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7 정의란 무엇인가 / 잠 14:34

20200607 정의란 무엇인가 / 잠 14:34

잠 14:34/정의란 무엇인가

200607 주일설교 인종차별시위
숨을 쉴 수 없다
지난 몇 달 동안 미국에서 신문지상을 가득 메웠던 코로나 관련뉴스를 밀어낸 것이 바로 인종차별반대시위 뉴스입니다. 2주 전인 지난 달 25일 미니애폴리스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경관 데릭 쇼빈에게 8분 46초 동안 무릎으로 목을 눌린 끝에 사망한 사건으로 인해 시작되었습니다. 저항하지도 않고 이미 두 손이 뒤로 수갑채워진 채 바닥에 뉘어진 조지 플로이드는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호소하고 희미한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의식을 잃어갔지만 데릭 쇼빈 경관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무심히 무릎으로 그의 목을 누르는 모습이 영상으로 공개되어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가해 경관 데릭 쇼빈은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전까지 기소되지도 않았습니다.
지난 2월 23일에는 조지아주 브런스윅에서 25세의 아흐마드 알버리라는 흑인 청년이 조깅을 하다가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그는 수년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조깅하던 동네에서 여느 때처럼 달린 것 뿐인데 그레고리 맥마이클과 그의 아들은 그를 도둑으로 생각하고 차량으로 추격한 끝에 총으로 쏴 죽였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흑인 청년이 자신들을 공격했다는 백인 부자의 말만 듣고 체포도 않고 귀가조치시켰으며, 그들이 추격 끝에 아흐마드를 쏴죽이고 흑인을 비하하는 욕설을 하는 영상이 공개되기까지 두달 반 동안 지역사회의 강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당방위라고 오히려 백인 부자를 옹호하였습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인종차별사건이라는 외에 모두 뒤늦게라도 사건의 진상을 드러낼 영상이 다행히 공개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영상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매일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인종차별행위들처럼 묻히고 말았을 것이란 뜻입니다. 인종차별반대시위를 곱지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이 사건들이 아주 예외적이고 드문 것인데 지나치게 부풀리는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그러나 통계를 보면 이런 일들이 결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죽어가는 흑인들
미국에서는 매년 평균 1,000명 정도가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합니다. 인종별 인구 대비 경찰총격사망자 비율통계를 보면 흑인은 백인보다 경찰총에 맞아 사망할 확율이 2.5배 높습니다. 특히 전체 인구 중 2% 정도인 15-35세의 흑인남성은 전체 사망자의 15%를 차지합니다. 이런 통계는 앞서 소개한 사건들이 우연히 예외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구조화된 차별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이 사태로 언론인터뷰에 응한 한 흑인 어머니는 평소 아들이 운동하러 나갈 때면 체육관이 아니면 달리지 말라고 당부한다고 하고 어릴 때부터 부당한 일을 보더라도 항의하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아들이 무사히 살아서 집으로 돌아올까를 걱정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들은 사실 미국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인종차별, 계층차별, 경제적 불평등, 물질숭배, 자원독점과 환경파괴 등 온갖 문제의 한 조각에 불과합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인한 인종차별반대시위는 미국전역 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캐나다, 호주 그리고 유럽각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뿌리깊은 인종차별은 동시에 조롱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세계 각국에서 이미 코로나19 바이러스 세계최대피해국이 된 미국의 현실에 이어 인종차별사건이 쏟아져나오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공산당일당독재로 인권후진국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중국의 관영매체마저도 과거 홍콩사태를 가리켜 미국 정치인들이 썼던 아름다운 광경이란 표현을 그대로 써가며 미국의 현상황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정치인, 스포츠 스타, 연예계 스타 너나할것없이 이런 사태에 우려와 개탄을 숨기지 않습니다. 
 
영광을 누리는 나라
인권과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세계에 전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했던 미국이 왜 이런 조롱거리가 되었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이 그 답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잠 14: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나라와 백성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은 공의로움입니다. ‘트러스트’라는 책에서 석학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한 국가의 진정한 힘은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사회의 척도 즉 공정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회가 얼마나 공정하느냐가 곧 그 나라가 얼마나 강한 나라인가를 결정한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애굽에서 해방시킨 히브리 민족을 가나안에 들여보내시어 이스라엘을 건국하시기 전에 율법을 가르치시며 이렇게 당부하셨습니다. 
(신 15:4-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부강한 나라가 되고 백성들이 모두 행복하게 잘 사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 즉 공의로운 말씀을 잘 지켜서 행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공의로운 말씀이란 무엇입니까? 레위기와 신명기 전체를 통해 주신 모든 말씀을 가리킵니다만 특별히 이 약속을 주신 신명기 15장에는 경제적 정의에 대한 말씀이 가득 차 있습니다. 바로 앞 문맥인 1-2절입니다. 
(신 15:1) 매 칠년 끝에 면제하라. (신 15:2)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무릇 그 이웃에게 꾸어준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 해는 여호와의 면제년이라 칭함이니라.
어느 사회나 빌리는 이는 가난한 자이고 빌려주는 이는 부자입니다. 부유한 계층이 가난한 계층을 착취하거나 억압하지 못 하도록 아예 면제년 곧 안식년과 희년이란 이름으로 제도화하였습니다. 바로 뒷 문맥인 7-8절입니다. 
(신 15: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신 15:8)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
요즘 말로 하자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복지혜택을 넉넉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회의 약자들에게 생명과 복지를 보장해주어서 모든 구성원들이 차별없이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의 핵심가치입니다. 이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공의입니다. 이 공의를 이룰 때 그 사회와 국가는 영광을 누립니다. 
 
