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4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2 – 회개와 믿음 / 행2:36~42

20180304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2 – 회개와 믿음 / 행2:36~42

행 2:36-42/어떻게 구원을 받는가2 : 회개와 믿음

180304 주일설교 구원2
성도는 무엇을 요구받는가
오늘은 2주 전 설교에 이은 속편입니다.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인간은 무엇을 해도 영생에 이를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만 가능하다’고 답을 하셨습니다. 그럼 당연히 이런 질문이 뒤따를 겁니까? 그럼 우린 아무 것도 안 하고 하나님의 은혜만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당연히 감나무 아래서 입만 벌리고 누워있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노벨상 수상자가 자신의 성공은 모두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잘 가르쳐주신 선생님과 자신을 도와준 동료 연구자들의 덕분이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그 부모님과 선생님과 동료들이 없었다면 그는 결코 노벨상 수상자가 될 수 없었겠지만 이 말이 그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놀았는데 주변에서 그의 연구를 대신 해주었다는 말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사람들이 천국백성이 되도록 부르시면서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천국백성이 되도록 부름받은 이들이 무엇을 요구받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들이 천국백성이 되고자 할 때 요구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2주 전 살펴본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부자 청년의 질문과 구원을 얻으려면 믿음과 행위가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어느 교우의 질문에 대한 실제적인 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요구
시간을 아끼기 위해 예수님과 사도들이 사람들을 부를 때 하셨던 요구를 이번에도 도표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도표1>
첫째 요구 둘째 요구 순종의 결과
예수님 대중들 회개하고 복음 믿으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리라)
예수님 어부들 (배와 일꾼들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사람낚는 어부 되리라
예수님 부자
청년
재물을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영생을 얻으리라
베드로 대중들 회개하고 세례 받으라 죄사함/성령 받으리라
바울 빌립보
간수
(회개하고) 예수 믿으라 구원 얻으리라
회개 믿음 구원 / 영생 / 천국
먼저 막 1:15에서 예수님은 갈릴리에 오셔서 대중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요구하시기를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첫째로 회개하고 둘째로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회개와 믿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회개와 믿음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명시적으로 덧붙이지는 않으셨지만 선포의 내용을 보면 가까이 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후 복음전파의 과정에서의 요구를 보면 이 회개와 믿음 두 가지로 정리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어서 어부였던 제자들을 부르시는데 그들에게는 문자적인 회개와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나를 따라오라’고만 요구하셨습니다. 그 결과는 ‘그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그물과 아버지와 일꾼들과 배를 모두 버려두고 예수님을 쫓아갔습니다. 예수님이 대중들에게 요구하신 것과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것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아직 모호할 수 있으니 한 가지 경우를 더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바로 2주 전에 살펴보았던 부자 청년에게 하신 요구입니다. 그에게는 ‘모든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기대한 것은 영생이었으니 예수님이 약속하신 결과도 영생을 얻는 것이 맞습니다. 이제 세 경우를 비교해 봅니다. 어부들과 부자 청년에게 요구하신 나를 따르라는 요구는 대중들에게 하신 복음을 믿으라는 요구와 같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즉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나를 믿으라는 말씀과 동의어입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부자 청년이 요구받은 모든 것을 버리는 행위는 대중들에게 요구한 회개의 한 형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승천 이후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세례 후 모여준 유대인들에게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요구합니다. 죄사함과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을 약속합니다.
이후 바울 사도는 빌립보성의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바울의 경우는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와는 달리 즉각적인 회개의 요구가 없습니다. 바울 서신을 보면 항상 앞부분에서 믿음을 가르치고 후반부에서 변화된 성도의 삶을 가르침으로써 회개의 요구가 믿음의 열매로 소개됩니다. 이것은 바울의 청중과 예수님과 베드로의 청중 사이의 차이점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는 구약을 통해 회개가 무엇인지 이미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는 유대인에게 설교하셨고 바울은 구약을 전혀 모르기에 회개가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과 베드로와 달리 회개를 믿음과 더불어 즉각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믿음을 먼저 가지도록 초청한 후에 그 열매로서 회개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의 요구
