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35:1-8/돌아가야할 때
어지럽고 길을 잃었을 때
오늘 본문 창 35장은 읽지 않은 창 34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우리는 몇 주 전 33장에서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가나안 땅 세겜에 정착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어 34장에서는 야곱의 가정이 심각한 문제에 휘말립니다. 야곱이 첫째 아내 레아에게서 낳은 딸 디나가 원주민인 히위 족속의 부족장 아들인 세겜에게서 성폭행을 당합니다. 세겜은 이 일 후 디나를 아내로 삼기를 원하는데 그녀의 오빠인 시므온과 레위가 그들을 속여 할례를 받게 한 후 움직임이 불편할 때 기습을 하여 그들을 몰살시키고 그들의 재물과 가족들을 빼앗아버립니다.
이 사건은 야곱의 삶을 모든 면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먼저는 야곱의 비지니스를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야곱 일가는 이 세겜 땅에 나그네로 와서 정착을 시도합니다. 성공은 고사하고 생존이라도 하려면 수로나 세력으로나 월등한 원주민 부족들과의 좋은 관계가 필수적입니다. 그래서인지 계산이 빠른 야곱은 34:5을 보면 딸이 폭행을 당하고 왔는데도 화를 내지도 않고 ‘아들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다’고 합니다. 아마 그는 부족장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의 요구대로 딸 디나를 그의 아내로 주고 큰 혼수와 예물을 받고 그들과 동맹을 맺고 장사하여 사업을 키워가려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계획은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의 학살사건으로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오히려 야곱 일가는 몰살당한 세겜 부족과 동맹을 맺은 원주민들의 공공의 적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고대의 풍습은 동맹을 맺은 부족들은 그 중 한 부족의 원한 반드시 대신 갚아야만 했습니다. 이제 이 땅에서 성공은커녕 생존조차 어려운 절체절명의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디나가 폭행을 당하고 왔을 때도 잠잠하던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의 학살극 이후 그들의 행동이 ‘자신에게 큰 화를 끼치게 되어서 자신과 가족이 다 몰살당하게 생겼다’며 크게 화를 냅니다.
다음으로는 야곱의 가정의 어두운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기도 합니다. 야곱 가정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아버지 이삭 때부터 이어온 편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노골적으로 편애했습니다. 야곱은 무려 네 명의 아내를 가졌지만 그가 진정으로 사랑한 아내는 라헬 뿐이었고 이는 아내들의 극심한 투기를 불러왔습니다. 야곱은 자녀들 역시 라헬의 두 아들 야곱과 베냐민만을 사랑하기를 다른 형제들이 시기 때문에 살의를 느끼게 할 정도로 편애했습니다. 후에 요셉의 사망소식을 듣고 실성할 정도로 통곡한 야곱이 딸 디나의 불행한 사건을 듣고 침묵을 지킨 것을 시므온과 레위는 그들의 어머니 레아에 대한 아버지의 무관심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이런 불만과 반감은 그들이 야곱 몰래 세겜 부족을 학살한 후 그와 다투는 장면에서도 드러납니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나 예의는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디나의 불행을 모른 척 하는 아버지를 비난하는 뉘앙스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야말로 안팎으로 궁지에 몰린 것입니다.
벧엘로 돌아가라
그 때 야곱이 듣게 된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1절을 보십시오.
