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안정기(1985-1990)

#2-03 안정기(1985-1990)


#2-02 중흥기(1980-1984)

목차

#2-04 성장기(1991-1995)

2부
우리 교회의 발자취 
| Chapter 2 The Church History

3. 안정기(1985-1990)  | Stability Period

1985년

새 성가대 지휘자 오다

새해에 정말 필요한 새 일꾼이 왔다.
당회가 신임 성가대 지휘자로 김형주 집사를 선임한 것이다. 1월 1일 신년축하예배 때 소개된 김 집사는 서울 충현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면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총신대학 2년을 수료한 뒤 뉴욕대학교 대학원에서 음악교육 석사과정을 이수 중이었다. 김 집사는 본 교회 성가대의 수준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오자마자 성가대에 전문 독창자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3월 제직회는 솔리스트 사례비 지출항목을 4월 제직회 때 결의키로 했고, 정작 성가대 예산에서 지출하도록 결의했다. 그러나 독창자에게 월 250달러씩을 지급하기로 결정된 것은 8월 제직회 때였다.
2월 17일에는 예배 중 성가대원과 교사들이 임명됐다. 성가대장 김기태 장로, 김형주 지휘자, 박병연 반주자, 김동관 총무, 그리고 대원이 19명이었다. 대체로 이민 교회에서는 일부 파트의 멤버가 귀한 경우가 많은데, 이 해 대원들 중에 앨토는 단 2명뿐이었다.
혼성합창을 건물로 비유한다면, 베이스가 기초를 이루고 소프라노는 지붕을, 테너와 앨토는 벽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4부 합창이 균형을 이루려면 일반적으로 고성인 소프라노와 저성인 베이스는 숫자가 많아야 하고, 중성(中聲)인 앨토와 테너는 상대적으로 적어야 한다. 중성의 소리가 고음이나 저음보다 크면 균형을 잃고 불안해 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에 앨토 대원이 적은 것은 음량이 충분한 이상 과히 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후 우리 교회 성가대 대원수는 점차 불어나게 되며 수요공급 현상에 따라 2·3부 예배가 개설되는 80년대 말부터 90년대에 이르면서 2, 3, 4개 성가대 체제로 다원화된다.

분주하고 신나는 새해

그해 신년예배는 1월1일 월요일에 드렸다.
새해 첫 주일 6일 예배 중 성찬식과 아기세례, 세례 및 전입교식이 거행됐고 서리집사를 비롯한 일꾼들이 임명됐다. 정초부터 매주 주보가 풀칼러 표지로 바뀌었다. 1월 13일 예배 후에는 조영진 집사 집에서 신년맞이 전 교우 친목회를 가졌다.(사진 25)

사진 25. 전교우(1985년)
Church members ( 1985)

한편 김창길 목사는 1월 21일부터 2월 3일까지 있는 베델성서연구반 참가 차 17일 한국으로 출타했다. 제직회가 필요한 모든 경비를 지출키로 했다. 김 목사가 떠나있는 동안 주일예배 인도와 기도순서, 수요예배와 새벽기도 등을 김기태, 정주섭 장로가 맡아하고 설교는 타 교회 목사들이 차례로 맡아했다. 이 기간동안 구역예배는 쉬기로 했다.
2월 8일에 돌아온 김 목사는 한국에서 주문 제작한 교인들 집 대문에 부착할 교회 명패를 마련해 왔고 10일부터 각 가정별로 배부하여 붙이게 하였다. 우리 교회로서는 첫 시도였을 것이다.
한편 새해의 커피봉사는 여전도회 봉사부가 주관하기로 하다.

교회 재정 이야기

연초에 통과된 1985년도 예산안은 88,700달러였다.
그 즈음 교회가 부쩍 성장하면서 헌금액도 현저히 불어나 헌금관리가 점점 중시되고 있었다. 김창길 목사가 부임하기 직전인 1980년 초 헌금수입이 월 평균 1,500달러 안팎이었는데, 80년대 전반기를 지나면서 2,000, 3,000, 4000, 5,000, 그리고 1만 달러대 ‘기록’을 경신해왔기 때문이다.
1월 정기제직회는 헌금계수를 재정부중 2명 이상이 계수하되 교회 근처 은행에 구좌를 오픈하고 입금을 하도록 조처했다. 또 헌금봉투는 미국 교회 것을 쓰지 말고 개인 봉투를 사용토록 했다.
5월 제직회는 중요한 결정을 했다. 전문가에게 교회 등록 문제와 세무보고(IRS)를 의뢰토록 한 것이다. 이 결정을 하기 앞서 공인회계사 진 명 씨로부터 주 정부 등록문제와 세무보고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한편 교회는 목회적립금을 모아왔는데 6월 정기제직회는 목회적립금 중 4천달러를 차용토록 했다. 6월 제직회는 또 6월중 로스앤젤레스에서 실시된 목사고시 위원으로 필요한 경비를 총대비에서 지출했다.
그러나 7월로 들어서면서 교회 재정에 붉은 신호등이 켜졌다. 7월 7일 정기 제직회 때 재정부 보고에 따르면, 상반기인 6월까지의 수입이 46.8%에 그치고 특히 십일조 헌금은 41.8%밖에 달성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시적 현상일 뿐 부족분은 이내 채워지곤 했다. 그해 말 통과된 86년도 예산액은 104,300달러였다. 80년대 하반기에 돌입하면서 최초로 10만 달러 대를 넘어선 것이다.

