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6 빛이 된 이들 / 요 8:12-20

20220206 빛이 된 이들 / 요 8:12-20

요 8:12-20/빛이 된 이들

220206 주일설교
1. 어둠에 갇힌 이들
간증집 ‘예수님치과’를 쓴 캘리포니아의 김범수 장로는 시간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매년 한 달 이상을 멕시코 티후아나 라메사 교도소를 방문하여 죄수들을 치료하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는 빛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 어둠 속에서 살았습니다. 주일이면 예배당 제일 끝자리에 앉아있다가 끝나기가 무섭게 골프장으로 달려가던 무늬만크리스천이었습니다. 교회는 다녔으나 그가 좇던 것은 헛된 부와 세상의 즐거움이었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알지 못 하던 어둠의 삶을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서야 청산하였습니다. 그와 함께 동역하는 호세 목사 역시 어둠의 사람이었습니다. 마약판매와 폭력으로 10년 이상을 교도소에 갇혔습니다. 교도소에서 복음을 듣고 회심한 그는 과거를 청산하고 출소 후 목사가 되어 자신과 함께 갇혀있던 동료죄수들에게 그에게 생명의 빛을 비추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임한 후 부패가 만연한 교도소를 크게 바꾸어놓은 교도소장 히메네스 역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는 예배 때마다 죄수들 앞에서 이렇게 간증합니다. “여러분은 갇힌 죄인이지만 우리는 갇히지 않은 죄인입니다. 우리 모두에겐 빛이 필요합니다.” 복음을 듣는 죄수도, 복음을 전하는 목사도, 그들을 지키는 교도소장도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는 의사도 모두 어둠 속에 살던 죄인이요, 빛이 필요하다는 고백으로 이 책은 시작합니다.
히메네스 교도소장의 고백은 티후아나의 교도소에만 해당되는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론에 보도되고 감옥에 갇힌 흉악한 이들이 죄인이라고 여기고 정직하게 일하고 세금 내며 모범적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 중 누구도 캄캄한 죄의 어둠에 갇히지 않은 이들이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그 누구도 빛이 필요치 않은 이들이 없습니다. 우리는 별다른 죄도 짓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어둠 속에 있단 말입니까? 또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빛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이 그 답을 주십니다.
2. 세상의 빛
초막절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시던 예수님은 간음한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돌로 치려던 바리새인들의 손아귀에서 건져내신 사건 이후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12절입니다.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아마도 이 말씀을 초막절 저녁 해질녁에 하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7일 동안 지키는 초막절 절기 저녁이면 성전 마당에는 거대한 4개의 등불을 밝히기 때문입니다. 저녁이 되기 전 제사장들은 성전 안 여인의 뜰에 세운 4개의 기둥에 기름을 채우고 불을 붙힙니다. 그러면 이 불이 성전마당을 환하게 밝힙니다. 성전이 가장 높은 언덕에 있기에 예루살렘 성 전체에 이 빛이 가 닿습니다. 이 7일 동안 저녁마다 백성들은 성전마당에 모여 밝은 불빛 아래 찬양을 하고 춤을 추며 즐거워합니다. 그들이 이 축제를 통해 기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조상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날 때 어둠을 환하게 밝혀서 그들을 인도해주었던 여호와의 불기둥입니다. 여호와는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과 동행하셨습니다.
(출 13: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여호와는 항상 빛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하셨습니다.
(출 10: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출 10:23) …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출 14:20)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쪽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에 가까이 못하였더라.
이스라엘의 생명은 여호와의 빛을 좇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 조상들을 빛으로 인도하여 생명을 주신 여호와를 기념하는 이 축제를 앞두고 예수님이 하신 선언입니다. 예수님 당신이야말로 어두운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빛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야 어둠에서 건짐을 받아 생명의 빛 속에서 살아갑니다.
3. 빛을 따르라
그럼 어둠 속에서 사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이 선언을 하신 시점을 주의깊게 보십시오. 직전에 간음한 여인을 구하셨습니다. 그 사건에서 죄의 어둠에 갇힌 이는 누구입니까? 첫째는 간음한 여인입니다. 그녀는 죄를 들킨 사람입니다. 그랬기에 사람들 앞에 끌려왔습니다. 둘째는 그녀에게 돌을 던지려던 이들입니다. 그들은 죄를 들키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랬기에 그녀를 돌로 치려했지만 어둠을 몰아내시는 빛이신 예수님의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에 차례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떠나갔습니다. 결국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둘 중 하나입니다. 죄를 들킨 이와 들키지 않은 이. 이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해당됩니다. 교도소장 히메네스가 말한 것처럼 라메사 교도소에는 갇힌 죄인과 갇히지 않은 죄인이 있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죄를 들킨 죄인과 들키지 않은 죄인이 있습니다. 결국 감옥에 갇히지 않은 이는 있고 들키지 않은 이는 있지만 죄의 어둠에 갇히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감옥에 갇힌 이들이 자유와 복지를 박탈당한 채 후회와 고통속에 살아가듯 죄의 어둠 속에 갇힌 우리는 온갖 대가를 지불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원치 않는데도 염려하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후회하고 괴로워하고 외로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다투고 미워하고 자책하고 우울하고 낙심하고 두려워합니다. 