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9 평안에 이르는 훈련 / 골 3:15~17

20171119 평안에 이르는 훈련 / 골 3:15~17

골 3:15-17/평안에 이르는 훈련

 

변화의 원리

현대인에게 일상용어가 되어버린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 몸이 외부의 부정적 자극에 반응하여 보이는 정서적, 신체적 긴장상태를 가리킵니다.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요, 그러나 베스트셀러 ‘스트레스의 힘’의 저자 켈리 맥고니걸 박사는 스트레스의 긍정적인 측면을 밝혀냅니다. 그녀는 이 책에서 미국인 3만 명을 8년간 추적하며 이들 중 어떤 부류가 조기사망하는지를 조사한 결과를 소개합니다. 평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이들이 그렇지 않다는 이들보다 43%나 조기사망할 확율이 높았습니다. 이 결과만 보면 역시 스트레스는 나쁜 것이구나 생각하게 되는데요, 그런데 이런 확율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이들 중 그 스트레스가 신체에 해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만 적용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신체에 해롭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별로 안 받는다고 답한 사람들보다 오히려 사망율이 낮았다는 것입니다. 즉 똑같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어떤 생각으로 수용하느냐에 따라 건강을 해치기도 하도 반대로 건강을 오히려 증진시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와 유사한 연구결과들을 토대로 불안, 역경, 좌절의 스트레스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삶의 독이 아니라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녀의 연구는 우리 삶에서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주는 수많은 예 중 하나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성경만큼 잘 보여주는 책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성도의 사명

오늘 본문은 바울 사도가 그의 제자들인 골로새 교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십시오.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성도는 ‘마음이 평강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성도는 ‘평강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평강을 누리는 것은 성도의 사명이란 말입니다. 사명이란 힘써 이루어야 하는 임무입니다. 즉 마음이 평안하면 좋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이 평안으로 가득 차도록 힘써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이 말씀은 마음에 대해 가지는 우리의 오해를 바로잡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을 외부의 자극에 의해 형성되는 상태로서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내 마음 나도 몰라’, ‘내 마음을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마음이 가는 것을 어떡해?’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생각이 틀렸다고 가르칩니다. 마음의 상태는 외부의 자극이나 조건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음의 말씀을 보십시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마음을 잘 훈련하는 이가 진정한 인생의 승자라는 말입니다. 마음을 가는데로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고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 마음은 야생마와 같습니다. 야생마는 힘이 넘치지만 통제되지 않아서 아무 쓸모가 없지만 잘 길들이면 아주 유용한 경주마도 되고 이동수단도 됩니다. 들개는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지만 길들인 개는 사람들의 친구도 되고 가족도 됩니다. 우리의 마음도 내버려두면 아무 쓸모가  없거나 심지어 사람들에게 위협이 되기도 하지만 잘 훈련시키면 생명을 주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다음 구절도 보십시오.

(시 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마음이 불안하자 그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향해 명령하고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마음상태를 관리하려 합니다.

이 원리를 잘 이용한 것이 소위 긍정적 사고방식입니다. 20세기의 노만 빈센트 필 박사와 로버트 슐러 목사의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알려진 가르침이 21세기에 이르러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전파되고 있습니다. 분명 긍정적 사고방식은 사람들의 기분과 생활방식을 바꾸는 데 일정 부분 효과가 있습니다만, 이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마음관리의 유사품입니다. 유사품이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듯 생명을 주지 못 하고 비슷한 효과를 누리게 할 뿐입니다.

성도는 훈련을 통해 마음을 평강으로 가득 차게 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마음을 평강으로 가득 차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훈련이 필요할까요? 바로 감사하는 훈련입니다. 15절을 다시 보십시오.

