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 3:1-9/환란 만난 자의 고엘
230827 주일설교
1. 두렵고 서러운 세상
지금이야 아이들의 장래희망이 아이돌, 연예인, 유투버도 있고 재능과 흥미에 따라 무궁무진합니다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대통령, 장군, 판검사 아니면 의사로 대부분 수렴되었습니다. 당연히 아이의 바람이라기보다는 부모의 바람이 투영된 것입니다. 교사나 화가 따위의 희망을 얘기했다가는 꿀밤 한대 맞고 사내자식이 태어났으면 대통령이나 장군이 한 번 되어봐야지, 고작 그딴 것을 꿈이라고 하냐는 핀잔을 듣기 쉽상이었습니다. 당시 어른들은 왜 그랬을까요? 두렵고 서러워서 그랬던 것입니다. 온갖 환란이 수시로 닥치는 불안한 세상에서 가족이나 먼 친척이라도 권력자 한 사람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남는데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복을 누리지 못 하는 대부분의 서민들은 환란이 닥칠 때마다 고스란히 온갖 서러움을 당하며 눈물을 삼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고대사회이고 예외가 없었습니다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권력자가 없어도 모두 생명과 복지와 공의의 복을 누리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에 은혜의 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거듭 등장하는 고엘제도입니다.
2. 희망을 발견한 나오미
룻기 3장 전반부를 읽었습니다. 지난 주에 읽은 2장 후반부에서, 룻이 들고온 많은 이삭에 놀란 나오미는 보아스가 베푼 호의를 듣고 이스라엘에 있는 독특한 제도를 떠올리고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고엘제도입니다. 2장 20절에서 나오미는 보아스를 자신들의 기업무를 자 곧 고엘이라고 부릅니다.
(룻 2:20) … 나오미가 또 그(룻)에게 이르되 “그 사람(보아스)은 우리와 가까우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גאל:고엘) 중의 하나이니라.” 하니라.
나오미는 이 고엘제도에 의해 룻과 보아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떠올리며, 룻에게 보아스의 밭에만 머물고 다른 곳에 가지 말라고 합니다. 나오미와 룻은 보리추수 시작할 때 베들레헴에 도착했고 룻은 밀추수가 끝날 때까지 보아스의 밭에 머물렀습니다. 이스라엘에선 4-5월에 보리를 추수하고 6-7월에 밀을 추수하니까 약 4달 가까이 보아스는 룻을 거의 매일 지켜볼 시간이 있었습니다. 좋은 첫인상을 확신으로 바꾸어주기 충분한 시간입니다. 밀추수까지 끝날 때를 기다린 나오미는 룻에게 대담하게 보아스를 찾아가 청혼하라고 시킵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면 나오미의 명대로 밤에 타작마당을 찾아간 룻은 보아스에게 바로 이 제도를 근거로 청혼을 합니다.
(룻 3: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무를 자(גאל:고엘)가 됨이니이다.” 하니
3. 고엘, 기업무르는 자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나오미가 룻에게 청혼하라 시킬 수 있었고 룻이 대담하게 청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고엘제도 때문이었습니다. 고엘은 동사 가알의 명사형입니다. 가알은 대신 값을 치르다, 구원하다, 억울함을 풀어주다는 뜻입니다. 명사인 고엘은 값을 치르는 사람, 구원하는 사람, 억울함을 풀어주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 고엘은 친족 중 환란을 만난 사람을 도와서 곤경을 벗어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이는 개인의 안전과 복지를 보장할 뿐 아니라 공동체의 번영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 복지제도로서 오늘날에도 선진국에서나 시행하는 수준의 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고엘은 어떤 환란을 만난 이를 어떻게 도울까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가난의 환란을 만난 사람을 구해주는 고엘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기업무르는 자입니다. 가난이나 빚 때문에 어느 가정이 땅을 팔거나 자신이나 가족을 팔아 종이 되면 당연히 극빈층으로 추락하고 자유를 구속당한 채 비참한 삶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 때 부유한 친족이 그들을 불쌍히 여겨 나서서 고엘이 되고자 하면 땅을 처음 판 수준으로 다시 사서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율법은 규정하였습니다. 빚도 이스라엘 사람들끼리는 이자를 못 붙이니 처음 진 만큼만 갚으면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엔 50년마다 채무를 탕감하는 희년제도가 있어서 희년까지 남은 기간 만큼만 땅값을 계산하거나 남은 빚을 계산하면 되니 그 친족은 처음 땅값이나 채무보다 적은 부담으로 그 땅을 되사서 친척에게 돌려줄 수 있었습니다.
