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1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 / 룻 4:13-22

20231001 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 / 룻 4:13-22

룻 4:13-22/여전히 일하시는 하나님

231001 주일설교
1. 소망의 책 룻기
기독교신앙을 거부하는 이들이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신정론입니다. 즉 ‘선하고 정의로운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세상에 가득한 악과 고통을 두고 보느냐’는 의문입니다. 오늘까지 9주간 이어온 룻기설교를 잘 이해하신 분이라면 그 답을 얻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룻기야말로 해답을 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오늘 읽은 본문은 룻기의 결말부입니다. 아무개씨로부터 고엘, 기업무를권리를 넘겨받은 보아스는 약속대로 룻과 결혼하여 아내로 삼는데 하나님이 그들에게 아들 오벳을 주십니다. 오벳은 죽은 엘리멜렉의 셋째 아들로 족보에 올라가고 보아스가 무른 엘리멜렉의 기업 즉 돈을 주고 사들인 나오미 집안의 땅을 상속하여 무너진 가문을 다시 일으킵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아 다윗왕조의 조상이 됩니다.
이렇게 끝나는 룻기는 왜 신정론의 해답이 됩니까? 우리 눈에는 온통 악과 고통만 가득한 세상처럼 보이는데 사실 의와 복으로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고 계심을 룻기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룻기가 보여주는 하나님은 그럼 도대체 어떻게 일하십니까?
2. 율법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
첫째, 하나님은 당신이 주신 율법을 통해 일하십니다. 슬픔과 절망에 빠진 나오미와 룻에게 소망을 주고 그들을 보호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율법이었습니다. 그들은 밭모퉁이까지 남김없이 거두지 못 하게 하신 추수법, 빈자들의 이삭줍기를 금하지 못 하게 하신 극빈자보호법, 토지의 영구적 매매를 금하신 토지법, 땅과 신분의 회복을 명하신 희년법, 친척공동체를 통해 재기의 기회를 얻도록 하신 고엘법 등 레위기에 기록된 온갖 하나님의 법에 의해 보호받았고 그 법을 의지해 희망을 가졌고 결국 그 법으로 재기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 개개인을 보호하고 공동체를 존속시킬 뿐 아니라 부족함없는 복지를 누리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방패요, 울타리요, 동시에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습니다. 이 율법이야말로 우상숭배에 기초한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강자의 독식을 보호하는 질서를 만들어 착취와 압제, 다툼과 시기로 신음하다 망하기를 반복하는 이방나라의 위협이 이스라엘까지 오염시키지 못 하도록 막는 견고한 방어막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어서 가나안땅으로 가고 싶은데 1년이나 시내산 아래 광야에 머물게 하시며 모세를 통해 이 율법을 받고 기록하고 따르게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율법을 받은 출애굽 세대가 다 망하고 뒤이은 광야세대가 얼른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은데 또 다시 입구 모압평원에 몇 달이고 앉혀 놓고 이 율법을 다시 듣도록 만드셨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도 율법을 따르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토록 진노하시며 징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율법에 집착하시는 듯 보입니까?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제대로 듣고 순종하는 것이 생존과 번영에 필수였기 때문입니다. 이 율법을 제대로 듣고 따르지 않으면 가나안에 들어가봐야 금방 망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순종하는 백성으로 구원하시는 하나님
둘째,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그 율법을 즐거이 순종하게 만드셔서 구원하십니다. 그들이 바로 나오미와 룻과 보아스입니다. 그들이 살던 시기를 1장 1절은 사사시대라고 밝힙니다. 그 시대는 악과 고통이 가득했습니다. 각자 자기 생각대로 사는 사람들로 인해 이스라엘은 방탕하고 타락하여 소돔에서나 벌어졌을 법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 시대에 더해 흉년과 죽음이 나오미, 룻 그리고 보아스를 덮칩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다른 이들처럼 악과 고통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나오미는 며느리를 사랑하며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며 인간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습니다. 보아스는 큰 희생을 감수하며 그녀들을 돕기에 나섭니다. 마침내 그들 모두의 삶이 극적으로 역전됩니다. 잃어버린 땅은 되찾고 무너진 가문은 일어서고 슬픔은 기쁨으로 바뀝니다. 더 나아가 다윗왕조를 통해 하나님이 더 큰 구원을 행하시리란 소망을 품고 룻기를 덮도록 만드십니다.
