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3:4-5/물과 성령과 교회
210110 주일설교 요한9/거듭남3
정말 거듭났는가
최근 한국교회에 가장 큰 위협이 된 이단이라면 신천지를 꼽습니다만 한 20여 년 전만 해도 구원파가 가장 주목을 끌었습니다. 신천지가 기독교인들을 포교의 대상으로 삼듯 구원파 역시 기성교회 교인들에게 접근하여 이렇게 유혹하였습니다. “언제 구원받았는지 날과 시를 아느냐? 지금 죽더라도 천국 갈 확신이 있느냐? 구원받은 때를 모른다면 당신은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또 구원의 확신이 없다면 역시 구원받지 못 한 것이다. 참된 구원의 확신을 갖고 싶다면 우리 교회에 와라. 우리 교회가 참된 구원을 가르치는 진짜 교회다.” 기독교인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구원파의 대표적인 가르침이 ‘구원받은 날과 시를 모르거나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구원받지 못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옳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아원에서 자라서 자신의 생일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은 태어나지 않은 사람입니까? 거듭난 날과 시를 정확히 아는 것이 거듭남의 필수적 요소라는 가르침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 혼수상태에 있거나 잠들어 있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의식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까? 마찬가지로 구원의 확신이 없다고 구원받지 못 한 것이라는 주장도 비상식적일 뿐 아니라 비성경적입니다. 구원 여부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여러 곳에서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구원받지 못 한 이도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착각할 수도 있고 반면 구원받은 이도 자신의 구원여부를 확신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다음의 구절을 보십시오.
(마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마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여기서 주님을 주여, 주여라고 부르던 자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주님의 백성이라고 믿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전혀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구원받은 백성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반면 이 구절도 보십시오.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 사도의 이 편지의 수신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확실히 알지 못 하고 있었다는 뜻이 아닙니까? 이것은 아들이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나서도 변호사가 자신을 찾아오기 전까지 거액을 상속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가 모르고 있었다고 해서 그가 상속자라는 사실이 무효가 되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듯이 믿는 자가 자신의 구원에 대해 확신을 못 하고 있었다고 하여 하나님의 택함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듯 구원파의 논리가 헛점이 분명한 데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 말에 속아서 그릇된 가르침을 쫓아갔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독교인으로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궁금한 문제인 구원여부에 대해 교인들이 확실한 성경의 가르침을 배우지 못 했고 또 그 가르침에 기반한 확신을 갖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가르쳐야 할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깊은 책임감을 느끼며 구원과 구원의 확신에 대해 이 시간 힘닿는 데까지 가르치고자 합니다.
거듭남은 언제 일어나는가
예수님과 니고데모 사이의 대화에 대해 3주째 살펴보고 있습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선물이며 그 선물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믿는 이들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믿는 이들은 육의 생명과 달리 영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하셨습니다. 그 과정을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요 3: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가 그 답을 알려줍니다.
(마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이 순간 예수님은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함께 받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이 때 거듭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로 죽어서 거듭날 필요가 없는 분이었고 그래서 세례 요한도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의를 이루기 위해’ 베풀라고 명하셨고 그제서야 요한도 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이후의 모든 죄인들에게 일어나야 하는 일을 보여주시기 위한 모범이었습니다. 죄인들은 죄를 회개하고 믿음을 고백하며 물세례를 받을 때에 성령으로도 동시에 세례를 받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설교합니다.
(행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렇게 물세례를 받으면 성령세례도 받는다는 말입니다. 이 때 물세례는 우리 눈에 보입니다. 교회에서 세례예식을 통해 목회자가 회중들 앞에서 베푸니까요. 하지만 성령세례는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간혹 성령의 역사로 방언과 같은 은사들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물세례를 받은 이가 성령세례도 받아서 영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가요? 다시 말해 우리 자신이 거듭났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혹시 앞서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도 주여 주여하고 주님을 부르고는 있지만 주님은 나를 모른다 하시는 것은 아닌가 말입니다.
