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9 이민의 땅을 향하다 / 창 46:1~7

20180909 이민의 땅을 향하다 / 창 46:1~7

창 46:1-7/이민의 땅을 향하다

180909 주일설교 요셉17
이민의 긴장
예전에 한 교우분과 대화 중에 미국생활이 어떠냐고 여쭤보았더니 쉽지만은 않다고 답하셨습니다. 그럼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했더니 다 정리하고 와서 돌아가기도 어렵답니다. 미국 올 때의 기대한 만큼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어서 이제는 좋으나 싫으나 여기에 적응하고 살아야지 어떡하겠냐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한국이나 중국 혹은 남미 등 여러 곳에서 미국으로 이민 올 때는 기대와 걱정이 함께 있었을 줄 압니다. 어떤 이는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인 이민생활을 하시겠지만 반대로 기대에 못 미쳐 힘겨운 삶을 버텨야 하는 분도 계실 줄 압니다. 여러분에게 미국은 축복의 땅입니까, 고난의 땅입니까? 돈을 벌었으니 축복의 땅이고 신분해결이 안 되었으니 고난의 땅인가요? 성경은 이민의 땅에 대해서 그렇게 단순하게 묘사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미국이란 어떤 곳이라고 알려줄까요? 
 
야곱 일가의 이민
여기 우리처럼 이민을 결심한 가족이 있습니다. 야곱과 그 가족들입니다. 자녀 중 하나인 요셉이 오늘날 미국처럼 당시 근동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한 애굽으로 먼저 건너가 Egyption Dream을 이루고 가족초청비자를 통치자 바로로부터 직접 발급을 받았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야곱은 가족을 이끌고 애굽으로 이주길에 나섭니다. 1절입니다. 
(창 46:1)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그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께 희생제사를 드리니
헤브론을 떠나 애굽으로 향하는 야곱이 브엘세바에 이르러서 제사를 드린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먼저 브엘세바는 야곱의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으로부터 땅의 약속을 받은 곳입니다. 창 26장을 보면 이삭이 흉년을 피해 블레셋 땅으로 갔다가 원주민들과 갈등을 겪어서 과연 이 땅에 거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집니다. 결국 이삭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 갈등을 극복하고 바로 이 곳 브엘세바에 정착하는데 그 때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다시 한 번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약속하신 땅 가나안의 남쪽 경계가 바로 이 브엘세바입니다.  흔히 성경이 약속의 땅을 설명할 때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을 쓰는데 단을 땅의 북쪽경계이고 브엘세바는 남쪽경계입니다. 브엘세바 남쪽은 사막이라서 사람이 거주하기 힘든 지역입니다. 즉 야곱은 약속의 땅의 남쪽 경계 브엘세바에 이르러 이 땅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한 마디로 야곱은 기쁜 동시에 두려운 것입니다. 요셉이 살아서 애굽에 있다니 놀랍고 거기로 와서 이 혹독한 흉년을 이겨낼 수 있다니 다행스럽지만 과연 내가 이 아버지의 땅, 여호와께 받은 약속의 땅에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노인이 되어 수레를 타지 않으면 안 되는 몸으로 이국 땅에 갔다가 거기서 죽어 묻히게 될 터인데 그 또한 야곱에게는 몹시 마음이 불편한 일일 수 있습니다. 이국 땅에서 소수의 이주민이 혹시 몹쓸 일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그 시대에는 흔한 일이었던 이런 걱정이 없을 수 없습니다. 물론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라는데 무슨 걱정일까 싶지만 그 요셉도 인간입니다.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권력이 영원한 것도 더더욱 아니지요. 그리고 애굽인들도 인간입니다. 그들이 언제까지나 이 이주민들에게 호의적일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실제로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출애굽기를 통해 읽는 것처럼 요셉이 살아있을 동안 야곱 일가는 보호를 받지만 그 후 요셉을 모르는 왕들이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번성하는 야곱일가는 눈엣가시처럼 미움을 받고 결국 노예의 처지로 전락합니다. 
 
