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19 인내의 능력 / 약 5:7~18

20200419 인내의 능력 / 약 5:7~18

약 5:7-18/인내의 능력

200419 주일설교
인듀어런스 호 
널리 알려진 것처럼 지금부터 110년 전 1911년 인류 최초로 남극점을 정복한 이는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입니다. 그의 탐험대와 경쟁하던 영국의 로버트 스콧 탐험대는 안타깝게도 최초정복이란 목표를 이루지 못 하고 전원 사망합니다. 이 유명한 두 탐사대 이야기는 성공과 실패의 비밀을 설명하기 위해 자주 인용됩니다. 
한편 그들 뒤에 또 다른 위대한 탐험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문센에게 남극점 최초정복 타이틀을 뺏긴 영국탐험가 어니스트 새클턴은 27명의 대원들과 1914년 남극대륙횡단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에 도전합니다. 그러나 그의 배 인듀어런스호는 출항 한달 반만에 부빙, 떠다니는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에 끼어 압력을 견디지 못 하고 난파됩니다. 필사적인 탈출 후부터 그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의 고난을 겪습니다. 영하 60도까지 떨어지는 살인적인 추위에 손발이 썪어들어가는 동상이 시작됩니다. 남극에만 있는 수 개월 동안 끝나지않는 칠흑 같은 밤 극야에 빛 한 줄기도 보지 못 합니다. 식량이 바닥나 썰매개를 다 잡아먹고 얼어붙은 팽귄고기를 씹어먹으며 굶주림을 견뎌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생존장비마저 모두 잃고 구 조될 수 없으리란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무려 634일간의 상상하기 힘든 사투끝에 새클턴 탐험대는 1916년 8월 30일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전 대원이 구조됩니다. 
비록 대륙횡단에는 실패했지만 전 대원을 모두 무사히 지켜낸 새클턴의 리더십은 최근까지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위대한 리더십의 비밀로 조명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2년이란 긴 시간, 극한의 고난 속에서 끝까지 견디고 살아남게 만들어 주었을까요? 여러 책들이 여러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만 어떤 책이라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 한가지가 있습니다. 그들의 배의 이름 인듀어런스 즉 인내입니다. 배의 이름을 인내라고 붙인 것은 그들의 탐험에 이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지 처음부터 그들이 알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인듀어런스호는 부빙에 짓눌려 깨어지고 가라앉았지만 그들의 인내는 고난에 짓눌리면서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극한의 육체의 고통과 심리적 압박에도 그들은 절망하지 않고 이를 악물고 인내했습니다. 그 인내의 결과 그들은 모두 살아남아 인생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입니까?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인생도 이 탐험과 같아서 인생의 배가 난파되는 고난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가 바로 그 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결코 깨어지지 않는 마음 속의 배 인듀어런스호, 인내입니다, 인내! 
 
농부의 인내
이것이 오늘 본문말씀이 우리에게 깨우치는 바입니다. 7-8절입니다. 
(약 5: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주의 강림은 구원의 때입니다. 그 때까지 필요한 것은 길이 참음 즉 인내입니다. 구원은 인내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입니다. 성도의 인내의 본은 농부입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거두기까지 반 년을 기다립니다. 이스라엘은 우기가 시작되는 10월에 이른 비가, 끝나는 3월에 늦은 비가 내립니다. 이 비가 없으면 농사는 망합니다. 비가 오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다림입니다. 기다림을 모르는 이는 농부가 될 수 없습니다. 인내를 모르는 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의 가정도 일터도 이 미국땅도 난파선과 같은 처지입니다. 가라앉기 직전이고 어떤 배는 이미 가라앉고 있습니다. 가정과 일터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합니다. 그 후에 우리가 할 일은 기다림입니다. 주님의 구원은 멀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의 인듀어런스호가 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살아남을 것입니다. 8절입니다. 
(약 5: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욥의 인내
위대한 인물치고 인내를 모르는 이가 없었고 위대한 신앙인 역시 인내를 모르는 이가 없었습니다. 10-11절입니다. 
(약 5: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선지자들 즉 믿음의 모델들은 한결같이 고난 중에 오래 참음의 본을 보였습니다. 인내하는 자는 행복합니다. 왜인가요? 욥이 그 이유를 알려줍니다. 그는 사랑하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자녀들과 재산과 건강을 잃고 아내와 친구들마저 자신을 의심하고 비난하였습니다. 절망 밖에 아무 것도 남지 않았고 그 무엇도 의지할 것이 없던 그는 그러나 주님을 의지하고 인내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떤 결말을 맞습니까? 가장 자비롭고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이 주시는 결말입니다. 욥기 마지막 장입니다. 
(욥 42:10) …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 (욥 42:12)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욥 42:13)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인내하는 자는 구원을 맛봅니다. 인내하는 자는 마지막 승리자입니다. 인내 없이는 그 누구도 인생의 승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인내의 의미
그럼 인내란 어떤 것입니까? 한자로 인내(忍耐)는 참을 인자와 견딜 내자를 씁니다. 고통을 참고 견딘다는 뜻입니다. 참을 인자는 마음 심 위에 칼 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칼이 꽂히는 듯한 고통을 견딘다는 뜻입니다. 정말 고통스러우면 마음이 도려내는 듯 아픕니다. 잠을 못 자고 괴롭습니다. 울분을 삭이기가 힘이 듭니다. 그런 고통을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헬라어 본문에는 ‘휘포모네’를 씁니다. 이 단어는 ‘견고하게 서 있다, 확고부동하다’는 뜻입니다. 고통이 오면 우리는 다 내팽개쳐 버리고 싶습니다. 부모로서의 책임을 던져버리고 싶습니다. 직장이고 사업이고 다 포기하고 싶습니다. 신앙이고 교회고 책임이고 다 던져버리고 싶습니다. 바로 그 때 책임의 자리에 견고하고 서 있는 것, 믿음과 신념을 내팽개치지 않는 것, 한결같은 자세를 지키는 것 이것이 인내입니다. 
오늘 본문도 인내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주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약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인내에 관한 메시지가 오늘 본문 7절에서 11절까지 이어지는데 그 한 가운데인 9절에 바로 이 말씀이 있습니다. 고통의 때에 우리가 가장 저지르기 쉬운 잘못이 무엇입니까? 원망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고통이 왔는가? 당신 때문이야, 당신이 돈을 잘 벌어왔으면 이런 일이 없지, 당신이 미리 잘 저축을 해두었으면 왜 이런 일이 생겨? 당신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가져온 것 아니야? 보스가 회사를 이끌었으면 이런 위기를 안 겪었을텐데… 직원들이 성실하게 일했으면 회사가 왜 이렇게까지 어렵겠어? 어려울수록 원망이 더 늘어납니다. 
최근에 코로나사태로 온 가족이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가정폭력과 이혼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평소에는 동선이 겹치지 않아서 수면 아래 가라앉아있던 문제, 불만이 24시간 함께 보내다보니 터져나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럴 때 성도의 인내가 필요합니다. 두려움과 걱정을 다스리지 못 하면 짜증과 원망이 시작됩니다. 짜증과 원망은 다툼과 미움을 낳습니다. 다툼과 미움은 고난을 이길 힘을 빼앗습니다. 인내가 필요한 시점에 조급한 판단과 말을 하고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킵니다. 
 
