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5 더 큰 일을 하리라 / 요 14:12-17

20230205 더 큰 일을 하리라 / 요 14:12-17

요 14:12-17/더 큰 일을 하리라

230205 주일설교
1. 더 큰 일을 하리라
작년 10월 피겨여왕 김연아의 결혼식에서 시아버지 고경수 목사의 축사가 화제라 하여 들어보았습니다. 한 대목에서 웃음이 나오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얼마 전부터 사람들이 저를 우림이 아빠가 아닌 연아 시아버지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여왕님을 며느리로 맞이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어려웠습니다.” 이 목사님은 며느리에게 물 좀 떠오라고 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숱한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메달을 따고 여자싱글피겨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지금도 각종 단체의 홍보대사와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는 세계적 영웅이 아닙니까? 아무리 시부모들이라 해도 그녀에게 허드렛일을 시키기가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왜입니까? 큰 일을 이룬 그녀를 존중하는 마음 때문 아닐까요? 큰 일을 하는 이들 예를 들어 정부의 고위직, 기업의 고위임원, 조직의 지도자들을 대할 때 우리는 아무래도 존중하고 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 큰 일에는 더 큰 책임과 희생과 수고와 열매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도 더 큰 일을 하는 가치있는 사람이 되고자 바랍니다. 젊은 시절에 내가 좀 더 잘 해서 이런저런 큰 일을 했었더라면 아쉬워하고, 자녀들에게 더 큰 꿈을 품으라고 권하는 것도 같은 이유 아닙니까? 늦지 않았습니다. 여기 그 누구보다 더 큰 일을 하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당신의 승천을 예고하신 예수님의 약속으로 시작합니다. 12절입니다.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이 없는 세상에서 제자들이 작은 자로 고난과 시련을 겪을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뿐 아니라 더 큰 일까지 한다는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이 하신 것보다 더 큰 일을 합니까? 이 약속을 모른 채 사는 교인들이 대부분이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고치고 살리시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그들의 죄를 깨끗이 씻으셨습니다. 제자된 우리도 이 일은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바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함으로써입니다. 복음이야말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모든 선한 일이 재현하는 능력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고치고 살리고 죄를 씻어 영생에 이르게 합니다. 이 일을 우리도 할 수 있는데 예수님보다 더 많은 이에게, 더 넓은 곳으로 나가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온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당신의 모든 가르침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보다 더 큰 일입니다.
이 세상에 큰 일이 많지만 가장 큰 일은 생명을 살리는 이 복음전파입니다. 돈을 아무리 벌고 아무리 큰 발명품을 만들고 아무리 큰 사업을 해도 그것이 사람에게 유익하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영원히 멸망할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더 유익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복음전파가 가장 큰 일인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런 막중한 사명,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을 위임받았습니다.
요즘 말로 가슴이 웅장해지지 않습니까? 한편으로는 막중한 부담감도 생깁니다. 나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큰 일을 하나? 막막하고 답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그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2. 기도로 하리라
우리는 어떻게 이 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없는 능력을 더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방법은 바로 기도입니다. 13-14절입니다.
(요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이 약속은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행하는 비밀이 여기 기도에 있습니다. 세상에서 큰 일을 하려면 재능이나 학력이나 가문이나 뛰어난 외모나 엄청난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자라도 예수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바로 기도를 드림으로써입니다. 기도하는데 무슨 재능이나 학력이나 자질이 필요합니까? 기도는 물이나 공기처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복이요, 아무도 막거나 금지할 수 없는 은총입니다. 감옥에 가두어도, 총으로 위협하여도, 심지어 입을 틀어막아도 기도드리는 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기도하면 구하는대로 다 행하신다니 이보다 더 큰 능력이 어디 있습니까? 정말 놀라운 능력입니다.
