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5:28-29/심판은 있는가
180114 주일설교 천국5
지옥 없는 세상
오늘은 노래를 한 곡 부르는 것으로 설교를 시작합니다. 음성에 취해있지 마시고 가사에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aple, Sharing for today.’ 비틀즈의 멤버이자 반전평화운동가이기도 했던 존 레논의 이메이진이라는 노래입니다. 후반부에서 존 레논은 국가도 없고 종교도 없어서 살인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 소유도 욕심도 굶주림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존 레논의 명성과 가사가 주는 감동 때문에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노래이고 반전평화운동권에서는 특별히 애창되는 명곡입니다.
그러나 이 노래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습니다. 영국 방송인 Robert Elms(로버트 엠스)는 ‘맨하탄의 호화주택에 모피코트만을 위한 온도조절옷장을 갖추고 사는 사람이 무소유를 주장하다니 위선’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가수 Elvis Costello(엘비스 카스텔로)는 ‘The Other Side of Summer(여름의 한편)’라는 자신의 노래에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해 보라고 노래한 사람이 백만장자가 아니었던가요?’라고 비꼬았습니다. 이 비판들이 주로 존 레논의 노래와 삶의 이중성을 꼬집은 것이라면 저는 그의 생각의 유치함을 문제삼고 싶습니다.
천국도 지옥도 없이 오늘만을 위해서 사는 세상을 노래하는 존 레논과 이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바램은 무엇일까요? 천국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천국 가기 위해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도덕적 강요를 받을 필요가 없기를 바라는 것일터이고, 지옥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자신의 행위를 그 누구로부터도 심판받고 싶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피고로 재판정에 가고 싶은 사람이 없듯 신에게라도 심판받는 것은 싫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의 노래가 이렇게 들립니다.
‘잔소리 안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숙제가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가 게임만 하며 밤을 새는 세상~ 우후~’
심판 없는 세상
존 레논의 이런 유치한 노래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심판과 지옥을 거부하는 현대인들의 유치한 심리를 만족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과 지옥이 없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런 세상을 상상해 보시면 됩니다.
당신이 죽을 고생을 다하며 평생 모은 재산을 훔쳐가 여러분의 가족을 차가운 길거리로 내몬 사기꾼을 잡을 경찰이 없습니다. 당신의 딸과 아내를 납치해서 가두고 모욕하고 죽인 살인자를 재판할 재판정이 없는 세상입니다. 당신의 가족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독재자를 가둘 감옥이 없는 세상입니다. 악인들이 대대손손 영화를 누리고 의인들은 짓밟히고 빼앗기고 죽임을 당하는 세상입니다. 그럴수는 없다고요? 그럼 살아서는 심판이 있어야 하는데 죽어서는 심판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것이 과연 유토피아인가요, 디스토피아인가요?
심판 없는 세상을 바라는 것은 무신론자들만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 안에서도 심판을 거부하는 현대인을 만족시키는 가르침들이 적지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카톨릭의 연옥교리입니다. 순교자나 성인처럼 특별한 공로가 없어 천국으로 직행하기는 어렵고 지옥갈만큼 큰 죄를 지은 것은 아닌, 착하게 살기도 하지만 죄를 짓기도 하는 평범한 신앙인은 연옥으로 가서 자신의 죄를 씻을 고통을 좀 겪으면 혹은 이 땅에서 자녀들이 기도나 헌금을 많이 하면 그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개신교 내에서도 자유주의자들은 만인구원론을 주장합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죄인이라 할지라도 지옥에 보내실 리가 없으니 결국은 모두 구원하여 천국으로 보내실 거란 생각입니다. 영혼멸절설을 주장하는 제7안식교는 죄인의 영혼은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소멸되어 버린다고 믿습니다. 존재 자체가 소멸되는 것이 심판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제게는 감옥에 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범죄자의 심리와 비슷하게 들립니다. 지옥 가느니보다 소멸되는 것이 낫다는 것 아닐까요? 모두가 심판과 지옥의 불편한 요소를 교리에서 제거해보려는 시도입니다.