인내의 비밀
지난 주간에 저는 하루에 한 가정씩 여섯 가정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최근 제가 목회를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결혼식엔 축하객들이 기쁨을 배가 시키듯 장례식엔 조문객들이 슬픔을 반으로 나눕니다. 그런데 최근 장례식은 코로나 사태로 오직 유가족들과 목사들이 고스란히 이별의 슬픔을 다 짊어져야 합니다. 유가족들은 슬픔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합니다. 목사인 저도 모르게 그 슬픔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는 것을 주말에 깨달았습니다. 힘겨운 상황을 마주하는데 저도모르게 원망이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아, 인내가 바닥나고 있구나. 조용히 묵상하며 저에게 인내를 가르쳐 주시도록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고난을 인내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13절입니다. 
(약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즐거울 때 찬송하는 것은 쉽지만 고통스러울 때 기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원망을 내려놓고 기도하는 것이야말로 고통을 이기는 인내의 비밀입니다. 홀로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기도하는 것은 더욱 능력이 있습니다. 
(약 5:16)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2주 전부터 온라인으로 양육과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모일 때마다 기도제목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렇게 힘겨운 때일수록 성도들은 홀로 떨어져 있으면 안 됩니다. 가족과 일터 그리고 내 영혼을 혼자 지키려 하면 안 됩니다. 인내는 서로 의지하고 중보할 때 배로 강해집니다. 모닥불과 같아서 나무를 모아두면 오래 타오르지만 떨어뜨려두면 금방 꺼져버립니다. 
 
상수와 변수
1940년대 아칸소주 어느 제재소에서 일하던 케몬스 윌슨이란 직원은 어느 날 출근해보니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해고통지서가 책상 위에 놓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사장에 대해 끓어오르는 복수심을 다스릴 수가 없어 제재소 앞에 더 큰 제재소를 만들어 그를 망하게 하고 싶었지만 돈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는 돈을 모아 집을 나가 이것저것 시도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6개월 만에 돌아온 그는 아내에게 모든 노력을 다 했지만 아무 것도 안 된다며 죽고싶다고 말합니다. 그 때 아내가 이렇게 답합니다. ‘여보, 당신이 한 가지 해보지 않은 것이 있어요. 당신은 이 모든 문제를 놓고 기도하지 않으셨잖아요.’ 그 말에 도전을 받은 케몬스는 아내와 함께 간절히 기도를 시작합니다. 며칠 동안의 간절한 기도 중에 신기하게도 먼저 직장과 상사에 대한 복수심이 사라졌습니다. 복수심이 사라지자 마음이 평안해지며 사업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집을 담보로 융자를 얻어 조그마한 건축업을 시작했는데 5년 만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어느 여름 가족과 휴가를 떠났다가 너무 비싸고 형편없는 호텔에 크게 화가 났습니다. ‘주님, 호텔들이 왜 이렇게 형편없고 비싸기만 합니까?’ 불만을 기도로 터뜨리자 ‘그럼 네가 싸고 좋은 호텔을 지어보아라.’하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는 그 통찰을 붙들고 기도하며 호텔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시작한 사업은 2018년 기준 1,173개의 호텔을 가진 세계적인 호텔체인 Holiday Inn이 되었습니다. 
고난은 인생의 상수입니다. 결코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이 코로나 사태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고난에 대한 반응은 변수입니다. 그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 결과도 다릅니다. 우리는 원망하고 절망하여 무너지고 패배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인내하고 기도하여 극복하고 승리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인내와 기도로 승리하는 성도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