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14 위대한 공동체 / 행2:37~47

20160214 위대한 공동체 / 행2:37~47

행 2:37-47/위대한 공동체

 

160214 주일설교

 참혹한 현실

최근 한국뉴스를 듣다가 정말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습니다. 목사이자 신학교 교수인 아버지가 중학생 딸을 가혹하게 체벌하다가 죽음에 이르게 하고는 사회적 지위를 잃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11달 동안이나 그 주검을 집에 방치하고 있다가 발각된 것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교회의 추문을 접하노라면 한국교회 선교역사 130년에 지금처럼 그 위상이 추락한 때가 또 있었나 싶습니다. 도대체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금 복음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길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요? 자연히 우리 개신교의 모태가 된 종교개혁으로 생각이 돌아가는데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극심한 중세교회의 부패상 앞에서 종교개혁자들은 무엇을 부르짖었습니까? 바로 ‘초대교회로 돌아가자’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부르짖던 그 초대교회의 모습이 바로 오늘 읽은 본문에 등장합니다. 이 초대교회가 중세교회를 개혁하고 복음의 영광을 다시금 드러냈다면 오늘 한국교회를 개혁하고 진리의 등불을 밝히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오늘 초대교회의 영광과 그 비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초대교회는 중세교회와도 오늘날 한국교회와도 다른 영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영광이 43절과 47절에 이렇게 소개됩니다.

(행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행 4:37)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교회는 교회 밖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칭송의 대상이었습니다. 두려움은 교회가 권위를 가졌다는 뜻이고 칭송은 모범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조직이 갖지 못 한 영적 권위를 가졌고 세상 어떤 단체도 따라오지 못 할 높은 도덕성과 섬김으로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 권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교회의 머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게 당연한 것이었고 그 도덕성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제자공동체에게 역시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권위와 도덕성의 결과는 구원 받는 사람이 날마다 늘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진정한 전도의 비밀이 있습니다. 전도는 사람들을 억지로 교회로 데려다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참된 권위와 도덕성으로 영광을 가지지 못 한다면 온갖 전도의 노력은 다 헛것이 됩니다. 교회가 이런 권위와 도덕성을 가지면 구원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날마다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가 이런 교회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축복드립니다.

 

성령으로 시작한다

그럼 이런 권위와 도덕성을 가진 공동체를 세우는 길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순절 새벽기도회를 통해 우리는 사도행전 앞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승천하시기 전 예수님으로부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들은 순종하여 약 열흘 간 전념하여 기도했고 성령 강림을 경험합니다. 성령으로 시작된 교회는 계속해서 성령의 능력과 인도를 따라서 선교합니다. 그래서 이 사도행전의 제목을 성령행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몰락은 성령님으로 인해 교회가 시작되고 인도함을 받지 않기에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결과입니다. 많은 교회가 성령의 역사가 아닌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시작됩니다.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소속한 교단에서 만사운동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당시 한국최대규모의 개신교단임을 자처하던 교단 지도부는 점차 정체되어가는 성장세를 재고하고자 교세를 배가시키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오천 개 교회를 만 개의 교회로, 이백만 성도를 사백만 성도로 배가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회를 그만큼 많이 개척하고 전도를 하면 된다, 그러려면 목사가 더 많아야 한다, 그러려면 신학교에서 신입생을 많이 뽑으면 된다, 졸업한 목회자들이 갈 데가 없으면 개척을 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교회가 많아진다, 교회가 많아지면 전도도 많이 하게 된다는 단순한 논리였습니다. 신학교 교수진들은 이미 학생수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된 신학교육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판에 학생수를 배가시키라니 신학교육을 포기하라는 것이라며 반발했지만 학교재정을 쥔 이사진들이 모두 교단 지도자들이니 부질없는 항의가 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졸업생은 계속 늘었는데 90년대부터 한국교회 성장세는 정체되다가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이 시작되었습니다. 갈 곳이 없는 목회자들은 정말 교단지도자들의 바램처럼 개척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만 꽂으면 교회가 성장했다는 7-80년대와 달리 이제는 개척하는 열 개 교회 중 한 개교회만 겨우 살아남고 살아남는 교회 열 개 중 한 개만이 간신히 성장한다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목회자들은 사명과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하고 적지않은 목회자가 다른 일로 생계를 이어가며 죄책감과 패배감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영광은커녕 세상의 걱정과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이것이 한국에서 가장 건강하다는 장자교단과 공신력 있다는 신학교의 현실이라면 다른 수많은 군소교단과 군소신학교의 사정은 어떻겠습니까? 이런 상황은 성령의 인도도 아니요, 시대를 읽는 시야도 없는 인간의 욕심과 우매함이 만든 결과입니다.

