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평화
불교 경전인 법구경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건강은 최상의 이익이고 만족은 최상의 재산이며 신뢰는 최상의 인연이다. 그러나 마음의 평화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 아마 세상의 존재하는 종교치고 마음의 평화를 강조하고 그 평화를 얻는 길을 가르치지 않는 경우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많은 이들이 종교의 존재 이유를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신앙과 마음의 평화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들도 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가 있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에 헌신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노하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합니다. 목사가 가장 자주 받는 상담 중 하나도 이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 해 괴로워하는 교우들의 고민입니다.
세상에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을 가르치는 많은 종교, 철학, 잠언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진짜 평화를 얻는 길은 무엇일까요? 그 가르침이야말로 진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평화를 찾으려는 이유는 많은 유사평화, 거짓평화, 제한된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속인들이 준 부적을 집안에 붙여두고는 이 부적 때문에 재앙이 찾아오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여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면 그것은 거짓평화입니다. 빌린 돈을 값지 않아서 불편한 마음을 피하기 위해 그 사람이 나에게 무례하기 했기 때문에 더 이상 돈을 값을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켜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면 그것 역시 거짓평화입니다. 병이 낫고 돈을 많이 벌어서 더 이상 고생할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여겨서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면 그것은 언제까지나 지속되기는 힘든 것이기에 제한된 평화입니다. 다투던 사람과 화해를 하고 원수를 용서하고 나니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면 그것은 평화임에 틀림없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누리는 것이기에 불완전하다는 의미에서 유사평화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든 평화를 가르켜 세상이 주는 평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 1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마음에 근심도, 두려움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도록 만드는 완전한 평화는 오직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 평화는 어떤 것이며 어떻게 얻는 것입니까?
참된 평화
우리는 다시 로마서로 돌아왔습니다. 사순절 새벽기도회를 참석하셨던 분들은 이 로마서가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말미에 고린도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3개월을 머물며 쓴 편지라는 것을 기억하시겠지요. 사순절 기간 중 살펴보던 사도행전을 마치고 주일에는 다시 로마서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로마서에서 전반부의 교리부분을 마치고 후반부의 실천부분으로 넘어가는 첫머리입니다. 이신칭의 즉 오직 믿음으로써만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기독교의 근본교리를 선포한 후 실천부분으로 넘어가면서 사도 바울은 가장 먼저 믿는 성도가 누리게 될 놀라운 복을 소개합니다. 그 복이 무엇입니까? 본문 1절의 말미에 등장합니다.
(롬 5:1)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누리는 화평 즉 평화입니다. 모든 평화 중에서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완전한 평화는 바로 이 하나님과 누리는 평화입니다. 왜 하나님과 누리는 평화가 참된 평화입니까?
예전에 LA에 있을 때 아이들과 디즈니랜드를 갔더니 입장권 중에 기구를 3개 타는 것, 5개 타는 것 등의 조건이 붙은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 티켓은 싸지만 대신 아이들이 타는 놀이기구가 제한이 되어 있어서 금방 울상이 됩니다. 결국 더 탈 수 있는 티켓을 또 사야했는데요, 제대로 놀 줄 아는 이들은 비싸도 처음부터 제한이 없는 풀코스입장권을 삽니다. 그러면 놀이동산 안에 있는 모든 기구를 아무 제한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야말로 모든 것들을 다 당신 안에 안고 계시는 가장 큰 합집합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평화하면 그 안에 있는 세상 모든 것과 다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과 평화하지 못 하면 우리는 세상 모든 것과 다 불화한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세상의 평화는 이런 상태에서 개별적으로 돈과 질병과 재앙과 죄와 악과 거짓과 원수됨과 하나씩 평화를 누리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품으시는 하나님과 불화하다면 모든 평화의 노력이 헛일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제한적이고 유사할 뿐 완전하지 못 하고 심지어 거짓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면 세상 모든 것과 평화하는 완전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이런 평화를 누리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참된 평화의 길
그렇다면 이 참된 평화에 이르는 길은 무엇일까요? 1절을 다시 보십시오.
(롬 5: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자.
그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죄와 악과 불순종으로 원수되었던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평화롭게 만드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도 바울이 쓴 에베소서를 보십시오.