(창 35:1)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벧엘로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예배야 어디서 드리면 어떻습니까? 하필 왜 벧엘입니까? 벧엘은 야곱이 형 에서로부터 도망가다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난 곳입니다. 무조건적인 은혜로 그에게 나타나셔서 복과 구원의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께 뜨거운 마음으로 서원을 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지켜주셔서 자기를 지키시고 보호해주시면 그도 벧엘로 돌아와 하나님만을 섬기고 십일조도 드리겠노라고 말입니다. 야곱이 얼마나 계산이 밝은 사람입니까? 그가 이런 약속을 하는 것을 보면 그 때 그의 마음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가나안에 돌아와서도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에 머물렀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면서도 그 때의 뜨겁고 순수했던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아마 십일조의 약속도 지키지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처음 만났던 그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는 것은 뜨겁고 순수한 믿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그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의미입니다. 위기에 빠진 부부가 신혼의 사랑을 되찾음으로써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처럼 사면초가에 빠진 성도의 삶은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첫사랑 안에 돌보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저의 첫사랑이 기억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업과 가정의 문제 등으로 근심하며 매일 같이 울며 기도하던 제가 주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고 믿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그리고 얼마나 큰 용기와 열정이 솟아나던지 그 동안 제가 도와달라고 부르짖던 기도제목들을 다 내던져버렸습니다. ‘주님, 제가 원하는 대학 못 가도 상관없습니다. 대학 자체를 못 가도 상관없습니다. 가정의 문제, 개인의 문제 모두 어떻게 돼도 이젠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이 제 인생을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어떤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살다가보니 그 때의 용기가 식고 열정이 사그라들고 슬금슬금 근심과 걱정이 스며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도 기도하기를 ‘그 때의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주님을 섬기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그 마음이 회복되면 근심과 걱정이 밀려나가고 다시금 용기와 열정이 회복됩니다. 지금 저의 목회의 에너지도 그 때의 첫사랑 안에 있는 믿음과 용기에서 나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은 그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벧엘로 올라가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기를 축복드립니다.
벗어버리라
그러면 성도는 어떻게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계시록 2:4-5을 보면 주님이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 속에 그 답이 있습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그 처음 사랑이)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첫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바로 회개입니다. 그 회개가 어떤 것인지 오늘 본문 2-5절에 등장합니다.
(창 35: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창 35: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엣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창 35: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지만 동시에 하란에서 가져온 우상, 가나안 원주민들이 섬기는 우상 등도 같이 섬기고 그들의 가치관과 그들의 풍습을 좇아 그들의 옷을 입고 살았습니다. 혼합종교의 모습입니다. 첫사랑으로 돌아가는 회개란 이런 우상을 버리고 자신을 씻고 세상의 옷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나무 아래 묻으면 어떻게 됩니까? 다 썩거나 못 쓰게 됩니다. 미련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회개란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돈, 명예, 세상즐거움을 벗어버리고 나무 아래 묻듯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것으로 더러워진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는 것입니다. 그런 삶의 방식을 거룩한 삶의 방식으로 바꾸어 입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이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골 3:7-8)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히 12:1)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약 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이런 것들을 벗어버리고 내어버리고 나무 아래 묻어버리고 다시는 돌아보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첫사랑을 회복하지 못 하게 만드는 족쇄이자 장애물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지금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들려주시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 우상들은 마치 혈관을 막아서 피를 원화하게 흐르지 못 하게 하고 동맥경화증을 일으키고 마침내 뇌출혈을 일으키는 콜레스테롤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영혼에 혈관에 흐르는 것을 막아서 그 보혈의 능력이 주시는 기쁨과 감사와 능력과 사랑과 용기를 모두 빼앗아 갑니다.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능력도 없고 혼란스럽고 길도 찾지 못 하고 어지럽고 늘 넘어지도록 만듭니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이 시간 겸손히 회개하고 은혜를 구할 때에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혈관을 뻥 뚫어주셔서 그리스도의 보혈이 시원하게 우리 영혼 곳곳에 흘러들게 되기를 축복드립니다.
지켜주리라
돈과 정욕과 허영의 욕심을 벗어버리고 옛습관을 벗어버리려 할 때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 재밌는 것을, 이 안전한 것을, 이 짜릿한 것을 다 내려놓으면 내 삶이 불행해지는 것은 아닌가. 그 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의 삶을 결코 불행해지거나 망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창 35:5) 그들이 (벧엘로)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에 끝까지 신실하셨습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를 지키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 주님이 그를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순종하여 벧엘로 돌아간 야곱에게 하나님을 복을 주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창 35: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벧엘에서)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는 복입니다. 이 복을 누리는 때는 바로 그 관계가 회복되는 때입니다. 벧엘로 돌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인생의 궁지에 몰려 있는 성도 여러분, 벧엘로 돌아가셔서 하나님의 이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