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6 미움받으며 살지 않기 / 요 15:18-16:4

20230326 미움받으며 살지 않기 / 요 15:18-16:4

요 15:18-16:4/미움받으며 살지 않기

230326 주일설교
1. 바꿀 수 없는 것
최근 세계적 인기를 끈 한국드라마 ‘더 글로리’의 소재는 학교폭력입니다. 주인공 문동은은 가해자인 박연진에게 자신을 왜 그토록 가혹하게 괴롭혔는지를 묻습니다. 가해자 박연진에게는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이해할수없는 미움은 인간세상 어디에나 있는 부조리입니다. 현재 일본왕비 마사코는 왕실에서 당한 따돌림으로 국내외에 유명해졌습니다. 5개 국어를 하는 일본 최고엘리트 외교관이었던 그녀가 왕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이유는 결혼기자회견장에서 남편보다 28초 더 길게 발언했다는 것, 남편보다 키가 더 크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 했다는 이유까지 더해져 그녀의 불행한 왕실생활은 국제적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미움과 시기, 비방을 당해본 적이 없습니까? 그런 일을 당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평안을 위한 기도’에서 미국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성도의 삶에는 어찌할 수 없는 영역,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18절입니다.
(요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언가 잘못해서 받는 미움이 아닙니까? 오늘 본문은 지난 주 살펴본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간절한 당부에 뒤이어 나옵니다. 서로 사랑하고 원수마저 용서하면 마땅히 칭찬받고 존경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히려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즉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고 아무에게도 미움받지 않고 사는 것은 불가능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만 잘 하면 되겠지? 아닙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잘 하려 애써도 미워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습니다. 20절입니다.
(요 15: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다 즉 아무 죄가 없는 나도 박해를 받았는데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많이 박해받겠느냐, 내 말도 저렇게 순종치 않는데 너희 말인들 순종하고 듣겠느냐 하는 반어법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에 박해는 기본조건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어려움은 다 피해간다’는 식의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인간의 간절함에 부응하는 종교적 홍보문구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이를 ‘안락의자식 기독교’라고 이름붙였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 죽인 이래 의인에 대한 악인의 미움과 박해는 끊인 적이 없습니다. 성도의 미움과 박해도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작년 10월 나이지리아 남부 베누에 주에서 이틀간 급진이스람민병대의 교회테러로 70명의 기독교인이 순교하고 수천 명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이는 작년 한 해 동안 전세계에서 순교한 기독교인 5,898명의 일부일 뿐입니다. 기독교인을 향한 미움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오픈도어선교회의 통계에 의하면 작년 2022년 기준 76개국 3억 6천만 명의 기독교인이 살인, 방화, 투옥, 납치, 성폭행, 교회와 집에 대한 테러를 당하고 있고 이는 갈수록 증가추세입니다.
이들의 고통과 비교할 수 없지만 서구사회 기독교인들도 미움받는데 예외가 아닙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이라고 선언하는 이들은 조롱받습니다. 절제와 검소한 삶은 풍요와 호화로움이 미덕인 사회에서 무시당하기 일쑤입니다. 불의한 권력과 탐욕을 경계할 때 오히려 비방에 시달립니다. 거짓과 불의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은 미움받고 비난당합니다.
2. 미움의 이유
그럼 세상은 왜 성도를 미워합니까? 여기서 세상이란 피조세계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순종치 않는 질서와 세력을 가리킵니다. 그 첫째 이유는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21-22절입니다.
(요 15: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
세상은 하나님을 모르기에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사람을 미워합니다. 16:3도 말씀하십니다.
(요 16:3) 그들이 이런 일(미움과 박해)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그러나 몰라서 미워했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22절입니다.
(요 15:22) 내가 와서 그들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이 그들의 악한 마음을 드러내어 고발하셨기에 핑계할 수 없습니다.
성도를 미워하는 둘째 이유는 자신의 불의에 동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9절입니다.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성도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주님께 택함받아 세상에서 주님께로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조폭들도 자신들 조직원은 아낍니다. 자신들 편이니까요. 침략군도 자신들 동료들이 총맞으면 격분합니다. 의로우냐, 아니냐는 상관없습니다. 자신의 편이냐, 아니냐만 중요합니다.
셋째는 성도들이 의를 행하기 때문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요 15:24) 내가 아무도 못한 일(구원)을 그들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그들에게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들이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동조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눈엣가시가 되는데 더 나아가 의를 행하면 자신들의 악이 더욱 드러납니다. 모두가 도둑질하는 사무실에서 혼자 도둑질하지 않으면 미움을 받습니다. 혼자 고결한 척 다하네, 얼마나 고결한지 두고 보자… 어디 가든지 사람들이 하는 대로만 하면 미움을 적게 받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법대로 살면 미움을 받습니다.
3. 바꿀 수 있는 것
이렇게 미움받을 때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인홀트 니버의 기도처럼 바꿀 수 없는 현실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우리 마음을 바꾸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미움과 박해는 고통스러운 자극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의 마음을 바꾸면 의외로 쉽게 견딜 뿐 아니라 오히려 많은 복과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떤 마음을 가지는 것이 옳습니까?
첫째, 놀라거나 억울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라고 이 모든 일을 미리 가르쳐 주셨습니다. 16:1, 4입니다.
(요 16: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 (요 16: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고난의)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둘째,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왜입니까? 마 5:11-12입니다.
(마 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의를 행하고 미움을 받으면 하늘에서 상이 큽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상 주시는 이심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의 믿음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이 미움과 박해를 분노와 억울함으로 받는지, 기쁨과 감사로 받는지로 드러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상이며 기쁨이며 은혜입니다.
셋째, 미워하는 이를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도 바울도 권면합니다.
(롬 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어떻게 박해자를 축복합니까? 긍휼히 여길 때만 가능합니다. 미움받는 것이 불행한 것이 아니고 무지와 죄악에 사로잡혀 의인을 미워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불행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미움을 품는 것이야말로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더 글로리’의 복수이야기는 드라마로 보면 속시원할 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가해자나, 복수하는 피해자나 모두 지옥에 갇힌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이렇게 할 때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성도가 이렇게 할 때 미움받는 삶에서 벗어납니다. 미움받는 삶에서 왜 벗어나야 합니까? 성도는 미움이 아닌 사랑과 생명을 세상에 퍼뜨리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미움받거나 미워하는데 쓰기에는 너무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찬란하게 빛나는 생명의 보석을 넣어주셨는데 그 보석을 내버리고 악취나는 오물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미움받으며 살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생명을 전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