그렇지만 기도해도 아이비리그 안 되던데요? 기도해도 병이 안 낫던데요? 왜 그런 걸까요? 오해한 것입니다. 다시 보십시오. 두 번이나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단지 기도 끝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란 문구를 덧붙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맡기신 사명을 위해 예수님의 뜻대로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먼저 사명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비유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중요한 고객사와의 거래를 성사시키려고 사장이 과장을 보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김과장, 이번 거래가 우리 회사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 가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계약을 따내고 오게. 내가 뭐든지 다 지원해 줌세.” “정말입니까? 뭐든지 지원해 주신다고요?” ‘그럼, 염려말게나.” “사장님, 그럼 먼저 LA 호텔을 5성급 팬트하우스로 바꿔주세요. 비행기는 퍼스트 클래스로 바꿔주시고요. 렌트카는 벤츠로 바꾸고 식사는 미슐랭 별 다섯 개 짜리 식당에서만 하겠습니다. 패블비치 최고급 골프장 회원권도 끊어주세요. 양복도 크리스챤 디올로 네다섯 벌 맞춰야 겠어요. 구두는 최고급 가르디망디로 사주세요.” “아니, 그게 왜 다 필요한가?” “뭐든지 해주신다면서요?” “거래를 성사시키는데 필요한 것이라면 말일세. 명품 사고 골프 여행하는데 필요한 게 아니라…”
주님의 약속은 주님이 명하신 세계선교의 사명을 이루는데 필요한 간구라면 무엇이든 들으시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더 편하고 배부르게 사는데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오해하여서 사람들은 기도를 소원성취의 마술방망이처럼 오해합니다. 지난 주간에 미국의 어느 유명스타목사의 설교를 잠깐 들었습니다. 내용이 이러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비전을 주십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은 언제까지나 가난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언제까지나 작은 집에서 살 것이라 생각합니까? 언제까지나 부자가 되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왜 하나님을 믿지 못 하십니까?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런 목사가 인기를 얻고 그 메시지에 열광하는 것이 과연 기독교일까요? 맘몬을 섬기는 우상숭배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사명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우리가 태어나보니 어떤 이는 더 잘 생기고 머리가 좋고 신체가 건강한 것처럼 은혜입니다. 그 은혜는 감사하고 누리고 나누는 것이지, 우리가 구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생명을 살리는 복음전파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할 때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들으시겠다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주님의 뜻대로 기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비유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세계최고의 명문 하버드대학이라도 아인슈타인의 추천서를 받은 학생이라면 당연히 입학시키겠지요. 하지만 그 추천서를 받은 학생에게 다른 학생이 돈 주고 사서 들고 왔다고 합시다. 입학하지 못 합니다. 왜입니까? 추천서를 들고 왔지만 그는 아인슈타인이 추천할 만한 재능을 가진 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의 추천서는 주문이나 부적이 아닙니다. 추천서 종이에 마술적 힘이나 권위가 있는 게 아니라 그 학생의 재능을 인정한 아인슈타인의 존재가 권위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아인슈타인도 자신의 추천서를 사서 입학하려 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기도도 그러합니다.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을 인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응답하지는 않으십니다. 예수님 이름도 부적이나 주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대로 믿고 행하고 구할 때 응답하십니다. 예수님의 뜻은 하나님을 높여 영광을 돌리고 사람을 사랑하고 살리고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뜻을 좇는 기도에 능력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실 수 없습니다. 이런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한일서입니다.
(요일 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이런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는 제자들은 그 자신이 한없이 연약하지만 한없이 크신 일, 주님이 맡기신 일, 주님이 하신 것보다 더 큰 일을 감당합니다. 이런 기도의 능력을 의지하시길 축복합니다.
3. 성령으로 하리라 
주님은 우리가 더 큰 일을 하도록 또 다른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보내주심입니다.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이는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이 얼마나 큰 약속이며 위로인지 모릅니다. 성령님을 예수님은 보혜사라고 부르셨는데 그리스어 파라클레토스는 변호사, 조력자, 위로자란 뜻입니다. 변호사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누구 도움을 받습니까? 변호사지요? 그는 우리에게 없는 전문적 지식으로 법정에서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고 입장을 대변합니다. 사실 변호사의 도움을 받기란 얼마나 비싸고 어렵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 돈은 전혀 받지 않고 언제든 연락해서 물어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그 누구보다 뛰어난 최고의 변호사를 붙여 주십니다.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인생의 고난과 위기를 만날 때 왜 이토록 뛰어난 변호사를 부르지 않습니까?
