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11장/우리 주님의 나라
171203 대강절 1주
이상향
지난 주 금요일인 24일 이집트 북부 시나이반도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그들은 사원을 포위하고는 사원 안에 폭탄을 던져넣은 후 탈출하는 신도들을 향해서는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고 합니다. 로 무려 305명이 사망한 이 테러는 이집트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 중 최악의 참사였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 우리는 서구사회와 제3세계를 가리지않고 벌어지는,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사건, 사고 소식을 끊임없이 듣습니다. 과거에는 전쟁 시에나 발생하던 민간인을 향한 대규모 학살이 끊이지않는 상황을 언론은 테러의 일상화라고 표현합니다.
18세기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이란 책에서 자연상태의 인간사회의 모습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은 자기보존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 결과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투쟁하는 정글과 같아질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벗어나 평화와 질서를 누리기 위해서는 모두가 합의하는 사회계약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현대사회를 살아가게 되었는데 분명 과거에 비한다면 큰 진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반목과 미움과 테러가 그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갑니다.
과연 우리는 이런 미움과 증오와 학살이 끊이지않는 역사를 멈출 수 있을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역사의 비전을 가지고 살아갑니까?
메시야
오늘은 교회력의 대강절 첫 주일입니다. 대강절은 성탄절 전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4주간의 절기를 말합니다. 첫 주일의 본문으로 이사야 11장을 선택했습니다. 이사야는 8세기의 유다 왕국에서 활약한 선지자입니다. 이 시기 이스라엘 왕들은 하나님의 법이 다스리는 사회를 건설하는데 실패했고 민중들은 권력자들 밑에서 신음하고 있었으며 남북왕국으로 갈라져 서로 분쟁하였습니다. 외적으로는 앗수르의 위협 앞에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던 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를 통해 하나님이 이루실 이상향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합니다. 이 나라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상향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장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1-5절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에 대한 묘사이고 6-9절은 메시야가 다스릴 왕국의 묘사 그리고 10-16절은 메시야가 이루실 구원에 대한 묘사입니다.
먼저 메시야에 대한 묘사부터 보시겠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사 11:1) 이새의 줄기(그루터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메시야를 이새의 줄기에서 나는 싹으로 묘사합니다. 왜 이새의 줄기일까요? 이새의 아들은 다윗이지요.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조를 연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모두가 다윗은 알지만 그 아버지 이새는 잘 모릅니다. 그러면 다윗의 후손으로 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요? 굳이 그 아버지 이새의 이름을 쓴 이유는 줄기라는 단어에 숨어있습니다. 줄기의 원어는 그루터기라는 뜻입니다. 그루터기는 잘려나간 나무의 밑둥치를 말하는 것이지요. 이새의 후손들이 마치 잘려나간 나무와 같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다윗으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왕들의 실패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공의와 성실이 없는 통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통치하에서 백성들은 많은 괴로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들과 달리 메시야는 어떤 분이십니까? 3-5절입니다.
(사 11: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은 종종 우리를 속이는 현실 너머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지혜를 가지셨다는 말입니다.
(사 11: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그 분의 판단은 공의와 정직이 기준이며 세상의 악은 그 분의 통치 아래서 무너질 것입니다.
(사 11: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통치자들, 정부와 국가들, 세상의 정치, 사회, 경제제도와 달리 공의와 성실로 그 백성을 다스리십니다. 우리는 파시즘에 대항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와 겨룬 자본주의가 승리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이 제도 역시 온전한 역사의 마지막 정치, 경제제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 사회 속에서 우리는 날로 심화되는 빈부격차, 가속화되는 환경파괴, 제 3세계의 소외와 착취를 직면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는 AI와 로봇이 가져올 대량실업에 다가서고 있고 의학의 발전은 부자들의 생명연장에만 기여할 뿐 인류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제 3세계의 빈자들의 질병치유에는 무관심합니다.
메시야에 대한 이사야의 선포는 이 세상의 어떤 나라, 어떤 제도, 어떤 사회도 완전한 이상향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 줍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부조리 너머에 있는 이상향을 꿈꿉니다. 그 곳은 어떤 곳입니까? 6절 이하를 보십시오.
메시야가 다스리는 나라
(사 11: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게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사 11: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사 11: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이리와 표범, 사자와 곰은 인간의 악하고 탐욕스러운 본성을 상징합니다. 역사가 아무리 발전해도, 세상의 어떤 제도와 사상도 제어할 수 없는 괴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는 죄성입니다. 그것은 양을 잡아먹는 이리처럼, 염소를 잡아먹는 표범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동료 인간을 희생시킵니다. 약한 자들과 의로운 자들과 선한 자들은 속절없이 그들에게 희생되는 일은 아벨이 가인에게 맞아 죽은 이래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메시야가 다스리는 그 때, 그 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더 이상 없을 것입니다. 왜입니까? 9절을 보십시오.
(사 11:9) 내 거룩한 사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그리스도가 다스리게 될 하나님의 나라는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충만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여호와를 압니다. 히브리 문화에서의 지식은 직접 경험하여 얻는 것만을 가리킵니다. 로마에 대해 책을 보고 아는 지식은 이 기준으로 지식이 아닙니다. 로마를 직접 방문하고 경험하여 얻은 지식만이 진짜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알게 되고 그런 지식으로 충만한 공동체에서는 더 이상 형제가 형제를 희생시켜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결과 발생하는 모든 다툼과 희생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나라의 비전은 언제 이루어질 것입니까? 그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었고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일에 동참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나라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우리 안에서 건설되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성령을 좇아 사는 성도들의 공동체 교회 안에서 건설되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질서를 좇아가는 사회 속에서 건설되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건설을 가로막는 마귀의 군대와 전쟁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지만 결코 그 나라의 건설을 멈추지는 못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서 가는 천국만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하도록 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일을 시작하신 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0절입니다.
만방을 구원하는 메시야
(사 11:10)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깃발)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기치 즉 깃발이 되어 펄럭입니다. 그 구원의 깃발을 보고 열방, 세상 모든 민족이 그에게로 나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2절도 보십시오.
(사 11:12)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깃발)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
여호와는 그리스도를 만민을 구원할 깃발로 세우셔서 영적 이스라엘을 교회로 모으십니다. 이 모든 일은 무엇과 같습니까? 16절입니다.
(사 11:16) 그의 남아 있는 백성 곧 앗수르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그 구원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하여 내셨듯 인류를 죄와 멸망으로부터 구원해 내시는 제 2의 출애굽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백성은 죄와 사망의 나라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다스림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기 시작합니다. 그는 세상의 포악한 다스림을 받지 않고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다스림을 받으며, 여호와를 아는 지식으로 가득 하여서 이리와 사자와 곰처럼 형제와 자매를 희생시키며 살던 삶을 거부하고 형제, 자매와 함께 살아갑니다. 그는 세상의 성공을 꿈꾸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꿈꿉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탄절을 기다리는 우리는 2천 년 전에 이미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당연히 아닙니다. 다시 오셔서 건설 중인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키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크리스마스 행사를 잘 준비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입니다. 그것은 공의와 사랑의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며 그 법이 다스리는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테러와 전쟁과 고난과 실패가 점철된 세상을 살면서도 여전히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그 나라를 건설하는데 동참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다시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