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6 다급한 인생이 달려갈 곳 / 삼상 30:1-20

20221016 다급한 인생이 달려갈 곳 / 삼상 30:1-20

삼상 30:1-20/다급한 인생이 달려갈 곳

221016 주일설교
1. 크게 다급할 때
제가 아는 어느 성도님이 아내와 세 아이와 함께 인도네시아 여행을 갔는데 은행에 잠깐 환전하러 들어간 사이에 가족을 태운 택시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경찰서를 2주나 드나들면서 몸값을 요구하는 납치범들을 잡으려고 발버둥을 쳤는데, 경찰이 하는 말이 인도네시아엔 워낙 작은 섬이 많아서 납치범들이 섬으로 들어가 버리면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기가막혔지만 아무튼 몸값을 만들어 오려고 귀국하는데 미국 공항에서 FBI가 자신을 체포하는 것입니다. 알고봤더니 동업자가 사업체를 싹 다 팔아버리고 이 성도 이름으로 온갖 곳에서 큰돈까지 빌린 채 도망쳐 버린 것입니다. 살던 집까지 다 날리고 사기죄로 재판을 받는데 직원들까지 임금체불했다며 고소를 하고 매일 사채업자들이 와서 돈 갚으라며 두들겨 패고 죽인다고 위협하여 여기저기 도망다니며 사는데 잘 나갈 때 간이라도 빼줄 것 같던 친구도, 동업자들도 다 모른 척 해서 하루하루 노숙하며 살아갔습니다. 아침에 도로가에 서 쌩쌩 달리는 차를 보면 ‘저기 뛰어들면 이 모든 고통이 끝나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여러분이 이런 일을 당하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성도가 겪은 일 중 한 가지만 당해도 많은 이들이 극복할 용기를 잃어 버리곤 하지 않습니까?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사람이 본능적으로 택하는 반응을 방어기제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몇 가지 방어기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도피입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현실을 부정하거나, 쾌락으로 도피하여 잊어버리려 하거나, 물리적으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거나 심지어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에서 도피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원망입니다. 이 상황의 원인을 사람이나 세상이나 심지어 하나님께 돌리고 탓과 비난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늘 입에 욕을 달고 삽니다. 욕은 저주이자 비난입니다. 셋째는 자책입니다. 원망이 타인을 향한 공격이라면 자책은 자신을 향한 공격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 탓이라고 여기고 자신을 비하하거나 학대합니다. 자기를 괴롭히고 무기력한 늪에 밀어넣곤 합니다. 이런 반응은 모두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킵니다.
2. 어떻게 반응하는가
앞서 소개한 성도는 어떤 반응을 택했을까요? 오늘 본문을 보십시다. 이 성도님의 이름을 소개합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이 성도의 이야기는 오늘 본문의 주인공 다윗이 겪은 일을 현대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그는 지금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의 추격을 피해 블레셋의 영토 시글락에서 일종의 정치적 망명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늘 긴장의 연속입니다. 언제 사울의 추격대가 자신을 죽이러 달려올지 모릅니다. 그를 받아준 블레셋도 언제 돌변할 지 모릅니다. 다윗이 한창 주가를 높이던 시절에 백성들이 외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의 그 만만은 죽은 블레셋의 병사를 말하였습니다. 이미 현실이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것같은 불안하기 짝이 없는 나날인데 거기에 더해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그를 덮칩니다. 다윗과 부하들이 블레셋의 전투를 도우러 나갔다가 사흘길을 걸어 거주지 시글락으로 돌아왔는데 그들이 마을을 비운 사이 남쪽 광야에서 약탈을 하며 살아가는 아말렉족이 쳐들어와 불을 지르고 여인들과 아이들을 다 노예로 팔려고 잡아간 것이었습니다. 이대로도 기가막힌데 이번에는 따르던 부하들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돌로 치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다 기가막히고 답답하고 다급하였을까요? 그는 집과 재산과 가족을 다 잃어버리고 하나 남은 몸뚱아리마저 돌에 맞아 죽게 생겼습니다. 다윗은 이 다급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였습니까? 도피를 택했습니까? 원망이나 자책을 택했습니까? 6절은 다윗은 반응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삼상 30:6)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은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어 용기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이에게라도 용기를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는 어떤 고난도 이기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용기를 얻으면 절망을 이기지 못 할 사람이 없습니다.
3. 하나님을 힘입으라
그럼 다윗이 ‘하나님을 힘입었다’는 표현은 무슨 뜻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했다는 의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수많은 약속을 주십니다. 이 약속을 들어보십시오.
(사 43: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 약속을 신뢰하는 이는 하늘로부터 오는 용기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는 이는 말할수없이 큰 유익을 얻습니다. 큰 고난을 만나면 성경 읽고 기도할 힘도 없습니다. 그럴 때 마음에 묵상하고 암송한 말씀이 있으면 자동으로 그 말씀이 떠올라 용기를 줍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신뢰하고 고난을 이길 넉넉한 용기를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힘입었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했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생사의 고비를 넘어왔습니다. 어린 시절 양떼를 공격하는 곰과 사자를 물맷돌로 물리칠 때부터 역시 골리앗을 물리칠 때, 블레셋과의 수없는 전투 그리고 사울왕의 추격대를 피해 광야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을 때 그 때마다 죽을수밖에 없는 고비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겨왔습니다. 