주보 이야기

주보는 그 교회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다.
앞서 봐온 대로 과도기였던 70년대는 주보가 이렇다할 체제로 정립되지 못한 상태였다. 초기 여러 해 동안은 주로 교우들이 직접 그린 표지그림을 사용하면서 교회력 명절이나 특별한 행사 때만 미국식 풀칼러 주보용지를 썼다. 인쇄 미디어도 등사(mimeograph)로부터 원시적인 초기 복사 시대 사이를 면치 못했다.
김창길 목사가 부임 뒤 1980년 4월 20일부터 한동안은 고전적인 교회당 모습의 펜화가 실렸다. 80년대 초기 주보 표지는 이죽희 집사의 아들 이상목 교우 등이 정성껏 제작한 표지 그림을 6개월마다 또는 해마다 바꿔왔다.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 출신인 이 군은 미 전국 그래픽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실력 있는 디자이너였다. 1982년 2월 14일 주보에는 그 동안 해마다 또는 절기에 따라 다양하고 아름다운 주보 표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상목 군에게 “감사하다”는 내용의 짤막한 광고가 게재되기도 했다.
81년 6월 14일 주일부터도 주보그림이 바뀌었다. 한동안 기도하는 두 손을 표지그림으로 썼는데, 역시 본 교회 교우인 이성의 교우가 다른 모습의 기도하는 손을 그려 대체하기도 했다. 당시 주보는 모자라 결석자에게는 보내지 못할 정도여서 23일부터는 매주 120매를 인쇄하기 시작한 때였다. 기도하는 손은 원래 독일종교화가 뒤러의 작품이 유명하지만, 이와 비슷한 다양한 손들이 그려져 왔다. 우리 주보의 ‘기도하는 손’은 화면을 가득 채우는 독특한 모습이었다.

84년 1월 29일 주일부터는 향후 본 교회 자체건물을 상상하여 부드럽고 현대적으로 그려 싣고 6개월간 사용했다. 디자인은 역시 이상목 교우가 담당했다.
팰리세이즈팍으로 교회당을 이전한 85년부터 86년 12월 28일 주일까지 약 2년 동안은 미국출판사가 인쇄하여 기독교서점에서 판매하는 풀칼러 주보용지를 사용했다. 사실 직접 그린 그림은 정답기도 하고 우리 교회의 정체성도 살려주지만, 그림만은 흑백보다 칼러가 아름답고 좋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일찍이 1977년 이희철 목사가 부임했을 당시도 같은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칼러 표지에는 어두운 색도 들어가 있어서, 또는 당시 형편상 겉 표지에 교회 이름이나 주소, 사역자 이름 등 꼭 필요한 사항들이 들어가지 못했다. 표지만 보아서는 어느 교회 주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또 매주 다른 표지가 여의치 못한 경우, 같은 칼러 표지가 여러 주간 반복 사용되는 경우도 잦았다.
그러다가 87년 1월 4일부터는 자체 제작한 단색 표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 표지에는 교회명과 주소, 담임목사를 비롯한 교역자 이름들이 명기됐다. 자체교회당을 봉헌하던 1987년 5월 30일에는 화가 김양숙 교우가 헌당예배 순서지 표지용으로 그린 교회당 전경을 이후 주보 표지로 한동안 사용했다. 이 표지그림은 90년대에 다시 한번 사용된다.
요즘은 컴퓨터 워드프로세서나 그래픽 프로그램이 놀랍게 발달하여, 각 교회에서도 인쇄와 맞먹는 품격으로 디자인과 프린트, 복사 등을 할 수 있어 무척 편리한 시대가 되었지만, 70〜80년대만 해도 원시적인 시스템을 면할 수 없었다.
글자의 경우, 주보 안쪽은 정해진 순서만 식자하여 복사를 해두었지만, 교회소식란 등 매주 업데이트해야 하는 비정기적인 부분은 모양도 비뚤비뚤하고 엉성한 조립식 활자의 한글타자로만 여러 해 줄곧 쳐왔다.
그래도 주보표지만은 1980년 4월 20일부터 체제가 한결 산뜻하게 바뀌었다. 사진식자체로 한글·영문 교단명과 교회 영어이름, 담임목사 이름, 성가지휘자 이름 등이 명시된 것이다.
본 교회 한글타자기는 오래도록 영문이 따로 되지 않아서, 예를 들어 YWAM도 ‘와이 더블유 에이 엠’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그런 원시적인 악조건 아래서도 초기에 주보 제작에 땀흘려 수고한 선진들에게 그저 고맙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던 85년 4월, 이태호-박정윤 집사가 한글영문 겸용 식자기를 교회에 헌납하면서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게 된다. 오늘날의 컴퓨터 폰트에 비하면 공타에 가까운 글씨이지만 이전 타자기에 비해 글씨가 한결 단정한 데다 영어도 모두 찍히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4월 28일 교회소식란에는 그 기쁨과 흥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늘 주보 활자는 이태호-박정윤 집사께서 헌납하신 식자기를 사용하여 찍었습니다. 이제 책이나 신문, 초청장, 교회요람 등 모든 문서 작성을 이 식자기로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주보 아래쪽에는 또 이런 귀띔을 달았다.

“오늘 주보는 정신옥 교우가 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이전에는 정신옥 교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 타자를 쳐왔다는 얘기가 된다. 누가 타자를 쳤을까? 식자기가 생긴 즉시 교회요람 만들기에 들어갔다. 그 다음 주일인 5월 5일 주보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1985년 교회일람이 나왔습니다. 각 가정과 사업에 필요하신 대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교회일람을 식자해 주신 정신옥 교우와 제본을 해주신 김상진 집사, 고순이 교우, 정신옥 교우, 조항인 교우, 이재숙 교우께 감사드립니다.”
갑자기 교회 인쇄문화가 활기를 띠고 있었다. 86년 1월 26일부터는 예배순서가 영어로도 나란히 표시되기 시작했다. 90년대와 21세기초를 지나면서 인쇄문화는 급속도로 발달하여 현재는 수없이 많은 종류의 새 활자체(폰트)와 1,000PPM대를 넘을 정도로 고도의 정밀도를 따지는 최첨단 그래픽을 논하는 시대가 됐다.(표 28)

