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02 평안의 비밀 / 빌 4:6~7

20181202 평안의 비밀 / 빌 4:6~7

평안의 비밀/빌 4:6-7

181202 주일설교 대강절1주
모라비안 교도들의 평안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신대륙인 이 미국 땅의 인디안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1735년 10월 런던을 떠납니다. 대서양을 횡단한 배는 미국에 도착하기 10일 쯤 전인 1736년 1월 25일 심한 폭풍우를 만납니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천둥과 거대한 파도에 낙엽처럼 요동하는 배 안에서 공포에 질린 웨슬리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것은 몸도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배바닥 한 쪽에 둘러앉아 평안한 얼굴로 찬송과 기도를 드리는 무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들은 항해 기간 내내 배 안의 궂은 일도 불평없이 기쁘게 감당한 것으로도 웨슬리에게 큰 도전을 주었던 모라비안 교도들이었습니다. 독일인 진젠돌프에 의해 시작된 경건주의 운동인 모라비안 운동은 최초의 프로테스탄트요, 현대선교운동의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습니다. 웨슬리는 선교사인 자신도 감당 못 할 공포의 순간에 범접할 수 없는 평안을 누리는 그들의 모습에 크게 도전을 받았고 그들과 교제하며 후에 감리교 운동을 시작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평안은 이 땅에서 성도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선교사였던 웨슬리조차도 그랬던 것처럼 막상 고난이 찾아오면 그 평안을 누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고난의 때는 고사하고 모든 일이 잘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순간에조차 불안과 허무를 느끼는 이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우리 그리스도인조차도 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나라인 미국인들은 동시에 세계에서 진통제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배 안에 있던 모리비안 교도에 가깝습니까, 웨슬리에 더 가깝습니까? 만약 우리가 당시 웨슬리에 더 가깝다면 어떻게 모라비안 교도들과 같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이 참 평안을 누리는 길은 무엇입니까? 성경이 이 주제를 너무나 많이 선언하시기에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중요하기에 오늘 대강절을 시작하는 첫 주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에 이르는 길을 여러분과 살펴보고자 합니다. 
 
믿음
평안에 이르는 첫째 단계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근심을 떨치는 가장 확실한 길은 믿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근심을 버리는 길은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님을 믿는 길입니다. 
(마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마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고 입히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하나님이 우리 삶을 책임져 주시고 예수님이 우리 영원을 책임져 주시고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심을 믿으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평안입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의 평안은 마치 촛불과 같은 평안입니다. 돈을 좀 벌고 건강하고 일이 잘 되면 평안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태풍이 불면 바로 꺼져버립니다. 그렇지 않을 때도 작은 입김에도 불꽃이 흔들려서 불안하기 짝이 없는 평안입니다. 이것은 짝퉁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진짜 평안을 흉내내서 돈과 성공과 안락함으로 만들어내는 가짜 평안입니다. 
참 평안은 성령님이 주시는 태양같은 평안입니다. 태풍이 몰아치고 비가 쏟아져도 태양은 꺼지지 않습니다. 잠시 먹구름을 드리우는 듯 해도 금방 다시 찬란한 빛을 우리에게 비춰줍니다. 세상의 것과 달리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진짜 평안입니다. 이런 평안을 주님은 여러분에게 주기를 원하십니다.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근심, 걱정,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든 분들은 예수님의 평안의 선언을 듣고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안을 누리시기를 축복드립니다. 
 
기도
평안에 이르는 둘째 단계는 기도입니다. ‘저는 믿으려고 하는데 잘 안 됩니다. 여전히 불안해요.’ 그렇다면 믿음을 간구하는 기도를 시작해 보십시오. 기도는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기도는 믿음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기름입니다. 기도는 믿음의 나무가 자라게 하는 거름입니다. 최근에 어느 교우 가정을 심방하다 벽에서 이런 구절을 봤습니다.
Pray about Everything! Worry about Nothing!
모든 것을 기도하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마라! 이 구절은 바울 사도의 강력한 권면입니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성도는 염려를 하지 않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그럼 무엇을 합니까? 염려가 찾아오려고 하면 기도와 간구를 시작하여서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이 들으실 것을 믿고 감사를 고백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이는 무엇을 경험하게 되나요? 모든 상황과 이성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찾아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성도의 마음과 생각에 들어오셔서 그 공간에서 염려와 불안의 쓰레기를 말끔히 치우시고 평안의 향수를 뿌리시고 기쁨의 빛을 밝히시고 능력의 찬양을 울려퍼지게 하십니다. 그 곳은 하나님이 머무시는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으로 가득한 거룩한 성전이 되기를 축복드립니다. 
 
