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 6:4/은혜와 진리가 기르는 자녀
220501 어린이주일
1. 대를 잇는 상처와 아픔
고인이 된 이어령 박사의 딸 이민아 목사의 가슴 아픈 이야기는 그들의 간증집에 잘 나와 있습니다. 어린 시절 너무나 바쁜 아버지 이어령 박사의 뒷모습만 보고 자란 이민아 목사는 어떻게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심에 하기도 싫은 공부와 유학생활을 이를 악물고 감당했습니다. 자신이 겪은 애정결핍의 상처가 너무 커서 자녀에게는 그런 고통을 주지 않으리라 마음 먹고 온 힘을 다해 사랑으로 아들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사춘기의 방황하던 아들이 자신의 꾸지람을 듣고는 공허하고 차가운 표정으로 엄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때 마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마침내 주님의 은혜로 아들의 상처도, 이목사 자신의 상처도 그리고 사랑을 주는 법을 몰랐던 아버지 이어령 박사의 상처도 모두 치유받고 회복되었습니다만 그 때까지 모두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아프게 지냈는지 모른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세상살이가 다 힘들지만 그 중 제일 힘든 것이 부모되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상 모든 부모는 어렵습니다. 좋은 아빠 되기도, 좋은 엄마 되기도 어렵고 홀로 양육하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정말 두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 두려운 부모되기를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2. 상처와 깨진 마음
오늘은 우리 교단에서 지키는 어린이주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부모가 저지르기 가장 쉬운 잘못 한 가지를 지적합니다. 엡 6:4입니다.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오늘날의 표현으로 바꾸어 보면, 부모들아, 자녀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라가 됩겠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어린 자녀들이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대상이 바로 부모입니다. 사실 어린 시절엔 부모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사랑도 많이 받지만 반면 상처도 많이 받습니다. 골로새서도 비슷한 교훈을 줍니다.
(골로새서 3: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
다시 현대어로 해석해 보면, 부모들아, 자녀에게 상처를 주면 마음이 깨질 수 있다 가 되겠습니다. 마음은 꽃병과 같습니다. 잘못 때리면 금이 가고 더 세게 때리면 깨집니다. 깨진 꽃병엔 물도 담지 못 하고 꽃도 꽂지 못 하듯 깨진 마음은 사랑을 담고 행복을 꽂지 못 합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깨진 마음으로 살아가느라 성인이 되어서도 온전한 사랑도, 행복도 알지 못 하는 이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성인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는 대부분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이라고 봅니다. 어린 시절 겪은 육체적, 정서적, 언어적 학대, 애정결핍, 방임, 부모의 집착과 소유욕, 갈등, 이별, 재난 등은 성인이 되어서도 우울증, 두려움증, 신경증, 강박장애 등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건강하고 행복한 성인의 삶은 어린 시절의 상처와 깨진 마음을 치유하고 극복하지 않고서는 누리기 어렵습니다.
도대체 왜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상처를 줄까요? 도대체 왜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아이들은 상처를 받을까요? 이미 이런 상처로 깨진 우리의 마음, 우리 자녀들의 마음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3. 어리석은 양육
먼저 왜 행복해야 할 가정에서 사랑하는 부모로부터 자녀가 상처를 받는지 원인부터 생각해 봅니다. 본문이 그 답을 이렇게 알려줍니다.
(엡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 무엇으로 양육합니까? 자신의 욕심과 경험과 지혜로 양육합니다. 이것으로는 자녀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양육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부모가 자녀를 욕심으로 양육하는지요? 무슨 욕심입니까? 자신이 누리고픈 성공을 대신 누리게 함으로써 대리만족을 얻으려는 욕심입니다. 혹은 자녀를 성공적으로 양육함으로써, 대개는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것으로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고 희생을 보상받으려는 욕심입니다. 그래서 자녀의 적성이나 능력, 행복, 소명보다 아이비리그대학이나 높은 연봉의 직업을 목표로 자녀들을 다그치다가 상처를 주고 마음을 깨뜨리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또한 자신의 경험으로 자녀를 양육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양육에 관련된 경험이라고 해봐야 무엇이 전부입니까? 우리가 자라면서 본 부모님의 양육방식이 답니다. 그 부모님의 양육방식은 어디서 배운 것입니까? 또 그 부모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어디까지 갈까요? 자신을 건들면 죽여버리겠다는 가인과 라멕의 방식이 아닙니까? 그러니 학대받으며 자란 사람은 부모를 원망하면서도 자녀에게 똑같이 가혹한 부모가 됩니다. 방임당하며 자란 부모는 자녀도 방임합니다. 비난받으며 자란 부모는 자녀도 비난합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키웁니다. 왜입니까? 그것밖에는 양육의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잘 해주고 싶긴 한데 잘 하는 법을 모릅니다. 본 적도, 배운 적도, 경험한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지혜로 자녀를 양육합니다. 그 지혜는 어떻게 얻은 것입니까? 병든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꾀와 잔머리와 계략을 다 써가며 체득한 것입니다. 사실 지혜라 부르기도 민망한, 한 치 앞도 못 보는 얄팍한 수입니다. 마땅히 지혜라고 부르려면 십 년, 이십 년 더 나아가 평생에 걸쳐 마침내 유익이 되는, 멀리 내다보는 수여야 하는데 우리는 일 년 후는 고사하고 당장 오늘 내 손에 얻는 것이 없으면 못 기다리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런데 무슨 지혜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의 욕심과 경험과 지혜로 자녀를 양육하면 원치 않아도 자녀에게 결국 상처를 주고 마음을 깨뜨리고야 맙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우리 자신의 욕심과 경험과 지혜를 버리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권합니다.
