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21 아들을 사랑하사 / 요 5:17~23

20210321 아들을 사랑하사 / 요 5:17~23

요 5:17-23/아들을 사랑하사

210321 주일설교 베데스다연못사건3
손웅정과 손흥민
차범근을 넘어선 현존 최고의 한국축구선수, 세계최고의 리그인 영국 EPL의 토트넘 핫스퍼에서 뛰고 있는 그는 누구입니까? 한인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그는 바로 손흥민 선수입니다. 피겨에 김연아가, K-Pop에 BTS가 있다면 축구에는 손흥민 선수가 있습니다. 천 억원을 몸값을 돌파하여 세계최고의 윙어이자 공격수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는 피지컬과 기술, 슈팅 등에서 역대한국축구선수의 수준을 이미 초월했고 계속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오늘의 손흥민 선수가 있기까지 빼놓을 수 없는 이로 그의 아버지 손웅정 씨를 꼽습니다.
자신도 축구선수였던 그는 자신만의 축구철학으로 어린 손흥민을 직접 가르쳤습니다. 그는 기본기가 평생의 발전을 좌우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들을 16살 때까지 정식경기에 내보내지 않은 채 하루 6시간씩 오로지 기본기만 가르쳤습니다. 체력, 볼 트래핑, 드리블, 슛, 패스 등 기본 중의 기본을 철저히 훈련시켰습니다. 매일 양발 슈팅을 1,000개씩 시키고 줄넘기 2단 뛰기를 수 천 개씩 뛰게 했습니다. 아들이 게을러질까봐 독일 함부르크 유스팀 시절에는 훈련장 옆 모텔에 함께 투숙하면서 새벽마다 30살 어린 아들과 함께 똑같이 웨이트트레이닝을 했습니다. 어린 손흥민은 아버지가 가르치는 대로 보고 따라하며 기본기를 쌓아 세계적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혹시 손웅정 씨는 아들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세계적 선수로 성장한 것에 질투가 나지 않을까요? ‘내가 키운 녀석이 나보다 더 유명해져? 말이 돼?’ 당연히 그럴리가 없겠지요. 아버지는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아들의 행복을 위해 사랑과 헌신을 쏟아붓기 때문입니다. 손흥민 선수는 자신의 성공이 아버지 덕이라는 세간의 평에 불쾌하지 않을까요? ‘뭐, 아버지 덕에 내가 성공했다고? 내가 얼마나 피땀 흘려 노력했는데 왜 아버지가 칭찬을 받아?’ 그 역시 그럴리가 없습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에게 그 분은 아버지이자 선배이자 스승입니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저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매일 일어나면서 잠들기까지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깊은 신뢰와 존경으로 따르기 때문입니다. 손웅정 씨와 손흥민 선수가 보여주는 사랑과 헌신, 신뢰와 순종으로 맺어진 관계야말로 하나님과 예수님 사이를 설명해 준다고 요한복음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 
예수님이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3주째 다룹니다. 그 병자를 고치시며 ‘자리를 들고 일어나 가라’고 명하신 것 때문에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의 공격을 받습니다. 게다가 이 말씀 때문에 심지어 살해위협까지 받습니다. 17절입니다.
(요 5: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심으로 자신을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높였고 그래서 하나님의 그 영광을 빼았는 신성모독의 죄를 저질렀다고 보았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영광을 아들인 당신에게 부여해 주셨다고 답합니다. 19절입니다.
(요 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요 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하나님이 창조 때부터 지금까지 행해오신 것이 무엇입니까?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그것은 병든 세상을 치유하시는 일 즉 재창조입니다.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도 정확히 아버지 하나님이 행하셨을 그 일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 모든 일을 예수님에게 다 보여주셨을까요? 아들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셔서 부귀영화를 주셨습니까? 아니지요. 당신의 일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손웅정 씨가 아들을 사랑하는 방식은 축구선수로서의 모든 경험과 지식, 비전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아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치는데 주저함이 있었을까요? ‘아, 이건 나밖에 모르는 노하우인데 아들에게 알려주기가…’ 그럴리가 없지요. 아들 손흥민에게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아꼈을까요? 그가 아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성령을 물붓듯이 부으시고 그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보이셨습니다.
(요 3: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종교지도자들의 억측과 달리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완전한 사랑과 헌신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역시 하나님께 온전히 신뢰하고 순종하였습니다.
행복과 성공의 길
하나님과 예수님이 보여주신 이 관계야말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깨닫고 경험하고 따라야 하는 인생의 비밀입니다. 행복하고 성공한 인생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오늘날 세상에서 그것은 돈과 지위와 명예입니다. 이런 것을 소유했다고 성공이라 평가받고 부러움을 사고, 소유하지 못 했다고 실패했다고 조롱당하고 괴로워합니다. 이것이 유일한 기준이 된 사회는 참으로 천박하고 유치한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모여서 내 도시락 가방은 루이뷔똥인데 너는 아무 브랜드가 없네, 우리 집은 헤라팰리스인데 너희 집은 임대아파트야? 얼레리 꼴레리 명품도 없대요, 임대에 산대요… 정신이 제대로 박힌 교사라면 이런 아이들에게 무어라 가르치겠습니까? ‘얘들아,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단다. 어디에 살든지 너희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부족함없이 받고 말씀 잘 듣고 깨끗하고 예쁘게 자라는 것이 중요한 거야.’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교사까지 똑같이 나서서 ‘그래, 루이뷔똥 도시락 가방 없고 임대아파트 사는 불쌍한 애들하고 놀 수는 없지. 너희는 이 쪽, 너희는 저 쪽 따로 놀도록 하렴.’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런 사회가 있다면 소위 막장사회겠지요.