이제 우리는 성도가 구원의 은총을 누리기 위해 요구받는 것이 회개와 믿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는 무엇이고 믿음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두 주제는 각각 하나만으로도 몇 주를 이어 설교해야 할 만한 분량이 될테지만 오늘은 핵심적인 내용만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회개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사도들이 이방인에게는 즉각 요구하지 않았던 회개를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당연한 듯이 요구한 이유는 그들이 늘 배워온 구약을 통해 회개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가르침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회개는 두 가지로 이해됩니다. 첫째는 뉘우침입니다.
(렘 31:19) 내가 돌이킨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여기서 회개하는 이는 뉘우치고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회개는 마음의 뉘우침입니다. 둘째는 돌이킴입니다.
(겔 33:11) …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그러므로 회개란 자신의 죄와 악에 대하여 마음으로 뉘우치고 행동으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뉘우기치만 하고 그 악을 떠나지 않는 것이나 마음의 뉘우침이 없이 잠시 죄악을 버리는 것은 둘 다 회개가 아닙니다. 결국 죄악 속에 계속 머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재물을 다 나누어주라고 요구하신 이유는 그것이 그에게 우상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버리기 전에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기에 그것을 다 나누어주고 즉 네 우상을 버리고 나를 좇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부들에게는 명시적으로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주님을 따르는 새 삶에 그것이 장애물이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그것을 버리고 주님을 좇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자 할 때 즉각 회개를 요구받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죄와 악에 대한 마음의 뉘우침과 행동의 돌이킴을 요구받는 것이고 여기에는 우상이 되어 있는 것을 버리는 것 그리고 우상은 아니더라도 주님을 따르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을 버리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것은 돈에 대한 욕심, 정욕에 대한 사랑, 세상 성공에 대한 집착은 물론이며 사람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고집과 오만을 포함한 자아숭배가 포함됩니다.
믿음의 요구
다음으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성도는 회개에 이어 두 번째로 예수님을 믿기를 요구받습니다. 사도들의 요구를 들어보면 바울은 예수님을 믿으라고 했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공동체에 들어온다는 것으로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부들과 부자 청년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눈으로 예수님을 보고 그 말씀을 들을 수 있었기에 그 분을 따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바울의 전도를 받은 이들은 이미 승천하신 예수님을 볼 수도 그 말씀을 직접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행적을 보고 그 말씀을 듣고 따르기 위해서는 먼저 그 분의 행적과 말씀을 듣고 믿어야만 했습니다. 믿지 못 하면 따르지 못 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은 곧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과 정확히 동의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 분의 행적을 좇아가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에 대한 영지주의적 오해를 바로 잡습니다. 믿음이란 생각의 동의, 마음의 공감, 신념의 공유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삶의 궤적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 속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요구받는 회개와 믿음은 사실상 한 가지 사건에 대한 다른 관점일 뿐입니다. 회개란 죄악의 삶으로부터 돌이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을 따르는 삶 속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회개라 빠져나오는 것이요 믿음이란 뛰어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빠져나와서 저기로 들어가라는 명령의 두 측면인 것이지요. 성도는 죄악된 삶으로부터 빠져나와서 예수님을 좇는 삶으로 뛰어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그런데 이 일이 인간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이 죄악 속에서 살아가며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지도 못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먼저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은혜로 택하십니다. 그들을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어 십자가에서 그들의 죄를 다 해결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부르십니다. 회개와 믿음을 요구하시면서 순종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부으셔서 그들 스스로 할 수 없는 회개와 믿음의 요구를 다 이루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끝까지 이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붙으셔서 구원의 전과정을 완성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인간으로서는 아무도 할 수 없으되 하나님께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는’ 구원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회개와 믿음의 요구는 우리의 능력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이지만 그 순간조차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와 능력으로 그 요구를 이루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속죄와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여 오늘도 회개와 믿음의 요구를 이루어가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