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교단적 배경

#1-02 교단적 배경


#1-01 시대적배경

목차

#2-01 창립기 (1) 태동기(1972-1973)

1부
우리 교회가 태어난 배경
| Chapter 1 The Background of our Church’s Founding

2. 교단적 배경 ((이 부분을 위해 본 교단자료(미주한인장로회20년사/총회출판국/2000년)와 미국장로교 자료(미국장로교한인교회사/전국한인교회협의회/1999년), 인터넷 자료(장로교 일반역사) 등을 참조했다.)) | Denominational Background

본 교회의 역사를 논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의 하나가 본 교회가 소속된 교단의 역사다. 무소속 교회나 독립교회를 제외한 대다수 교회가 연합체나 상회 기구에 속해있기 마련이다. 성경의 진리대로 행하며 거듭난 신자들이 지체 역할을 하고 있는 지상의 참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전체가 그리스도의 몸에 해당하는 하나의 무형교회(invisible Church)를 이룬다.
마찬가지로 유형교회들도 교회끼리 친교와 단합, 치리(治理) 등을 위한 효율적인 각종 조직체와 제도 속에서 공동체를 형성한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예루살렘교회나 안디옥교회, 기타 교회들도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한 마음 한 뜻 되어 하나의 연합체를 이루었다.
본 교회는 그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신앙 및 신학적 뿌리를 장로교(the Presbyterian Church)에 두고 있으며, 현실적인 조직체로서 교단인 미주한인장로회에 소속되어 있다.

장로교

먼저 장로교에 관해 간략히 개괄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장로교는 장로교회 또는 장로회와 같은 의미이다. 넓은 의미에서 장로교는 노회(presbytery)로 불리는 대표모임으로 구성된 민주적 교회행정 및 치리체제라고 볼 수 있다. 이와 상반된 개념으로는 예컨대, 중세 카톨릭교회나 오늘날의 감리교, 성공회에서 볼 수 있듯이 주교나 감독이 교회들을 대표하는 감독제(episcopacy), 또 회중 자신들이 대표함으로써 지역교회의 독립자치를 강조하는 회중교회(congregationalism) 등이 있다.
현재 세계 장로교의 모습은 수많은 갈래와 지류들의 묶음으로 이뤄져 있으나 본래의 장로교는 16세기의 종교개혁 당시 카톨릭에서 분리된 개신교로부터 파생된 한 일파로 시작됐다. 장로교의 뿌리는 장 칼뱅(Jean Calvin·영어 John Calvin·1509-1564)의 개혁운동에 두고 있는 것이다.
좁은 의미에서 장로교제도 내지 장로교주의(Presbyterianism)는 칼뱅이 강조한 개신교적 특징을 대표하는 교회체제의 한 그룹이었다. 칼뱅은 마르틴 루터로부터 출발된 종전의 개혁사상들을 구체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장로교의 치리·의결기관

장로교의 각 교회 안에는 최고의결기관인 당회가 있고 그 아래 제직회와 각 부서, 선교회 등이 있다.
마찬가지로 주로 교회 단위로 소속돼 있는 교단에도 질서체계가 있다. 즉 각 지역교회들이 모여 이룬 각 지방의 노회(Presbytery)가 있고, 이 노회의 상회로서 전국 노회들의 집합 조직체인 총회(General Assembly)가 있다.
이 모든 상·하 단체가 모여 교단을 이루며, 총회는 교단의 최고 친교 및 의결·치리 기관이다. 교단에 따라서는 노회와 총회 사이의 중간기구로 주요 지방별 노회끼리 한데 모인 대회(Synod)를 두기도 한다.
본 뉴저지장로교회가 소속된 교단은 미주한인장로회(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in America / 약칭 KPCA)이다. 본 교회는 아울러 직상회인 뉴저지 노회에 소속돼 있다.

미주한인장로회 생성과정

미주한인장로회는 우리 교회가 설립된 지 약4년 후인 1976년에 공식 창립됐다.
그러므로 본 교회 설립배경과는 무관하나 같은 70년대의 일이므로 1980년 전 까지 70년대를 중심으로 조망해 본다. 교단 모체가 될 노회는 그전부터 존재해 있었고 정식 교단이 되기까지 얼마간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본 교단 총회출판국이 발행한 「미주한인장로회 20년사」(2000년)에 따르면, 1973년 9월 16일에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역자들이 뜻을 모아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미국 서부의 각 주를 관할하는 서노회가 먼저 조직됐다. 이듬해인 1974년 11월 2일에는 시카고를 중심한 중서부지역을 위한 중앙노회가, 75년 6월16일에는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동노회가 각각 조직됐다.
이 3개 노회는 한국장로회 총회와 긴밀한 관계를 갖기 위하여 1974, 75년에 정식으로 한국총회에 ‘미주노회 인준 청원서’를 제출하자 한국교단은 75년 제60회 총회에서 미주에 설립된 세 노회를 연합노회(Union Presbytery)로 인준키로 결의했다.