속(續) 주보 이야기

80년대 초만 해도 교회 주보 제작을 담당하는 것은 지금처럼 교회 사무원이나 비서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이 일을 맡을 만한 교인이 있으면 그 도움을 받을 뿐이다. 그러나 그 봉사의 가치는 사실 막중했다. 그 방면에 소질과 정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창길 목사가 우리 교회에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이다. 그때도 역시 한 여 집사가 이 일을 맡아 봉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밤, 그 여 집사가 무엇인가 꽤 큰 보따리를 싸들고 목사 사택으로 찾아왔다. 웬일일까 궁금하게 생각하며 김 목사 내외가 대문을 열고 맞았다.
그 여 집사의 얼굴은 열기로 달아올라있었고, 들어오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버티고 서서 들어오기를 마다했다. 그녀의 말인즉 “모 집사와 아귀다툼이 있어서 이젠 주보고 뭐고 다 그만”이라며 문 밖에서 “이거 타이프라이터예요!”하며 갖고 온 보따리를 내동댕이치듯 놓아두고 가버렸다. 보따리를 풀어 안을 들여다 본 김 목사는 기도를 하는지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사모에게 말했다.
“여보, 내일이 주일인데 주보가 안돼 있으니 이 밤에 어쩌겠소. 당신이 좀 해 보시구려.”
앞이 캄캄했다. 조작법은커녕 평소 타자기를 만져본 경험조차 없던 터라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키 하나를 눌러보았다. 평생 처음 기계로 글자를 쳐보는 순간이었다. 열 손가락을 써서 제대로 키를 쳐댈 처지는 절대로 아니었다. 소위 ‘독수리 타법’이라고 한 손가락 타이핑 타법으로 쳐내려갔다.
어느새 훤하게 동이 터 오고 있었다. 그후 그렇게 몇 년간을 계속 주보 만드는 일이 사모의 잡(job)이 됐다.

72.8.13 – 74.2.17
(백지에 써서 복사)

75.7.20 – 76.12.26
(등사판 수작업)

77.1.2 – 78.4.2
(기성품 풀칼라 주보용지)

77.4.9 – 78.12.23

78.12.30 – 79.7.8

79.7.15 – 80-8.31

80.9.7 – 81.1.11
(이상묵 교우 그림)

81.1.18 – 81.6.7

81.6.14 – 82.1.24, 82.8.1 – 82.9.12
(이성의 교우 그림)

82.2.1 – 82.7.25

82.9.19 – 83.3.16

83.1.23 – 83.7.17

83.7.23 – 84.1.22

84.1.29 – 84.12.25

85.1.6 – 86.12.28
(기성품 풀칼라 주보용지)

87.1.4 – 87.6.7

87.6.14 – 90.5.13
(화가 김양숙 교우 그림)

90.5.20 – 96.12.22

96.12.29 – 99.12.31

2000.1.7 – 현재

교육부 이야기

그해 3월 3일, 어린이부에 조은선 교육전도사가 새로 부임했다. 조 전도사는 서울 수색장로교회 출신으로 국악예술고교를 졸업하고 노바칼리지에서 수학한 뒤 밸리포지크리스천칼리지에서 기독교교육을 전공하고 있었다.
당시 85년도 교육부 책임자들은 다음과 같았다.
교육부장 : 이진수 집사
중·고등부 지도 : 윤은수 전도사
어린이부지도 : 샌디·조은선 전도사
유치부 지도 : 박현서 선생
3월 중 운행하기 시작한 새 밴 버스는 교회학교를 위해서도 유익하게 사용됐다.

성경공부반

그해 2월, 매월 1회씩 모여 성경공부를 하는 젊은 클럽을 당회가 인가했다. 아울러 팰리세이즈팍·포트리 지역 어머니 성경공부반을 오픈, 매주 화요일 오전10시에 아래층에서 갖기로 했다. 그리하여 2월 26일 화요일 아침 10시부터 1시간 30분씩 어머니성경공부반 첫 모임을 가졌고 이후 매주마다 계속됐다. 그해 10월 13일에는 어머니 성경반에서 매주일 오후 창세기 공부를 시작했고 금요오후에는 마가복음 공부를 시작했다. 젊은이 성경반은 격주 1회씩 네비게이토 교재로 공부를 했다.

첫 건축헌금

우리 교회는 교회창립 10년이 훨씬 넘도록 남의 셋방살이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물론 한인 밀집 지역 내에 예배처소를 얻기가 극히 어려워서 아직도 많은 한인교회들이 교회당을 임대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만, 임대주인 미국인교회와의 갈등으로 인한 고통과 어려움은 감내해야만 한다.
6월 정기 제직회는 현 입주건물을 자체교회당으로 구입키로 하고, 전교인 모금운동을 통해 건축헌금 16만 달러를 모금키로 했다. 오안순 권사가 교회당 건축을 위해 작정하고 부어온 생명보험금(1만달러)을 바친 사실도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6월 한 달 동안 미국인 교회측과 상의한 결과 “현재로서는 교회당을 매매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7월 21일 주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예배 중에 교회건축을 위한 특별헌금을 한 것이다. 그날 주보 상단에는 이런 메시지가 떠 있었다.
  “…우리 교회가 뉴저지 땅에 창립된 지 14년 맞는 해에 처음으로 교회가 결정하여 건축헌금을 합니다. 기도하시면서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대로 느껴오는 마음대로 감사하며 기쁘게 드리십시다. 여러분의 교회 건축 헌금이 우리 뉴저지한인장로교회를 구입합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기쁘게 여기시는 일입니다. 헌금을 지금 다 못 내시는 분은 약정을 하셔도 됩니다.”
그날 헌금결과는 20,040불 작정 중 5,140 달러가 입금됐다. 아울러 7월 13일로 만료되는 교회건축기금 적립금을 마니마켓으로 돌리도록 했다.
그해 연말에는 당회가 제직회로부터 위임받아 선정한 다음 건축연구위원들을 발표했다.
정주섭 김기태 강동열 양호식 이대영 이명호 조인기 이진수 김경열(9명)
건축재정 회계: 조인기/부회계: 이진수

