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3 로맨스 회복하기 / 왕상 18:30~35

20181223 로맨스 회복하기 / 왕상 18:30~35

왕상 18:30-35/로맨스 회복하기

181223 주일설교 대강절4주
깨어진 관계 회복하기
최근에 부부관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어느 상담기관에 관한 기사에서 배우자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법을 읽었습니다. 외도 등 큰 일을 통해 완전히 깨어졌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책임지기, 솔직해지기, 믿음과 정직을 회복하기, 다짐을 새롭게 하기 등의 큰 제안 아래 또 작은 제안들을 제시하였습니다. 완전히 깨어지지는 않았지만 많은 부부가 서먹서먹한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하기, 로맨스를 되찾기, 결혼생활의 유대감 형성하기 등을 제안하고 그 아래 작은 제안들도 더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로맨스를 회복하기라는 항목에서는 일상에 변화를 주어 저녁시간에 외식으로 둘만의 데이트를 하거나 로맨틱한 휴가를 함께 보내기를 제안합니다. 친밀함을 회복하기 위해 둘 만의 시간을 하루 30분이라도 정해놓고 이 시간에는 셀폰을 꺼두고 손을 잡고 차를 마시거나 입맞춤을 하는 등 스킨십을 시도해 보라고 제안합니다. 또 데이트할 때의 사진을 꺼내보며 서로 뜨겁게 사랑했던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보라고도 합니다. 
여러 가지 제안이 있었지만 공통된 전제는 저절로 관계가 회복되기는 무척 어려우며 회복의 의지를 가지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모든 관계가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관계가 틀어질 때마다 원수가 되어버린다면 얼마지나지않아 우리는 의미있는 관계라고 할 만한 것이 남아나지 않는 외톨이가 되고야 말것입니다. 관계가 틀어지는 일이 없을 수 없겠으나 그냥 내버려두지 말고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면 더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회복해야 할 관계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관계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다른 모든 관계의 참된 기초입니다. 이 관계 위에서 풍요로운 부부관계, 건강한 자녀관계 그리고 평화로운 이웃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 속에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적지않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완전히 깨어지지는 않았지만 서먹서먹한 상태로 살아갑니다. 한 때는 나도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했는데… 라고 과거의 아련한 기억 속에서만 하나님을 알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깨어졌든 서먹서먹한 정도로 멀어졌든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으라
그럼 무너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30절입니다. 
(왕상 18: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제단이 무너져 있었다는 것은 그 동안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가 멈췄었다는 말이고 그 제단을 다시 쌓는다는 말은 이제 제사를 다시 지내겠다는 말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신약의 예배입니다. 즉 예배를 다시 드림으로써 하나님과의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첫째 단계는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 가장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 무엇입니까? 예배생활이 무너집니다. 드려도 열정이 식어버립니다. 감동 없이 습관적으로 참석할 뿐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상 제단이 무너진 상태입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너진 제단을 방치한 채 신앙생활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병든 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섬김으로서의 예배
이 무너진 예배의 제단을 다시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많은 이들이 예배를 은혜받는 시간, 설교듣는 시간 혹은 기독교인의 의무 정도로 이해합니다만 이는 매우 불충분한 이해입니다. 
구약에서 예배를 의미하는 단어 중 하나인 히브리어 Abad는 섬긴다, 봉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영어에서 Service로 번역되는데 이는 예배의 본질이 봉사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즉 예배의 의미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입니다. 요리사가 최고의 고객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듯, 재단사가 고객을 위해 멋진 옷을 만들고 혹은 구두 만드는 장인이 좋은 구두를 만들어 봉사하듯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는 시간이 예배라는 말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영이시니 우리가 음식이나 옷, 구두를 만들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기뻐하시는 영적 봉사를 합니다. 그것이 찬송과 기도, 예물을 드리고 동시에 그 분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으로 봉사합니다. 
이 봉사의 핵심은 그 분이 받아 마땅한 영광을 그 분께 돌리는 것입니다. 훌륭하게 자란 자녀가 큰 성공을 거둔 자리에서 자신을 평생 돌보아주신 부모님께 감사를 표현할 때,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거둔 학자가 자신을 지도해준 스승과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이가 항상 곁에서 지지하고 도와준 배우자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 그들은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그들이 받아마땅한 영광을 그들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이런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구약에서 예배로 해석되는 또 하나의 단어가 Shahai인데 그 뜻은 몸을 굽혀 영접하다, 땅에 엎드려 경배하다 등입니다. 영어에서 Worship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Worth 즉 가치 있음을 인정하고 그 가치를 받을만한 분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하는 예배