하나님의 계획
그렇게 걱정에 사로잡혀 제사하는 야곱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2-4절입니다.
(창 46:2)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야곱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창 46:3)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두려워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여정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 일가가 생각하기에는 흉년을 피해 살 길을 찾아가는 걸음이지만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십니다. 그것은 풍요로운 애굽에서 야곱 일가를 살려낼 뿐 아니라 번성하게 하여 큰 민족을 만들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후손을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할 계획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더 크고 놀라운 계획을 우리를 향해 품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공부하러, 일하러 혹은 자녀 교육하러 또는 좀 잘 살아보겠다고 미국에 왔을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더 크고 놀라운 구원의 역사에 동참시키기 위하여 또 우리를 위하여 더 놀라운 일을 행하시기 위하여 이 곳으로 인도하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동행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두 번째 이유를 4절 전반부가 알려주십니다. 
(창 46: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이 함께 동행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계획만 품고 실행은 우리가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인도하시고 동행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십니다. 
정녕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라는 약속은 어떻게 성취됩니까? 야곱은 애굽에서 죽지만 아들 요셉이 그의 유해를 가나안 땅 아버지 이삭,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잠든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묻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생애 뿐 아니라 그의 사후의 운명과 자손들의 미래까지도 책임지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되 살아서의 삶 뿐 아니라 죽음 이후 영원의 삶과 우리 자손들의 삶까지도 모두 책임지시는 아버지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은 이제 이 약속을 듣고 두려움을 내려놓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오늘 야곱과 같이 미국 땅에서 이민생활을 하시는 여러분도 하나님의 이 약속을 붙들고 두려움 없이 전진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연약한 인생
야곱의 이주 모습을 5절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창 46:5)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날새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바로가 그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에 자기들의 아버지 야곱과 자기들의 처자들을 태우고
야곱의 모습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는 야망이 크고 꾀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형의 장자권을 기어이 빼앗지 않으면 안 되었고 라헬이라는 여인에 대한 사랑으로 14년을 봉사했으며 천사와의 씨름도 질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갖고 싶은 것은 가져야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도 세월 앞에서는 무릎 꿇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레를 의지하지 않으면 움직이기도 힘든 노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지만 인간은 노쇠해 갑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인간이 이루어가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요, 인간은 잠시 쓰임받을 뿐입니다. 
(사 40: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우리는 왔다가 갑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건강할 것처럼 자신만만하고 언제까지나 성공할 것처럼 우쭐댑니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언제까지나 하나님의 일을 할 것처럼 주장하고 언제까지나 하나님의 교회를 책임질 수 있을 것처럼 큰소리를 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 것도 책임지지 못 하고 아무도 건강을 장담하지 못 하고 아무 것도 우리 손에 달린 것이 아님을 깨닫고 겸손해야 합니다. 돈도 자녀도 건강도 아무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결국은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결국은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결국은 모두 하나님께로 돌아갈 뿐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무릎 꿇으시길 축복드립니다. 
 
