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5:9-17/피해자로 살지 않기
230319 주일설교
1. 피해자로 살지 않기
연진아, 설교 시작했어, 잠에서 깨야지… 요즘 세계적인 인기를 끄는 한국드라마 ‘더 글로리’가 화제입니다. 무서운 학교폭력으로 삶이 망가진 한 여인이 가해자들을 철저히 응징한다는 복수이야기입니다. 시청자들은 피해자에게 감정이입하면서 현실에서도 이런 사이다같은 정의실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드라마 말미 복수에 성공한 주인공은 건물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 장면은 복수에 성공했음에도 그녀의 지옥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복수심은 복수성공여부와 상관없이 지옥을 살게 만듭니다.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인 이지선 씨는 23살에 음주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 40번이 넘는 수술을 지금도 계속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사고 후 23년이 지난 올 해 46세가 되어 모교인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을 ‘사고와 잘 헤어진 사람’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사고 2년 후 남은 평생을 음주운전가해자의 피해자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원망하고 괴로워하며 살기 싫었습니다. 그 비극이 자신을 더 이상 괴롭히도록 못하도록 음주운전자를 용서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녀는 피해자가 아닌 하나님의 딸 이지선으로 살기를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녀는 과거와 잘 헤어졌고 건강한 모습으로, 남들의 눈에는 여전히 아프지만, 살았고 밝은 모습으로 모교에 교수로 돌아왔습니다.
2. 사랑으로 치유하기
그녀로 하여금 사고와 잘 헤어져 피해자가 아닌 승리자로 살도록 만들어준 힘이 무엇일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15: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랑만이 우리 삶을 모든 과거의 상처, 현재의 비극,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구원해 줍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만큼 많은 것을 해결해 주는 것도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런 사랑을 할 힘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본성은 사랑보다는 미움, 감사보다는 불평, 축복보다는 비방을 하는데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서로 사랑하고 미운 원수와 아픈 과거까지 사랑합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요 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사랑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 사이의 사랑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누린 아들 예수님은 배운 대로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을 보고 배워서 아들 예수님 안에 거합니다. 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들은 또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길입니다. 그 계명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그 사랑을 누립니다. 그 사랑의 힘은 얼마나 큰 지 제자들에게 스스로의 힘으로는 꿈도꿀수없는 기적을 가능케 합니다. 그 사랑은 도대체 얼마나 큰 것입니까?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제자들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받은 줄 믿습니다. 이 놀라운 사랑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할 힘을 얻습니다. 순종하여 서로 사랑할 때 주님의 더 큰 사랑을 받습니다. 이 큰 사랑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시길 축복합니다.
3. 충만한 기쁨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님은 넘치는 복을 부어주십니다. 첫째는 넘치는 기쁨입니다.
(요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인생에서 진정한 기쁨을 주는 것을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대가없는 순수한 참 사랑만큼 순수하고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이 사랑은 보답여부와 상관없이 사랑함 그 자체로 기쁨을 줍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죄인인 인간을 영원히 사랑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체가 사랑이시기에 죄인을 긍휼히 여기실 때, 죄인을 사랑하실 때 당신은 큰 기쁨을 누리십니다. 그래서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천국에서는 잔치가 벌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죄인이 회개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큰 슬픔과 고통을 느끼십니다. 그 슬픔은 그 죄인이 사랑에 보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회개하지 않음으로 멸망을 피하지 못 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요, 고통입니다. 사랑은 생명의 가장 큰 동력이요, 생명의 목적이며, 생명의 징후입니다. 우리는 더 사랑할수록 더 생명을 충만히 누립니다. 더 사랑할수록 더 하나님을 닮습니다. 반면 사랑없는 생명은 그러므로 사실상 죽은 것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을 떠난 이는 그래서 영적으로 죽었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모르는 이는 영적으로 죽은 이입니다.
아무리 작은 사랑도 큰 기쁨을 줍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닮은 참사랑을 한다면 얼마나 큰 기쁨을 누릴지요! 여러분 모두 이런 사랑으로 충만한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4. 친밀한 관계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시는 두 번째 복은 친밀한 관계입니다.