심판없는 세상을 사람들이 꿈꾸는 이유는 지옥교리를 믿지 못 하겠다거나 혹은 역겹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 말씀하실까요? 성경은 모두 207구절에서 분명하게 심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그저 지나칠 수 없을 뿐 아니라 분명하고 확실하게 심판의 존재를 선포하십니다.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면 심판의 존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
오늘 설교는 천국시리즈 설교 중 심판을 주제로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성도의 운명에 관해 계속 살펴보았는데요, 그럼 자신의 죄와 악에도 불구하고 그 은총을 끝까지 거부한 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성경은 그들이 가는 곳을 음부라고 부릅니다. 몇 군데만 보십시오.
(눅 16:23) 그가 음부(하데스)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행 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하데스)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음부로 번역된 헬라어 하데스는 죽은 자가 거하는 곳을 가리킬 때 가장 흔히 쓰는 단어입니다. 구약에서는 스올이라는 단어를 쓰는데요, 이도 헬라어 성경에서는 하데스로 번역합니다. 이 음부는 계시록에 의하면 그 자체도 심판의 때에 소멸됩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심판의 장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계 20:14) 사망과 음부(하데스)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마 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하데스)에까지 낮아지리라…
성경은 죽은 사람의 영이 이 곳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사도들이 가롯 유다의 운명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입니다.
(행 1:25)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이 음부에 갇혀 있는 것은 언제까지입니까? 심판의 날까지입니다.
(유 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음부)에 가두셨으며
심판의 날
심판의 날이 이르면 그들은 어떻게 됩니까? 의인과 같이 그들도 부활합니다.
(행 24: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요 5: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요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의인처럼 악인도 육체를 입고 부활합니다만 그 부활은 의인들처럼 생명을 누리기 위한 부활이 아니라 심판을 받기 위한 부활입니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롬 2:16) 곧 나(바울)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심판의 결과 악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됩니까?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습니다. 멸망입니다.
(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마 25: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살후 1:9)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영원한 멸망의 장소
그럼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그 곳은 한글성경은 지옥이라고 묘사합니다.
(마 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게헨나)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기에서 받는 심판은 몸을 가진 상태라고 묘사합니다. 영이 갇히는 곳이 아닙니다.
(마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게헨나)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마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게헨나)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게헨나는 원래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뻗어있는 골짜기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 곳은 게-골짜기와 힌놈-애통이 결합되어 애통의 골짜기라는 뜻을 가진 게힌놈이라고 불렸습니다. 왕하 16:3, 21:6 등을 보면 이 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금하신 이방인들의 풍습을 좇아 몰록 신에게 살아있는 아이들을 불에 태워 희생제물로 바쳤습니다. 요시아 왕은 이런 풍습을 금지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못 하도록 이 곳을 폐허로 만들고 쓰레기와 죽은 동물과 처형된 범죄자의 시체를 버려 불태우게 했습니다. 항상 불이 타오르는 심판의 골짜기 게헨나는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인들에게 영원한 심판의 장소를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된 것입니다.
언제 심판받는가
한 교우가 얼마 전에 이런 질문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언제 심판을 받는 건가요? 죽을 때입니까? 부활할 때입니까?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면 최후 심판은 죽은 후 음부에 갇혀 있던 죄인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 때에 부활하여 받게 됩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심판은 구원과 같이 바로 지금 시작됩니다.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시작되고 하나님 나라 천국이 그의 삶에서 당장 시작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해 오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은총을 거부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기로 작정한 순간 이미 시작되는 것입니다.
(요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러므로 심판은 죽은 후에 벌어지는 어떤 사건이기전에 하나님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 속에서 이미 시작되어 점점 커지다가 마침내 최후의 심판 때에 완결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면 이 심판의 운명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는 그리스도이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미 구원을 받아 천국을 누리기 시작한 이들에게 사명이 있다면 이 심판의 운명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우리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땅끝에 이르기까지 심판의 운명 가운데 있는 모든 이들에게 생명의 주님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되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