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5:51-54 /우리가 기다리는 것
171210 대강절 2주
우리가 기다리는 것
오늘은 대강절 둘째 주일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인데, 물론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겠지요. 이미 오신 분을 어떻게 기다리겠습니가? 다시 오시리라 약속하신 재림의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림의 예수님이 오시면 세상은 어떤 곳이 될까요? 그리고 이미 죽어 세상을 떠난 성도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상태로 머무르고 있는 것일까요? 알 것 같지만 막상 설명해 보라면 속시원하게 풀어놓기가 쉽지 않은 주제입니다.
우리는 막연히 ‘천국에 간다’고 말하는데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표현도 아닙니다. 오늘은 대강절을 보내면서 우리가 정말 기다리는 다음 세상에 대한 성경의 약속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시간이 저와 여러분의 영원한 소망을 단단하고 풍요로운 것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천국
먼저 천국, Heaven이란 용어에 대해 살펴 봅시다. 우리는 성도가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흔히 말합니다. 이 때 천국은 ‘하나님이 계신 저 하늘 어딘가에 있는 곳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죽어서 들어가는 곳’이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천국은 문자적으로는 하늘나라라는 뜻입니다. 이 하늘나라는 하나님 나라를 다르게 부르는 표현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불러 망령되게 일컬을까봐 하나님 대신 하늘이란 표현을 즐겨 썼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곧 하나님 나라이지요. 그런데 신약성경에서 천국 곧 하나님 나라는 성도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 말씀 속에서 분명히 드러나지요. 마 12:28입니다.
(마 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눅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 나라가 저 하늘 어딘가에 있는 공간이 아니라, 지금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이들의 삶 속에 임하는 어떤 상태를 가립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곳, 그곳이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 곧 하늘나라입니다.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하늘나라는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원을 선포하여 성령의 의한 통치가 시작되는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그리고 다가올 세상에서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어서 하늘나라-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들어왔고 앞으로도 죽 그 나라에서 살 것이고 그 나라가 예수님의 재림시에 완성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대학 가려고 공부하는 고등학생에게 ‘네 목표가 어디냐’고 묻는다고 해봅시다. 그가 ‘학교 들어가는 것입니다’라고 한다면 어색하겠지요? 그는 이미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는 특정 대학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이 어디입니까? ‘천국입니다’라고 한다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어색한 것이지요. 예수 믿는 우리는 이미 천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죽어서 가는 곳도 물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으니 하나님 나라, 천국이 맞지만 이미 천국에 있는 사람이 또 천국에 간다고 하면 이상하지요? 천국은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가 그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 하면 신약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예수님과 사도들의 메시지를 계속 오해하게 됩니다.
낙원
자, 그러면 우리가 죽어서 가는 그 곳은 어디입니까? 그 답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역시 찾을 수 있습니다.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헬라어 파라데이소스에서 영어 파라다이스가 나왔습니다. 원래는 정원이란 뜻인데 성경에서 사용될 때 그것은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곳의 특징은 ‘네가 나와 함께’ 즉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곳입니다. 바울도 이 낙원이란 용어를 씁니다. 고후 12:4입니다.
(고후 12:4) 그(바울 자신)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들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바울은 자신의 몸을 떠나 셋째 하늘에 들어가는 신비한 경험을 하는데 그 곳을 낙원이라고 부릅니다. 계시록입니다.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이 낙원을 예수님은 아버지의 집이라고도 설명하십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2) 내 아버지의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바울은 성도가 죽어서 머무르게 되는 상태를 이렇게도 설명합니다. 빌 1:23입니다.
(빌 1: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빌 1: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세상을 떠나서 낙원에 머무르는 삶의 가장 큰 특징은 ‘그리스도와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이 때 성도는 고단한 육체를 벗어놓고 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면서 안식을 하게 됩니다. 이 안식을 누리는 상태 때문에 신약성경은 종종 성도의 죽음을 잠들었다는 표현을 씁니다.
(고전 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죽었으며) … (고전 15:18) (만일 부활이 없으면)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죽은) 자도 망하였으리니
어떤 이들은 이 잠들었다는 표현 때문에 낙원에 있는 성도들의 의식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그런 생각은 다른 본문과 조화를 이루지 못 합니다. 잠들었다는 것은 육체를 벗었다는 의미이며 안식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재림과 부활
자, 그러면 성도는 영원히 이 낙원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안식만 하고 있을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고전 15장 22절 이하를 보십시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우리가 대강절에 기다리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요, 그 재림 때에 우리가 입게 될 새 몸의 부활입니다. 이 몸이 어떤 것일까요?
(고전 15:39)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고전 15: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고전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 (고전 15: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 (고전 15: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자, 우리는 썩을 이 몸을 이 땅에서의 죽음으로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그 분을 닮은 새 몸, 더 이상 썩지도 병들지도 다치지도 죽지도 않는 영광스러운 새 몸을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낙원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안식하다가 부활의 새 몸을 입는다는 이 진리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세계적인 성공회 신학자인 톰 라이트는 그의 책 ‘죽음 이후를 말하다’에서 케임브리지 대학의 세계적 물리학자이면서 동시에 신학자인 존 폴킹혼의 말을 이렇게 인용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재차 가동할 새 하드웨어를 주시는 날이 올 때까지 우리 소프트웨어를 자신의 하드웨어에 다운로드하실 것이다.’
소프트웨어는 우리의 의식을 가리킨다면 새 하드웨어는 당연히 새 몸을 말합니다. 우리의 의식은 낙원에서 주님과 연합한 상태에 머무르다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새 몸을 입고 부활합니다. 이 때 그 몸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건강한 것이 될지요! 할렐루야!
새 하늘과 새 땅
자, 그러면 우리가 새 몸을 입고 어디서 살게 될까요? 저 하늘 어디선가 혹은 수억 광년 떨어진 다른 은하계의 특별한 장소에서 살게 되는 것일까요? 죄로 물든 이 세상은 멸망하고 소멸되지 않을까요? 그것은 많은 이들이 하는 심각한 오해입니다.
(행 1:11)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계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살전 4:14)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죽은)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예수님은 우리를 데리고 저 하늘로 가시는 것이 아니라 저 하늘에서 이 땅으로 오십니다. 낙원에서 안식하던 성도들도 데리고 이 땅으로 오십니다. 왜일까요? 이 땅에서 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마 6:10)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늘은 이미 하나님의 뜻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문제는 이 땅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그 통치를 거부하는 곳입니다. 이 땅에서도 하늘에서처럼 하나님의 뜻과 통치와 나라가 임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땅을 폐기할 것이라면 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합니까? 하나님은 이 땅을 회복시키셔서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행 3:21)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어디의 만물일까요? 이 땅의 만물입니다. 그 만물을 폐기하지 않고 회복시키십니다. 바울 사도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롬 8: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 (롬 8: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죄와 악으로 병든 자연만물이 해방, 구원받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면 어떻게 그들을 폐기할까요? 그리스도가 이 땅 다시 오실 때는 성도들 뿐 아니라 온 세상을 죄와 악으로부터 구원, 회복시키셔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십니다. 그 세상을 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부릅니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옵니다. 새신부처럼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그 세상은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대체하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이 세상은 죄와 그 대가인 멸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입니다.
(계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음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세상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할 세상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이지요.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법이 다스리시고 모든 죄와 악과 불의와 모순이 사라진 세상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다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의 영과 더불어 이 땅에서 천국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거하며 천국의 완성을 기다립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부활의 새 몸을 입고 회복된 세상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이것이 대강절을 맞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