수치를 겪는 나라
반면 공의를 외면하는 것은 불의이자 죄입니다. 그 죄는 나라와 백성을 욕되게 합니다. 수치스럽게 만듭니다. 다시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잠 14:3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지난 목요일 뉴욕주 버팔로시에서 벌어진 인종차별반대시위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시청 앞에서 백발의 75세의 남성이 경찰에게 다가 말을 거는데 두 명의 경찰이 손과 곤봉으로 ‘뒤로 물러서라’며 그를 강하게 밀어 넘어뜨렸습니다. 휘청이며 몇 발 자국을 뒷걸음질치던 그 노인은 뒤로 넘어지며 머리를 부딪혀 뇌진탕을 일으켜 의식을 잃고 귀에서 피를 흘리며 손을 떱니다. 그 중 한 경찰이 다가가 뭐라고 욕을 하듯 소리치고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노인을 내버려둔 채 지나가고 지나가는 수십 명의 경찰들 중 누구도 피를 흘리는 노인을 신경쓰지 않습니다. 앤드류 코오모 뉴욕 주지사는 다음 날 두 경찰을 정직처분을 내리고는 언론브리핑을 통해 ‘도대체 경찰이 왜 이런 행위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는 수치스럽고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콩고 주재 미국대사인 마이크 해머는 현지의 한 기업가가 자신에게 보낸 트위터 메시지를 소개했습니다. ‘대사 귀하, 당신의 나라는 수치스럽습니다. 흑인 대통령을 선출했던 자랑스러운 미국이 아직도 인종차별주의란 악령을 극복하지 못 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흑인이 백인 경관에게 죽어야 정부가 심각하게 대응할 것입니까?’ 미국에 대한 이런 평가는 아프리카 일부 국가만의 시선이 아니라 이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는 냉소에 다름아닙니다. 세계를 선도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했던 미국이 이런 수치와 모욕을 겪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공의를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불의를 묵인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우상숭배의 이유
구약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자세히 소개하는 이유는 공의를 저버린 나라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법 위에 건설된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팔레스틴 인근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저 국력만 강한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자기 집안 소유의 땅을 가지고 부족함 없는 복지를 누리를 건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초심을 잊어버리고 지배층은 이방민족의 우상숭배를 수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상숭배와 함께 이방의 법과 제도, 관습도 들어왔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나무를 한 그루 베어오면 나무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 속에 사는 벌레, 곤충, 작은 동물들, 뿌리에 묻은 흙, 흙 속에 사는 세균, 바이러스까지 다 묻어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상숭배를 그토록 경고하고 미워하신 이유도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모든 공동체가 더불어 잘 살도록 만드는 것이었다면 이방의 법은 강자들의 욕망의 무한대로 추구하도록 허용해주는 법입니다. 지배층이 어는 법을 더 좋아할지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그토록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왕들이 우상숭배를 자꾸만 들여온 이유입니다. 결국 이방의 법과 제도에 완전히 잠심되어버린 이스라엘은 초기의 건강함을 잃어버리고 강자들에 의해 약자들이 착취와 억압을 당하는 이방국가와 똑같은 나라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이 예고하신 대로 남북왕국 모두의 멸망입니다. 
오늘 미국은 하나님의 은혜로 한 세기 가까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하며 역사상 유례가 없는 풍요를 누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숨겨진 많은 모순 즉 불의가 있었습니다. 코로나 사태와 인종차별시위가 그 중 하나를 드러내었습니다. 코로나가 퍼져도 흑인이 가장 많이 죽습니다. 경찰의 총에도 흑인이 가장 많이 죽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은 백인들에게 수백 년 전부터 아프리카에 잡혀와 짐승처럼 살며 평생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가 매맞고 병들고 죽어갔습니다. 그 후손들은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면서도 언제 경찰의 총에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시달리며 여전히 살아갑니다. 어떤 이들은 흑인들이 천성이 게으르고 범죄를 많이 저지르기 때문에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만, 어떤 인종이든 수 백년을 노예로 살고 여전히 교육과 직업과 사회적 대우에서 차별받으며 범죄 말고는 살아갈 방법이 마땅치 않은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다면 그보다 낫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기도하는 그리스도인
미국이 이 인종차별과 빈부격차를 해결하지 못 하면 영광은 어느 덧 옛 이야기가 될 터이고 수치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겁니다. 풀이 마르고 꽃은 시들듯 세상의 영광은 잠깐입니다. 이 땅을 위해 우리 기독교인들이 먼저 인종에 대한 모든 편견을 내버리고 앞장 서서 인종차별철폐를 주장해야 합니다. 이 땅이 불의를 버리고 공의를 실천하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법을 두려워하고 시민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나라가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