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5 더 행복한 길 / 행 20:35

20190915 더 행복한 길 / 행 20:35

행 20:35/더 행복한 길

190915 주일설교
주는 이의 기쁨
먼저 저희 집 아이들 이야기를 하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아내가 늘 설교시간에 진리를 흠잡지 말라고 핀잔을 줘서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오늘 좀 만회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진리가 저희 집에서는 조금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습니다. 형처럼 운동을 좋아하는 것도, 누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다 말이 많고 고집이 세서 형, 누나, 아빠에게 돌아가면서 잔소리 폭격을 듣는 날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교우들은 진리가 제일 절 닮았다고 하더군요.
저지난 주에 저희집 강아지 써니가 평화가 생일선물을 받은, 한 달도 안 된 에어팟을 질겅질겅 씹어서 망가뜨렸습니다. 속상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평화를 보더니 진리가 엄마에게 조용히 와서 그러는 겁니다. ‘엄마, 내가 형아 에어팟 사주고 싶어?’ ‘무슨 돈으로?’ ‘내 은행어카운트에 있잖아.’ 할아버지, 할머니가 용돈을 주면 모아서 진리 이름으로 어카운트를 하나 만들어주었는데 거기에는 진리가 마사지해서 번 돈도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제 다리를 열심히 주무르는 겁니다. ‘아빠, 10미닛 마사지 했어. 이건 프리야. 더 받으려면 돈 내야 돼.’ ‘얼마야?’ ‘10미닛 받으려면 1쿼러(25센트) 줘야 해.’
진리 어카운트를 온라인으로 열어보니까 440불이 있었습니다. ‘아빠, 에어팟을 사면 얼마가 남아?’ ‘에어팟이 145불 쯤 하니까 290불 쯤 남겠네.’ ‘음… 그럼 사줄게.’ 아마존에서 주문을 했습니다. ‘어, 진리야. 택스가 9불이 붙네. 145불이 아니고 154불 쯤 되겠다.’ 그러자 갑자기 진리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음… 아빠, 나 못 살 것 같애.’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 안 사도 돼.’ ‘음… 음… 음… 그래도 살래.’ ‘정말?’ ‘응 형아를 사주고 싶어.’ 
형에게는 서프라이즈를 하겠다고 하고 그 날부터 매일 에어팟이 언제 도착하나 확인하는데 얼굴이 얼만 기대에 차있는지 모릅니다. 지난 월요일 저녁에 좀 늦게 들어가서 아내에게 물었더니 평화가 깜짝 놀라서 진리를 끌어안고 업고 펄쩍펄쩍 뛰며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평화에게도 물어보니 ‘응, 좋았어. 기뻤어.’라며 쿨하게 대답하고 맙니다. 아직 진리가 잠들지 않았기에 물어보았더니 그 때까지도 이 아이 얼굴이 상기되어서 좋아하고 있는 겁니다. 
일주일간 제가 지켜보니까 선물을 받은 평화보다 준 진리가 훨씬 더 행복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오늘 본문 행 20:35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행 20: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하셨을까요? 그 이유를 진리가 저에게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주는 이가 받는 이보다 더 기쁘기 때문입니다. 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 쓴 편지에서도 이렇게 밝힙니다. 
(살전 2:8)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 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을 위해 목숨을 주는 것이 기쁘다고 말하며 왜 주는 것이 그렇게 기쁜지도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하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모든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연인을 향한 마음이 그렇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하신 아들을 내어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형제, 자매를 사랑하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기쁨입니다. 주는 이의 행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천국의 행복입니다. 이런 행복을 누리려면 형제, 자매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런 사랑은 성령님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의 역사로 형제, 자매를 사랑하여, 주는 이만이 누리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하나님의 기쁨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두 번째 이유는 주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을 보십시오. 
(히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먼저 나누어 주는 것을 제사 곧 예배라고 하십니다. 주는 것은 예배 곧 살아있는 예배입니다. 로마서가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의 예배는 예배당 안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도 드려야 합니다. 예배당 안에서의 예배만으로 끝나면 그것은 곧 죽은 예배입니다. 예배당 밖으로까지 예배가 이어질 때 그 예배는 비로소 살아있는 예배가 됩니다. 예배당 밖에서의 예배란 무엇입니까? 주는 것입니다. 예배당 안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예배를 드리고 예배당을 나가서는 형제, 자매에게 나누어주는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신다는 말입니까? 다시 히 13:16을 보십시오. 
 (히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즉 비로소 예배를 받으신다는 말입니다. 예배 드릴 때 우리가 기분 좋게 드렸다고 하나님도 기쁘게 받으셨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우리가 은혜받았다는 느낌, 하나님도 기쁘게 받으셨을 것 같은 느낌은 자아도취일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예배당 안에서의 예배로 끝날 때 그 예배는 자아도취의 예배입니다. 
왜 우리가 나누어주는 산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나요? 우리의 경험이 직관적으로 그 이유를 알려줍니다. 제가 지난 월요일에 에어팟이 도착할 예정이었기에 밤에 들어가자마자 아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떻게 되었냐고? 에어팟이 도착하자 진리는 그걸 주고 싶어서 축구하러 간 누나가 돌아올 때까지 못 기다리고 형에게 내밀었고 평화는 깜짝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진리를 안고 업고 춤을 췄다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제 마음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여러분, 부모들이 제일 행복할 때가 언제입니까? 자녀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할 때가 아니던가요! 반면 제일 마음이 아플 때는요? 자녀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고 미워할 때이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된 우리가 서로 나누고 베풀고 섬길 때에 하나님이 말할 수 없이 기뻐하십니다. 반면 우리가 서로 빼앗고 착취하고 외면하고 무관심할 때 하나님은 고통스러워 하십니다. 매일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들일까요, 반대로 슬프시게 하는 것들일까요? 대부분의 일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습니다. 그러나 천국백성들은 그런 와중에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주사 주님의 길 행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주님의 기쁨이 되시는 여러분이 모두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 
 