이들은 어떻게 이 어두운 시대에도 사랑과 믿음과 소망을 품고 살 수 있었던 것일까요? 시 1편이 그 답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합니다. 이 경건생활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사람 안에서 자라나 30배, 60배 그리고 100배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4. 자유를 되찾아 주시는 고엘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당신의 말씀과 순종하는 백성을 통해 구원하십니다. 오늘날 상식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람을 노예로 부릴 수 없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이 상식이 된 것은 인류역사에서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25세에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 회심한 영국인 윌리암 윌버포스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세상의 질서를 바꾸어야 한다는 깊은 소명감을 느끼고 정치에 입문합니다. 28세이던 1787년 10월 28일, 그는 일기장에 당시 영국을 먹여살리다시피한 노예무역을 폐지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적었습니다. 18세기 대영제국은 아프리카흑인노예무역의 중심국가로 막대한 부를 벌어들였습니다. 1771년 한 해에만 5,500명 이상의 선원들을 고용하여 190척의 노예무역선으로 4만 7천명의 노예를 운반했고 국가수입의 3분의 1일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노예상인, 자본가, 넬슨 제독 같은 식민지 기득권세력, 왕족, 귀족들은 거대한 카르텔을 만들어 노예무역을 둘러싼 막대한 이익을 챙겼습니다. 이들에 대항하여 20년 동안 11차례나 폐지법안을 발의했지만 영국최대산업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비웃고 매국노로 매도하는 이들에 의해 좌절되고, 여러 차례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진리임을 믿기에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첫 법안을 발의한지 20년, 무려 150회가 넘는 의회에서의 격렬한 논쟁을 거친 후 영국의회는 1807년 마침내 노예무역폐지법안을 통과시킵니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건강이 악화된 후에도 노예제 자체를 폐지하는 운동을 계속하여 1833년 7월 27일 영국내 모든 노예를 해방한다는 법안통과소식을 듣고 9일 만에 그가 그토록 의지하였던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영국을 필두로 덴마크, 미국 등 서구열강이 차례로 노예무역을 금지하며 마침내 오늘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인 인간을 피부색이나 출신이나 인종이나 능력 그 어떤 이유로도 노예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도를 사용하여 모든 노예된 자를 해방시키십니다.
5. 넘어진 자를 일으키는 고엘
하나님은 또한 넘어진 자를 일으켜 다시 재기시키는 고엘을 행하십니다. 이스라엘의 희년법과 고엘법과 유사한 오늘날의 제도가 개인회생제도입니다. 나라마다 방식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장래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채무변제의 의지가 있는 이에게 기존의 갚기 힘든 빚을 일부 청산해 줌으로써 다시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입니다. 이런 제도에는 채권자, 은행, 정부 등 공동체의 자원이 적지않게 투입되어야 합니다. 왜 개인을 살리려고 공동체가 이런 큰 부담을 져야 합니까? 이는 희년법과 고엘법을 위해 이스라엘공동체가 적지않은 부담을 진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첫째는 더불어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당신의 성품을 닮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자기 죄로 죽어가는데도 그들을 긍휼히 여기기를 멈출 수 없으셔서 아들을 내어주고 그들을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자녀들도 누군가 빈곤의 늪에 갇혀 고통받는데 홀로 복지를 누리는 사는 것을 즐길 수 없는 이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둘째는 개인을 재기시키는 것이 오히려 공동체에 더 큰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채무를 탕감하는 것이 공동체의 자원이 들어가니 손해인 듯 보이지만 그가 재기의 기회를 얻지못하는 것보다 부담이 오히려 훨씬 줄어듭니다. 그가 극빈층으로 떨어지면 공동체는 그의 생존, 의료, 교육 등 복지비용으로 적지 않은 비용을 써야 합니다. 극빈층의 삶은 여러 가지 범죄유혹에 시달리기에 공동체는 범죄예방, 사후처리, 범죄자수용 등에 훨씬 많은 비용을 써야 합니다. 미국에서 종종 자동차로 도망치는 범죄자를 잡기 위해 수십 대의 차량과 헬기가 출동하고 차가 부서지고 도로가 파손되고 사람이 다치는 장면을 TV로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 차량과 헬기운용비, 출동비용, 부서진 차량 수리비, 다친 사람 의료비, 그 시스템 유지비, 경찰인건비, 범죄자 재판비, 수용소 관리비, 관리인력 인건비 등 범죄자 한 명을 잡고 재판하고 수용하는데 어마어마한 세금이 들어갑니다. 반면 그가 재기하여 경제활동을 하면 이런 비용을 사회는 더 이상 지출하지 않아도 되고 그는 경제활동과 세금으로 오히려 공동체의 부를 증진시킵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범죄예방책은 좋은 일자리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 개인을 회생시켜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이 당장에도 훨씬 적은 부담을 지고 장기적으로는 훨씬 큰 이익을 공동체에 가져다 줍니다.
