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6 물에서 태어나다 / 요 3:1~5

20191006 물에서 태어나다 / 요 3:1~5

요 3:1-5/물에서 태어나다

191006 주일설교
물과 생명
작년 7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 하나가 과학계를 크게 흥분시켰습니다. 2003년 발사되어 지금까지 화성궤도를 돌며 관찰 중인 마스익스프레스 탐사위성이 찍어서 보낸 사진에 거대한 지하호수가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물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구 지표면의 70%는 물입니다. 지구의 물과 수증기는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인간 신체의 70%도 물입니다. 음식섭취 없이 인간은 3주를 버틸 수 있지만 물을 마시지 않으면 3일을 넘기지 못 하고 사망합니다. 인류의 4대 문명은 모두 큰 강 유역에서 일어났습니다. 물과 생명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것은 육체의 생명 뿐 아니라 영적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은 성도의 구원에도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도대체 물과 구원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다시 태어남
지난 주 설교에서 우리는 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될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밖에는 찾을 수가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해방시키실까요? 죄의 노예된 삶은 원하는 의는 행하지 못 하고 원치않는 죄는 행하는 영적 부자유, 그로인해 겪어야만하는 고단한 삶 그리고 죄의 대가로 영원한 멸망이라는 결과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님은 어떻게 구원하십니까? 그 답은 우리를 다시 태어나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해방과 구원의 문제를 안고 예수님을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하여 진실로 진실로라고 강조하심은 정말 중요한 메시지라는 뜻입니다. 다시 태어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본다 즉 죄로부터 자유와 해방,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처럼 니고데모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예수님은 5절에서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이 말씀을 가장 잘 이해시켜주는 이미지가 바로 세례받으시는 예수님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는 장면입니다. 먼저 이미지 하나를 보시고 이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막 1: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막 1: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물로 세례를 받으시는 순간에 성령님이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즉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는 순간 죄인은 다시 태어납니다. 그 때 그는 자유와 해방, 구원을 얻습니다. 이 두 가지 세례 중 물세례에 대해 먼저 살펴봅니다. 
 
물세례
여러분 대부분은 물로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셨지요. 그 물세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엇이길래 물세례를 받음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는 것입니까? 물세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죄를 씻음입니다. 세례라는 한자의 뜻은 씻을 세자와 예식 예자를 써서 씻는 예식이라는 뜻입니다. 벧전 3장을 보십시오. 
(벧전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물세례는 우리의 구원의 표 즉 상징입니다. 결혼은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예식인 것처럼 물세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예식입니다.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까? 죄를 씻음으로 됩니다. 물로 육체의 더러운 것을 씻는 행위는 보혈로 영혼의 죄를 씻었음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더러운 마음이 아니라 선한 양심을 얻게 됩니다.
세례를 통해 여러분의 죄가 씻김받았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열매로 여러분 안에서 선한 양심이 날마다 자라가기를 축복드립니다. 
물세례의 두 번째 의미는 다시 태어남입니다. 물 속에 들어갈 때 우리는 죽음을 경험하고 물에서 나올 때 우리는 다시 살아남을 경험합니다. 로마서 6장입니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세례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습니다. 그리고 다시 태어납니다. 이것이 성도가 세례를 받을 때 일어나는 영적 사건입니다. 죄로 인해 심판받을 여러분은 물세례로 죽고 그리스도로 인해 부활할 하나님 자녀로 다시 태어나셨음을 믿으시기를 축복드립니다. 
 
거듭남의 비밀
자 그럼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이 단순한 예식이, 심지어 오늘날에는 물을 그저 조금 뿌릴 뿐인 이 예식이 어떻게 죄를 씻고 천국백성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만들어주는 것일까요? 아무나 물에만 들어갔다가 나오면 혹은 무조건 세례만 받으면 되는 겁니까? 물에 무슨 신비한 효과가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요단강에 가서 직접 떠온 물이라면 더 큰 영적 효과가 있는 것일까요? 혹은 조금 뿌리는 것보다 완전히 푹 잠기는 침례가 더 큰 효과가 있는 것일까요? 물론 이런 미신적인 생각은 믿지는 않으시겠지요. 물세례가 어떻게 이런 영적 사건을 일으키는지를 골로새서 2장 말씀이 설명해 줍니다. 
(골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키워드는 바로 믿음입니다. 세례라는 예식 그 자체가 아니라 예식에 임하는 이가 가지는 믿음이 영적 사건을 일으킵니다. 죄씻음의 사건, 거듭남의 사건을 믿음이 일으킵니다. 이 믿음을 어떻게 확인하지요? 바로 신앙고백을 통해서입니다. 목사는 세례를 받고자 하는 이를 교육시키고 신앙고백을 확인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처럼 ‘당신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고백하십니까?’하고 묻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응답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이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그러므로 물세례가 일으키는 거듭남의 기적은 바로 바로 신앙고백 때문에 일어납니다. 이 신앙고백에 대해 로마서 10장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참된 신앙고백은 마음으로 먼저 믿어야 하고 다음으로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쉽네, 나는 그렇게 마음으로 믿었고 입으로도 시인했어요. 그러면 나는 거듭난 것이 맞지요? 맞습니다. 맞는데 그 마음의 믿음과 입의 시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다
신학자 달라스 윌라드는 마음의혁신이라는 그의 책에서 설명하기를, 마음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 의지와 영혼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신체와 대비되는 내면세계의 총합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의 설명대로라면 마음으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저 예수님에 관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먼저 생각 즉 가치관의 영역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합니다. 산상설교의 팔복은 행복에 관한 가치판단 즉 무엇이 행복인지에 대해 완전히 세상과 상반되는 가르침을 줍니다. 돈과 성공과 쾌락이 행복이라는 세상과 달리 심령이 가난하고 마음이 청결한 것이 행복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가치관이 재편될 때 그는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또한 감정작용이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재형성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죄에 애통하고 원수를 긍휼히 여기고 박해받는 것을 기뻐하는 감정상태가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또한 의지가 예수님의 방향으로 재형성되어야 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의지를 가질 때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한다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의 의미는 마음으로 대표되는 내면의 변화와 대비되는 공적인 영역에서 삶의 방식이 바뀐다는 의미입니다. 이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이웃집 숟가락 숫자까지 다 알고 사는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프라이버시가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도시생활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입으로 말하는 것 다르고 숨어서 생활하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말하는 순간 동네 모든 사람들이 다 알게 되고 그 말대로 하는지를 원치않아도 모두가 늘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대였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오늘날처럼 계약서가 필요없었고 맹세가 곧 계약서였습니다. 
이런 시대에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일요일에만 교회에 출석하면 주중에서는 어떻게 살든지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오늘날과는 정말 달랐습니다. 기독교인이 된 지 몇 년이 지나도록 직장동료가 나의 개종을 알아차리지 못 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입으로 하는 시인대로 내 모든 생활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이 거짓임을 즉각 모두가 알아차리는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내 삶의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재편된다는 뜻이고 그 과정에서 겪는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맹세기이도 한 것입니다. 
당시에 그 희생은 유대인의 박해로 동네에서 쫓겨나고 로마제국의 박해로 재산을 빼앗기고 감옥에 갇히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것을 각오하겠다는 맹세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온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온 삶으로 예수님을 따르기로 고백하는 믿음으로 물세례를 받을 때 우리 안에서 거듭남의 기적이 시작됩니다. 이 물세례의 기적은 성령세례의 기적으로 완성됩니다. 다음 주에는 성령세례의 기적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믿음으로 세례를 받으셨는지요? 온 마음으로 믿고 참되게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여 거듭남의 기적을 체험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