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41:37-46/지혜와 명철의 근원
180603 주일설교 요셉8
풀기 힘든 문제
조만간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기술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많은 전문가들이 바로 AI 즉 인공지능로봇을 꼽습니다. 프로그래밍된 로봇 뿐 아니라 학습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사고하는 수준까지 도달한 로봇이 가져올 변화는 사뭇 위협적인데요, 근 20년 내에 현재 직업의 80%를 AI가 대체할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존 물류창고를 비롯해 많은 단순노동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AI로봇은 곧 대부분의 전문직종마저 대체할 것이 확실시되는데요, 이렇게 되면현재 우리들의 직업도 점점 사라질 뿐 아니라 우리 자녀들은 학교를 졸업해도 할 일이 거의 없는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지금도 비정규직의 확대, 실질임금감소 등으로 점점 좋은 일자리 찾기가 어려운 다음 세대의 미래는 정말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21세기 자본’이란 책으로 유명한 세계적 경제학자인 프랑스의 토마 피케티는 2003년 ‘미국에서의 소득 불평등, 1913-1998’이란 글에서 미국의 소득불평등은 20세기 초반에 매우 높았으나 2차 세계대전 후 매우 낮아졌고 1980년에 접어들며 다시 급속히 심각해졌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스탠포드대학의 라지 체티 교수가 쓴 소득불평등에 관한 보고서는 1940년에 태어난 사람의 90%가 그의 부모보다 소득이 높아졌지만 40년 후인 1980년에 태어난 사람은 50%만이 부모보다소득이 높아졌을 정도로 그 비율이 급락했습니다. 1980년의 40년 후는 2020년입니다. 최근의 소득불평등의 현상을 근거로 예상키로는 지금 자라고 있거나 태어날 우리 자녀들은 우리들보다 소득이 높아질 확율이 훨씬 낮아질 것이라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걱정이 되고 머리가 아프지 않으신지요? 이런 시대에 ‘내 아이만 공부 잘 해서 좋은 직장 잡으면 되지’라는 희망은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요. 젊은이들에게 ‘너만 잘 하면 성공은 보장되어 있어’라는 식의 희망도, ‘네가 게을러서 가난한거야.’라는 윽박지름도 사실상 다 부질없는 소리입니다. 빌딩도 집어삼키는 쓰나미가 오는데 ‘수영만 잘 하면 살아남지’라고 자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에 늘 찾아오는 쓰나미같은 위협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부질없는 권력과 지혜
오늘은 창세기 41장을 살펴봅니다. 41장 전체를 살펴볼 텐데요, 본문은 일부만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요셉의 이야기로 돌아왔는데요, 17살에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온 요셉은 노예와 죄수로 13년째 고생하고 있는 중입니다. 41장은 요셉이 감옥에 여전히 갇혀있는 중 이집트의 통치자 바로가 꿈을 꾸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 꿈은 매우 불길한 것이어서 바로를 큰 근심에 빠뜨립니다. 8절을 보십시오.
(창 41: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바로는 당대 최강의 제국 이집트에서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았습니다. 그의 근심을 풀기 위해 이집트의 참모들과 지식인들이 총동원되었습니다. 당대의 권력과 지혜가 모두 동원되었지만 그들 앞에 다가오는 재앙을 해결하기는커녕 그 실체조차 파악하지 못 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권력과 지혜도 인생과 역사의 미래를 뒤덮는 그림자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 어떤 대통령도, 그 어떤 석학도 역사의 주관자일 수 없으며 구원자일 수 없다는 사실을깨우쳐줍니다. 자녀와의 문제부터 경제적 문제, 건강에 이르기까지 우리 앞에 닥친 수많은 크고작은 문제들 앞에서 우리의 무기력을 인정하고 교만과 오만을 내려놓고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응답
이 때 요셉과 함께 감옥에 있던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에 대해 바로에게 보고하고 바로는 그를 데리고 오게 합니다. 요셉이 얼마나 갑작스럽게 감옥에서 벗어나 바로 앞에 서는지를 보십시오.
