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6:28-35/예수님을 먹고 마시기
210905 오병이어3
1. 왕비가 택한 보물
옛날 어느 나라의 왕비가 왕궁의 법을 어기는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신하들이 들고 일어나 왕비를 궁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습니다. 왕비를 사랑했지만 법을 무시하기도 어려웠던 왕은 왕비에게 그 동안의 공과 정을 생각해서 왕궁의 보물 중 무엇이든 하나는 들고 나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신하들도 거기까지 반대하지는 못 하여서 왕의 처사가 공정하다고 인정하였습니다. 마침내 왕비가 궁을 떠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래, 왕비는 어떤 보물을 들고 가기를 원하는가?” “임금님, 저는 오직 한 가지 보물을 골랐습니다. 그 보물은 바로 임금이옵나이다.” 그러자 왕이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습니다. “그렇구나. 이 나라는 왕의 것인데 그대가 왕을 골랐으니 그대야말로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닌가? 나라의 주인을 왕궁에서 어떻게 쫓아낸단 말인가?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신하들은 왕비의 지혜에 아무 말도 하지 못 했고 왕비는 쫓겨나지 않고 왕궁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이 재미있는 우화에는 중요한 원리가 등장합니다. 왕국의 어떤 보물도 왕국을 소유한 왕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습니다. 왕국의 주인인 왕을 소유하면 왕국 전체를 소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보물을 원한다면 왕을 얻어야 합니다. 이 원리가 오늘 본문의 핵심메시지입니다.
요한복음 6장을 계속 살펴봅니다. 2주 전 설교에서 오병이어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이 다음 날 예수님을 찾아와 시작된 대화의 앞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영성지능이 바닥이나 다름없는 무리들은 주님이 또 다시 그들을 배불리먹여주시기를 기대해 찾아왔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썩지않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늘 썩을 양식을 구하느라 염려하고 근심하는 우리에게도 무엇을 구하며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었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썩지 않는 양식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2. 구원은 일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다
그럼 그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구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영생의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무리들은 예수님 말씀을 듣고 이렇게 질문합니다. 28절입니다.
(요 6: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그들은 영생의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에는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그들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물론 그들만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사람 누구라도 공짜가 없다는 점을 압니다. 영생도 얻으려면 그들이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도 똑같이 물었습니다.
(눅 18:18) 어떤 관원이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우리도 똑같은 생각을 합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잘, 열심히 믿어야지. 예배를 안 빠지고 봉사와 헌금을 하고 선교와 구제도 해야겠지. 이렇게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염치없이 구원을 얻는다고 하겠나?’ 그런 생각이야말로 영생의 양식을 얻는데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무리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무언가 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 나를 믿는 것이야말로 영생의 양식을 얻는 길입니다. 일이 아니라 믿음, 행위가 아니라 믿음, 공로가 아니라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민족 이스라엘이 영생의 양식을 얻는데 실패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롬 9: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이스라엘)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영생의 양식은 얻는 방법도 썩는 양식과 다릅니다. 세상에서 먹을 것을 얻으려면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 더 많이 얻으려면 더 공부하고 더 머리를 쓰고 더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영생의 양식은 그렇게 해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를 버리고 가만히 앉아 믿어야 합니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깨닫고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이 점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믿기만 하는데 영생의 양식을 얻는다고요? 무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30절입니다.
3. 구원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
(요 6:30)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질문의 의미는 이것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당신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입니까?’ 그들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권위있는 인물 모세를 떠올려서 예수님이 모세보다 더 대단한 인물인지, 그렇다면 그 증거는 무엇인지 제시하기를 요구합니다. 31절입니다.
(요 6:31)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모세가 주는) 만나를 먹었나이다.”
당신이 모세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라면 그래서 당신을 믿기만 하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영생을 얻을 수 있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믿을 수 있도록 표적을 보여달라는 요구입니다. 당연해 보이는 이 요구는 그러나 그들의 불신앙과 편견을 여전히 보여줄 뿐입니다. 불신앙은 그들이 요구하는 표적을 예수님은 이미 보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여전히 믿지 못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그들이 예수님에게 또 몰려오도록 만든 사건이 무엇입니까? 바로 전 날 예수님이 일으키신 오병이어의 표적 때문이 아니었던가요? 예수님은 이미 당신이 모세보다 뛰어난 분이심을 표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또 표적을 요구합니다. 그들이 믿지 못 하는 이유는 표적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믿음의 부족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감사하며 살지 못 하는 이유는 가진 것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믿음이 부족해서입니다. 평안히 살지 못 하는 이유는 고난이 많아서가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기뻐하며 살지 못 하는 이유는 좋은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성도의 삶의 모든 문제의 원인은 궁극적으로 믿음이 부족해서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도 믿음의 회복입니다. 믿음이 회복되면 모든 꼬인 문제의 실타래가 풀립니다.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오는 참된 믿음이 회복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무리들의 요구는 그들의 불신앙과 함께 편견을 여전히 보여줍니다. 그 편견은 광야에서 만나를 조상들에게 준 것이 모세였다는 생각입니다. 어, 모세가 준 것 아닌가요?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구원이 여전히 사람들이 하는 무언가에 달려있다는 편견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생각을 바로잡아주십니다. 32절입니다.