그런데 오늘날 세상이 정말 그렇습니다. 교회마저 나서서 돈과 지위와 명예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라고 가르치고 나섭니다. 그리스도인들마저 목숨걸고 이것들을 얻으려고 싸우고 경쟁합니다. 막장세상을 만드는 막장교회입니다. 톨스토이가 대문호로 인정받고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세상이 막장이 되지 않도록 일깨우는 경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진리 성경을 가진 교회가 세상에 보석같은 진리를 흩뿌리지 못 하고 천박한 막장세상의 가치에 오히려 오염된다는 것은 부끄럽고 탄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하신 것처럼 그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도 자녀에게 이렇게 합니다. 그렇다해도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자녀에게조차 그렇게 못 하는 이기적인 사람도 많습니다. 예쁘고 자랑스러운 자녀에게 그렇게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아프고 문제를 겪는 자녀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은 더 어렵고 귀합니다.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은 이를 사랑하고 헌신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정말 귀한 삶입니다. 우리 인생의 값은 죽을 때 남긴 통장잔고가 아니라 우리가 쏟은 사랑과 헌신의 무게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통장에 쌓이는 보물입니다.
또 인생의 진정한 성공은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하신 것처럼 그 누군가를 전심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도 진리와 생명이신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고 따릅니다. 그렇다해도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실하신 하나님도 신뢰하지 못 하는 불신앙의 사람이 많습니다. 성숙하고 헌신적인 부모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은 쉽습니다.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부모님을 존경하고 따르는 것은 훨씬 어렵고 귀합니다. 이기적이고 못된 상사, 동료, 친구, 고객을 존중하고 대접하고 따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동시에 그만큼 귀한 일입니다.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성공한 삶이요, 하늘의 신문에 실리는 인생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당신들의 사랑과 헌신을 통해 천박한 막장드라마 같은 우리 인생에 보석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인생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사랑과 헌신의 삶, 신뢰와 순종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죽은 자를 일으키심
그런데 예수님이 하나님과 이런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들이라는 주장이 유대인들에게 믿기가 쉬웠을까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다시 20절입니다.
(요 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그보다 더 큰 일 즉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보다 더 큰 일을 보이시리라는 말씀입니다. 너무나 큰 일이어서 사람들이 다 기이하게, 놀랍게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그 일은 무엇일까요? 21절입니다.
(요 5: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그것은 아들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이 하시듯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일이요, 능력이라고 믿었습니다. 만약 하나님만이 하시는 그 일을 예수님이 하신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1장에 가면 죽어서 무덤에 묻힌 지 4일이 지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그 사건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동시에 아들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요 11:4에서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 하시더라.
그리고 나사로를 살리신 후 하나님의 의도대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요 11:45)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대인이 저를 믿었다…
이 일로 인해 예수님을 믿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23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5: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여기서 공경한다는 표현은 믿는다는 표현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구절은 이렇게 됩니다.
(요 5: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믿는 것 같이 아들을 믿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믿지 아니하느니라.
행복의 방향
아들 예수님을 믿음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증명됩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이는 아들 예수님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로써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이 함께 경배를 받으시게 됩니다. 왜 이렇게 하십니까?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 모두에게 표현할 수 없는 큰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심없는 완전한 사랑으로만 맺은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아들이 받는 경배에 아버지가 기쁩니다. 아버지가 받는 경배에 아들이 기쁩니다. 당신 홀로 경배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욱 기쁩니다.
손흥민 선수가 열광을 받으면 손웅정 씨가 기쁩니다. 손웅정 씨가 존경을 받으면 손흥민 선수가 기쁩니다. 여러분도 아들, 딸이 잘 되면 여러분이 잘 될 때보다 더욱 기쁘지 않으시던가요? 부모님이 행복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더욱 행복하지 않으시던가요? 이것이 진정한 행복의 비밀입니다. 행복을 얻으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채우면 행복한 줄 압니다. 자신이 잘 되고 자신이 부유하고 자신이 성공하면 행복할 줄 압니다. 그것은 참된 행복이 아닙니다. 속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을 얻으려면 이웃을 채워야 합니다. 부모님을, 자녀를, 친구를, 교우를, 이웃을 더 나아가 원수를 축복하고 먹이고 돌아보고 채우면 오히려 내 영혼이 더욱 충만하게 차오르는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은 서로를 사랑하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예수님에게 하신 것처럼 사랑하고 헌신하는 대상이 있습니까? 아들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에게 하신 것처럼 믿고 순종하는 대상이 있습니까?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신다면 배우면 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깊은 사랑의 관계를 경험하면 우리는 비로소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으로 본받아 진정한 사랑의 능력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