(요 15: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예수님의 명령대로 서로 사랑하는 이는 주님과 친구가 됩니다. 더 이상 종이 아닙니다. 종은 그저 복종할 뿐입니다. 주인은 그저 명령할 뿐입니다. 하지만 친구에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동의를 구하고 도움을 부탁합니다. 주님은 서로 사랑하는 제자들을 친구로 대하십니다. 그들은 사랑을 통해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을 닮아가고 주님을 이해합니다. 그런 이는 종처럼 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닮은 이들을 이렇게 특별하게 대하십니다. 모세를 어떻게 대하셨나 보십시오.
(출 33: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렇게 친밀한 친구처럼 대하셨다는 출 33장 이전에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32장에서 모세가 시내산에 율법을 받으러 올라가 있는 동안 산 밑에서 백성이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어 우상숭배를 합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그들을 멸망시키고 노아와 아브라함을 새로운 시조로 새운 것처럼 모세를 시조로 새로운 민족을 만들겠다고 하시자 모세는 두 번이나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기를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고 대신 그들의 죄를 사하여달라고 합니다. 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킨 후에 33장으로 넘어옵니다. 모세가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며 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간구하였을 때 그는 생명을 실제로 내어주신 그리스도를 닮은 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친구처럼 대하셨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주님을 닮고 주님과 친구가 되어 친밀한 교제를 누립니다.
백악관 구경을 가려고 입구에서 서류작업을 하고 기다리고 인터뷰를 하는데 대통령이 나와서 ‘미스터 김, 그것 필요없어요. 바로 들어와요.’하고 ‘내 친구야.’ 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 구원주 그리스도께서 친구로 대해주신다면 얼마나 큰 복입니까? 서로 사랑하는 제자되어 주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5. 응답받는 기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세 번째 복은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요 15:16) …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주님처럼 사랑하는 이는 당연히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의 첫째가 사랑입니다. 그런 열매는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런 열매를 맺는 이가 드리는 기도는 무엇이든지 기쁘게 응답하십니다. 비지니스를 하는 이라면 회사에 큰 매출을 올려주는 직원의 요청을 거절할 이유가 있습니까? 요청보다 더 많이 들어주지 않겠습니까? 부모는 형제간 우애있고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 일에 성실한 자녀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여러분의 모든 기도가 응답되길 축복합니다.
6. 자랑할 것 없는 사랑
세상에는 이런 사랑이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은 특별한 경험을 합니다. 목숨까지 내어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며 충만한 기쁨과 친밀한 관계, 응답받는 기도를 하는 이들은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면서 이를 모르는 세상을 멸시하고 그 관계 속에 머물고자 하는 욕망을 느낍니다. 변화산에서 이와 비슷한 황홀경을 경험한 제자들이 한 말입니다.
(눅 9:33) …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
추한 세상에 내려가지 말고 우리끼리 여기서 천국을 누리자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태도를 경계하십니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너희가 아닌 내가 너희를 택하였다, 곧 너희가 하는 사랑도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내가 준 것이요, 너희가 누리는 기쁨과 친밀함과 응답은 너희가 더 큰 사랑과 섬김의 열매를 맺기 위함이지, 너희가 우쭐하라고 준 자랑거리가 아니다’는 뜻입니다. 곧 어떤 큰 사랑을 베풀든, 어떤 기쁨과 친밀함과 응답을 경험하든 자랑거리가 아니라 감사거리이며, 자신을 높일 이유가 아니라 더 낮아져 서로를 섬길 힘이 되어야 합니다. 이 겸손을 잃지 않는 제자라야 진정한 사랑을 하며, 진정한 행복을 누립니다. ‘내가 이만큼 사랑하고 섬겼습니다’라고 자랑하지 않고 ‘내게 이런 사랑과 복을 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라고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진정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생명을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 안에 거하는 이들은 서로 사랑하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이 사랑이 우리 삶을 천국으로 만듭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여 천국을 누리고 전파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