거듭남을 어떻게 아는가
물세례 때의 우리의 신앙고백이 진짜고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생명현상이 나타나는 것 즉 열매맺는 것이라고 몇 주 전 설교에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이런 열매를 맺는다고 갈라디아서는 말씀하시지요.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런 열매가 구원의 증거라는 가르침을 예수님도 주고 계십니다. 앞서 주여 주여 하는 이들을 모른다고 하신 그 대목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7: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 (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여기서는 순종의 열매를 맺는 것을 보고 그가 거듭난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고 편지를 썼다는 요한 사도도 같은 편지에서 이렇게 쓰십니다.
(요일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일 2: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그 계명은 바로 사랑의 계명이며 사랑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서도 첫째입니다. 사랑의 열매를 보고 주님을 아는 이 즉 거듭난 이인줄 확인한다는 말입니다. 이로써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구원여부는 그 사람 자신의 주장이나 자기확신여부가 아니라 그가 맺는 삶의 열매를 보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이렇게 거듭난 성도들이 거룩한 열매를 맺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만드십니다. 이 성령님께 순종하여 변화되는 과정을 성화라고 부릅니다. 구원은 예수님에 의해 거룩한 신분을 얻게 됨 즉 칭의와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살게 됨 즉 성화를 모두 포함하는 과정입니다.
거듭남을 누가 돕는가
성령님은 죄인이 거듭나 의인의 신분을 가지고 예수님을 닮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학을 하십니다.
(딛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어떻게 이 일을 하십니까? 성령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을 증거하십니다. 요한1서입니다.
(요일 5:6)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요일 5:7)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이 이 땅에 오신 길과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증거하셔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도록 도우신다는 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도우십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또 우리에게 죄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요 16:8) 그(성령님)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님은 이렇게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과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우리를 깨우치심으로써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요 16:13) …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성령님의 이런 역사는 어디에서 일어날까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입니다.
거듭남은 어디서 일어나는가
앞서 설명드린 물세례는 어디서 일어납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물세례를 받을 때 성령세례는 어디서 일어납니까? 역시 교회입니다. 성령님이 예수님과 그 말씀을 드러내고 죄와 심판을 경고하는 등 역사하시는 곳은 어디입니까? 교회입니다. 교회가 아닌 어디서 예수님의 말씀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선포됩니까?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확인되는 곳은 어디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그 세례는 누가 베풉니까? 초대교회에서는 열두 사도들과 그들로부터 안수로 위임받은 제자들이 베풀었고 그 이후 2천 년 동안 제자들의 제자들, 또 그 제자들의 제자들이 안수로 위임받아 교회를 지키며 베풀었습니다. 오늘날 김도완 목사가 베푸는 세례도 바로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저를 안수한 선배 목사님, 그 분을 안수한 선배 목사님 그렇게 올라가면 사도들에게 닿고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닿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목회자는 성도들이 거듭나 칭의와 성화를 경험하고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하는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장이요, 일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와 그 지도자들에게 엄청난 권위를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는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될 그의 신앙고백 위에 이런 권세를 주셨습니다.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베드로)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여기서 매고 푼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 즉 거듭남의 진위에 대해 판정하는 권위를 말합니다. 18장을 보면 이 점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죄를 짓고 회개치 않는 이들을 치리하도록 가르치시며 그들의 구원여부를 결정한 권위를 주십니다.
(마 18:17) 만일 (죄인들이) 그들(증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마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즉 교회가 회개하지 않는 죄인을 출교하면 하나님 나라에서도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세례와 성령의 역사와 더불어 참 교회의 지도는 성도의 거듭남과 그 열매맺음을 위해 주신 주님의 은총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거듭남은 교회의 지도를 받으며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확증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지도를 받으며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으신지요? 뉴저지장로교회 모든 교우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거듭남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