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7 죽으면 죽으리라 / 에 4:13-16

20220227 죽으면 죽으리라 / 에 4:13-16

에 4:13-16/죽으면 죽으리라

220227 삼일절
1. 우크라이나의 비극
먼저 뉴스영상을 보시겠습니다. 현지시간 24일 지난 목요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수도 키예프를 비롯해 전국에 미사일이 날아들고 북, 동 그리고 남쪽 국경에서 일제히 러시아군이 밀려들었습니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침공 하루 만에 러시아군은 수도 근처까지 진입했습니다. 5월에 결혼을 약속했던 한 연인은 침공소식을 듣고 즉시 결혼식을 올려 부부가 된 후 함께 입대하였습니다. 해외에 있던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이 조국을 지키려고 귀국한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남부해안 지미니 섬의 국경수비대 13명은 러시아 함대의 투항요구를 거절하고 항전하다가 전원 전사하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하나님은 누구 편이실까요? 당연히도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키시고 우리나라를 일제식민지로부터 해방시키신 하나님은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편에 함께 계십니다. 우크라이나에 속히 승리와 평화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그 섬에 있던 군인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장면입니다. 103년 전 우리 선조들도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걸고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서서 무수히 피뿌렸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와 교단이 매년 지키는 103주년 삼일절기념주일입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해방된 나라인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스럽게 느낍니다. 한편 전 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세계 최강대국인 러시아와 중국을 위로, 미국과 일본을 아래로 둔 한국인으로서 우크라이나의 비극이 남일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해외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어떤 이는 미국시민권자로 이미 국적도 잃었는데 조국의 문제로 마음쓰고 염려하는 것은 좀 지나친 오지랍이거나 우스운 일 아닐까요?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민자인 우리가 조국의 일을 염려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한국에 가면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외면당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오늘 본문 에스더서를 읽어야 합니다.
2. 부림절과 에스더서
유대인들은 부림절에 회당에 모여 이 에스더서 전편을 읽습니다. 제비뽑다는 뜻의 부림절의 기원이 바로 에스더서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 조상들이 독립을 갈구하며 만세운동을 일으킨 삼일절과도 그 의미가 맞닿아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삼일절과 멀지 않는 3월 중순 즈음 지키는 이 절기는 두어 주 후인 17일입니다.
에스더서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기원전 5세기 경 가나안 지역을 포함한 중근동은 페르샤가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유다인 중 일부는 바벨론 제국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페르샤가 바벨론을 무너뜨리자 새제국 하의 삶에 적응하여 살았습니다. 고레스 황제의 칙령으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허락을 받았지만 적지않은 이들은 제국 곳곳에 남아 디아스포라 곧 이민자의 삶을 택했습니다. 그 이민자의 딸인 에스더는 페르샤 제국의 왕후가 되는 인생역전을 하였습니다. 한편 페르샤에 고위관리이자 권력자인 아말렉인 하만은 눈에 가시같던 정적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모르드개는 필사적으로 그 계획을 저지시키려 애쓰고 왕후가 된 조카 에스더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녀는 위험을 무릎 쓸 용기를 내지 못 하고 주저합니다. 그 때 모르드개와 에스더 사이의 대화가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3. 운명공동체
이 대화를 보면 이민자와 조국의 관계에 관한 중요한 교훈을 배웁니다. 그 첫째는 이민자의 삶이 조국의 운명과 분리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에 4: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에스더는 자신이 이룬 성취를 잃을까 두려웠습니다. 왕궁 누구도 모르는, 유대인이란 자신의 출신을 밝히는 것은 많은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게다가 황제로부터 부름을 먼저 받지 않은 자가 그 앞에 나갔다가는 친위대에게 즉시 목숨을 잃는 것이 왕궁의 법이었습니다. 이전 왕후가 왕실법도를 어겼다가 폐위되는 바람에 자신이 기회를 잡아 왕후가 되었기에 그녀는 이 위험천만한 시도를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그녀가 성공하여 페르샤의 왕궁에 들어갔다 하여 자기 민족 동포의 운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마라.”