많은 교회가 성령의 인도가 아닌 인간의 다툼과 욕심과 허영으로 시작됩니다. 교회가 성령의 인도가 아닌 경영원리에 의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주식회사 교회로 변해버린 곳도 없지 않습니다.

이런 교회가 회복되는 길은 초대교회처럼 다시 주님의 명령과 성령님의 인도 아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말고 주님의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다리고, 우리의 욕심과 계획을 좇지 말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겸손히 기다리는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기다리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자리에 우리가 앉아서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보다시피 다툼과 분열과 부패와 추락입니다. 멈추지 않는 기도의 자리로 돌아가 성령님을 기다리고 그 인도하심만을 좇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축복드립니다.

 

회개로 시작한다

영광스러운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두 번째 길은 회개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37-38절을 보십시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초대교회에서는 새로운 입교자가 교회에 들어오려면 무엇을 해야 했습니까? 바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야 죄사함과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등록하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아도 됩니다. 회개란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등록하는 데는 삶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 세례를 받는데도 회개는 굳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회개를 모르니 죄사함도 성령도 모르는 이들이 교회를 채웁니다.

이렇게 예전처럼 살면서 10년이고 20년이고 교회를 다닐 수 있습니다. 오래 다녔다는 이유로, 이것저것 봉사했다는 이유로 교회의 일꾼이 되고 목사도 되고 장로도 됩니다. 그 결과는 교회가 회개의 열매가 없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이들로 가득 찹니다. 이들은 자신의 욕심을 위해 교회를 다닙니다. 그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다툼을 일으키고 교회를 가릅니다. 교회는 추락합니다.

이런 교회가 다시 초대교회와 같은 영광을 회복하려면 길을 잃어버린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회개로부터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은 일꾼들을 길러내야 합니다. 회개의 열매가 가정과 일터에 맺히도록 해야 합니다. 회개로부터 새로 시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교제로 충만하다

영광스러운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세 번째 길은 참된 교제로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42절 이하를 보십시오.

(행 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초대교회는 참된 영적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사도의 가르침 즉 성경말씀을 전념해서 배우고 서로 말씀 안에서 교제하고 음식을 나누고 기도의 교제를 하고 모이기를 힘쓰고 그 마음은 기쁨과 깨끗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교제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이런 교제의 공동체에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사람들이 만나고 교제하고 공동체를 이루지만 거기에는 진리의 말씀이 없습니다. 기도와 같은 영적 교제가 없습니다. 기쁨과 깨끗함의 자리를 계산과 염려가 채웁니다. 교회의 영광은 이런 교제를 회복함에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오늘날과 같은 추락을 겪는 것은 성도들의 교제 속에 이런 구별됨 즉 거룩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역모임을 하는데도 말씀이 없습니다. 성도들이 서로를 위해 진실하게 염려하며 기도하는 관계를 맺기 어렵습니다. 깨끗한 마음, 기쁨의 마음 대신 판단하고 정죄하고 계산하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이런 교제는 세상의 교제와 다를 바가 없기에 세상과 다른 영광을 드러내지 못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초대교회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욕심과 미움과 허영을 내려놓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형제와 자매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형제, 자매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않습니다. 판단합니다. 정죄합니다. 미워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너희가 내 제자인 것을 세상이 알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거룩한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는 일을 불가능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가 돌아갈 자리는 어디입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 회개로 시작하고 거룩한 성도의 교제로 충만한 교회를 세워가심으로 다시 한 번 교회의 영광을 회복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