6.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또한 이스라엘에게 땅을 주신 것처럼 세상 모든 이에게 땅을 주고 계십니다. 율법의 토지매매금지는 토지로 인한 불로소득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못 하도록 만드신 제도입니다. 토지가치상승으로 인한 불로소득은 오늘날 모든 부동산투기의 이유이고, 경제발전에 투자될 자원을 생산성향상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땅투기에 집중시켜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이유입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세계 수많은 가정경제를 파탄시키고 기업을 무너뜨리고 국가경제를 휘청이게 한 금융위기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 원인으로 꼽는 서브프라임모기지는 너도나도 부동산투기에 뛰어들어 일확천금을 노리게 한 대출상품입니다. 왜 여력이 안 되는 사람들이 모두 거기 뛰어들었습니까? 토지가치상승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보고있노라면 매일 성실히 일해 월급받고 사업하는 사람은 다 바보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왜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습니까? 그 이유 중 하나로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집값을 꼽지 않나요? 한 푼도 안 쓰고 저축만 해도 은퇴할 때까지 서울에서 조그만 집 한 채 살 수 없을 정도로 땅값이 뛰어서 포기하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을 절망하게 만드는 원인이 토지에서 나오는 불로소득으로 돌아가는 경제입니다. 오늘날 땅투기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뿐만 아니며 서민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현재 진행형의 악입니다. 이는 18세기 세계에 노예무역이 끼친 것 못지않은 악입니다.
노예제도에 맞서 윌리암 윌버포스가 싸웠듯 땅투기를 근절시키고자 성경의 토지법과 희년법의 정신을 이 시대에 적용시키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천민자본주의의 모순이 극에 달했던 19세기 사회주의로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나섰던 유럽의 맑시즘에 맞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세상을 구원할 진리가 있다고 믿었던 미국경제학자 헨리 조지는 토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에서 토지공개념을 발견합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토지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여 설득이 안 되니 토지는 공공의 것이라 선언하고 토지를 통해 불로소득을 거두지 못 하는 방식으로 세금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사회주의처럼 급진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고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의 정신과 실천을 좇아 오늘날 한국과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이 토지공개념에 기초한 여러 단체를 만들어 입법화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으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는 헌법에 토지공개념이 반영되어 있고 홍콩, 싱가폴, 영국, 호주, 베트남, 인도 등은 토지공개념을 적용한 토지공공임대제를 시행하고 있고 펜실베니아 등 미국의 일부 주, 덴마크, 뉴질랜드 등은 토지공개념을 적용한 지대조세제라는 세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오래 전에 설교에서 토지공개념을 언급했더니 제 설교를 듣고 있다는 타교회교인이 이메일로 주셔서, 왜 공산주의를 가르치냐고 항의를 하셨습니다. 토지공개념은 오히려 사회주의와 경쟁한 성경적 개념이라고 설명을 드렸습니다만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으시려 했던 기억이 납니다. 토지공개념은 사회주의와도 공산주의와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토지는 내 것이라’고 선언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성경적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숨어서 세상의 악과 고통을 보고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육신이 되신 말씀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을 따르는 성도를 통해 오늘도 세상을 치유하고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며 순종하여 세상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