순종
참 평안에 이르는 단계가 하나 더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믿음으로 기도를 시작하면 우리 내면에 평안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분명 귀한 것이지만 여기서 멈추면 반쪽짜리 평안이 됩니다. 평안이 우리의 내면에서만 머무르고 맙니다. 집 안이 난장판인데 내 맘은 전혀 불편하지 않아, 나는 평안해 라는 식의 자기 위안은 진짜 평안이 아닙니다. 진짜 평안은 내면의 평안이 밖으로 흘러넘쳐서 우리 일상의 삶 속 구석구석까지 평화의 질서를 누리게 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가족과의 관계가 조화롭고 이웃과의 관계가 평화롭고 심지어 원수와의 관계도 적대적이지 않게 바뀌고 일터의 질서도 회복되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렇게 되려면 한 가지 단계를 더 거쳐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순종은 내면의 평안이 외면의 일상까지 변화시키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수 1:7) …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순종이 삶을 형통하게 하는 원리는 구약성경의 수많은 사례들이 보여줍니다만 이 시간에 족장들의 삶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그 아들 야곱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삭도 야곱도 모두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족장들입니다만 그 둘의 삶의 정황은 사뭇 달랐습니다. 이삭은 한 마디로 순종의 사람입니다.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제물로 바치려할 때 저항했다는 표현이 없었습니다. 그는 가나안 원주민의 딸들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음에도 아브라함에게 순종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삼촌의 딸 리브가와 결혼합니다. 원주민 아비멜렉이 그를 괴롭힐 때도 맞서 싸우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양보를 거듭합니다. 그의 삶에는 큰 굴곡이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을 누립니다. 
(창 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창 26: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반면 그 아들 야곱은 순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주시는 복을 기다릴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인간적인 꾀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과라도 밤새 씨름하여서 기어이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하는 것을 얻은 것 같은데 돌아보면 그가 얻은 것이 그에게 복이 되지를 않습니다. 아버지를 속이는 자식이 되었습니다. 형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외삼촌 라반과도 원수가 되었습니다. 아내들은 서로 다투어 집안이 전쟁터입니다. 가나안에 돌아오자 원주민들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자식들은 말도 안 듣고 대들더니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팔아버립니다. 하루도 집안이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창대하여 거부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는 가나안에 흉년이 들자 굶어 죽을 처지에 놓입니다. 그가 노년에 바로 앞에 서서 한 고백은 그의 삶은 한 마디로 정리해 줍니다. 
(창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그는 조상들보다 더 짧게 살면서도 조상들은 하지 않았던, 그도 하지 않았어도 될 훨씬 많은 온갖 고생을 다 하며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야곱이 만약 아버지 이삭처럼 순종하는 삶을 살았더라도 이렇게 수많은 사람과 원수가 되고 가정이 콩가루 집안이 되고 자식에게 속고 자식이 팔려나가는 일을 겪었을까요? 야곱은 태중에서부터 선택을 받은 사람이라고 창세기는 말합니다. 영적인 금수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순종하지 않으니 이렇게 많은 고생을 합니다. 삶에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의 평안은 우리의 소원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입니다. 
(렘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평안과 미래의 비전과 희망을 주기를 원하시는데 우리가 불신앙으로 그것을 내팽개친다면 이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으며 이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기도를 시작하면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순종을 시작하면 인생의 평안이 옵니다. 마음과 인생에 임하는 하나님의 평안을 넘치도록 누리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