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807 반석 위에 선 교회 / 마 16:13-28

20220807 반석 위에 선 교회 / 마 16:13-28

마 16:13-28/반석 위에 선 교회

220807 창립50주년
1. 교회의 도전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선교학을 전공하신 서정운 총장님은 새학기가 시작할 때면 항상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옛날 아름답지만 암초가 많은 어느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배가 자주 난파되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어느 어부가 쉬는 날이면 바닷가에 앉았다가 배가 난파되는 것을 보고 배를 몰고 가 사람들을 건져주었습니다. 목숨을 건진 이들이 늘어나면서 고맙다며 기부를 하자 어부는 그 돈으로 자그마한 구조센터를 지었습니다.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이들이 찾아와 본격적으로 구조센터는 더 넓은 해안을 관찰하며 구조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배가 매일 난파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저 무료하게 바다를 바라보는 날이 많았고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서 이 아름다운 해변에 이렇게 좋은 건물이 있으니 배가 난파되지 않을 때는 까페를 운영해 사람들이 와서 쉬게 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까페가 시작되자 아름다운 경치를 보러 사람들이 몰려왔고 까페운영에 바빠 구조활동은 뒷전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까페를 하자는 이들과 구조활동을 하자는 이들이 갈등이 생겨서 구조를 주장하는 이들은 나와서 새로운 구조센터를 지었습니다. 구조센터가 커지자 이렇게 경치좋은 곳의 건물을 놀리지 말고 별장을 만들면 수입이 생기니 그것으로 더욱 구조활동을 더 잘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결국 그 곳도 별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구조센터가 까페와 별장으로 바뀌는 일이 반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끝에 총장님은 덧붙이시기를, 교회는 항상 그 본질이 세상을 구원하는 공동체에서 세상을 즐기는 공동체로 변질될 위험을 안고 있으며 참교회는 언제나 그 위기를 극복하고 본질로 돌아가는 개혁을 통해 성장해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편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선진국 교회가 직면한 위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창립 50주년을 맞는 뉴저지장로교회가 다음 반 세기를 달려가기 위해 마음에 새겨야 할 교훈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가 뉴저지를 대표하는 교회 중 하나로 반 세기를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을 즐기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는 교회가 되어 다시 반 세기를 달려가기 위하여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듣습니다. 오늘 본문은 공생애 마지막 시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가이사랴 빌립보에 들러 제자들과 나누신 대화입니다.
2. 교회의 기초
첫째 우리 뉴저지장로교회가 다음 50년을 달려가려면 무엇보다 반석 위에 서야 합니다. 무슨 반석입니까? 본문 18절을 보면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은 성경에서 최초로 교회를 언급하십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반석)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 카톨릭교회에선 이 반석을 베드로란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부르고 그 후계자인 교황들이 천국의 열쇠를 가졌다고 믿었습니다. 신도가 천국을 들어갈 지 말 지를 교황이 결정할 권세가 있어서 중세엔 교황이 이 권세를 가지고 왕과 영주들도 출교시키는 방법으로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22-23절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다는 말에 베드로가 반대하고 나서자 엄청난 말씀으로 꾸짖습니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카톨릭교회의 주장대로라면 교회가 사탄 위에 서 있는 꼴입니다. 그러므로 인간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 반석이란 무엇일까요? 그리스어 페트로스는 바위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이름의 뜻을 가지고 일종의 언어유희를 하셨습니다. 그 반석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직전에 베드로가 한 신앙고백입니다. 신전이 가득 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을 누구라고 믿느냐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답합니다.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메시야, 구원자’란 이 신앙고백, 복음이 바로 교회의 기초 반석이란 뜻입니다. 교회는 이 신앙고백을 하는 성도들의 연합체입니다. 교회는 이 신앙고백을 전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이 신앙고백 위에 서서 2천 년을 달려왔습니다.
이 신앙고백 위에 서지 않은 채 교회라고 주장하는 모임이 많습니다. 다른 이에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단, 사이비의 교회도 많습니다. 목사의 카리스마나 일부 교인들의 권세 위에 선 교회도 많습니다. 돈 많은 이들의 후원 위에 세운 교회도 많습니다. 외로운 이민자들의 친목의 욕구 위에 세운 교회도 많습니다. 이런 것은 반석이 아닙니다. 이런 것 위에 세운 교회는 흔들리고 무너집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반석 위에 세운 집과 모래 위에 세운 집이 풍파를 만날 때 어떻게 되는지를 설명하셨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헛된 욕구 위에 세운 교회는 풍파에 무너지지만,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참된 신앙고백 곧 복음 위에 선 교회는 풍파를 만날 때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고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도 50년을 달려가 100주년을 맞이하고 주님 오실 때까지 하나님 나라 건설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이 참된 고백 위에 서야 합니다. 다른 권세와 욕구와 주장이 교회의 기초가 되게 하면 무너집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러분은 오늘 이 시간 무엇때문에 예배에 참석하셨습니까?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신앙고백으로 무릎 꿇고 그 분의 주 되심에 순종하여 모든 삶을 드리려는 종이 되려고 오셨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주가 되어 욕구와 권세와 주장을 관철시키고  이민생활의 외로움을 달래보려고 오셨습니까? 뉴저지장로교회 모든 성도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참된 신앙고백으로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는 종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교회의 능력