기타 주요 대내 이벤트 일지

4월   7일   한국학교 개강.
새 반주자 최승혜 씨 임명.
5월  12일   재일동포 기독교여전도회 합창단 27명 뉴욕방문.
단원 2명에게 17, 18일 이틀간 민박 제공.
6월  5일(수) 6월 첫 주부터 수요기도회를 목요기도회로 변경
(미국교회 형편상).
6월  16일 교회당 건물구입 건으로 공동의회 소집
(현 입주건물 구입 결의).
6월  27〜30일(목-토) 중·고등부 제6차 하기수양회(YMCA캠프/23명 참가).
 30일전도부 주최 구역대항 성경퀴즈대회(범위: 마가복음).
입상팀(괄호 속: 구역장) 1등: 5구역(김춘지). 2등: 1구역(고수광), 2구역(최중근), 3구역(김기태), 4구역(정주섭), 6구역(최재식)
7월  1일(월) 임마누엘회 관광(그레잇 어드벤처 사파리/펜주 밸리포지 국립공원).
      7일 전도부, 한국 도서지역 선교비($400) 송금.
7월  20일(토) 교회학교 어린이부, ‘세서미플레이스’(Sesame Place) 관광.
중등부, 저지사우스비치 다녀옴(학생18명/교사2명).
7월   21일 예배 중 교회당 구입 특별헌금.
솔리스트 송 란 양 부임.
7월 22〜24(월-수) 교회학교 어린이부 여름성경학교 개교(매일 평균40명
참가).
 시간: 오전10시-오후2시. 학비무료. 교사: 정재성 정재철 김문선 김문희 이문영 이영자
7월 27〜28일(토-주) 제4차 전 교우 수양회(헤브론수양관). 주관: 남전도회.
 강사: 손길용 목사(화잇플레인즈한인교회).
26가정/90여명 참석.
8월  1〜3일(목-토) 제7회 교회학교 어린이 여름캠프(포코노 수양관).
 회비 1인 20불. 학생32명/교사3명/보조교사6명 참가.
8월   9〜11일(금-주) 중·고등부 여름캠프(참가자 30명).
8월   18일   설립 13주년 기념예배
예배 중 한국학교 제1학기 수료식, 발표회(1학기 수료생 32명. 교사 7명)
9월  1일 부흥회 준비위원장 이명호 집사 선임(전도부).
 22일추계야외예배(셰퍼드 레이크).
10월 6일 교회학교 어린이부 조은선 전도사 이임.
김규형 전도사 부임.
10월 17일(목) 미국교회 사정상 당분간 목요기도회 휴회.
  20일한국학교 제2학기 개강.
  27일예배 후 친교시간 다과회 때 중고등부 피아노 모금바자(모금액: $800).
11월 1〜3일 심령부흥성회. 강사: 박종수 목사(남서울교회).
12월중 오전6시에 새벽기도회 회집.
12월 8일 강동열 장로 협동장로 추대.
 22일공동의회
85년도 전도상 시상식(괄호 속은 대상자 수).
1등: 고순희(5명) 2등: 정에스더(3)
3등: 채혜숙 박정윤 이선묵(각2)
4등: 장상일 김혜숙 정신옥 김영근 장기호 김명걸(각1)
25일(수)성탄절 축하예배(중고등부·어린이부 특별순서).
서리집사 임명(남19/여16/총35명).
성경퀴즈대회(여호수아서) 개최(괄호 속은 구역장/권찰).
1등: 포트리구역(최중근 유병문 정신옥) 팔린구역(이진수/정낙신)
2등: 팰리사이즈팍 구역(고수광 / 고순희), 파라무스·오러델 구역
    (서태호/이문영)
3등: 호보큰 구역(최재식 / 김성인)
4등: 저지시티 구역(이명호 / 유정순)

대외 행사 일지

4월  7일 부활주일 새벽연합예배(뉴저지연합교회).
6월17〜22일 미주한인장로회 총회(나성영락교회) 총대: 김창길 목사.
7월  8일 ‘한국이민교회와 2세의 장래를 위한 특별예배’(뉴욕한성교회).
강사: 한경직 목사(서울영락교회 원로목사)/주최: 프린스턴신학교 아시아신학센터/후원: 미국장로교 한인교회 동부지역협의회·미주한인 장로회 동노회).
10월 8〜9일(화-수) 미주한인장로회 동노회 제22차 정기노회(필라영락교회).

1986년

칭송 받는 교회

1월 1일에 신년축하예배를 드렸다. 그해 새해 목표는 ‘칭송 받는 교회’로 정했다.
새해예산이 처음으로 10만 달러 선을 넘어섰다. 이것은 물가앙등 등 전반적인 여건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교회가 그만큼 발전하고 성장한 증거였다.
김 목사는 중재기도를 위해 기도카드에 각자 새해 기도제목을 적어내게 했다. 신년예배 후 여전도회가 마련한 떡국을 들며 새해인사를 나눴다. 또 5일 예배 중 성찬식을 거행했고 예배 후 신년도 첫 제직회를 열었다. 새해부터는 커피봉사를 구역별로 한 달씩 담당키로 했다. 12일 예배 후에는 전 교우 새해친목회 및 이태호 집사 오픈하우스 행사가 함께 열려, 윷놀이, 레크리에이션(지도: 김진현 교우)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86년 1월 19일부터 주일예배를 비롯한 모든 예배모임의 출석 통계가 주보에 게재되기 시작했다. 1월초 2주 분을 소급하여 당일 주보에 실린 첫번 통계는 다음과 같았다.(표 29)

표 29
예배 출석 통계

1월 26일부터는 주보 예배순서가 영어로도 병기되기 시작했다. 2월 9일부터는 주보가 자체디자인 단색표지로 바뀌었다. 또 주보 예배순서 위에 ‘칭송 받는 교회’란 타이틀이 붙었다.
모든 것이 정상화되면서 목요기도회가 수요기도회로 바뀌었다. 한편 당회가 4월중 장로와 권사 각 3인씩을 투표하기로 공고하다.

아, 희석아!

본 교회 어린이부의 이희석 군이 오랫동안 백혈병으로 앓다가 1986년 초 하늘본향에 돌아가 영원히 주님 품에 안겼다.
이형목-박현서 교우의 아들인 희석이는 85년 4월 부활절 시즌에 돌연 불치병이 발견돼 뉴욕대학교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후 번번이 병원을 드나들며 여러 달 투병생활을 하다가, 온 가족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릴 심산으로 9월에 모두 한국으로 나가 기도원에서 기도하며 요양했었다.
그 동안 어린이부, 중고등부를 비롯한 온 교우들이 그토록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건만, 희석이는 하늘나라가 더 좋았나 보다.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그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와 만날 때를 기다리고 있다.
85년 마지막 주일 주보에는 특별히, 희석 엄마(박현서)로부터 온 눈물어린 편지가 실려있었다.