조력자란 곁에서 돕는 분이란 뜻입니다. 여러분이 세금보고할 때는 누구의 도움을 받습니까? 아플 때는 누구에게 찾아가 도움을 요청합니까? 강도의 위협을 당할 때는 누구의 도움을 요청합니까? 노후를 대비하려고 누구의 도움을 찾습니까? 여러분이 도움을 청하는 세무사, 의사, 경찰, 보험설계사 모두 여러분을 곁에서 돕는 조력자입니다. 이런 조력자보다 더욱 여러분을 잘 알고 사랑하고 24시간 졸거나 자지도 않고 여러분을 돕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얼마나 고마운 조력자입니까?
위로자란 말그대로 여러분의 아픔과 상처와 슬픔을 다 아시고 위로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어느 방송에서 상담전문가가 하는 말이, 큰 슬픔을 당한 이에게는 어떤 말도 위로가 잘 안 되니 그저 곁에 있거나 꼭 안아주는 것이 더 낫다고 하더군요. 최근 거의 매주 장례를 치릅니다. 정말 그 말이 공감이 갑니다. 무슨 말로도 위로가 안 됩니다. 죽으면 끝인데 무슨 위로가 있습니까? ‘산사람은 살아야지’, 그 말이 더 잔인하게 들리더라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들이 말합니다. 아무리 연세가 든 부모님이라도 ‘호상이네’ 하는 말도 위로가 안 되더랍니다. ‘아이를 하나 잃었지만 두 아이가 있잖아, 남은 아이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야지’, 정말 원망스럽더라는 것입니다. 어디서도 위로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욱더 실감합니다. 장례설교를 할 때마다 부활의 소망을 빼면 우리에겐 그 어디서도 위로를 받을 때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진정으로 위로하십니다.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아시고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부활의 소망을 주시는 성령님처럼 위로하시는 분이 없습니다.
이런 변호사, 조력자, 위로자 성령님을 에수님은 구하여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영원히 함께 있게 하십니다. 그 분과 영원히 거하기에 이 땅에서 우리는 작은 자라도 두렵지 않고 예수님이 맡기신 더 큰 일도 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요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그 분은 영이시기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든, 어디에 살든, 동시에 이쪽 끝과 저쪽 끝에서 떨어져 있든 상관없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며 하신 일보다 더 큰 일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얼마든지 도우십니다.
그 분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란 곧 사물, 상황, 상태의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가리킵니다. 지록위마 중국고사성어에 노루를 가리켜 말이라고 우긴다는 뜻입니다. 노루를 노루라고 하는 이가 있고 말이라고 우기는 이가 있습니다. 노루는 진리이고 말은 거짓입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로마정부는 반역자라고 생각했고 종교지도자들은 혁명가라고 생각했고 대중들은 정치군사적 왕이길 바랐고 제자들도 그러했습니다. 모두 진리를 알지 못 했습니다. 마침내 제자들은 성령세례를 받은 후 예수님이 온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이자 하나님의 아들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실재를 보았습니다.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성령님이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 삶에 진리를 드러내십니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 같고 세상은 목적없이 우연히 운과 불행이 반복되는 것 같고 성도는 억울하게 고난당하는 것 같지만 성령님은 안개를 지우는 햇살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세상과 역사는 창조주가 다스리시고 세상은 구원주의 뜻대로 구속되고 있으며 성도는 의의 고난을 이기고 마침내 승리할 것입니다. 이 성령님은 오직 그 분을 모시고 믿고 순종하는 이들과 동행하십니다. 다시 17절입니다.
(요 14:17)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할렐루야, 세상은 알지도, 모시지도 못 하는 성령님이 여러분 속에 계십니다. 진리의 영이시요, 변호사요, 조력자요, 위로자이신 성령님이 영원히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주 예수님이 맡기신 사명, 주님이 하신 것보다 더 큰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복이며, 능력입니까? 이 성령님을 모시고 더 큰 일을 행하시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시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