둘째 대가 끊어지는 환란을 만난 사람을 구해주는 고엘이 신명기 25장에 나오는 “대를 잇는 자”입니다. 남자에게만 땅과 가축이 상속되던 시절 아들을 낳지 못 하고 죽은 가문은 대가 끊어질 뿐 아니라 재산도 뿔뿔히 흩어져서 지파 전체의 땅이 줄어듭니다. 이는 공동체의 큰 위협이었기에 죽은 남자의 가까운 형제부터 의무를 지워서 죽은 이의 남은 아내 과부와 결혼하여 그녀의 생계과 안전을 책임지고 또 아들을 낳을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아들이 태어나면 죽은 형제의 아들로 호적에 올리고 그가 남긴 재산을 상속하여서 가문이 끊어지지 않고 번성케 하였습니다. 이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세기의 명령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셋째 억울한 일을 당한 환란을 풀어주는 고엘이 민수기 35장에 나오는 피를 보복하는 자입니다. 누군가 무고하게 살인을 당하면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가장 가까운 남자 친족이 고엘 곧 피를 보복하는 자가 되어 살인자를 공개처형할 권리를 가집니다. 물론 처형하기 전 레위인들의 성읍 도피성의 지도자들로부터 이것이 과실치사가 아니라 고의적 살인이란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사법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시절 개개인을 불의한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동시에 사법정의를 세우는 제도였습니다.
4. 최고의 고엘 하나님
룻과 나오미는 이 중 두 가지 곧 가난의 환란과 대가 끊어지는 환란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고엘은 큰 대가지불이 필요했기에 친족이라도 스스로 지기로 결심하지 않으면 강요하기 힘들었습니다. 룻기를 보면 보아스가 룻에게 호의를 베풀기 전까지 나오미는 고엘제 시행을 거의 기대치 않았던 것처럼 보입니다. 호의를 들은 후에도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기업을 무르는 것까지는 기대치 않고 그저 룻과 결혼하여 룻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정도만도 감사하다는 뉘앙스입니다.
(룻 3:1)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를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나 보아스는 나오미의 기대를 넘어 룻을 통해 대를 잇는 것뿐 아니라 그 집안의 잃어버린 토지를 되찾는 것까지 기꺼이 부담을 짊어집니다. 나오미와 룻은 이 제도를 통해 인생역전을 합니다. 이 아름다운 제도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복지의 안전망이면서 동시에 공동체를 안전하고 풍요롭게 유지하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고엘을 통해 백성 한 명 한 명을 사랑하시고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시려는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에도 당신이 친히 인류의 고엘이 되심으로 구원의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고엘이 되십니까?
5. 자유를 되찾아주시는 고엘
첫째, 하나님은 노예 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고엘이십니다. 로마서는 우리가 죄와 사망의 법의 노예였으나 아들의 피를 값으로 지불하신 하나님이 사셨다고 합니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것 중 하나가 빚을 지고 사는 것입니다. 특히 악독한 사채업자에게 갚지못할 빚을 진 이는 지옥에서 살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역사상 최고로 악독한 사채업자에게 고통당하며 살아왔습니다. 바로 죄의 빚을 갚으라고 끊임없이 협박하고 위협하고 괴롭히고 저주하는 마귀입니다. 죄책감과 불안감과 심판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이 노예상태는 죄값으로 영원한 심판을 받을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친히 고엘이 되신 하나님은 아들의 피값으로 모든 죄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영원히 자유롭게 해방시키셨습니다. 아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는 모든 죄값을 탕감받고 생명과 평안과 자유와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6. 낙원을 되찾아주시는 고엘
둘째, 하나님은 우리가 잃어버린 땅을 되찾아주시는 고엘이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업을 잃어버리듯 우리는 죄로 인해 낙원을 잃었습니다. 창세기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계시록은 인류가 다시 찾게 될 낙원을 약속합니다.
(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이 약속은 우리 삶에 완전히 새로운 지평을 열어줍니다. 모든 사람은 더 나은 삶을 기대합니다. 좀 더 풍요롭고 좀 더 안전하고 좀 더 행복한 삶입니다. 이를 위해 밤낮 쉬지않고 일하고 노력하지만 인류 전체로 보면 이루는 이보다 이루지 못 하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이룬 이들에게도 살얼음판 걷는듯한 행복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언제 그 풍요와 안전과 행복이 달아날지 모르기에 우리는 보험을 들고 노후준비를 합니다만, 그마저도 금방 노쇠하고 병들고 죽음으로 짧은 여정을 마칩니다. 이것이 다라면 우리 삶은 얼마나 허무하고 얼마나 부질없습니까? 그러나 성도에겐 영원한 생명과 새하늘과새땅의 새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낙원을 되찾아주시는 고엘되신 하나님 덕분입니다. 아들의 피로 값지불을 하시고 마침내 우리에게 잃어버린 동산을 되찾아 주시는 고엘이십니다.
7. 약자를 보호하시는 고엘
셋째, 하나님은 우리를 불의한 환란에서 보호하시는 고엘이십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고엘이 될 친족이 없는 고아와 과부를 위해 당신이 친히 그들의 고엘이 되겠다고 하십니다.
(출 22: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출 22:23)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출 22:24)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그들을 위한 고엘이 되어)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예수님도 약자를 당신과 동일시하셔서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한 일이 곧 당신에게 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힘없는 이에게 불의한 일을 저지르는 이는 친히 고엘되어 정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각오해야 합니다. 또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세상의 모든 약자는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위해 심판하심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불의한 일을 당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의를 행하도록 격려합니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에겐 환란을 당할 때 달려가 호소할 고엘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당신에게 호소하라고 하셨습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 (사 41:13) …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우리 집안에 대통령, 장군, 판검사가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 어떤 권력자보다 강력한 고엘,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분께 피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 분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얻을 것입니다. 어떤 환란을 만나든 여러분의 고엘 되시는 하나님께 피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