사모님!

진작 연락도 못 드리고… 지금은 모든 것 다 주님께 맡깁니다. 희석이가 이만한 것도 감사할 뿐이죠. 그만큼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믿습니다. 모든 일이 잘되고 건강하신 성도님들께는 지금 열심히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전해주시고요. 고난과 어려움, 병중에 계신 교우님들도 무조건 감사하라고 전해 주십시오. 주님이 특별히 사랑하시는 증거니까요.
일일이 성도님들께 안부 못 전함을 이해하시고 특별히 학생회 회원 전원과 담당 선생님께 너무 좋은 선물 잘 받았다고 전해 주세요. 희석이가 예수님 얼굴 보며 매일 기도하지요.
어머니성경반 회원님 모두 여전도회 회원님과 앤지 어머니, 그 외 모든 분들께 안부 전해주세요. 한번 더 부탁드립니다. 희석이를 위해 꼭 기도해 주세요.

현서 올림

박현서 집사는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에 보낸 슬픔을 딛고 일어나 이를 계기로 더욱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교회에 충성을 다하게 됐다. 후에는 주일학교 교사와 청년여전도회 제2대 회장을 거쳐 1989년도에는 어린이부 부장까지 맡게 된다. 믿음의 큰 승리였다!

그랜드 피아노를 구입하다

그해 5월 4일, 그랜드피아노를 구입했다.
아래층 피아노를 못쓰게 됨에 따라 임시 제직회를 열어 피아노를 구입키로 하고, 제직 1인당 100불씩 모금한 것이다. 성가대장, 지휘자, 총무, 반주자 등 4명으로 구성된 그랜드피아노 구입위원회도 구성했다.
그렇게 해서 제직 일동이 총 9500달러 헌금으로 그랜드피아노(야마하 C5형)를 구입, 봉헌했다. 이를 거울로 삼아 그후 90년대에 예닮원 본당을 위해서도 제직들이 같은 방법으로 헌금하여 봉헌했다. 그때는 피아노 가격도 높고 헌금도 훨씬 많았다.
5월 말에는 중고등부에서도 전자피아노 마련을 위한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어느 특정 교인이나 가족이 한꺼번에 헌납하는 것도 물론 귀하지만, 교인 수가 많아지면서 여러 자원자가 십시일반으로 내는 이런 유의 단체모금은 퍽 효과적이었다.

김 목사의 목회자적 특징

김 창길 목사는 자신의 공적인 대내외 출입사항을 명명백백히, 투명하게 알리고 다니고, 숨기는 것이 없었다. 교단 총회나 노회, 기타 외부모임 참석은 물론 타 교회에서의 단 하루 한 시간의 외부 설교 건, 심지어 기도나 축도 순서까지도 전체 교우들에게 분명히 알리고 기도를 부탁하기도 했다.

주일오후 찬양예배로 자리매김하다

주일 오후 3시에 개시된 찬양예배가 격주로 각 부 헌신예배로 드리게 됨에 따라 3월 23일에 임마누엘회가 첫 헌신예배로 ‘테이프’를 끊은 데 이어 여전도회(4월 20일), 남전도회(5월 4일) 등도 줄을 이었다.
임마누엘회가 헌신예배 첫 ‘선’을 뵌 그 다음주일(30일) 주보에는 이렇게 기재됐다.

“창립 14년만에 처음 드린 역사적 찬양예배에 참석한 교우들이 42명이었습니다. 특히 성가대원들께 감사드립니다.”
임마누엘 회는 외부강사가 없이 강동열 장로가 설교했고, 여전도회 헌신예배에는 정영환 목사가 초청되어 ‘헌신의 삶’(엡5:15-21)이란 설교를 했다. 남전도회는 부회장 양호식 집사가 인도하고, 이명호 회장(피택장로)이 ‘하나님의 섭리’(출4:10-13)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사뭇 자발적, 자치적이고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더욱이 헌신예배 주보에는 전체 교회 광고가 아닌 그 부서의 광고가 충분히 실릴 수 있기 때문에 해당 부서의 선전홍보용으로도 톡톡한 구실을 해냈다. 예를 들어 5월 4일 남전도회 헌신예배 주보의 ‘광고’란에는 회보 ‘임마누엘’ 2호 원고 모집, 회원가입 촉구, 매주 대예배 실황 녹음 테이프 홍보, 남전도회가 돕고 있는 한국 경북 금광교회에 대한 교우들의 지원 협력 부탁 등이 실렸다.
남전도회 전도부는 또 ‘1달러 선교회원’을 모집 중이었다. 1인당 월정헌금 1달러씩을 내는 부담 없는 선교모금방식이었다. 헌금방식은 분할 또는 일시불로 본인 편의대로 할 수 있었다. “모금액이 월 $100이상이 될 경우는 뉴져지한인장로교 단독으로 선교사를 지원할 수가 있습니다”라고 알차고 야무진 포부를 밝힌 글귀가 주보 위에서 유난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찬양예배에 참석숫자는 한동안 매주 주보통계표에 실리지 않고 있었다는 점이다. 실릴 난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실험단계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각 부서의 독립성을 살리기 위함이었을까?

자체 교회당을 마련하다!

