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그의 아들 (요1:12-13)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또 나는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내가 그 사람과 어떤 관계인가에 달려 있다.
▶직장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 – 예의를 갖추고 지시한 일들을 반드시 해야, 맘에 안 들어도 내색하면 안될 것, 약속된 만큼의 페이를 받는 관계
▶경찰과 범법자의 관계 – 과거를 캐묻고 위압적으로 겁주는, 피해야 하고 늘 변명해야 하는 관계
이렇듯 내가 어떤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이냐는 그 사람이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달려 있다.
- 여러분이 큰 가게의 주인입니다. 그리고 가게 안에 두 젊은 청년이 있는데, 하나는 일하는 점원이고, 다른 하나는 잠시 가게에 들른 아들입니다. 그 둘을 똑같이 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 둘이 당신에게 뭔가를 부탁한다면, 그 부탁하는 수준이 같겠습니까? 관계가 중요, 관계가 결정!
그렇다면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과는 어떤 관계이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대할 것이라고 기대하십니까? 그리고 나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은 어느 정도까지 나에게 관심이 있으실까요? 나는 어느 정도까지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을까요? 이 역시 결국 나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의 문제이다.
바른 신앙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바로 알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선입관을 내려 놓아야 한다. (신비주의, 율법,심판적, 자기 경험적)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과 얼마나 소중하고 또 밀접한 관계에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각도로 설명하기 위해 애쓴다.
- 그 첫째가 창조주와 그 형상대로 지어진 피조물이라는 관계. 우리는 이미 그분의 은혜 안에 있고,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또 친밀히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 그리고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은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다라고 말씀하심.
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우리가 설정하는,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허락하시고 약속하신 것… 중요한 것은, 그 관계가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적용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우리에게 좋은 관계 은혜로운 관계를 제안하시고 약속하셔도 우리가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반응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을 고집하고 그 안에 갇혀 있다면, 그 관계는 실제로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
모든 영적인 약속과 축복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역사합니다.
성경에서 이 관계를 중요시 하며, 또한 우리의 신앙 고백에서도….
주기도문 사도신경…. 모두 아버지 고백.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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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가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님으로 믿고, 우리의 마음에 영접할 때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믿는 자 = 영접하는 자, 믿음은 과거 이루어진 사실을 믿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 그분을 내 삶의 주인으로 내 마음에 모셔 들이는 것이다.
갈라디아서는 우리가 주님을 영접할 때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주시는 것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갈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성령을 아들의 영이라고, (그리스도의 영 (롬8:9), 예수의 영(행16:7))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오시고 거주하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오셔서, 이제 우리와 동행하시는데, 그 주님이 오셔서 처음 하시는 일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입술에서만이 아니라 마음에서 이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신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부르기가 힘들었다. 지금껏 살면서 혹시 아버지 아닌 남을 아버지라고 불러본 적이 있습니까? 그 만큼 누군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성령이, 그 아들의 영이 우리 안에 오셔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 이제 그분을 정말로 아버지라 부르고 또 자녀의 신분으로 그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 누구보다 자녀를 잘 알고, 사랑하고, 때로 불쌍히 여기는…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라는 이 은혜는 어떻게 우리의 신앙에 적용될 수 있는가?
- 아버지께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있는 모습 그대로.. 왜 하나님은 이미 나를 잘 아시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실존 – 은혜받았지만, 말씀에 아멘하였지만 실제는 여전히 허물과 죄가 있다.
더 은혜 받으려고도 해보고, 더 노력도 해보고 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잘 안된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 나는 왜 안 되는가?
이럴 때 두가지 선택을 하게 된다.
<위선적 신앙>… 안 되는데 되는 척하게 된다.
<자포자기하는 신앙> … 다 안되잖아. 그냥 다 인정해들…
두 가지 다 참 괴롭다. 하나님은 아신다.
우리 힘으로 안된다는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하신다.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하늘로부터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내가 할 수 없다는 것, 소망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이 첫 단계이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아뢴다는 것은 – 이제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틈을 드리는 것이다.
문 쾅닫고 들어가버린 아들이…. 문을 빼꼼히 여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는데요? 하나님은 위로하신다. 우리의 짐을 가져가신다.
주님께서 이제 새 일을 행하신다.
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이제 아버지와의 실제적인 관계가, 도우심이 시작된 것이다.
- 아버지께 두려움 없이
더 이상 종의 신앙이 아니라 아들의 신앙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도 때로 여전히 죄의 영향력 가운데 산다.
어떤 사람은 죄를 지으면 두려움으로 회개한다.
두려움 때문에 더 착한 일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한다. 그래서 오해도 받을 수 있다. 정말 신앙 좋다고, 신실하다고. 그러나 종의 신앙의 본질은 두려움이다.
벌 받을까봐, 무슨 일 생길까봐. 지옥갈까봐….
그러나 주님을 영접하고 거듭난 신앙인은…. 물론 죄와 허물에 빠지면 심각하죠. 그러나 두려움은 아니다.
벌받으면?? 에이 우리 아버지인데요…. 두려움이 없어요.
그러면 회개도 안하는가? 아니다 해야한다. 그러나 두려워서 벌받을까봐서가 아니다. 우리에게 더이상 그런 회개는 없다. 우리는 이미 예수 안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
그러면 왜 회개하는가? 깨어진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심판을 받거나 지옥에 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한 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비통하게 한 것이다.
아들이 죄를 지었다고 집에서 쫓겨나거나 아버지에게 버림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관계는 해결해야 한다.
심판인가? 관계인가? 문제는 깨어진 관계이다.
이미 경험하고 계실 것…
아버지가 원하시지 않는 것을 하고 나면… 마음에 돌덩이 하나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은혜도 안되고, 기도도 안되고…. 왜.. 성령께서 눈치를 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것…
빨리 잘못했다고 해라. 그래야 다시 주님과 관계를 회복하고….
우리는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회개해야 한다.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 아버지의 기대를 따라서, 아버지를 닮으라
부모가 자식을 보면 사랑스럽고, 또 한편으로 기대가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기대가 있듯이, 하나님도…
이제 죄에서 벗어나, 온전히 주님과 함께, 주님을 닮은 모습으로 사는 것.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라고 믿음이 자라서… 예수님처럼…
우리의 삶에 축복을 허락하시는 이유도,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도 모두 다 이것을 위해서 입니다.
이제 구원받았으니 이렇게 살다가 천국에나 가야겠다? – 돌아온 탕자, 이제 지은 죄 용서 받았으니 이렇게 있다가 아버지 재산이나 물려받아야겠다. 돌아왔으면 이제라도 아버지의 뜻에 맞게 변화된 모습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죠.
어떤 사람은 더 나아가서….. 심판이 없으므로 죄지어도 되겠다? 설마 또 쫓아내겠어??–
완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
하나님의 소원,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 – 주님의 성품을 닮은 거룩한 삶을 살아라.
하나님은 우리가 하루하루, 어디에서든지… 주님을 닮은 모습이 되기를…
인간 아버지 육신의 아버지는 부족했을지라도.. 우리의 하늘 아버지, 영과 육신의 아버지는 온전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지식으로만…? 소용없다
오늘, 바로 지금 아버지라고 부르면 기뻐하시고 우리 마음에 응답하실 것
있는 모습 그대로, 두려움 없이, 그리고 우리를 부르신 아버지의 뜻을 기억하며 나아갑시다.
우리가 믿음으로 삶의 순간 순간 아버지라고 부르면 하나님은 아버지로 늘 우리의 삶을 붙드시고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