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8 파인애플 드리기 / 요 7:10-24

20211128 파인애플 드리기 / 요 7:10-24

요 7:10-24/파인애플 드리기

211128 대강절1주
1. 내 파인애플을 먹어야겠다
예전에 나누었던 ‘파인애플 이야기’란 책이 있습니다.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의 성경번역선교사 이야기입니다. 신선한 과일이 너무 먹고싶었던 이 선교사가 선교본부에 부탁해서 파인애플 묘목 100그루를 구해다가 원주민들에게 임금을 주고 심었습니다. 3년이 지나 파인애플이 익어가는데 어느 날 누군가 다 익지도 않은 파인애플을 몽땅 따가버린 것이었습니다. 찾아보니까 그 나무를 심었던 원주민들이었습니다. ‘왜 남의 파인애플을 따갔습니까?’ ‘우리 섬에선 심은 사람이 주인입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아 화가 났습니다. 그는 원주민들에게 도둑질을 계속 하면 병원문을 닫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래도 파인애플은 없어졌습니다. 고민 끝에 맹견 한마리를 구해서 나무 밑에 묶어두자 그제서야 파인애플을 따가는 일이 멈췄습니다. 그런데 원주민들은 파인애플 밭에만 안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도 점점 나오지 않았습니다. 사역이 계속 꼬이고 풀리지 않았습니다. 안식년을 맞아 어느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왜 원주민들이 교회를 떠난 것일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나는 내 파인애플이 먹고 싶었을 뿐인데… 주님,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는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께 간절히 질문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이 선교사처럼 답답한 마음에 주님의 뜻을 물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주님,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요? 저는 그저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것 같은데… 열심히 봉사한 죄밖에 없는데… 왜 부부관계, 자녀관계, 일터, 신앙생활, 삶이 이토록 엉망이 되어버렸습니까?’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주님의 뜻을 이해하고 주님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 주님 예수님이 그 답을 주십니다.
2. 무지한 전문가들
본문은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이 대중을 가르치면서 시작된 종교지도자들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요 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요 7: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님은 당시 율법의 선생들이 그 자격을 인정받는 방식 즉 명성있는 바리새학파인 힐렐학파와 샴마이학파의 제자로 들어가 배운 적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요즘 말로하면 예수님은 대학도 안 다녔는데 어떻게 이렇게 영향력있게 가르치느냐는 의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무지를 꼬집으십니다. 16절입니다.
(요 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을 모르고 있다는 꾸지람입니다. 수학선생이 수학공식을 모르고 영어선생이 영어문법을 모르는 꼴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율법을 읽고 공부하고 해석하고 가르치는 전문가인데 왜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분별하지 못 하는 것일까요? 그 답은 우리가 늘 성경읽고 설교듣고 기도하면서도 삶의 문제에 답을 못 얻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3. 병든 의지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17절입니다.
(요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그 뜻을 행하려는 겸손하고도 전폭적인 의지입니다. 그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성경공부를 해도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의지가 있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전세계에 한국어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 제3세계 가리지않고 청소년, 젊은이들이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해 배웁니다. 도대체 왜일까요? BTS 노래를 따라 부르기 위해서입니다. BTS가 너무 좋으니까, 한국드라마가 너무 재미있으니까, 그 노래가사를 이해하고 드라마를 더 잘 이해하려고 스스로 찾아다니며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어릴 때 팝송가사를 노트에 적어가며 그 뜻을 이해하려고 영어공부를 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걸 억지로 배우라고 하면 배울 수 있겠습니까? 좋아하는 마음, 하고픈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좋고 하나님 말씀이 좋고 그 말씀을 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나님의 뜻을 압니다. 아기가 하는 말을 아빠는 잘 모릅니다. 엄마는 다 알아듣습니다. 으으응… 배고프다잖아, 뭐 해요? 우유 데워 와. 으으응… 기저기 갈아달라잖아. 으으응… 불편하다잖아, 뒤집어달래… 엄마는 어떻게 압니까? 사랑하면 압니다. 사랑해야 압니다.
4. 병든 마음
그들은 왜 하나님 뜻에 관심이 없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요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만 구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언행이 모두 참됩니다. 불의 곧 하나님의 뜻과 모순되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은 늘 하나님의 이름을 말할 뿐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로마제국 하에서  자신들의 부와 지위와 특권을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즉 자기 영광만 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도무지 모릅니다.
많은 부부가 이런 문제로 갈등을 겪습니다. 같이 살지만 자기의 필요만을 생각합니다. 남편은 자기 성공, 편안함, 즐거움만을 구합니다. 아내는 자기 행복, 만족, 즐거움만을 구합니다. 이런 부부 사이는 점점 불만과 갈등이 커져만 갑니다. 결국은 돈 때문에, 시댁과 처가때문에, 성격 때문에, 자녀 때문에 이런저런 문제로 폭발합니다. 상담을 하면 이런 문제 때문에 부부 사이가 나빠졌다고 합니다. 사실 그 문제는 기폭제일 뿐입니다. 부부 사이를 터뜨린 것은 그 밑에 오랫동안 쌓아온 자기애의 화약입니다. 자기 만족만을 구하는 마음이 그 무시무시한 화약입니다. 이 화약을 치워버리고 자신이 아닌 배우자의 만족과 행복을 구하는 방파제를 쌓기 전까지는 거센 세상의 풍파를 이겨낼 힘을 얻기 어렵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눈빛이 먼 산을 바라보는 듯한 배우자, 친구, 동료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자기 문제에 빠져있는 사람은 상대의 말을 듣고 그 마음을 이해할 능력이 없습니다. 진정한 듣는 능력, 이해하는 능력은 오로지 사랑에서 시작됩니다. 인간관계도 이런데 하물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5. 병든 시선
