창1:1~5
창 1:1-5/과학과 신앙 170917 구역모임 공룡을 설명할 수 있는가 이번에 한국에 갔다가 대학시절에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대학교수였다가 지금은 어느 로펌의 언론홍보담당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최근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데 제가 뭐라 할 때마다 ‘마음으로는 믿어’라며 상황을 모면하곤 했습니다. 오랜만에 목사 친구를 만나자 평소 궁금했다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김목사, 성경이 공룡을 설명할 수 있어?’ ‘욥기에서 묘사하는 거대한 하마와 악어가 공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 ‘그 묘사가 공룡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 혹은 그 연대를 설명할 수 있어?’ ‘그런 건 증명할 수…
20170910 추락하는 인생의 날개 / 창 37:29~36
창 37:29-36/추락하는 인생의 날개 170903 주일설교 요셉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문열 씨의 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를 대학시절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임형빈이란 시골 젊은이는 명석한 두뇌와 노력으로 서울의 명문대 법대에 진학합니다. 법관으로서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고시를 준비하던 그는 우연히 서윤주라는 아름다운 여대생을 알게 되어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녀는 형빈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자유분방하였고 그녀를 얻기 위해 자신의 미래와 가정과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과 오스트리아까지 쫓아갔지만 결국은 질투와 분노를 이기지 못 하여 그녀를 총으로 살해하고 살인자가 되고야 맙니다.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나락으로…
20170528 “되라”에서 “되게하리라”로 / 창17:1~8 / 노재균 목사
“하라”에서 “되게 하리라”로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20170528 야곱의 사닥다리 / 창28:10~17 / 강용승 목사
야곱의 사닥다리 (창세기 28:10-17) 뭐든지 열심히 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 수완이 좋아서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 얻는 그런 사람. 때로는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나”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어떻게든 장자의 축복을 받아보려고 몸부림 치는 모습. 어머니 태에서부터 먼저 나오려고- 실패 (형의 발목을 붙잡고) – 듣는 사람이 웃을 일 형을 구슬려서 장자권을 사들임 – 배고픈 형을 붙잡고 흥정. 치사한 일. 아버지를 속이면서 까지 축복의 기도를 받고야 마는 – 오히려 형의 분노 때문에 집을 떠나게 됨. …
20170326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 / 창 1:25~27 / 강용승 목사
하나님과 하나님의 형상(창세기 1:25-26) 하나님과 구원받은 백성들과의 관계, 하나님의 나와의 관계를 다루려.. 하나님은 누구고, 나는 그 하나님 앞에 누구인가. 칼빈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나를 아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을 알면 나를, 나를 알면 하나님을 알게 되어 있다. 둘이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알고, 그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패… 조직화된 교회의 멤버가 되게 하고 그 조직의 단체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가르쳤다. 공 예배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교회 안에서 어떤 봉사를 하는 것만으로… 믿음 좋다고 평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인을 만들었다. 그래서 연수가 쌓이고, 직분을 받고, 교회 운영에 대한 경험은 늘지만… 그러나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서고, 하나님을 뜻을 분별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데 실패하고 있다. 건강한 신앙,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은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다. 나 혼자 있을 때에도, 세상 속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그런데 잘못하면 교회에서만… 그리고 혼자 있거나 세상 속에서는 차이가 없는…. 세상에 실망을 주게 된다. 목사의 1차적 사명은… 성도 개개인을 하나님 앞에 설수 있게 도와주고 그들 스스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 살게 하는 것이다. 영적 중매쟁이… 결국 성도들로 하여금 스스로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고 그들에게 주님이 커질수록 목사 자신은 작아지고 비어져 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성경을 잘 가르치는 목사보다 스스로 성경을 읽게 하는 목사가 더 훌륭, 기도를 많이 해 주는 목사보다 성도 스스로가 기도의 무릎을 꿇을 수 있도록 하는 목사, 믿음이 무엇인지 잘 가르치는 목사보다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목사가 더 훌륭한 목사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병을 고쳐주더라도, 건강을 책임져 주지는 못합니다. 목사가 최선을 다하지만, 목사가 여러분의 믿음을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 심판에서까지 목사가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서서… “하나님 이 분은 우리 교회 집사님이었는데 참 잘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잘했다 충성된 종아 하시던지,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하시던지 주님이 하시는 것이지, 목사든 어떤 사람도 그 사이에 설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하나님이 누구신지, 또 그분께 나는 누구인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스스로 확인하고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창세기는 시작의 책, 세상의 시작, 인간의 시작, 이스라엘의 시작, 그 시작의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하나님은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가장먼저 하나님과 이세상,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 창조주와 피조물로 소개. 창세기는 6일 동안의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그 창조의 과정을 조목조목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선언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사는 그 자체가 벌써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것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창세기의 기록은 하나님께서 6일동안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고 기록. 시편과 욥기는 하나님 창조의 위대함을 노래… ■■<시102:25-27>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욥 38:3-4, 28-29, 33, 41>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비에게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 ▶그래서 성경은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보면서 그 하나님을 묵상할 수 있다 라고… 햇빛, 달빛, 하늘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나뭇잎, 새끼를 돌보는 말 못하는 짐승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창조의 지혜와 창조의 은혜를 발견할 수 있어야… ▶또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 우리에게는 우리 인생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 인생이 무엇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수 없다는 것… 우리는 우리를 창조한 창조주 안에서만 본래 위치를 찾을 수 있고,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 파스칼, 팡세에서 사람에게는 하나님 만이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 허전함, 그 고독함,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허무와 고독 (하나님 없는 예술과 문학의 종점…)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하기도…. 그러나 우리는 창조주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느껴질 때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구나 라고 깨달아야…. 2. 하나님은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창조의 내용과 함께, 하나님이 우리에게 처음 소개될 때 어떤 모습으로 소개되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조의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성경은 하나님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 (3, 6, 9, 11, 14, 20,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God said,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우리는 하나님 하면 어떤 모습, 어떤 성품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까? 능력, 거룩, 자비, 사랑… 그 모든 것 이전에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으로 소개하고 계신다. 오늘날에도, 어떤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가장 먼저 다가오십니까? 말씀으로… 기록된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그리고 우리 안에서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말씀하심으로, 가장 먼저 당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십니다. 그 말씀하심을 통하여 이제 그분의 능력, 거룩, 사랑..깨닫게 하신다.…
20170219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 창37:12~28
창 37:12-28/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170219 주일설교 악의 평범성 예전에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을 다시 한 번 인용하고자 합니다. 히틀러의 심복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 학살한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그녀는 그의 평범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살범에 걸맞는 흉악하고 악독한 모습을 기대했던 그녀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옆집 아저씨처럼 어수룩한 아이히만의 모습 속에서 악의 평범성을 발견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만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위를 보통이라고 여기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서 행해진다고 그녀는 주장하는…
20170212 꿈꾸는 성도 / 창37:1~11
창 37:1-11/꿈꾸는 성도 170212 주일설교 요셉 자, 오늘부터는 요셉입니다. 요셉은 창세기의 마지막 주인공입니다. 창세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데 1-11장의 전반부와 12-50장의 후반부입니다. 전반부는 흔히 원역사로 부르는 세상의 창조부터 노아의 홍수와 바벨탑의 이야기 등을 다루고, 후반부는 선택받은 족장들의 역사로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의 이야기인데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족장사와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출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어떻게 이집트로 건너가서 큰 민족으로 태어나는가에 대한 답이 바로 요셉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차차 살펴보게 되겠지만 아브라함이 성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