4. 은혜의 교훈으로
그럼 주의 교훈과 훈계는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은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요한복음을 보십시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은혜와 진리로 양육해야 합니다. 은혜로 양육한다는 것은 우리의 가정이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덧칠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날 때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은 심판의 천사가 그냥 지나가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세상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여러분 가정의 현관에 발라야 합니다. 아빠와 엄마의 영혼에 보혈을 발라야 합니다. 자녀들의 영혼에 보혈을 발라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를 치유하고 깨진 마음을 고칩니다.
아빠가 된 것이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요, 엄마가 된 것이 은혜요, 자녀를 주신 것이 은혜요, 가족을 이룬 것이 은혜요, 전쟁과 재난과 기아와 범죄가 가득한 세상에 이토록 안전하고 복된 가정을 이룬 것이 은혜임을 고백케 하는 보혈이 우리 영혼에 묻어 있어야 우리는 상처와 아픔으로부터 치유와 자유를 받습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상처 주려고 작정해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고슴도치는 찌르려고 찌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다가가면 누구든 찔립니다. 우리 영혼은 죄와 악과 상처와 고통의 가시가 잔뜩 박혀 있어서 누구든 다가가면 찌르는 고슴도치와 같습니다. 원치 않는데 자녀들의 보드라운 영혼을 찌릅니다. 은혜의 보혈이 우리에게 박힌 가시를 다 뽑아내주셔야 비로소 찌르지 않고 자녀를 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의 보혈을 여러분 영혼과 가정에 발라 치유하고 회복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5. 진리의 훈계로
진리로 양육한다는 것은 옳고 그름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으로 자녀를 양육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양육은 목표와 기준이 있습니다. 목표와 기준이 없으면 양육이 아닙니다. 우리의 양육이 실패하는 이유는 목표와 기준이 없거나 잘못된 목표와 기준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어떤 목표와 기준을 주십니까?
(딤후 3: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구원의 지혜를 가진 하나님 자녀로 양육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이비리그 입학, 부유한 직업, 아메리칸드림이 목표가 아닙니다. 기준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옳고 그름을 어린 시절에 가르칠수록 더욱 효과가 큽니다. 어린 나무줄기를 곧은 기둥을 묶으면 처음부터 곧게 자랍니다. 하지만 일단 굽기 시작한 줄기는 뒤늦게 기둥에 묶어도 다시 곧게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세상의 기준이 아닌 진리의 기준으로 양육하시기를 축복합니다.
6. 참 믿음의 양육
간증집 ‘엄마, 울지 마’를 쓴 황경애 사모는 혹독한 고난 속에서 싱글맘으로 세 자녀를 양육한 고백을 합니다. 사기를 당해 남편 목사님은 집을 나가고 교회는 문을 닫고 살 길도 없고 홀로 키우는 세 자녀들이 하나같이 방황하고 속을 썩일 때 너무 고통스러워서 황사모는 밤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친정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딸에게 어머니는 매일 아침 하나님께 감사할 제목 천 가지를 찾으라고 하는 겁니다. 네가 건강하지, 딸도 있지, 아들도 있지, 하나님이 계시지, 소망도 있지… 얼마나 감사할 제목이 많으냐? 황사모는 어머니의 충고대로 감사하며 기도하며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믿음으로 순종하며 양육했더니 자녀들이 하나둘 밤마다 우는 엄마를 오히려 격려하더랍니다. 엄마, 더 이상 울지마. 내가 엄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게, 딸이 될게… 마침내 세 자녀가 모두 엄마의 기도대로 미국 명문대학에 전액장학금을 받고 진학하고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셋째딸도 하버드 4년 전액장학생이 되었고 졸업 후에는 빌게이츠재단의 밀레니엄 장학금 백 만불을 보장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하버드를 졸업하더니 난민촌에 가서 봉사활돌을 하다가 신학교를 가겠다고 하는 겁니다. ‘네가 대학원을 가기만 하면 백만 불 장학금이 나오는데 왜 신학을 해?’ ‘엄마가 하나님을 최고의 것을 드리라고 했잖아. 나는 내 인생의 최고의 때를 하나님께 드리고 싶어.’ 그리고 한국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더니 북한선교를 위해 공부하고 일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 분의 간증집이 화제간 된 것은 세 자녀가 모두 전액장학금으로 명문대에 진학했기 때문이지만 저는 세 자녀가 모두 상처와 아픔을 극복하고 참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라고 믿습니다. 사람 눈에 대단해 보이는 명문대는 하나님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참된 인생의 성공과도 별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참 믿음으로 사는 것은 진정한 성공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은혜의 보혈을 바르고 진리의 기둥을 세워 은혜와 진리가 여러분의 자녀를 양육하는 참 복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