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5 살인자와 예배자 / 창 4:23-26

20210425 살인자와 예배자 / 창 4:23-26

창 4:23-26/살인자와 예배자

200425 주일설교
죽이는 이와 살리는 이
작년 말 캘리포니아의 한 죄수의 죽음이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되었습니다. 그는 미국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범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복역 중 80세로 사망한 새뮤얼 리틀은 1970년부터 2005년까지 자신이 모두 93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했습니다. 190cm의 거구에 권투선수 출신이었던 그는 흉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손쉽게 희생자들을 제압하고 살해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끔찍한 일이지만 워낙 충격적인 뉴스를 많이 듣다보니 충격의 여파가 그리 오래 가지 않고 잊혀지는 듯 합니다. 정말 요즘은 날마다 끊임없는 혐오범죄, 총격사건, 쿠데타, 전쟁이 벌어지고 실시간으로 언론에 중계되는 통에 사람 죽는 소식이 별로 놀랍지도 않습니다. 세상에는 다른 이들을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분명 있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만 그 반대의 사람들도 분명 있습니다.
1951년 호주의 한 병원에서 폐를 자르는 수술을 받고 살아난 제임스 해리슨이란 소년이 있었습니다. 수술 중 과다출혈로 생명이 위험했으나 무려 13리터나 되는 많은 양의 피를 수혈받아 기적같이 자신이 살았다는 사실을 들은 제임스는 자신도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18세가 되어 처음으로 헌혈을 했을 때 의사들이 그의 피를 검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수백 년간 난치병으로 알려진 레소스병의 항체가 그의 피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병은 산모의 피가 태아의 피를 바이러스로 오인하고 공격하여 태아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병입니다. 그는 자신의 피가 유일한 항체라는 사실을 알고 그 때부터 60년 동안 1,000번이 넘는 헌혈을 하였습니다. 22일마다 한 번 꼴입니다. 그의 피로 만든 항체로 무려 240만 명이 넘는 태아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호주정부와 시민들은 그에게 명예훈장과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라는 호칭을 안겨주었습니다.
예배자 아벨
바다가 똑같은 물이 섞여있는 듯 보여도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서 보면 북극에서 내려온 찬물과 적도에서 올라온 더운 물이 수온 때문에 섞이지 않은 채 서로 다른 물길을 따라 엇갈려 흐릅니다. 사람들이 다 똑같아 보여도 전혀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가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이와 죽이는 이입니다. 세상에 생명을 살리는 사람만 가득 하면 좋겠는데 왜 죽이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요? 질문을 반대로 해보면 죽이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리는 사람이 남아있는 것일까요? 결국 세상에 마지막까지 남아 승리하는 것은 이 둘 중 누구일까요? 성경은 과학을 포함해 세상 어떤 학문도 주지 못 하는 이 질문들의 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오늘 본문이 그 답입니다. 짧은 본문은 인류의 시조 아담이 나은 세 번째 아들 셋의 출생을 다룹니다. 25절입니다.
(창 4: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이 태어나기 전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바로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입니다. 셋이 태어나기 전까지의 아담의 후손은 가인과 아벨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를 대표합니다. 창 4:3입니다.
(창 4:4) …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창 4: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아벨의 예배를 받으셨다는 말이 그의 예배가 합당했다는 뜻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거역한 아담의 후손이었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로 살아갑니다. 그는 의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이렇게 평가하십니다.
(마 23: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입니다.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살인자 가인
반면 가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의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실 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예배를 받지 않으시고 그의 죄를 꾸짖으시자 그는 회개하기보다 하나님과 동생에게 분노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동생을 죽입니다. 가인은 살인하는 이가 되었습니다. 요한 사도는 이렇게 가인을 평가합니다.
(요일 3:12)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를 죽였습니다. 이는 인류 역사 내내 반복될, 악인들이 의인들을 박해하는 불행한 역사의 기원입니다. 아벨의 죽음으로 이제 세상에는 누구만 남았습니까? 가인의 후손들입니다. 과연 세상에 가득하게 퍼지는 가인의 후손은 살인한 조상의 피를 이어받아 살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고 문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를 의지하며 자신을 지키고 원수들을 죽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가인의 5대손 라멕입니다. 23-24절입니다.
(창 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말하였다. “아다야, 실라야, 내 말을 들어라. 라멕의 아내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나를 해치지 마라. 죽여버리리라. 젊었다고 하여 나에게 손찌검을 하지 마라. 죽여버리리라. (창 4:24) 가인을 해친 사람이 일곱 갑절로 보복을 받는다면 라멕을 해치는 사람은 일흔일곱 갑절로 보복을 받으리라.”(공동번역)
라멕은 가장 사랑하고 신뢰해야 할 아내들에게조차 위협을 느끼며 경고합니다. 그들의 가정이 얼마나 역기능적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에게 조그마한 모욕이나 상해를 끼쳐도 죽여버린다고 위협합니다. 77배의 무한보복으로 원수들을 위협하여 자신의 안전을 꾀하려는 악하면서 동시에 불행한 삶입니다.
새로운 예배자 셋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이렇게 악하면서도 불행한 살인자들만이 세상에 가득 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또 다른 아들 셋을 주셨습니다. 셋은 가인에게 살해당한 의인 아벨의 자리를 대신할 아들이었습니다. 아담의 입으로 그 사실을 명확히 설명해주십니다. 다시 24절입니다.