(창 41:14) 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요셉의 오랜 기도가 전혀 예상치 못 한 순간에 예상치 못 한 방법으로 응답됩니다. 결코 오지않을 것 같던 순간이 갑자기 왔습니다. 13년간의 노예와 죄수생활이 극적으로 끝났습니다. 끝나지않을 것 같은 고통을 인내하는 의인의 구원은 급히, 갑작스럽게, 전혀 예상치 못 하게 올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도 영원히 승승장구할 것 같은 악인의 멸망 역시 감자기 올 것입니다. 주님의 오심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눅 17: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므로 믿음은 이 결코 오지않을 것 같은 순간을 인내로 기다리느냐, 마느냐로 드러납니다. 요셉은 13년 간을 숱한 회의와 불안과 싸우면서도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이 진짜인지가 드러나는 순간도 바로 이 때입니다. 이 고난과 인내의 순간에야말로 주님이 찾으시는 믿음이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눅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요셉과 같이 인내로 믿음을 드러내 보이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복음의 기회
바로는 요셉에게 자신의 불길한 꿈을 설명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자신의 삶을 주관하시고 이 순간이 있게 하신 분 그리고 바로와 이집트와 온 세계의 운명을 손 쥔 분을 소개합니다.
(창 41: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요셉은 지금 근심에 사로잡힌 바로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근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순간은 복음을 전하기 좋은 때입니다. 고난과 근심의 지진은 사람들의 마음의 성을 둘러싼 고집과 의심과 불신의 성벽을 흔들어 놓습니다. 많은 이단과 미신과 주술이 이런 때를 노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때를 놓칠 이유가 없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 전하기에 힘써야 하는 우리는 가족, 이웃들의 마음이 흔들릴 때 그들 곁에 있게 해주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
요셉은 계속해서 그 자신이 그 자리에 서게 된 것도, 바로가 그런 꿈을 꾼 것도 우연이 아니며 요셉과 바로의 인생 뿐 아니라 이집트와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창 41:25)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창 41:28)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창 41: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요셉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고 있음을 그의 말을 통해 드러냅니다. 그가 13년의 고난을 이겨낸 것도, 그가 갑작스럽게 바로의 앞에 불려온 것도, 바로가 그를 불러 세운 것도 모두 우연이 아니었음이 드러납니다. 요셉은 그 긴 고난의 시간 속에서도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승리와 영광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과 인내의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거저 말 끝마다 하나님, 하나님이라고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말씀을 철저히 신뢰하고 그 말씀 위의 생각과 태도와 의지를 복종시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의 삶의 중심에는 누가 계십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의 주인이 되시고 중심이 되셔서 요셉처럼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전과같지 않은 요셉
요셉은 바로에게 그 꿈을 해석해 줄 뿐 아니라 다가올 대재앙을 이겨낼 방법도 제시합니다. 한마디로 탁월한 분석가이며 기가막힌 해결책도 제시하는 지략가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요셉은 더이상 생각없이 내뱉은 지껄임으로 주변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던 철부지 10대가 아닙니다. 감옥에서 막 나와 당대 최고의 권력자 앞에 선 죄수라고는 볼수없는 당당함과 바로 앞에 가득 둘러선 당대의 권력자들과 지식인들과 고위관리들을 오히려 주눅들게 하는 위엄을 가졌습니다. 그런 그에게 감탄한 바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창 41:37)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창 41: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 (창 41: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도대체 무엇이 철부지 요셉을 이토록 위엄있는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첫째는 13년의 고난이요, 둘째는 그가 철저히 의지한 하나님 중심 신앙이요, 셋째는 노예와 죄수시절을 방탕과 게으름 대신 성실과 진실로 보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를 요셉처럼 사용하기를 원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사용하십니까? 고난을 쓰십니다. 이 시간에 철저한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성실과 진실을 요구하십니다. 이렇게 응답한 이들은 미숙하고 어리석고 오만한 과거를 뒤로 하고 성숙하고 지혜롭고 겸손한 요셉같은 일꾼으로 쓰임을 받습니다.
요셉이 가리키는 이
30세에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은 이집트 전역을 순찰하며 상황을 살핍니다. 마침내 시작된 7년의 대풍년 동안 곡식을 저장했다가 7년의 대흉년이 시작되자 그 곡식으로 이집트 뿐 아니라 근동의 여러 나라들까지 구원하게 됩니다. 울며불며 노예로 끌려온 17살의 철부지, 노예와 죄수로 청춘을 보내버린 이가 온 세계의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온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장 완벽한 구약의 모델로 평가받습니다. 오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갈 때 우리는 철부지 요셉이 구원자 요셉으로 변모한 것처럼 세상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쓰임받습니다. 세상은 부와 권력와 지식을 숭상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인류와 역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다가오는 근심과 두려움에서 구원해 주실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것을 담대함과 지혜와 용기로 선포할 요셉같은 성도들이 필요합니다. 이 시대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던 이들이 삶의 막다른 곳에 몰려서 길을 잃었을 때 성도들을 부를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에 준비되어 세상을치유하고 구원하는 요셉과 같은 천국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