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에서 “되게 하리라”로
-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아멘
- 결혼식
아마 잘 모르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지금 청년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청년부 사역을 하다보면 좋은 점 중 하나는 결혼식을 하는 청년들이 많아서 결혼식에 많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결혼식에 참여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물론, 결혼식에 가면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는 모습이 참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결혼식의 순서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혼인 서약입니다.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평생동안 서로 만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하는 그 순간마다 저도 제 혼인 서약을 떠올리면서 아내를 더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생각해보면 결혼식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혼인 서약을 나누는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혼인 신고하고만 두 사람이 법적인 부부가 될 수 있는 현대 사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결혼식을 올리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이렇게 혼인 서약을 함으로써 두사람이 부부가 되었고 앞으로 평생동안 사랑할 것임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2. 언약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러한 서약을 맺는 것처럼, 고대 사회에서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언약을 맺는 일이 흔했습니다. 이 언약(Covenant)이라는 말은 아브람이 있던 고대 근동(Ancient Near East)에서 자주 쓰였던 단어입니다. 고대 근동이라는 말을 아마도 구약성경에 대해서 공부하다가 보면 종종 듣게 될텐데요, 이 말은 시간적으로는 고대,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예전에는 근동이라고 불렸고, 요즘에는 중동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을 부르는 말입니다. 마치 중세 유럽이런 말과 비슷한 것이지요. 고대 근동에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에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비롯한 여러 고대 문명이 포함되는데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이나 최초의 알파벳이 바로 이 고대 근동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널리 쓰였던 이 언약이라는 말은 신적인 존재를 증인으로 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또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맺었던 약속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언약을 맺는 양측에는 이 언약에 따라 서로에게 지켜야 할 약속, 의무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나라와 나라 사이에 언약의 경우에,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가 있으면 강한 나라는 약한 나라를 보호해주기로 약속하고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에게 세금을 바치기로 약속하는 식인 것입니다. 특별히 언약의 중요한 특징은 언약을 통해서 어떠한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것 입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서약을 통해서 부부의 관계를 맺게 되는 것처럼, 나라와 나라 간의 언약을 통해서 주국과 종속국의 관계가 생기고 동맹국의 관계가 생깁니다.
고대 근동에서 언약을 맺을 때 했었던 특별한 풍습 중에 하나는 동물을 잡아서 반으로 잘라놓고 이 언약을 맺는 두 당사자가 그 반으로 잘린 동물들 사이를 걷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 의식의 의미는 만약 이 언약을 어길 시에는 누구든 저주를 받아서 그 동물들과 같이 될 것이라는 뜻으로 그 사이를 걷는 것이었습니다.
3. 성경에 나오는 언약
성경에도 언약은 등장합니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이 언약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노아의 이야기에서 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두 나라가 언약을 맺는 대신에 하나님이 노아와 언약을 세우십니다. 창세기 9장 1-17절까지의 말씀에서 나오는 이 언약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을 주시면서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십니다. 본문을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창세기 9장 7-11절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한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 한 모든 생물 곧 너희와 함께 한 새와 가축과 땅의 모든 생물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노아가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했던 약속, 의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신 후에 주셨던 명령과 같은 것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약속은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던 것입니다.
4. 아브람의 언약
그 이후에 다시 성경에서 언약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입니다. 두 나라 대신에 역시 하나님과 아브람이 언약을 맺으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보다는 조금 앞선, 창세기 15장에서 바로 이 언약나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손을 주실 것과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역시 본문 말씀을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4-5절)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18절)
그런데 이 언약은 그냥 말로만 하는 언약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했던 고대 근동에서 언약을 체결했던 의식을 이 언약을 체결하면서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9-10절의 본문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9-10절)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동물들을 가져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동물은 제사를 위한 동물이 아니라 이 언약 체결 의식을 위한 것임을 다음 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브람은 이 동물들을 반으로 쪼개서 마주 대하여 놓았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언약의 당사자들이 그 동물들의 사체 사이를 지나는 일이 남았습니다. 그 일은 이렇게 일어납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17절)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난 간 것,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신 것입니다. 이로써 언약이 체결되었습니다.