예배가 곧 봉사임을 알게 되면 예배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곧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에게 하는 봉사는 마음 없이도 가능합니다. 사람은 마음 속을 꿰뚤어보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고 영인 인간의 마음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온 마음을 다하지 않는 봉사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요리를, 만들다만 옷과 신발로 고객을 기쁘게 할 수 없는 것처럼 온 정성을 다하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떻게 예배해야 하느냐는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쉽게 설명하면 온 마음을 다하고 거룩한 태도로 예배하라는 말입니다. 정성을 다해 예배하라는 말입니다. 우리 선배들은 정성을 다해 예배하기 위해 주일이면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아무리 멀리 출장이나 여행을 갔더라도 토요일 밤이면 돌아와서 본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헌금으로 드릴 돈을 다리미로 빧빧하게 다려서 드리기를 당연히 여겼습니다. 시대가 바뀌어 젊은이들은 반바지를 입고도 예배를 드리고 어디든 떠난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체크를 쓰면 돈이 구겨지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형식은 바뀌어도 예배드리는 자의 마음가짐을 보시는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무슨 옷을 입든 어디서 드리든 어떤 예물을 드리든 정성을 다하고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하나님은 여전히 기대하십니다. 예배를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이 바뀌고 예배를 준비하고 드리는 자세가 바뀌는데서부터 무너진 예배의 제단이 수축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예배가 회복되어야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됩니다. 여러분의 예배의 제단은 온전히 서있는지요? 그렇지 않다면 지금부터 다시 수축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로맨스를 회복하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두 번째 방법은 무엇일까요? 31절이 보여줍니다. 
(왕상 18: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제단을 다시 쌓는데 그 방법이 중요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의 수를 따라 돌 열두 개를 골라서 쌓습니다. 이 방식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제단을 쌓을 때마다 반복되는데 처음 시작된 곳은 출애굽한 직후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백성들이 언약을 맺을 때였습니다. 
(출 24:3)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출 24: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돌)기둥을 세우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이 언약식은 비유하자면 결혼식과 같습니다. 결혼식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당신만 사랑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듯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준행하겠다고 굳게 서약한 것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당신의 영적 신부로 맞아들이셨습니다. 이제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이 방식대로 열두 개의 돌로 제단을 쌓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너희들이 시내광야에서 하나님과 이런 방식으로 제단을 쌓고 굳게 서약했던 그 맹세를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쉽게말해 첫사랑의 로맨스를 회복하라는 말입니다. 부부관계의 회복에도 첫사랑의 로맨스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듯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첫사랑을 회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계시록에서 예수님도 에베소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첫사랑을 기억하라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다시 31절을 보십시오. 
(왕상 18:31)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열왕기상은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이자 그 이름의 기원인 야곱을 언급합니다. 야곱은 옛적에 즉 1,000년도 더 전에 살았던 조상인데 여호와께서 그를 어떤 자격도 공로도 없이 거저 사랑으로 택하시고 보호하시고 마침내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꾸는 복을 받은 자입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모험을 한 것도 아니요, 아버지 이삭처럼 순종과 평화의 사람도 아니요, 욕심과 꾀로 똘똘 뭉쳐 그 누구로부터도 사랑받을 만한 이유가 없었던 야곱을 하나님이 아무 이유도 없이 사랑하시고 택하시고 이렇게 복을 주셔서 큰 민족의 조상으로 삼지 않았는가? 그런 사랑을 이스라엘은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 사랑을 기억한다면 어떻게 이렇게 불순종할 수가 있느냐는 꾸지람이기도 합니다. 
첫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이 베푸신 형언할 수 없는 사랑과 은혜를 기억해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이 얼마나 많이 자주 성도들에게 기억하라고 명령하시는지 모릅니다. 몇 절만 보겠습니다. 
(사 44:21)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
(사 46: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딤후 2: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유 1: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이 기억함은 곧 묵상함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행하심과 십자가를 깊이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첫사랑을 회복하는 은혜를 누립니다. 그래서 QT와 묵상의 시간이 중요합니다.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바라보심으로 첫사랑을 회복하는 성도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