애굽의 의미
야곱은 마침내 애굽으로 이주합니다. 6-7절입니다. 
(창 46:6) 그들의 가축과 가나안 땅에서 얻은 재물을 이끌었으며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다함께 애굽으로 갔더라. (창 46:7) 이와 같이 야곱이 그 아들들과 손자들과 딸들과 손녀들 곧 그의 모든 자손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이 애굽은 그들에게 어떤 땅입니까? 우선은 혹독한 흉년을 피할 수 있게 되었으니 구원과 풍요의 땅입니다. 그러나 그 복지가 그리 오래 가지 못 합니다. 요셉이 죽고 요셉을 모르는 바로가 집권하면서 야곱 일가의 비극이 시작됩니다. 귀한 손님이었던 그들은 노예로 전락합니다. 애굽은 고난과 눈물의 땅으로 전락하고야 맙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애굽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혹독한 광야를 지나는 한이 있어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야곱에게 애굽은 오늘 우리에게 이 세상나라입니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브라질이든 미국이든 그 어디도 우리에게는 영원한 축복의 땅도 아니요, 영원한 고난의 땅도 아닙니다. 모두 잠시 머물다 떠나갈 땅입니다. 우리가 돌아갈 약속의 땅은 하나님이 예비하고 계시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듯 새하늘과새땅은 성도들을 기다립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미국이민생활이 좀 편할 수도 있고 덜 편한 수도 있겠지만 일희일비하지 말고 신실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두려움 없이 더욱 담대하게 오늘 이 땅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애굽을 향하여 담대하게 나가는 야곱처럼 이 세상을 향해 두려움 없이 전진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하나님의 동행
LA에 있을 때 가깝게 지내던 어느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어린 두 자녀까지 네 식구가 신학박사과정으로 미국에 오긴 했는데 집안이 넉넉하지도 그렇다고 실력이 탁월하지도 않았던터라 부푼 기대와 달리 유학생활이 정말 녹록치 않았습니다. 한국의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얼마 안 되는 유학비용과 주말에 한인교회 교육부 파트타임 사역을 하며 버는 1,000불 남짓의 사례비로는 학비며 생활비로 턱없이 부족하여 사모님도 캐시어로 나가 일하는데도 늘 적자였습니다. 논문은 몇 학기째 통과가 안 되어 스트레스가 감당이 안 되고 부부관계도 점점 어려워져가는 와중에 부모님이 아들 공부하는 것 보겠다고 2주 정도 방문을 하셨습니다. 두 분 모시고 LA 구경이라도 좀 해드려야겠는데 부부가 모두 학교에, 교회에 또 일터에 묶여 있어서 하루를 제대로 못 모신 채 좁은 아파트에서만 지내시다가 보냈다는 겁니다. 부모님을 공항에 모셔다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쌓였던 불만과 스트레스가 폭발하여 부부가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다투었습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화해를 하려고 밴을 몰고 한 밤 중에 LA바닷가에 나갔는데 길을 잘 못 들어서 모래밭에 밴이 빠져버렸습니다. 아내에게 핸들을 맡기고 목사님은 컴컴한 백사장에서 엎드려 밴 뒷바퀴의 모래를 손으로 퍼내는데 차는 꼼짝도 않고  모래만 얼굴에 비처럼 쏟아지고 점점 더 깊이 모래밭에 빠지는 겁니다. 
그 때 주님이 그 목사님의 마음에 말을 거시는 겁니다. ‘얘야, 너 뭐하냐?’ ‘예? 차 빼내려고 하잖습니까?’ ‘그 차가 꼭 네 모습 같구나. 오도가도 못 하고 점점 빠져들어가는 게 말이다.’ 그 음성을 듣자마자 너무 섭섭해서 눈물이 퍽 하고 쏟아집니다. ‘주님, 왜 저를 미국으로 보내셔서 이렇게 힘들게 만드십니까? 제가 주님을 섬기려고 유학왔는데 저를 좀 안 도와주십니까?’ ‘얘야, 난 네가 박사가 아니어도 여전히 널 사랑하고 너와 늘 함께 할 거다. 널 복되게 하려는 계획이 있단다. 그런데 넌 박사에 왜 그렇게 집착하느냐?’ ‘아, 그렇지. 내 앞길을 인도하는 것은 박사학위가 아니고 주님이신데 내가 왜 이렇게 박사과정에 목을 매었던가. 내가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박사학위를 의지하고 있었구나.’ 그 확신이 들자 목사님은 등에서 커다란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처럼 마음이 자유로와지더랍니다. 밤바닷가 파도소리에 의지해 엉엉 울면서 회개하였습니다.
그 길로 박사과정을 그만 두고 교회의 부목회자 자리를 찾아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하는 중에 저를 만났는데 마음이 너무 행복하다는 겁니다. 지금은 한국의 아주 건강하고 좋은 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받아 얼마나 기쁘고 열심히 섬기시는지 모릅니다. 
미국은 천국백성에게 꿈의 나라도 고난의 나라도 아닙니다. 이 곳이 아무리 풍요롭고 좋은 곳이라도 야곱의 후손들이 잠시 머물다 떠날 애굽처럼 성도는 여기에 영원히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지요, 영원히 거할 곳은 하나님 나라임을 믿으시고 그 나라를 향해 끝까지 달려가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