갚으시는 하나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주는 이에게 하나님이 비교할 수 없이 큰 상으로 갚으시기 때문입니다. 전도서는 이 원리를 이렇게 알쏭달쏭한 비유로 설명합니다. 
(전 11: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떡은 양식을 말합니다. 양식을 물 위에 던지면 어떻게 되나요? 당연히 가라앉아 사라져 버리지요. 영영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여러 날이 지나면 도로 찾는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형제, 자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되돌려주신다는 말입니다. 누가요? 바로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산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말입니다. 
(마 6: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가 나누어주는 것은 아무리 은밀하게 해도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고 그 하나님이 갚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손이 크십니다. 우리 중 누구보다 크시고 세상의 어떤 부자보다 크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이 갚으실 때는 우리가 나누어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세상의 누구도 하나님만큼 손이 큰 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것이 가장 큰 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베풀 때에 하나님이 갚아주시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사람이 갚아주기를 기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마 6:2을 보십시오. 
(마 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우리는 나눌 때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가 늘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알아주고 그래서 칭찬하고 또 갚아주면 기분이 좋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잃어버립니다. 사람들이 몰라주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것이 더 큰 상이 있고 더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는 것은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고 주되 남들이 모르게 주는 것이 더 행복한 일입니다. 마 6:3-4입니다. 
(마 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마 6: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진리가 형의 에어팟을 사주기로 한 후에 엄마에게 그랬다는 겁니다. 엄마, 아빠가 설교시간에 내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해. 아마 진리도 아빠가 자기 이야기를 설교시간에 자주 한다는 걸 들은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은 겁니다. 여러분, 진리에게 이 이야기 아는 척 하시면 안 됩니다. 온 교인이 다 알지만 진리만 모르는 비밀인데 과연 언제까지 지켜질지요. 오늘 진리의 이미지가 좀 만회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나눔과 섬김을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아시고 하늘의 천사들이 알고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압니다. 그리고 세상도 마침내 다 알게 됩니다. 세상에 비밀은 하나도 없습니다. 선한 일도 다 알려지고 악한 일도 결국에는 다 알려집니다. 
(눅 12:2)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눅 12:3)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
은밀한 중에 갚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더 행복한 인생을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