모두 어둠 속에 갇힌 증세입니다. 그런 우리가 어둠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입니까? 바로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에게 주님은 가서 다시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지만 마음 먹는다고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다면 애초에 왜 죄를 범하였을까요? 주님은 그녀가 죄를 범치 않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돌을 던지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돌아간 무리가 어떻게 죄의 짐과 가책을 벗고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요? 역시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모든 죄의 짐과 가책을 벗을 뿐 아니라 죄와 싸워 이기는 유일한 길도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어떤 어둠에 갇혀 있든 상관없이 빛이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뒤를 따르심으로 생명의 빛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4. 빛을 비추라
예수님을 따름으로 생명의 빛을 얻는 이들은 이전과 다른 존재가 됩니다. 그들을 가리켜 예수님은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입니다.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주님은 세상의 빛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임명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생명의 빛을 전하여 어두운 동네를 밝힙니다. 얼마나 놀라운 복이요, 영광이요,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는 돈을 못 벌어 우울한 것이 아닙니다. 성공을 못 해 슬픈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자신이 정말 없어서는 안 될 가치있는 존재임을 깨닫지 못 해서 기쁨이 없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갇힌 죄수일 뿐임을 깨닫는 이는 슬프고 외롭고 우울하고 낙심합니다.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이요, 생명을 나누어주는 빛임을 깨닫는 이는 기쁘고 행복하고 감사하고 감격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런 존재로 부르셨습니다. 임명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원하든 원치않든, 스스로 생각에 자격이 있든 없든 세상의 빛입니다. 교회가 여러분을 집사요, 권사로 임명함으로 여러분의 바람이 어떠하든 여러분이 집사요, 권사가 된 것처럼 주님이 여러분은 세상의 빛으로 임명하셨음으로 여러분은 세상의 빛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5. 빛을 비추는 이들
깊은 어둠에 갇힌 최석천이란 소년이 있었습니다. 알콜중독에 가족을 학대하는 아버지를 피해 어머니는 가출하고 아버지마저 교도소에 갇히면서 졸지에 한 살 어린 동생과 5살에 고아가 되어 거리에서 추위와 배고픔으로 떨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고아원에 들어갔다가 동생은 입양이 되었지만 다리에 장애가 있던 그는 13살이 되기까지 고아원을 나가지 못 했습니다. 담장 너머 부모 손을 잡고 가는 아이들만 보면 엄마와 동생을 그리워하고 아빠를 원망하며 하루 종일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 때 태평양 너머 유타주에는 빛을 발견하고 따라가던 짐 모리슨이란 가장이 살았습니다. 그는 아내와 자신이 낳은 삼남매와 한국에서 입양한 아들까지 사남매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 해 성탄절에 기도하기를, ‘주님, 저에게 생명을 주러오신 이 성탄절에 저도 주님께 무언가 드리고 싶습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가르쳐 주세요.’ 하였습니다. 주님이 그의 마음에 한 아이를 더 입양하기를 원하신다는 마음을 주었습니다. 그는 홀트아동복지회의 소식지를 넘기다가 까무짭짭한 피부의 소년의 얼굴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다리에 장애가 있으며 곧 14살이 되면 입양자격을 잃는다는 설명을 본 그는 하나님이 이 아이를 주셨다고 확신했습니다. 아내가 말리기를, 나이가 많아 적응이 어려울테니 어린아이로 하자고 했지만 그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절차가 오래 걸려 어느 새 아이가 14살이 넘어 입양이 불가하다는 연락을 받자 그는 청와대에 탄원서를 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마침내 1970년 고아소년 최석천은 태평양을 건너 짐 모리슨의 아들 스티브 모리슨이 되었습니다. 어둠의 갇힌 친아버지를 향한 원망으로 꽁꽁 얼어있던 소년의 마음은 빛을 가득한 양아버지의 사랑으로 서서이 녹아내렸습니다. 매일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아내와 아이들을 꼭 껴안고 입을 맞추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친자녀와 입양자녀를 조금도 차별없이 헌신적으로 사랑해주었습니다. 짐은 스티브에게 말하기를, 자신의 인생에 최고의 선택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을 만난 것이고 둘째는 아내를 만난 것이고 셋째는 스티브를 만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장래희망은 아버지 짐 모리슨처럼 자상한 아빠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양부모의 극진한 돌봄으로 잘 성장한 그는 미항공우주국 나사의 수석연구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를, 왜 하나님이 자신에게 고아의 고통을 겪게 하시고 또 양부모의 극진한 사랑을 겪게 하셨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고통받는 많은 고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는 아버지 짐 모리슨처럼 세 아이를 낳고 두 아이를 입양하여 다섯 남매를 양육하였습니다. 한 아이는 자신처럼 14살된 소년이었습니다. 입양을 기다리는 고아들을 돕기 위하여 한국입양홍보회를 설립하고 홀트아동보지회 이사가 되어 섬기고 있습니다. 그는 캄캄한 절망의 어둠에 갇힌 소년이었지만 빛을 만난 짐 모리슨을 통해 빛되신 예수님을 만났고 그 자신도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세상의 빛이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도 세상의 빛입니다. 우리의 빛이 이 세상 한 구석이라도 밝히기를 바랍니다. 이사야서입니다.
(사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빛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