그해 6월 중순, 자체교회당 마련을 위한 성도들의 열정이 뜨거워만 갔다. 현재 입주 중인 팰리세이즈팍의 캘버리 교회당을 구입키로 한 것이다.
6월 12일 목요일에 성전구입을 위한 특별기도회를 여전도회 주최로 가졌다. 강사는 뉴욕 퀸즈한인교회의 한진관 목사였다. 또 15일 제직회는 건축위원들이 현 입주 교회당의 집기, 마이크 및 목록을 명시하여 총 50만 달러에 구입하기로 하고, 건축헌금 모금운동은 당회와 건축위원회에 일임키로 했다.
6월 22일의 주보 상단에는 건축위원회가 현 임대 교회당을 구입키로 결정한 경과를 보고하고, 그 다음주일인 29일에 전 교인 건축헌금을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온 교우 교회건축 헌금을 한 결과, 목표액(15만 불)의 약 절반인 75,643불이 모금됐다.
그해 7월 27일 변호사로부터 교회당 건물 계약서가 왔다. 건물 클로징 날짜가 9월29일이었다. 그리하여 교우들의 건축헌금 마감일을 9월20일로 잡았다.
돌이켜 보면, 교회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였다. 다들 익사이팅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특히 8월부터 여전도회는 헌신예배 주일마다 성전건축헌금을 위한 봉사로 냉면을 그릇 당 5불 씩에 실비제공하고 있었다. 또 건축바자회도 열었다.

9월 14일 주보 꼭대기에는 이런 뉴스가 실렸다.

“미국교회가 지금 짐을 싸고 있습니다. 교회당의 마지막 잔금 치르는 날이 9월 29일입니다. 건축헌금 약정하신 분들은 가능한 한 9월21일(다음주일)까지 내어주시기 바랍니다.”
9월 21일 교회당 마련을 위한 은행융자가 나왔다는 희소식이 들려왔고, 클로징 날짜를 이틀 앞둔 27일에도 건축기금 바자를 여전도회 주최로 열었다. 물품을 제공한 성도는 29명, 자원봉사자가 40명이나 됐다.
그럴 동안 이사준비를 하던 미국교회가 돌연 형편상 클로징 날짜를 얼마간 연기해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사랑으로 이해하고 그러라고 쾌히 승락했다. 그리하여 그해 10월 23일 목요일에 클로징이 완결되어, 마침내 자체교회당을 확보했다. 교회설립 14년만의 쾌거였다!
미국 교회는 11월 29일에야 이사를 완결했다.

최초의 건축바자

팰리세이즈 본당인 캘버리처치 구입을 위해 여전도회는 사상 최초의 건축바자를 열었다. 9월초 주보에 “본 교회 최초(?)의 바자를 위해 물품헌납을 하실 교우들은 친교실 벽에 붙어있는 표에 이름과 품명, 수량을 적어 넣어달라”는 광고가 났다. 김하식-송기화 교우는 고추장 48병을 헌납하기도 했다. 9월 14일 오후 여전도회 헌신예배 주보에는 이렇게 기재됐다.

“9월 27일에 있을 여전도회 주최 건축헌금 바자를 위해 여전도회 회원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기도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1일자 교회소식란을 보자.

“이번 토요일 여전도회가 주관하는 바자가 있습니다. 점심과 저녁 식사는 교회에 오셔서 하시기 바랍니다. 맛있는 음식과 여러 가지 물건이 시중보다 싼 가격으로 준비되어 있사오니 오셔서 쇼핑하시기 바랍니다. 친지들에게 선전해 주시기 바랍니다…또 김치병이 있으신 분은 목요일까지 교회에 갖다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들 극성이니, 하나님이 어찌 웃으시지 않을 수 있겠으며 교우들은 또 어떻게 가만히 앉아 배길 수 있겠는가!
또 온 교우를 대상으로 공문도 냈다. 여전도회 회장 명의로 된 공문이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께 드립니다.
우리로 하여금 미국까지 오게 하시고 또 뉴저지한인장로교회를 한 식구로 섬기게 하신 하나님의 경륜에 감사드립니다.
뉴저지 한인장로교회 역사 14년만에 우리들의 자체교회당을 주신 주님께 입으로 다 어떻게 감사드릴 수 있겠습니까? 이 일은 하나님이 기획하시고 우리를 통해 이루신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희 여전도회는 감사와 기쁨을 같이 나누기 위해 집안에서 살림하며 나가서 일하는 바쁜 일손들이지만 우리의 힘을 모아 교회당 건축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마음과 지혜와 힘을 모았습니다. 몇 년 전부터 성전건축을 위한 바자회를 열려고 기획하고 준비했지만 그 일이 쉽게 되지 못했습니다. 이 역사적이고 뜻깊은 일에 여러분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여전도회 바자회를 위해 여러분들의 헌물이나 시간봉사를 원합니다. 또 재정적인 후원도 환영합니다.
처음 하는 일이라 우리는 이 일을 잘 모르오니 도와주시고 협력해 주시고 지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또 우리들이 만들어놓은 물건들을 마음껏 사용해 주시기 바라며 9월 27일(토) 친교실에서 뵙겠습니다. 우린 힘을 다해서 준비하겠습니다.

여전도회 회장 김귀남 집사 드림

※ 9월 25일(목)〜27일(토) 이 기간 중 일손이 필요합니다.
시간을 내실 수 있는 분은 김귀남 집사에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전 꾸미기

자체성전을 마련하자마자, 성도들은 내 집이라도 마련한 듯 바침과 드림의 정성의 손길을 뻗치기 시작했다.
그해 11월초에 장로장립을 하게 된 이명호 집사가 기념으로 본당 강단 및 성구 일체를 봉헌했다. 기존 강단은 교회학교용으로 쓰기로 했다. 양호식 장로도 주일학교 교실에 비치할 피아노를 봉헌했다. 새 권사 임직자들은 교회 마이크시스템을 봉헌했다. 한 교우가정은 친교식탁 및 의자 세트를 익명으로 헌납했고 그후 줄이어 여러 교우들이 식탁 세트를 헌납했다.
또 여러 교우들이 몸과 시간을 바쳐 아래층 친교실을 확장하고 페인트칠을 시작했고, 뜰에서도 정원수, 잔디 깎기 등 조경 작업에 나섰다. 11월초 중·고등부실을 45석 규모로 넓혔다. 중·고등부 교육관 수리가 완공되자, 전기공사를 양철순 집사가 맡고 전기시설 일체를 이정호 집사가 헌납하기도 했다.
새 간판을 만들어 달거나 교회 부엌에 냉장고를 들여놓는 이들도 있었다.
12월 8일부터는 유아부실을 방음유리로 막아 어머니들이 거기서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했다.