둘째 뉴저지장로교회가 다음 50년을 달려가려면 교회의 능력을 품어야 합니다. 그 능력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힘이 세고 돈이 많고 교인이 많아서 지역의 정치인, 유명인들이 다 찾아와서 고개 숙이는 것입니까? 중세교회는 그런 방식으로 큰 능력의 교회이긴 했습니다. 지금도 수만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는 그러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참된 능력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18절입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는 탄생부터 지금까지 아니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음부의 권세로부터 위협을 받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음부의 권세 즉 사탄이 어떻게 교회를 무너뜨리려 위협하는지가 나옵니다. 먼저는 교회의 존재를 없애버리려 박해를 가합니다. 유대인 공동체와 로마제국 정부는 교회의 존재를 성가시게 여기고 제거하려고 사도들을 가두고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박해에도 교회가 오히려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사탄은 더 위협적인 방식으로 공격합니다. 그것은 교회를 변질시켜 바리새인들처럼 위선적 공동체로 만드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전 재산을 교회에 드려 선교와 구제에 쓰고 존경을 얻는 것을 본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자신들의 헌신을 부풀려 자랑하여 자신들도 영광을 얻으려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작에 오늘 본문 마 16:6에서 이런 바리새인의 위선이 교회에 침투하는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마 16:6)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또한 사탄은 거짓된 가르침으로 교회를 분열시키려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이방인에게 율법을 지키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바리새파 기독교인들이 일어나 복음으로 충분하다는 사도 바울 일행과 분열을 일으킵니다.
이 모든 음부의 권세를 교회는 무엇으로 이겼습니까?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박해를 받을수록 사도들은 더욱 복음을 전파하였고 교회는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박해의 시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사도들이 위선자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꾸짖자 성령께서 그들을 심판하심으로 위선의 누룩이 퍼지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사도들은 혼란과 분열을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돌아보고 선포함으로 오직 구원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받는 은혜임을 온 세상에 천명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도 음부의 권세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이런 복음의 능력을 품어야 합니다. 모든 거짓과 분열과 탐욕은 오직 빛과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선포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교회가 어려울수록 더욱 복음으로 돌아가 복음을 믿고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으로 기도하여서 복음의 능력이 이기시도록 해야 합니다. 인간의 혈기와 정욕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탄의 권세 앞에 굴복하고 맙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무슨 능력으로 충만합니까? 혈기와 정욕이 아닌 복음과 믿음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4. 교회의 영광
마지막으로 우리 교회가 다음 50년을 달려가려면 교회의 영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교회의 영광이란 무엇입니까? 교회의 건물이 화려하고 목사는 박사학위를 몇 개씩 가졌고 교인들은 하나같이 고학력에 부유하고 사회 지도층이면 교회에 영광이 충만한 것일까요? 실제로 그런 영광을 자랑하는 교회도 본 적이 있습니다. 교회의 참된 영광은 당연히 그런 것이 아닙니다. 19절입니다.
(마 16: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천국의 열쇠야말로 교회의 참된 영광입니다. 무엇이 하나님 나라 문을 여는 천국의 열쇠입니까? 바로 복음전파입니다. 복음은 교회의 능력이자 동시에 영광입니다. 눈에 보이는 이 땅의 교회는 보잘 것 없는 건물에, 엉성한 조직에, 문제 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에서 화려한 빌딩에 견고한 조직에 더 세련된 사람들이 가득한 모임에 가려면 교회에 오면 안 됩니다. 애플 같은 회사에 입사하든지, 검사나 연방고위공무원이 되거나 백악관에 들어가든지, 학위와 세련된 지식으로 무장한 학계에 입문하든지 어떻게든 그런 공동체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잘 것 없는 허름한 상가 지하실에 자리잡은 교회라도 저 화려한 세계가 절대 갖지 못 한 영광이 있습니다. 바로 천국문을 여는 열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열어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도 가장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만드십니다. 이 열쇠는 세계 최강권력 백악관도, 세계 최강군대 미해군도, 세계 최고의 회사 애플도 갖지못한 절대반지입니다. 교회는 이 열쇠로 천국문을 열어 영생을 얻게 하도록 위임받은 영광스러운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열쇠를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진정한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기초도 복음이요, 교회의 능력도 복음이요, 교회의 영광도 복음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 복음을 믿고 순종하고 전파하는 교회는 다음 50년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영원히 이 땅에서 영광스러운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우리 뉴저지장로교회는 어디에 서 있고 무엇을 품고 무엇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칭찬받는 뉴저지장로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