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 17:17-24/생명의 주관자
181111 주일설교 엘리야2
참된 믿음을 찾다
작년 한국에 갔다가 어린 시절 섬기던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안부를 주고받다가 한 누나의 소식을 듣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뜨겁게 하나님을 만나서 간증을 하던 누나는 기도하느라 시험준비를 충분히 못 했는데 시험날 새벽에 시험문제가 막 떠올라서 성적이 크게 올랐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던 그녀가 요즘은 교회를 잘 안 다닌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고 2때 처음 교회를 나왔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지금 목회자가 되어 신실한 섬김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다는 말씀이 떠오르면서 그 누나가 당시 가졌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 때는 그렇게 뜨거웠던 믿음이 식어서 예배도 안 드리는 수준이 될 수도 있구나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믿음처럼 보이지만 참 믿음이 아닌 것이 많습니다. 왜 어떤 믿음은 견고하게 지속되는데 어떤 믿음이 지속되지 못 하고 스러지고 말까요?
오늘 본문은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겪는 두번째 사건입니다. 첫째 사건은 3주 전에 살펴보았던 17장 전반부의 떡을 만들 가루와 기름을 끝없이 주신 기적이었습니다. 아합의칼날을 피해 그릿시내로 피신했던 엘리야가 물이 마르자 하나님의 명으로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옮겼는데 그녀가 엘리야의 말을 듣고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대접했더니 그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에 이어지는 또다른 기적인데 이 여인의 아들이 병으로 죽자 여인이 엘리야에게 호소하고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하자 아이가 다시 살아난 사건입니다. 떡을주신기적과 아들살린기적이 나란히 차례로 소개되는데 아들살린기적을 경험한 여인이 하는 고백이 의미심장합니다.
(왕상 17: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이 여인은 참 믿음을 갖게 되었노라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이제야’ 갖게 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아들살린기적을 경험한 후에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앞선 떡을주신기적 후에는 그 믿음을 갖지 못 한 것일까요? 분명 떡을주신기적을 경험했을 때도 그녀는 믿음으로 행동했습니다. 자신과 아들을 위해 남은 마지막 가루와 기름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엘리야에게 대접하는 것도 큰 믿음의 결단이자 희생이요, 그 결과 가루와 기름이 마르지않는 것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의 능력에 놀라고 은혜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사건 이후에는 그녀의어떤 고백도 나오지 않았는데 아들살린기적 이후에는 ‘이제야 참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떡을 먹고 배부르다
떡은 성도에게 참된 믿음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떡은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모든 은혜와 기도응답을 가리킵니다. 이런 예를 바로 오병이어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자 군중들은 뜨겁게 열광하며 예수님을 뒤따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 왕으로 삼으려고 배를 나누어타고 가버나움까지 몰려옵니다. 적어도 이 순간 그들의 믿음은 그 누구보다 뜨거워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믿음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순간이 옵니다.
(요 6: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 (요 6: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사실은 믿음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욕망이 채워졌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떡이 아닌 하늘의 떡을 구하라고 가르치시자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떠나갔습니다. 떡은 그들을 참 믿음으로 인도하지 못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잘 섬겨서 복과 은혜 받기를 기대합니다. 가정과 일터를 위해 기도하고 자녀와 건강을 위해 부르짖습니다. 그 기도가 응답되면 기쁘고 그래서 부지런히 교회를 섬길 때면 마치 내가 믿음을 가진 것인양 생각합니다. 이것이 믿는 것이고 이것이 신앙생활이구나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착각입니다. 기도가 응답되고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바라던 대로 인생이 풀려가지 않을 때 그 신앙이 무너집니다. 신앙인 줄 알았던 것이 그저 내 욕망을 투영한 것일 뿐임을 알게 됩니다. 고난의 풍파가 와서 삶의 배를 뒤흔들어 놓으면 예수님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바다를 건널 생각은 꿈도 꾸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혹시 떡을 먹고 배불러서 생긴 믿음은 아닌지요? 더 이상 배부르지 않고 따뜻하지 않고 편안하지 않고 부유하지 않아도, 바람이 불고 풍랑이 쳐도 여전히 여러분은 주님을 찾아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시겠습니까?
죽음을 경험하다
그러면 참된 믿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죽음입니다. 사르밧의 과부는 떡이 떨어지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절대공포 죽음, 그것은 그녀에게 생명보다 더 소중한 독자의 죽음을 마주합니다. 이 죽음은 그녀를 완전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세웁니다. 18절입니다.
(왕상 17: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아무도 그녀의 죄를 꾸짖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죄를 떠올립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인 자신을 발견합니다. 자제력을 잃고 엘리야를 원망하는 그녀는 무너져내리고 절망하고 완전히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자신의 무기력과 한계 앞에서 그녀는 쓰러집니다. 엘리야를 섬기기 위해 위대한 섬김을 했으며 잘 믿고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죽을 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바로 그 자아의 붕괴야말로 그녀가 참 믿음에 이르기 위해 꼭 필요한 자리였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둘러싸고 있던 견고한 자아의 성벽이 무너져야 참 믿음의 군대가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위대한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자신이 정말 믿음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배신의 예고를 듣고 죽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큰소리를 칩니다. 그는 자신만만했으며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당당한 맹세를 한 지 하룻밤도 지나지 않아서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으며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나가 처절하게 울었습니다. 여전히 무기력한 죄인일 뿌인 자신의 나약하고 부끄러운 실체를 깨닫고 무너져내렸습니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주님이 사용하시기 좋은 연약하고 겸손한 그릇이 될 준비를 마친 것입니다.
우리가 참 믿음이라는 보배를 담으려면 깨끗하고 비워진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가득한 자아와 욕망과 허영의 찌꺼기를 완전히 닦아내는 영적 죽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죽지 않으면 참 믿음에 이르지 못 합니다. 자신이 괜찮은 인간인 줄 알고 대단한 존재인 줄 알고 믿음있는 존재인 줄 아는 한 참 믿음은 없습니다. 자아가 살아있는 기독교인만큼 무섭고 추악한 존재가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인 줄 아는 교만한 자아에 경건에 모양까지 더해 놓으면 자신이 진짜 하나님 위의 하나님인 줄 압니다. 그런 이들이 하나님 자리에 올라 교만의 왕관을 쓰고 정죄의 칼날을 휘두를 때의 그 서늘함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바울 사도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자아가 죽지 않은 성도는 참 믿음 안에서 살지 못 합니다.
부활을 경험하다
참된 믿음을 불러 일으키는 또 하나의 요소는 부활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고 그녀 자신도 참 믿음 안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그래서 고백하기를 ‘이제야’ 참으로 믿음을 갖게 되었노라고 고백합니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보고 부인하고 도망치고 숨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목숨을 거는 참 믿음을 얻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가 죽은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그를 살리시는 이는 생명의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의 주검을 받아 자신의침상에 눕히고 세 번 그 위에 엎드려 부르짖어 기도하자 아이가 살아납니다. 엘리야는 간절히 기도했지만 예수님은 그저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요 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막 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눅 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주님이 명하시면 다시 살아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다시 태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 난다는 말은 우리의 정체성, 삶의 목적, 태도 그리고 가치관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 백성의 그것으로 다시 형성된다는 뜻입니다. 다시 형성되면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입니다. 실제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입니다. 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 됩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이 하나님을 향해 가지는 신뢰,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거듭 난 성도들이 가지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믿음이 있습니까? 어떤 고난도 흔들 수 없는 견고한 참 믿음이 여러분을 붙들어 주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