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5 평화의 왕 / 눅2:1~14

20171225 평화의 왕 / 눅2:1~14

눅 2:1-14/평화의 왕

 

171225 성탄절 예배

누구를 따를 것이냐

평화의 주님이 오셨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립시다.

학생시절 즐겨읽었던 리더스다이제스트라는 잡지에 글마다 짧은 유머가 실려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느 나라의 해군함장이 군함을 몰고 바다에 나가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육지로부터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대는 누구 편이냐?’ 정말 난감한 상황입니다.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자신은 물론 부하들 전체의 운명이 좌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프로스포츠를 보며 친구와 내기를 하는 것으로부터 학창시절 친구를 고르는 것, 성인이 되어 배우자를 고르는 것과 국가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 이르기까지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전쟁 중에 하는 선택의 결과는 우리의 목숨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선택의 부담때문에 선택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는 이 편도 저 편도 아니야, 중립이지.’ 그러나 이것도 사실은 제 3지대를 선택한 것이지, 결코 선택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 사실은 아닙니다.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중립은 불의의 묵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모든 선택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선택, 가장 그 결과가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가 따를 인생의 주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응? 노예시대도 아닌데 우리가 언제 주인을 선택한 적이 있었나?’ 네, 있었습니다. 한 번 들어보십시오.

 

큰 기쁨의 소식

성경이 기록되던 시기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주인을 모시고 살던 시대입니다. 그 시대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1절이 이렇게 밝히며 시작합니다.

(눅 2: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그 주인은 가이사 아구스도입니다. 가이사, 이 단어는 로마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마련하여 공화정이 제정으로 넘어가도록 한 장군 쥴리우스 시저의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영어 시저를 라틴어로 카이사르라고 발음하는데 후에는 로마 황제를 가키리는 일반명사가 되었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표현에서와 같이 말입니다. 아구스도는 시저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에게 원로원이 붙여준 별명이었습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양아버지 쥴리우스 시저가 암살된 후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서 정적을 제거하고 스스로 로마의 초대황제가 됩니다. 그에게 원로원이 지극히 존귀한 자라는 의미의 아우구스투스라는 별명을 붙여주는데 이 별명도 후에 가이사처럼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일반명사가 됩니다.

아무튼 가이사 아구스도 즉 옥타비아누스는 스스로를 신의 아들이라 부르고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지고 왔다고 선언합니다. 온 세상이 그의 다스림 아래 있다는 것은 그가 로마제국 전역에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 명령에 따랐다는 것으로 증명됩니다. 사람들은 그를 주 the Lord라고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주로 여기고 섬기고 살았습니다. 그런 중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천사들은 그 분을 주라고 부릅니다. 10-11절입니다.

(눅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눅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당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새 황제가 태어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가리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고 그 분을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 주 곧 the Lord라고 불렀습니다. 이 선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너희들의 진짜 주 the Lord는 옥타비아누스가 아니라 이 분 예수님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진짜 정의와 평화를 가져올 분은 바로 이 분이라는 말이지요.

 

누가 참된 주님이냐

자, 그럼 누가 진짜 주 the Lord입니까? 적어도 당시에는 누가 봐도 진짜 주는 로마의 황제였습니다. 황제는 로마제국 전역을 통치하는 살아있는 권력이었습니다. 그가 주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자는 칼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의 군대는 황제가 아닌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잔인하게 핍박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속절없이 그 군대에게 잡혀가고 얻어맞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도 감히 그가 주가 아니라고 말하지 못 했습니다. 제국 변방에서 소수의 가난한 제자들을 끌고 다니다 십자가라는 수치의 형벌을 당하고 죽은 자가 감히 어떻게 이런 황제를 대신할 진짜 주라고 말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나 황제의 통치는 피비린내 나는 희생과 두려움 위에 선 통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황제가 주라고 입으로는 고백했지만 마음으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비록 소수만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했지만 그들은 목숨을 걸고 온 마음을 다하여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 고백을 하는 이들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날이갈수록 늘어나는 그리스도의 군대는 칼과 창이 아닌 사랑과 섬김으로 세상을 정복해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300년이 지나지않아 로마황제마저 그리스도 앞에 무릎꿇고 그가 진짜 주인이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2천 년이 지난 오늘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합니다. 마침내는 온 세상의 모든 무릎이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그 분을 참된 주님이시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로마황제는 칼과 두려움으로 통치하였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과 공의로 통치하십니다. 로마황제는 죽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습니다. 로마제국은 무너졌지만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누가 참된 주님이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영원하신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신 줄 믿습니다.

 

누구를 섬기느냐

로마제국이 무너진 오늘 그러나 새로운 제국이 건설되어 그리스도의 나라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아의 제국입니다. 현대인들은 어떤 황제도, 어떤 나라도 섬기지 않는 자유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조차도 또다른 선택이었던 것처럼 사실상 우리는 외부의 그 어떤 권위를 숭배하는 대신 자신의 자아를 숭배하기를 선택하였습니다. 우리의 욕망이 주님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자아실현이 주님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뜻이 주님이 되었습니다. 이제 현대인은 ‘내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로마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자아도 자신이 진정한 인생의 주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를 다스리려 합니다. 우리에게 자신을 주라고 고백하라고 강요합니다. 20세기 지성인들의 사도 바울이라는 별명을 가진 C.S.루이스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자기 본성에 어긋나는 이 자아 양도의 일을 받아들일 때에야 비로소 아담의 타락을 최대한 상쇄시킬 수 있으며 멀리 떠나온 낙원을 향해 전속력 후진을 감행할 수 있다…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 한 타락한 피조물이 최대한 의지를 발휘하여 행할 마음을 먹지 않는 옳은 행위가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곧 자기 양도의 행위이다.’

즉 현대인들은 죽어도 자기 자아를 굴복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곧 자아가 주님이 된 것이며 자아를 섬기는 우상숭배입니다.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그 의미는 이것입니다. ‘여기 가이사랴 빌립보에 있는 만신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로마황제와 제우스와 허큘리스가 자신들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데 너희도 그들과 같으냐? 너희에게 참된 주는 누구냐?’ 이 질문에 베드로는 담대히 이렇게 선포하였습니다.

(마 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세상의 그 어떤 신도 아닌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요, 참 신이라는 고백입니다. 주님의 이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성공과 부와 쾌락과 명예를 좇으며 자아를 숭배하며 살아가는 이 시대에 너는 누구를 좇으며 살아가느냐? 너의 진정한 주인은 너 자신이냐, 아니면 나 예수냐, 라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이 질문에 대해 뭐라 답하시겠습니까? 왕좌에 앉아있는 자아를 거기서 내려와 주님 앞에 무릎 꿇게 하고 주님만이 내 삶의 유일한 주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이에게 들려오는 찬양이 바로 이것입니다.

(눅 2: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평화의 왕이 주실 그 참 평화를 누리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헛된 자아숭배를 버리고 겸손히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내 인생의 주인이시라고 고백하며 그 앞에 무릎 꿇는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오늘 무릎 꿇은 저와 여러분의 귀에 이 천사의 찬송이 울펴퍼지는 성탄절 아침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