5. 아브람의 언약의 이상한 점
그런데 우리가 이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세우신 이 언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이 언약이 매우 일방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자손과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아브람이 하나님께 지켜야 할 약속이나 의무에 대한 이야기는 15장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아브람의 입장에서 한 것은 단지 “아브람이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은 것 뿐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6절)
이 언약이 일방적이라는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쪼갠 동물 사이를 지나가는 언약 체결 의식을 살펴보아도 그렇습니다. 언약에서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야 하는 것은 언약을 맺는 두 당사자, 양쪽 모두 입니다. 왜냐하면 이 언약을 깨뜨릴 시에는 그 쪼갠 동물들처럼 될 것임을 약속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5장을 아무리 샅샅이 뒤져봐도 아브람이 이 쪼갠 동물들 사이를 지나갔다는 이야기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이 언약에서 쪼갠 동물들 사이를 지나간 것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왜 15장에 나오는 언약은 이와 같이 일방적인 것입니까?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 의미를 설명하자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나랑 언약을 맺자. 내가 아브람 너에게 자손을 주고, 땅도 줄께. 이게 내 언약이야. 니가 해야 할 건 아무것도 없어. 그냥 내가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돼. 이 언약은 정말로 깨지지 않을 거야. 만약 언약이 깨지면 그 벌은 내가 받을께. 니가 잘못해서 언약이 깨지더라도 그 벌은 나 혼자 받을께. 봐, 나 혼자 이 동물들 사이를 지나갔지. 언약이 깨지면 내가 이 벌을 받을 거야. 그러니까 넌 나와 언약을 맺자. 나와 관계를 만들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6. “하라”에서 “되게 하리라”로
우리는 사실 이 일을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신 분, 우리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으시는 분,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분, 우리가 감히 알 수도 없는 분, 초월자, 절대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셔야 하는 의무나 당위성 같은 것은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왜 이렇게 까지 우리에게 매달리시는 것입니까? 언약을 맺기 위해서, 우리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왜 이렇게 까지 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나랑 언약 맺기 싫어? 싫음 말어. 니가 손해지 내가 손해냐?”라고 하셔도 아무런 상관이 없으실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지 않으시고 먼저, 낮추셨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왜 그러셨을까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에서 나오는 언약도 살펴볼까요? 이 언약 역시 하나님이 인간에게 얼마나 무르신지를 보여주는 언약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이렇게 약속을 주십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2절)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6절)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네. 이 말씀은 창세기 1장부터 줄기차게 나온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말씀의 다른 버전입니다. 영어로는 “Be fruitful and multiply.” 히브리어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주신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의 형상에 따라서 창조하시고 이 명령을 가장 먼저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하나님은 이 명령을 노아에게도 하셨습니다. 아까 읽었던 창세기 9장 7절입니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창 9:7)
그런데 분명히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는 미묘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라”에서 “되게 하리라”로의 변화 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Be fruitful and multiply라는 명령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I will make you be fruitful and multiply” 로 바뀐 것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셨던 하나님은 이제 내가 너를 생육하고 번성하게 만들꺼야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명령을 내리시지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복을 내리시고 만들어가시고 성취하십니다. 성경에서는 이 후에도 같은 단어를 여러번 반복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명령으로 쓰이지 않습니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라는 약속으로, 그리고 그렇게 만드신 성취와 결과로 나타납니다. 창세기 26장과 32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6:4)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창 32:2)
하나님은 여기서도 너를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겠다고 약속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약속을 성취하십니다. 창세기 47장과 출애굽기 1장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 거주하며 거기서 생업을 얻어 생육하고 번성하였더라(창47:2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출 1:7)
하나님은 “하라”라는 명령을 “되게 하리라”는 약속으로 바꾸셨습니다. 이거 해, 못해 그러면 너 아웃이야 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 하도록 만들어 줄께 하나님은 그렇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행하셨습니까? 왜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십니까?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바로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많이 사랑하셨기 때문에 약자가 되신 것입니다.
관계 속에서 약자가 되는 쪽은 더 많이 사랑하는 쪽입니다. 관계 가운데서 계속 지는 쪽, 사실은 져주는 쪽이지만, 상대방에게 더 많이 양보하고,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하고, 상대방에게 더 많이 미안하다고 말하고, 그러면서 까지도 관계를 잘 지키고자 노력하는 쪽은, 결국 상대방을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약자다.”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7. 우리에게는 약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에 있어서 약자를 자처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해서 약자가 되신 것이 이 아브람이라는 한 사람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아담에게 주셨던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이 아담 한 사람에게 주신 명령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주신 명령인 것처럼, 믿음의 조상인 아브람에게 주신 약속 역시 모든 믿는 이들에게 주신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사랑하신 것처럼, 이스라엘을 사랑하셨고, 우리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졌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사랑하시기에 완전히 지고 들어가신 사건,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사건입니다. 이미 하나님을 떠나도 한참을 떠난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사람들이 멸망하는 것을 그냥 보시기 있을 수 없어서 어떻게라도 그들에게 다시금 영생을 주시려고 하신 사건, 그래서 다시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하신 사건, 그것이 바로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시고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으신 그 사건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이야기해도 듣지 않자 결국 애가 닳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를 직접 찾아오신 것입니다. 자기를 핍박하고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가시면서까지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얘 안되겠다.”라고 생각하셨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어도 수백 수천번은 버림을 받았어야 할 만 한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내하시고, 우리가 회개할 때마다 우리가 다시 죄를 범할 것을 알면서도 용서해주십니다. 우리는 몇 개월, 몇 년동안 기도하는데도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더 이상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지만, 하나님께서는 평생동안 변하지 않는 우리를 위해서 변함없이 사랑하고 변함없이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약자가 되어주신 것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 강하신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약하십니다. 우리를 더 많이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약자이신 것입니다.
8.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이 아브람의 언약을 통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그 위대한 사랑에 굴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사랑해서 스스로 약자가 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의 깊음과 넓음과 높음과 크심을 깨달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