(엡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주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들이 치러야 할 죄값을 모두 치렀습니다. 그래서 죄인들이 죄의 대가로 받을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고 평화롭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제가 은행에 1,000만 불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애를 써도 그 빚의 원금은커녕 매달 불어나는 이자조차도 다 갚지 못 할 것입니다. 저의 얼마 안 되는 수입은 버는 족족 은행에 이자를 갚기 위해 다 차압되어 들어가지만 그런데도 복리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저는 매일 채무독촉전화를 받지만 낙심하는 것 말고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신용불량자가 된 지 오래인 저의 파산신고도 법원이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 빚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누리지 못 하고 단 한순간도 마음의 평화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가 제 사정을 듣고 불쌍히 여겨 백지수표를 발행해 제 손에 쥐어줍니다. ‘김도완씨, 마이크로소프트에 와서 무슨 일이든지 시작해 보십시오. 이것은 계약금입니다.’ 빌 게이츠의 이름으로 발행된 그 수표를 은행에 입금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더 이상 그 은행으로부터 어떤 독촉도 받지 않게 됩니다. 드디어 저는 제 손으로 수고하여 번 수입을 제 손에 쥘 수 있게 됩니다. 그 무엇이든 시도하는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빌 게이츠를 통해 저는 은행과의 모든 채무관계를 해결하고 자유와 평화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된 죄인의 삶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누리시기를 축복드립니다.
믿음으로 얻는 평화
그러나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빌 게이츠의 행동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일인지 금방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아니, IT에는 문외한인 나를 빌 게이츠가 왜 고용을 해? 그것도 이토록 엄청난 돈을 주면서? 이건 무슨 장난인가? 아니면 사기는 아닌가? 이 수표를 들고 갔다가는 바보나 사기꾼 취급을 받을 게 분명해. 찢어버리는 게 나아. 내 주제에 이런 횡재라니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저에게 빌 게이츠가 말합니다. ‘김도완 씨, 제가 당신을 정말로 불쌍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는 어떤 이유도 없답니다. 저를 믿으셔요.’ 그가 하는 말을 믿고 제가 수표를 은행에 입금하고 아무 것도 할 줄 모르지만 마이크로소프트에 출근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이것이 죄인이 말도안되는 그리스도의 긍휼을 입었을 때 보여야 하는 믿음입니다. 본문 1절이 말합니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여기서 믿음이란 무엇입니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직 죄인인 우리를 이유도 없이 사랑하셔서 온 우주보다 더 값지고 고귀한 보혈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으심으로 도저히 값을 수 없는 우리의 죄값을 다 치르시고, 우리가 감당해낼 수 없는 모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심으로 이룬 의로움을 아무 대가 없이 우리에게 덧입혀 주심으로 우리를 의로운 존재로 만드셨다는 사실을 아무런 의심 없이 겸손히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 앞에 무릎 꿇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공로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놀랍게도 의롭게 됩니다. 어떤 죄도, 그 죄값도, 그로인한 죄책감도 우리에게 티끌만큼도 남지않고 완전히 씻겨나가 흰 눈보다 더 희고 햇빛보다 더 빛나는 의로운 존재로 거듭납니다. 하나님과 죄인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휘장이 찢겨나가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훤히 열렸습니다. 공의로운 하나님과 용서받을 수 없던 죄인은 긍휼이 많으신 아버지와 용서받은 아들이 되어 재회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죄 씻음으로 인한 감격과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사랑으로 인한 기쁨과 그리스도의 무한한 능력으로 인한 담대함이 충만합니다. 죄와 악과 근심과 두려움이 주던 모든 어둠이 사라지고 충만한 평화가 자리잡게 됩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주시는 참되고 완전하고 영원한 평화입니다. 인간의 교훈이나 노력, 종교적 행위로 절대 얻을 수 없는 하늘로부터만 오는 평화입니다. 이 평화를 누리는 것은 성도가 누리는 복 중에서도 최고의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이 평화를 누리지 못 하고 있다면 우리는 믿음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는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하늘의 평화를 여러분은 누리고 계시는지요? 이 평화가 여러분의 삶에 넘쳐나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