하나님 뜻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 영광을 구하지 않는 이는 바른 판단을 하지 못 합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요 7: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외모로 판단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자신들과 같이 힐렐학파나 샴마이학파에 속해서 배우지 않았기에 율법을 가르칠 자격과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출신지 나사렛이 훌륭한 선지자와 학자를 배출한 전통이 없는 변방이라는 것도 한 몫 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이 틀렸다고 결론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공정하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요 7: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요 7: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유대인들은 모세가 가르친 율법을 지키려고 난지 8일이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할례를 행했고 그 날이 안식일에도 괜찮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렇다면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을 따르기 위해 병자를 치유하는 것은 더더욱 가능한 일,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외모로 판단하는 종교지도자들은 이런 분별력을 이미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기에 자꾸만 엉꿍한 선택을 합니다. 그래서 문제가 풀리기는커녕 점점 더 꼬입니다. 자녀가 어떤 학교를 가고 어떤 잡을 갖느냐가 너무 중요합니다. 배우자가 어떤 조건, 외모를 가졌느냐가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 집이 얼마나 크고 차는 얼마나 좋은지가 너무 중요합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와 대접을 받느냐가 너무 중요합니다. 거기에 시선이 다 빼앗겨 하나님을 보는 시력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분의 방법을 선택하는 법을 모릅니다. 그 결과는 자신을 죽이고 가족을 괴롭히고 이웃에게 상처를 줍니다. 19절입니다.
(요 7: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6. 파인애플을 드려라
앞서 소개한 이야기를 마저 합니다. 그 선교사는 하나님께 괴로운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주님, 제 파인애플을 제가 먹으려는 것 뿐이었는데 일이 왜 이렇게 꼬인 겁니까?’ 그러자 주님이 그 마음에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게 어째서 네 파인애플이냐?’ ‘그럼 원주민들의 것입니까?’ ‘아니지.’ ‘누구 건가요?’ ‘나의 것이 아니냐? 나의 파인애플을 너는 왜 너의 것이라고 주장하냐?’ 그제서야 선교사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선교지로 돌아와 맹견을 치웠습니다. 파인애플이 다시 없어졌습니다. 선교사가 아무 소리를 하지 않자 원주민들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왜 파인애플을 따가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아, 그 파인애플은 이제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럼 누구 것인가요?’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나무였다고요?’ 그들이 돌아가 회의를 했습니다. ‘이봐, 우리가 하나님 파인애플을 훔치고 있었어. 그래서 네 아들이 아픈 거야.’ ‘그래서 너희 밭에 수확이 없었던 거라고.’ 그들은 따간 파인애플을 다 들고 와 선교사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 것인데 왜 진작 이야기해주지 않았어요? 이건 선교사님이 알아서 하세요. 우리는 못 먹습니다.’ 나무를 심은 지 7년 만이었습니다. 그는 원주민들을 초대해 파인애플을 나누어 먹으며 회개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제 것이라고 한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세요.’ 그 때부터 선교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어느 것도 자기 것이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가족도, 사역도, 비전도 모두 주님께 돌려드렸습니다. 원주민들이 하나둘 교회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꼬였던 사역이 하나둘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한 원주민이 선교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교사님, 당신이 변했어요. 크리스챤이 되신 것 같아요.’
우리 인생이 미로처럼 어려운 이유는 이것입니다. 삶이 자꾸만 꼬이고 힘든 이유, 성경을 읽고 교회를 다니는데도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파인애플을 제 것이라며 손에 쥐고 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이 없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도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의 영광이 중요하고 죽어도 자신의 뜻만 행하고자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이 도무지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니 인생은 미로 같습니다.
미로를 빠져나가는 길은 간단합니다. 파인애플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손에 쥐고 놓지 못 하던 자신의 뜻, 자신의 영광을 다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 삶이 간단해 집니다. 눈에 보이는 어지러운 것이 사라집니다. 보이지 않지만 명확한 하나님의 뜻으로 바른 판단을 합니다. 이것이 느린 것 같지만 가장 빠른 길입니다. 힘든 길 같지만 가장 복된 길입니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성령님으로 가능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쥐고 놓지 못 하는 파인애플은 무엇입니까? 주님께 모두 드리고 모든 인생의 문제에서 승리하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