(창 4: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그리고 셋과 그의 후손들이 택한 삶의 방식이 보여줍니다. 25절입니다.
(창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비유는 곧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뜻입니다. 비로소! 아벨이 죽음으로 세상에서 사라진 예배가 셋과 그 후손들의 출현으로 다시 시작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라진 예배자들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소망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소망은 셋의 족보를 쫓아가 보면 발견합니다. 셋의 후손들 중 누가 나타납니까? 노아와 셈과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이 족보에서 탄생하십니다. 예배자들의 거룩한 족보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의 출현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예배자들의 귀환입니다.
왜 세상에는 살인자들이 이렇게 많습니까? 하나님을 거역함의 결과는 결국 살인을 낳기 때문입니다. 살인자들은 예배자들을 핍박하고 죽여서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려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거역한 마귀가 이루고자 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셋을 주신 것처럼 예배자들을 창조하십니다. 예배자들은 세상이 살인자들에 의해 멸망하지 않도록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무너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시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아름다운 질서가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데 쓰임받습니다. 결국 누가 이길까요? 예배자가 살인자를 이깁니다. 예배자가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그럼 하나님은 어떻게 그들을 창조하실까요? 바로 복음을 통해서입니다. 고전 4장입니다.
(고전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바울은 복음을 전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낳았다고 하였습니다. 복음은 예배자들을 낳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으로 세상에 예배자들이 넘쳐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교회는 지금도 복음으로 예배자들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복음으로 전할 때 예배자들을 낳습니다. 복음으로 성도들을 양육할 때 예배자들을 낳습니다.
예배자가 사는 법
그렇게 태어난 예배자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복음으로 태어난 예배자들은 세상 즐거움으로 더 이상 만족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새 욕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정희라는 이름의 17살 소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소녀는 하버드 교수라는 명예를 버리고 평생을 장애우들과 함께 살다가 하나님 곁으로 떠난 헨리 나우웬의 책 영적 발돋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자신의 삶도 장애인을 돌보는 데 바치기로 하나님께 약속하였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장애인 시설에 들어가 그들을 돌보는 사역을 시작했는데 봉사활동을 하러 온 청년이 그녀를 사랑하여 청혼하였습니다. 그녀가 자신은 장애인을 돌보기 위해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자 그 청년은 그럼 자신도 함께 그 사역을 하겠노라고 하여 결혼하였습니다. 7년 동안 네 번이나 임신하였지만 번번이 유산하고 마음이 너무 아파 슬피 울고 있으려니 그녀의 마음에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한 번도 못 본 아이를 잃었다고 우느냐? 나는 세상에 홀로 울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 때문에 울고 있다…’ 주님의 마음을 깨닫고 부부는 4살과 3살의 친자매를 입양하였습니다. 두 딸아이가 자라서 함께 보육원에 봉사를 다녀오면 아이들이 동생을 데려오자고 조르는 겁니다. ‘우리는 엄마, 아빠가 있는데 보육원의 아이들은 없잖아, 걔들에게도 엄마, 아빠를 만들어 주고 싶어.’ 그 마음이 너무 예뻐서 임신을 포기하고 동생들을 입양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입양을 위해 보육원을 방문하면 소개해주는 첫 아이가 꼭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몸으로 낳는 아이도 선택할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받는데 마음으로 낳는 아이도 그러해야 한다고 믿고 만나는 첫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그렇게 셋째, 넷째 한 명 한 명 입양을 하다보니 지금은 하나같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 12명을 입양한 엄마, 아빠가 되었습니다. 윤정희 사모와 김상훈 목사 가정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을 처음 입양할 때만 해도 남편이 건설업체 사장이어서 돈 부족한 것 모르고 아이들 키우고 장애인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소명을 발견하여 신학교를 갔습니다. 처음에는 그간 벌어놓은 돈을 쓰다가 다 떨어져 땅을 팔아 살다가 나중에 집도 팔아 쓰고 나니 은행잔고가 0원이 되어 목사가 된 남편의 박봉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11명을 양육하고 장애인 사역까지 도대체 어떻게 감당할까 싶은데 놀랍게도 돈이 넘칠 때보다 없이 사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고 감사가 넘치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돈이 채워주던 것을 이제는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기적을 매일 매일 경험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전에는 돈으로 해결하던 것을 이제는 기도를 하고, 전에는 비싼 것을 쓰면서도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이제는 작은 것 하나도 쓸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 감격합니다. 이 부부가 사는 법, 이 가족이 사는 법을 보면 아,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예배자로 낳으셨습니다. 예배자는 세상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배자는 세상의 즐거움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배자는 천국의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살인자들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거룩한 예배자로 살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