1975년 12월 4일 밤, 시카고 근교 스코키의 할리데이 인에서 세 노회장들이 만나 이튿날 새벽 1시가 가깝도록 장시간 회합을 가졌다. 한인장로회 미주노회장 김계용 목사, 재미노회장 양치관 목사, 미주동노회장 이병규 목사였다.
이들은 3노회의 나아갈 길과 취할 태도 등을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결과, 노회의 (1) 명칭 통일, (2) 영역 분할, (3) 미주 대회(Synod) 조직 등에 관하여 합의, 역사적인 이정표를 마련했다.
명칭은 한인장로회 미주 동·중앙·서 노회(The Eastern, Central, Western Presbytery of the Korean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로 통일하기로 했다. 노회별 영역은 동노회가 펜실베이니아, 웨스트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및 그 이동(以東) 지역, 중앙노회는 동·서노회 해당지역을 제외한 중앙지역, 서노회는 몬태나, 아이다호, 유타, 애리조나와 그 이서(以西)지역으로 가름했다.
또 진로와 행동 통일을 위해 한인장로회 미주대회를 조직하되, 각 노회가 5명씩의 총대를 파송하고, 1976년 8월 중 양치관 목사가 대회를 책임 소집케 하고 3 노회장의 행동과 발언도 절대 통일하여 김계용 목사로 대표 발언케 할 것, 치리상회를 조직해 힘을 규합하고 살길을 개척해 나가겠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노회-총회 간 중간기구인 대회(synod)를 조직하겠다는 당초의 생각은 한국총회와 미 교단인 UPC를 의식한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마땅찮게 여겨졌다. 이 문제와 관련, 세 노회장은 다소 견해차는 있었으나 서로 연락하는 가운데 회의석상에서 총회로 조직할 것을 결의했다.
그리하여 노회장 회의의 결의사항에 따라 드디어 1976년 8월 9일, 3개 노회 대표들이 시카고 시세로한인장로교회에 한데 모여 한인장로회 미주총회를 결성했다. 노회별 총대 수는 당초 소집공고보다 2명씩 추가되어 각 7명씩 모두 21명이었다.

이 역사적인 21명의 창립총대 명단은 다음과 같다.

동노회: 김권석 김규환 김정국 김형숙 이병규 최이열 최양선
중앙노회: 김인수 김응률 문장선 방신학 양치관 이선영 이진삼
서노회: 김경서 김계용 김장호 오은철 이금식 정대범 최광수

UPC에 가입하는 문제는 며칠간 장시간에 걸쳐 토의되었으나 노회 단위로 가입할 경우 총회 결의에 의하여 최후 결정을 짓는 동시 총회는 자동해체키로 한다는 단서를 붙여 총회를 조직했다. 미주에 한인장로교단이 생겨나는 역사적 거보를 내딛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총 7장 26조에 달하는 미주한인장로회 총회 규칙을 시행법으로 채택하고 1954년 이전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헌법을 채택 준용키로 했다. 첫 총회장으로는 김계용 목사(나성영락교회 시무)가 피선됐다. 총회는 또 취지와 태도를 밝히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우리의 다짐’을 발표했다.

우리의 다짐

오늘 역사적인 한인장로회 미주총회를 창립하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룩되는 일을 통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자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아 모든 일을 하고자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펴고자 하시는 위대한 역사에 동참하는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편협한 민족주의를 지양하고 세계 시민으로서 폭넓은 교회와 사회를 이룩하기 위하여 모든 장로교회와 우호 협조 관계를 가지는 것은 물론이나 먼저 한국인이 된 긍지를 가지고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을 존중하며 한국교회의 복음주의 신앙을 굳게 지키면서 우선적으로 미주 한인 교포에게 선교하고 그 지위 향상을 도모하며 봉사와 교육을 통하여 흩어진 한인교회들을 지도 육성하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옛날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여 주시고 그로 하여금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과 같이 또한 오늘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로 하여금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것으로 믿는다(창 12:1-4).
우리는 이를 위하여 새 바람처럼 역사하는 총회 산하 모든 성도들에게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신 우리 주님께서 힘주실 것으로 믿고 바라며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하여 다짐하는 바이다.

1976년 8월 10일 한인장로회 미주총회

총회는 또 1978년 7월 21일 로스앤젤레스 소재 나성영락교회 예배당에서 모인 제3회 총회 때 총회 명칭을 ‘미주한인장로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게 됐다. 그후 총회는 급속히 발전하여 1979년 4월에는 캐나다 노회가 신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