(요 6: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모세가 준 게 아니야.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거야. 하늘의 양식, 영생의 떡을 모세가 준다고 생각하지 마라. 하나님이 주신 거다. 영생을 인간이 얼마나 훌륭하거나 노력하거나 희생하여서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영생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야. 33절입니다.
(요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 떡은 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는 거야. 땅에서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비가 오고 해를 비추듯이 은혜로 내려주셔서 얻는 것이다!
이렇게 구원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합니다. 영생은 사람이 얻어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요, 땅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것이요, 자격과 노력이 아니라 은혜로 얻는 것이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땅에서부터 하늘로 관점이 바뀌고 하나님이 영생의 주관자임을 믿을 때에 비로소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이 관점이 바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 관점이 안 바뀌어서 구원이 이해가 되었다가 다시 알쏭달쏭하고 어제는 구원받은 것 같다가 오늘은 아닌 것 같고 왔다갔다 합니다. 평생 우리는 나와 땅과 행위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의 관점이 바뀌고 영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4. 구원은 예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다
말씀을 들은 무리들은 그들 스스로 영생을 얻기에 합당한 일을 하겠다던 처음 태도를 버리고 겸손하게 구합니다. 34절입니다.
(요 6:34) 저희가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님이 드디어 기대했던 간구입니다. 예수님은 이 간구가 나오도록 대화를 이끄셨던 겁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어내려고 하지 말고 영생을 주실 분에게 간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나왔던 부자 관원도 자신이 영생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했던 태도를 버리고 주님께 이렇게 간구할 수 있었다면 아마 은혜를 입었을지 모릅니다. 아무튼 무리에게서 기대했던 간구를 들으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답을 주십니다. 35절입니다.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영생의 떡을 달라고? 내가 바로 너희들이 먹을 영생의 떡이다. 영생의 떡을 먹으려거든 나를 먹어라! 그러면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다. 영생의 물을 마시려거든 나를 마셔라! 그러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아주 중요한 이미지입니다. 예수님이 영생의 떡을 주시는 게 아니라 예수님 자체가 영생의 떡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먹고 마셔야 영생을 누립니다. 뒤잇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이 점을 분명히 강조하십니다. 6장 53-54절을 보십시오.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 주님을 먹고 마시라
예수님이 성찬식을 제정하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성찬식은 이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의식입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지 않으면 영생이 없습니다. 성찬식 때마다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을 먹어야 합니다. 주님을 마셔야 합니다. 그럼 주님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로마제국 정부는 이 비유의 말씀을 오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식인종으로 몰아 박해하기도 했습니다. 56-57절에서 두 가지로 부연설명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먹고 마심의 첫 번째 의미는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요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우리는 어떻게 주님 안에 거합니까? 주님은 어떻게 우리 안에 거하십니까? 요한복음 15장으로 가봅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마음에 품고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도 주님 안에 거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쉬지 않고 말씀을 묵상하고 공부하고 순종하는 이유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함으로 주님이 여러분 안에 거하시고 여러분도 주님 안에 거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먹고 마심의 두 번째 의미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는 것입니다. 57절을 보십시오.
(요 6: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예수님은 아버지로 인하여 살았습니다. 이 말은 아버지가 주신 사명을 이루며 사셨고 아버지가 예수님 삶의 목적과 의미와 이유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흔히 대중가요에서 사랑하는 연인에게 ‘당신은 나의 모든 것’이라고 고백할 때와 비슷한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먹는 이들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삽니다. 예수님이 우리 삶의 의미와 목적과 사명과 이유가 되실 때 우리는 그 분을 먹고 마시는 이들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인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기를 인하여 살아갑니다. 자신이 자신의 목적과 이유와 의미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식으로 인하여 살아갑니다. 어떤 이들은 연인을 인하여 살아갑니다. 하나같이 소중하지만 영원하지 않은 관계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삶의 의미와 목적과 사명과 이유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 이제 영생의 길이 분명히 정리되었습니다. 영생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베푸시는 선물입니다. 그 선물은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함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고 마심입니다. 예수님을 먹고 마심은 그 분의 말씀으로 그 분과 연합함이요, 그 분이 삶의 목적과 의미와 이유와 사명이 됨입니다. 곧 영생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소유하면 하나님 나라의 모든 복과 생명을 소유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예수님을 먹고 마십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여러분 안에 거하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살아가십니까? 이것은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단락을 보면 이 질문에 답하지 못 하고 예수님을 떠나 돌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뉴저지장로교회 성도 여러분은 단 한 분도 예외없이 예수님을 먹고 마심으로 영생이신 예수님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