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mons on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Sermons on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20180527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7 – 믿음과 사랑 / 마 22:35~40

마 22:35-40/어떻게 구원을 받는가7 : 믿음과 사랑 180527 주일설교 구원7 어디까지 순종해야 하는가 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시리즈는 끝난 것 아닌가, 오늘 설교제목을 보고 의아하신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예, 6주간 시리즈 설교를 이미 마쳤습니다만, 최근 다른 두 양육과정에서 몇 분들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받으면서 제가 충분히 교우 여러분들을 이해시키지 못 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되어 A/S를 한 주 하기로 했습니다. ‘에이, 시리즈 설교 CD 다 만들었는데…’ 설교CD를 매주 제작해 주시는 교우 여러분들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6주간 시리즈 설교를 통해 제가 강조한 것은 구원의…

20180408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6 – 하나님의 열심 / 딤전 2:4

딤전 2:4/어떻게 구원을 받는가6-하나님의 열심 180408 주일설교 신화냐 사실이냐 오늘날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가장 큰 위협 중 하나는 성경을 고대신화 중 하나로 여기는 것입니다. 단군신화나 그리스신화 혹은 중국신화나 인도신화와 같이 여기고 기독교인을 신화를 믿고 사는 어리석은 이로 여기는 폄하하는 것이지요.  기독교 변증가로 널리 알려진 작가 C.S.루이스는 고대신화와 문학을 전공한 학자이기도 합니다. 신화학자인 그는 성경을 고대의 신화가 아닌 진실에 대한 기록으로 믿는 이유 중 하나로 기록의 세심함을 꼽습니다. 그가 연구한 거의 모든 고대신화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중심에 놓고 그에 필요한 몇몇…

20180325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5 – 마음 / 요 12:9~19

요 12:9-19/어떻게 구원을 받는가5- 마음 180325 종려주일 생명의 근원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날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손에 들고 주님을 환영한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 지난 월요일부터 부활주일까지의 일주일은 고난주간입니다. 이 한 주간을 우리 교회는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와 성금요기도회를 통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교우 여러분도 함께 하시기를 권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두 종류의 무리를 만납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환영하러 나온 큰 무리의 군중입니다. 둘째는 그 와중에도 예수님을 죽일 기회를 엿보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등 종교지도자 무리입니다. 이 두 무리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요? 4주간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라는 주제로 설교를 해왔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성령님의 도우심과 예수님의 공로를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도는 회개와 믿음을 요구받습니다. 그렇다면 회개와 믿음이 시작되는 곳은 어디일까요? 그 곳은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와 죽이려는 무리를 가르는 차이이기도 합니다. 그곳은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생명의 길도 죽음의 길도 이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이 마음의 중요성은 성경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구약과 신약의 가르침입니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이야말로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이며 의와 심판의 갈림길입니다. 그럼 어떤 마음은 구원에 이르고 어떤 마음은 멸망에 이를까요? 먼저 멸망에 이르는 마음을 살펴봅시다.    완고한 마음 멸망에 이르는 마음에 관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가르침입니다.  (렘 18:12) 그러나 그들(유다사람들)이 말하기를 ‘이는 헛되니 우리는 우리의 계획대로 행하며 우리는 각기 악한 마음이 완악(頑惡)한 대로 행하리라’ 하느니라 … (렘 18: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 그들의 재난의 날에는 내가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얼굴을 보이지 않으리라.’ 완악한 마음, 이것이 멸망에 이르는 마음입니다. 완악한 마음은 두 가지가 결합한 마음상태입니다. 첫째 완고한 즉 고집센 마음입니다. 둘째 악한 마음입니다. 고집 센 마음이란 진리를 믿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만을 고집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 13: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이 백성들은 그들이 고침을 받을까봐 즉 자신들이 믿는 바와 원하는 바와 생활방식을 바꾸어야할까봐 진리를 듣기를 거부하는 상태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왕이고 주인인 상태를 바꾸어야 할까봐 주님 앞에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의 상태를 완악하다고 예수님은 꾸짖고 계십니다.  우리 안에도 익숙해지고 편해지고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현재 상태에 문제를 제기하는 말씀은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고집센, 완고한 마음이요, 완악함의 첫째 요소입니다.   악함 마음 완악한 마음을 이루고 있는 둘째 마음은 악한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보다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의보다 이가 더 중요하기에 이를 위해 의를 희생시키는 일을 감히 합니다. 이것이 곧 악한 일이 됩니다. 본문 9절 이하입니다.  (요 12: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20180318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4 – 십자가 / 롬 3:21~26

롬 3:21-26/어떻게 구원을 받는가4 : 십자가 180318 주일설교 무엇이 다르나 요즘 커피브레이크 모임에서 야고보서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2주 전 리더모임에서 믿음은 행위에 의해서 증명되어야 한다는 야고보서의 가르침을 공부하던 중 한 리더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참 믿음이 행위에 의해서 증명되는 것이라면 결국 믿음으로 인한 구원과 행위로 인한 구원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행위로 증명되는 믿음이란 결국 행위와 같은 것이 아닌가요?’ 이에 대해 이렇게 답을 드릴 수 있습니다. ‘수십 에이커에 이르는 거대한 산불이 나자 두 사람이 불을 끄러 나섰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 집 뒷마당에…

20180311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3 – 성령 / 행 2:38

행 2:38/어떻게 구원을 받는가(3) : 성령 180311 주일설교 구원 3   음악 같은 성령님 간단한 영상을 하나 보시겠습니다. <영상> 방송사고일까요? 무엇이 이상합니까? 네, 바로 음악이 없습니다. 물론 이 영상은 음악이 있는 공연영상에서 음향을 끈 것인데요, 만약 이 공연 자체를 음악이 없이 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아무 음악도 안 나오는데 부지런히 팔다리를 움직이는 무용수들을 말입니다. 아마 청중들이 야유를 하고 뭔가를 집어던지기 전에 무용수들 스스로 맥이 빠져서 공연을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음악이 없는 발레공연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음악이 없는 댄스파티를 열 수 있을까요?…

20180304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2 – 회개와 믿음 / 행2:36~42

행 2:36-42/어떻게 구원을 받는가2 : 회개와 믿음 180304 주일설교 구원2 성도는 무엇을 요구받는가 오늘은 2주 전 설교에 이은 속편입니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인간은 무엇을 해도 영생에 이를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답을 하셨습니다. 그럼 당연히 이런 질문이 뒤따를 겁니까? 그럼 우린 아무 것도 안 하고 하나님의 은혜만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당연히 감나무 아래서 입만 벌리고 누워있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노벨상 수상자가 자신의 성공은 모두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잘…

20180218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1 / 마 19:16~30

마 19:16-20:16/어떻게 구원을 받는가?(1) 180218 주일설교 구원(1)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최근 한 교우로부터 받은 질문입니다. 로마서 큐티를 하던 중 고민이 되어서 질문을 해온 것인데요, ‘믿음과 행위가 한 세트로 결합되어야만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맞습니까?’ 다시 정리해보면 ‘구원을 받으려면 믿음과 행위가 온전하게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 교우의 질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번쯤은 던져왔던 그리고 지금도 던지고 있는 질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바울에 의하면 행위로는 안 되고 오직 믿음으로만이 아니냐, 그런데 야고보는 행위가 없으면 참 믿음이 아니라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