그런 구원받은 경험에서 나온 신앙고백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찌라도 내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시입니다. 그 구원의 기억을 떠올림으로써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다시 신뢰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힘입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사야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사 12: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린다 즉 구원하신 기억을 다시 떠올려 기쁨으로 찬양하라는 의미입니다. 오늘 우리도 지나온 세월 우리를 지켜오신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우리를 온갖 고난에서 건지시고 여기까지 인도하신 그 하나님, 그 분이 나를 망하게 하시려고 여기까지 인도하셨겠나? 이 신뢰야말로 지금 닥친 고난도 거뜬히 이기게 하시리라는 신뢰와 용기를 회복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늘 새롭게 떠올려 묵상할 때, 찬양할 때, 예배할 때 감사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이런 구원의 기억이 날마다 여러분에게 새로운 용기를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힘입었다는 표현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제사장에서 에봇을 가져오게 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삼상 30:8)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고 이것이 그가 용기를 내어 추격을 시작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말씀묵상과 더불어 기도는 우리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 활짝 열리도록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용기를 부어주고 싶으셔도 우리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비오는데 물저장고의 뚜껑을 닫아놓은 것과 같습니다. 활짝 열어놓아야 비가 저장고에 고이듯이 우리도 마음을 열어야 용기가 쏟아져 들어옵니다.
목사님, 우리도 기도하면 다윗처럼 응답을 받습니까? 저는 기도해도 ‘쫓아가라, 마라’하는 식의 답이 들리지 않던데요? 하나님이 음성듣는 법에 대해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의 답은 여러 경로를 통해 옵니다. 분명한 것은 그 응답이 올 때 우리에게 확신과 함께 온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확신이 우리 마음에 쏟아져 들어올 때까지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간절하면서도 겸손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여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용기가 여러분 마음에 쏟아져 들어오도록 기도를 쉬지 않으시기를 축복합니다.
4. 순종으로 달려가라
말씀으로 용기를 얻고 기도로 응답의 확신을 얻었다면 다음은 무엇이 필요할까요? 앉아있지 말고 일어나서 전진하는 순종입니다. 다윗은 육백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전속력으로 아말렉족을 추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빨리 달렸던지 2백 명은 지쳐서 브솔시내를 건너지 못 할 지경이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아무리 지치더라도 아내와 아이들을 찾으러 가는데 빠진다고 하시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이 백명은 지쳐서 시내를 못 건넜다고 했고 그만큼 다윗의 부대는 전력으로 달렸습니다.
그건 좋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은 아말렉족이 어느 길로 도망갔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단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추격에 나섰습니다. 그러자 예기치 못 한 일이 생겼습니다. 들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종을 하나 만난 것입니다. 그에게 물과 음식을 주었더니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아말렉족에게서 버림받은 애굽종이며 자신이 그들이 도망친 길을 알려주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부터 ‘적을 따라잡고 잃은 모든 것을 다시 찾으리라’는 약속은 받았지만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른 채 길을 나섰습니다. 마치 ‘갈대아 우르를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약속만 받은 채 들어갈 땅이 어딘지도 모른 채 길을 나선 아브라함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순종하여 길을 나서자 그 길을 알려줄 이를 우연처럼 사실은 필연으로 만났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면 예비한 길을 열어보여 주시는 줄 믿으시기 축복합니다.
다윗 일행이 따라잡더라도 만약 아말렉족이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렸다면 달리느라 지친 다윗 일행은 큰 희생없이는 도저히 그들을 이기지 못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그들은 술에 취해 전투불능상태였습니다. 싸울 것도 없이 손쉽게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우리가 기대하지 못 한 방식으로 우리를 도우심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그렇게 아말렉을 물리치고 나니 다윗 일행은 무엇을 손에 넣었습니까? 빼앗긴 가족을 모두 되찾았습니다. 빼앗긴 재산 즉 양떼와 소떼 등 가축을 모두 되찾았습니다. 거기에 더해 아말렉족이 남부 일대를 휩쓸며 약탈한 많은 재물까지 모조리 빼앗았습니다. 즉 다윗이 잃은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기대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축복합니다.
다윗은 감당하기 힘든 고난을 만나 절망에 빠져 도피하거나 원망하거나 자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었고 일어나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다윗이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칭찬을 받은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고난을 만날 때 어떻게 반응합니까? 신실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영원히 변치않는 하나님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을 힘입어 어떤 고난도 거뜬히 극복하는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