 

평안에 이르는 길

(골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평강이 성도의 사명이라는 것을 강조한 후 즉시 바울 사도는 감사를 하라고 명령합니다. 15절에 등장하는 두 가지 명령의 방식을 잘 보십시오. 즉 평안하라고 하지는 않고 평안을 위해 노력하라고 명령하시지만 감사는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두 가지의 명령방식이 다를까요? 평안은 상태이고 감사는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평안은 선택의 결과이지만 감사는 결과를 낳는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평안해야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감사해야지라고 말할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평안을 위하여 노력하라고 하신 즉시 감사를 명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평안을 누리는 방법이 바로 감사의 훈련이라는 말입니다. 감사는 훈련되어야 합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이가 있고 불평하는 이가 있습니다. 훈련의 유무 때문입니다. 자연상태의 우리는 불평이 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를 훈련하는 이만이 모든 상황에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감사를 훈련할 수 있을까요? 삶이 힘들고 고단하고, 온갖 어려움이 사라지지 않고 전혀 감사하게 생각되지 않는데 무조건 감사하다, 감사하다 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면 됩니까? 그건 위선 아닌가요? 네, 그것은 자기최면이자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입니다. 성경은 내용 없는 감정의 최면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실제로 감사할 거리로 인해서 감사하는 훈련을 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럼 삶이 지치고 피곤하고 결핍과 고난 속에 있는데 무슨 감사할 거리가 있다고 감사를 훈련할 수 있단 말입니까? 두 가지로 인해 우리는 날마다 감사할 수 있는데요, 그 답이 바로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말씀의 풍성함으로

(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하고

첫째로 감사할 제목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는 것입니다. 왜 말씀이 우리 안에 넘치면 감사가 나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은 식당에서 맛난 음식을 배부르게 먹으면 마음이 행복해지듯이 우리 영혼이 생명의 떡인 말씀을 배부르게 먹으면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생명의 떡은 우리를 살립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굶주릴 때에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를 먹고 배부르고 살아났습니다. 만나는 하늘로부터 오는 생명의 양식을 상징합니다. 신약에서는 이 메시지를 주는 사건이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입니다. 배부르게 먹고 예수님을 좇는 오천 명의 군중을 향해 예수님은 당신이 생명의 떡이며, 이 떡을 먹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의 떡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배부르게 합니까? 16절 전반부를 다시 보십시오.

(골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 

말씀 속에 있는 지혜를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는 방식입니다. 목사만 성도를 가르칩니까? 아니요, 서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합니다. 일대일과 커피브레이크와 티성경공부를 통해 서로 서로 가르칠 때 모두가 말씀으로 배부르게 됩니다.

(골 3:16) …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하고

다음으로는 말씀이 가르치는 시, 찬송,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방식입니다. 세상의 말은 우리에게 불평과 정죄와 원망과 비방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시와 은혜로운 찬송과 거룩하고 신령한 노래를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이 말씀으로 찬송하는 자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둘째로 감사할 제목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불리 먹는 것도 감사할 제목이고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도 감사할 제목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말과 일이 다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그것이 감사의 제목이 됩니다. 우리의 말과 일을 모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첫째는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만한 말과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욕을 하고 도둑질을 하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축복을 하고 선행을 하라는 말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선한 말과 일은 공로를 쌓습니다. 그 공로가 내 것이 아님을 알고 겸손히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가 선한 말과 일을 하고 그 영광을 다시 그리스도에게 돌려드릴 때 우리의 마음은 선한 기쁨으로 넘쳐납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의 제목입니다.

돈을 벌고 건강하고 성공을 해도 물론 감사하지만 이것은 참되고 영원한 감사의 제목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모두는 금방 사라질 뿐 아니라 우리를 교만과 시험에 빠트리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부르게 먹으며 그리스도를 힘입어 사는 것은 참되고 영원한 감사의 제목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 기쁨일 뿐 아니라 우리를 더욱 겸손하고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제목으로 날마다 감사하는 훈련을 하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평강으로 가득 채웁니다. 이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않고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며 오직 그리스도를 힘입어 사는 성도들 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며 동시에 평강이 없는 세상에 참 평강을 보여줄 성도의 사명이기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이런 평강을 누리고 계십니까? 그리스도와 그 말씀으로 인해 감사가 넘치고 그로인한 평강이 또한 넘치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