여전도회 연합 성경퀴즈 대회 우승

그해 9월 14일 미주한인장로회 동노회 여전도회 연합회(회장 오안순) 주최로 뉴욕 한민교회에서 제2회 성경퀴즈대회가 열렸다. 본 교회 팀 3명(고순이·이윤성·김혜숙)은 장하게도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연합회장이 본 교회 오안순 권사인데다 김혜희 전도사가 심사위원 중에까지 참가했으니 이를테면 본 교회 일색이었다. 이것은 말씀교육의 승리였고 축제였다!
이날 성경퀴즈 대회 전 오안순 회장이 이끈 예배 중 박석린 목사는 ‘말씀에의 한 뜨거움’(눅24:32)이란 말씀을 전했다. 연합회 전도부장 홍신순 권사가 사회한 제2부 대회는 오 회장의 대회인사, 참가자들과 심사위원 소개, 대진표 추첨, 본 대회, 심사발표, 시상식 등으로 진행됐다.

성경퀴즈 출제위원은 김정국, 정영환, 김창길, 송병기 등 네 목회자들이었고, 심사위원은 이영숙, 박진현, 김혜희 3명의 전도사가 맡았다. 참가팀은 모두 9교회 팀이었다.
이날 응원을 위해 뉴욕까지 원정(?)을 간 교우들 14명을 위해 조인기 집사가 저녁을 한턱내기도 했다. 참으로 멋지고 통쾌한 하루였다.

장로·집사·권사 임직식 거행

그 해 11월 2일 오후5시에 강동열 장로 취임, 이명호·양호식 집사 장로장립, 강신원·박정예 권사 취임식 등 임직식을 동시에 거행했다.

여전도회를 둘로 나누다

그해 11월 30일에는 여전도회의 부흥과 효율적 운영을 위해 만 35세 이상은 여전도회로, 만 35세 이하는 청년여전도회로 분리, 재편했다. 여전도회 고문으로는 양호식 장로가, 청년여전도회 고문으로는 이명호 장로가 각각 임명됐다.
후에 교인수가 점점 많아지면서 여전도회는 3·4개로 나뉘게 된다.

한국학교 운영 실태 일견(一見)

이 당시의 한국학교 운영 실태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발견돼 흥미롭다.
‘1987년 한국학교 예산안’으로 타이틀 지은 이 자료는 86년 11월 23일 한글학교의 최영규 집사가 작성한 것이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00부터 12:30까지 학교 운영을 원칙으로 하는 예산 계획안이며 기타 세부 계획안 수립 후 가감되는 내용은 별도 보고 예정임.
1986년 11월 23일    한국학교  최영규
이 계획안에 덧붙어있는 한국학교 시간표는 다음과 같았다.
10:00〜10:50 한글
                  10분 휴식
11:00〜11:50 미술·음악·태권도
                  10분 휴식
12:00〜12:50 한글
                  10분 휴식

줄리아드 CCC 음악예배

그해 부활절 시즌인 4월 6일 줄리아드 기독학생선교회(CCC) 학생들이 본 교회를 방문, 음악예배를 드렸다.
이들은 합창 17곡, 소프라노 독창 3곡, 첼로 독주 1곡, 피아노3중주 1곡, 혼성4중창 1곡 등을 연주해 왕성한 찬양 의욕을 보였다. 이들 중 최승혜, 김호영, 경 운, 송 란, 서연화 학생 등은 이때를 전후하여 본 교회를 거쳐갔거나 본 교회 출신 음악인들이었다.
이때 독창을 한 신영옥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을 거친 세계적인 성악가로, 현재 한국에서 맹활약 중이며, 김인혜 역시 한국에서 저명 성악가로, 교수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태원은 훗날 브로드웨이 뮤지컬 출신으로 ‘명성황후’ 주연 등을 맡기도 한다.
당시 혼성4중창과 합창을 주도했던 이기선 씨는 퀸즈장로교회 지휘자를 지냈었고 현재는 서울 총신대학교 종교음악과장 겸 대학교합창단 지휘자로 있다. 그밖에 출연자 모두가 국내외의 유명 음악인들로 활동하고 있다.

표 30. ‘임마누엘’ 창간호.
오안순 권사가 보관 중, 본 편찬위에 내놓았다.