이는 우리 한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미국시민권자가 될 수도 있고 이 사회에서 성공하여 주류에 편입할 수도 있다 하여도 우리의 삶이 조국과 민족의 운명과 분리될 수는 없습니다. 조국, 민족과 개인의 관계는 마치 안개꽃과 장미꽃과 같습니다. 우리 삶은 조국과 민족이란 안개꽃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장미꽃입니다. 장미꽃만으로는 무척 아쉽습니다. 안개꽃이 배경에 놓이면 장미꽃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훌륭한 부모님을 뒀다는 사실을 알면 그 자녀가 다르게 보이듯이 부강한 나라 출신임을 알면 사람도 다르게 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한국에서 난 부모님을 두게 하셨고 한글을 쓰게 하셨고 황색 피부와 검은 머리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인정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우리를 한인, 코리안 어메리칸이라고 봅니다. 조국의 부흥은 우리에게 큰 자부심을 줍니다. 민족의 시련은 우리 마음에 큰 고통을 줍니다. 심리적 영향 뿐 아니라 실제 삶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줍니다.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4. 이민자의 사명
둘째로 이민자에게도 조국의 안위와 부흥을 위한 사명이 있습니다. 14절의 모르드개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에 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는 왕궁에 들어갈 때 꿈에도 자신이 민족을 위한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갈 때 자신의 사명을 몰랐던 것과 같습니다. 그저 그녀는 자신의 성공으로 자기 인생과 가문이 성공할 기회를 잡았다는 정도는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중에 왕후가 된 조카에게 엄청난 사명이 부여되었을 가능성을 깨닫습니다. 그녀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없는 민족을 살릴 기회가 있었고 기회가 곧 사명임을 모르드개는 알았습니다.
기회가 곧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 앞에 열린 기회가 무엇인지 보십시오. 미국으로 건너올 기회가 열렸으니 여러분이 이 자리에 계신 겁니다. 이 미국에서 여러분이 감당할 사명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앞에 또 무슨 기회가 보입니까? 또 보이는 것이 곧 사명입니다. 남들은 관심이 없는데 나는 왜 자꾸 거리에 선 히스패닉 형제들이 보이고 신경이 쓰일까? 그 형제들을 섬기는 것이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히스패닉 형제들을 전도하다가 아예 히스패닉 부서가 생기지 않았습니까? 팬데믹으로 어려운데도 저지난 주에 행사를 하며 히스패닉 부서만 200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은혜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또 부르는 것이 곧 사명입니다. 나는 관심이 없는데 누가 자꾸 여기로, 저기로 부릅니다. 그 부르는 곳에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 창립 첫 주부터 오늘까지 50년을 한결같이 교회를 지킨 두 가정이 있습니다. 오안순 권사님 가정과 양호식 장로님 가정입니다. 양장로님네가 내일 텍사스주로 이주를 하셔서 지난 주에 가까운 교우들이 모여 송별파티를 했습니다. 양장로님이 어떻게 창립멤버가 되셨는지 간단한 간증을 하셨습니다. 27살에 이민 왔는데 지인들이 교회 가자고 해도 예수쟁이들 싫다고 번번이 거절하셨습니다. 한번은 친구가 소풍을 가자고 해서 실라컨딕트팍이란 곳에 따라갔더니 밥 먹기 전에 뭘 해야한다면서 교회창립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얼떨결에 뉴저지장로교회 창립멤버가 되어 50년을 교회를 지키고 건축위원장으로 팔팍예배당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증축하는 귀한 봉사도 하셨습니다. 구레네 시몬도 얼떨결에 불려나가 십자가를 졌다가 구세주를 만나고 초대교회의 기둥이 되지 않았습니까? 얼떨결이라도 여러분을 부르는 곳이 있다면 거기가 바로 사명입니다.
많은 이민자들이 얼떨결에 미국 오고 얼떨결에 교회 오고 얼떨결에 봉사와 선교를 합니다. 우리 앞에 열린 기회가 사명이고 보이는 것이 사명이고 부르는 것이 사명입니다. 우리는 이민자로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이국땅에서 감당할 사명이 분명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와 기술, 군사력, 문화, 음식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기면 중국인이냐고 묻고 일본인이냐고 묻고 아니라고 하면 어디냐고 묻던 것이 불과 일, 이십 년 전입니다. 지금은 코리안이라고 하면 다들 다르게 보고 부러워 하고 좋아합니다. 한국의 국력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우리는 한국의 얼굴입니다. 그 한국이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하고 훌륭한 나라요, 민족인지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민자들의 사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5. 목숨을 바치는 사랑
조국과 민족과 우리가 운명공동체이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어떻게 살 수밖에 없습니까? 이 사실을 깨달은 에스더가 가르쳐 줍니다. 15-16절입니다.
(에 4: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에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그녀는 동포들에게 간절한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금식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무릎 쓰고 왕에게 나가 민족을 구하기 위한 모험을 합니다. 그녀의 결단과 모험, 헌신으로 유대인들은 기적같이 구원받았고 그 일을 기념하기 위해 2,500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유대인들은 부림절을 3월마다 지킵니다. 103년 전 우리 선조들은 조국 없이 살 수 없으며 고통받는 민족을 외면할 수 없어서 국내 뿐 아니라 이민자들까지 100만 명이 넘는 이들이 삼일만세운동을 일으켜서 4만 여명이 옥에 갇히고 1,000여 명이 목숨을 잃는 희생을 치렀습니다. 그 덕분에 오늘 후손인 우리는 자유롭고 부강한 대한민국인으로, 세계 곳곳에서 부끄럽지 않은 이민자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 조국을 위해 피뿌린 우크라이나의 젊은이들의 희생도 헛되지 않을 줄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음하는 이들의 편에 계신 구원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우리 조국에 해방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크라이나 땅에도 구원과 해방을 주실 것을 믿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