86년도 주요 대내외 이벤트 일지

 3월부터 격주로 오후3시에 헌신예배를 드리기로 함. 한국학교 봄 학기 개학.
 30일 부활절 예배. 교회 회보 ‘임마누엘’ 창간호 발간 배부(표 30)
4월  6일 줄리아드음대 기독학생회(CCC) 20여명 음악예배 인도.
어머니성경반 도서부에 익명교우가 100달러 기부, 도서 19권 구입.
미주한인장로회 동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총회(뉴욕한성교회).
오안순 권사 회장 연임. 김귀남 집사 회계로 선출.
13일장로·권사 투표를 위한 유권자(세례 후 본 교회 3개월 이상
출석자)명단 게재(총 140명)
장로와 권사의 자격, 임직 조항 등이 주보에 실림.
4월  중 미주한인장로회 동노회 제23차 정기노회. 김창길 목사 노회장 취임.
4월  20일 공동의회에서 장로3인·권사3인 선출투표.
피택장로: 강동열 이명호 양호식, 피택권사: 강신원, 박정예.
5월  3일(토)  김혜희 전도사 이명호 집사 부부, 신학교 졸업.
5월  25일 중·고등부 피아노기금 마련. 세차(car wash) 봉사로 $135 모금.
어린이부 김규형 전도사 가족이 하와이에서 1년간 목회실습 차 휴학, 이임.
31일(토)어린이부 브롱스동물원 견학.
6월 3〜4일 (화-수)임마누엘회 볼티모어 수족관, 워싱턴 버지니아 동굴 관광.
어린이부 교육담당 오제나 전도사 부임.
6월 29일 부서장 재임명. 재정부장: 정주섭 장로, 성가대장: 양호식 집사, 재단이사장: 강동열 장로, 남전도회 고문: 정주섭 장로
7월  18-20일 (금-주) 제5회 전교인 여름수양회(헤브론수양관)
주제 : ‘믿음의 성장’. 강사: 장세택 목사
   17-20일(목-주) 중·고등부 수양회(학생  23명 / 교사7명).
20일 성경읽기운동(전도부). 향후 2개월 후 다독상 시상.
8월 1일(목) 매일 새벽기도회(오전5시45분) 때 김 목사 설교.
 3일 경북 금광교회로부터 본 교회 남전도회 개척지원 감사서신 접수.
 3〜6일(주-수)   교회학교 어린이부 수양회캠프(워미투). 학생 53명/교사     5명/학부형 5명 참가.
8월  10일 정기제직회, 김기태 장로를 권고사직 처리.
  17일주기도문 통일찬송가 문안에 따르기로 함.
  18〜20일(월-수) 여름성경학교 개교(학비: 무료).
  21〜24일(목-주) 중·고등부 캠프/장소:레이크 월런포팩/강사:윤수지.
  24일여전도회 헌신예배 주일마다 성전건축헌금 위한 냉면 실비제공.
  31일예배 후 장로-권사 후보 교육. 안영수-김유정 집사(예그린 악단·탤런트·연예인교회) 간증찬양예배.
어린이·중고등부 담당 윤은수 전도사 한국서 결혼 후 시카고 트리니티 신학교서 신학수업.
10월  5일 중·고등부 교육담당 최두열 전도사 부임(프린스턴 신학교 재학).
정기제직회에서 김혜희 전도사에게 신학교 장학금 $1,500 지출 결의.
10월  6일(월) 이명호, 양호식 집사 노회 장로고시 응시, 합격 /뉴욕한성교회.
  7〜9일 제24차 동노회(뉴욕 시온성교회) 총대: 김창길 목사·정주섭 장로.
  12일 87년도 예산위원 11명 선임
  16-19일(목-주) 심령대부흥성회. 강사: 오신주 목사(서울염산교회)
11월  8일 교사강습회. 강사: 김창길 목사.
11월  21·22일(금-토) 포레스트힐 기도원에서 당회 수양회.
23일추수감사주일.
29일미국교회 이사 완결.
30일오후3시 찬양예배 시작
12월   7일 87년도 서리집사 임명(71명/남집사 32/여집사 39). 교역자회.
8일서연화 양(서삼덕 교우 장녀) 서울 세종회관 대강당에서 국향과 협연.
20일건축헌금 6,050달러 부족.
21일성탄주일.
전도시상(괄호 속은 대상자 수): 1등 정낙신(4), 2등:박현서(3), 3등:조항인(2), 4등: 지윤희 강신원 박영주 오민자(a) 박정예 이명호 김에스더(1).
25일성탄절 예배. 교회학교 성탄축하 순서.
28일학습·세례·유아세례
공동의회(결산·예산 통과)
성경퀴즈대회(심사: 강동열·이명호·양호식)
한국학교 방학.
31일밤11시 송구영신 예배. 1년 기도제목 제출.

1987년

예수를 바라보자

1월 4일부터 주일예배를 1·2부(오전 8, 11시)로 나눠드리기 시작했다.
바로 전 해에 자체교회당을 얻은 때문이었다. 예년처럼 첫 주일에 성찬식을 거행하고 서리집사를 임명했으며, 예배 후 여전도회 주최로 떡국잔치를 베풀었다.(사진 26) 또 제직회 부서의 부장 및 부원명단도 발표했다. 아울러 이춘길 집사를 당회 결의로 안수집사로 임명하고 임직식을 5월에 갖기로 했으며, 김서운 권사를 명예권사로 임명했다.
새해부터 주보표지에 교회당 흑백사진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진 위에는 ‘예수를 바라보자’(히12:2)라는 교회 표어가 들어갔다. 주보 안쪽은 주일찬양예배 순서와 수요기도회 순서, 다음주일 예배담당란 등이, 뒷 표지에는 교회소식이 실렸다.
교회학교는 학생카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첫 주일이 지난 주중에는 청년여전도회 회원 중에서 100인용 가스밥솥 1대와 전기밥솥을 헌납했다. 또 구역헌금으로 부엌 냉장고를 구입하는 한편 친교실에 새 카펫을 깔았다.
1월 10, 11일 이틀간은 제직수양회를 열었다. 강사는 뉴저지안디옥교회의 변의찬 목사였다. 11일부터 주일 새벽기도회만 중지하고, 평일 새벽기도는 지속했다. 날씨가 찬 겨울동안은 새벽기도회를 교회학교 강단에서 갖기로 했다. 1월말부터 구역예배는 주중에 각 구역별로 적당한 날에 드리도록 했다.
한편 새해 초 교회가 담임목사의 목회를 위한 새 자동차(올스모빌 커틀라스 슈프림)을 구입해 드렸다.
새해 초부터 인사변동이 있었다. 중·고등부 최두열 교육전도사가 미국장로교에서 목사안수를 받아 뉴저지연합장로교회로 이전한 것이다. 그는 전년도 10월 5일에 본 교회에 부임했었기 때문에 불과 약 4개월 남짓 재임한 셈이었다.
신년도 첫 제직회는 2월 1일에 가졌다.

사진 26
전교우(1987년)
Church members(1987)

김 목사 7년만의 캐나다 나들이

김창길 목사는 2월 5〜9일 7년만에 캐나다를 방문했다.
캐나다노회 주최 제3회 연합제직수련회 인도차 간 것이었다. 김 목사는 5, 6일에 토론토신학대학에서 기독교교육 특강을 하고 7일에는 제직수련회에서 설교 및 주제강연을 했다. 또 8일에는 토론토 교역자협회의 초청으로 설교를 했고, 캐나다 노회원들과 간담회도 가졌다. 김 목사는 1980년 부임한 이래 너무너무 바쁜 목회 때문에 뉴저지 생활을 7년 남짓 꼬박 채운 뒤에야 비로소, 제2의 고향 같은 캐나다를 오랜만에 되찾은 셈이었다.
하나님도 측은하게 여기셨으리라 믿어진다.

정기노회와 헌당예배 준비

자체교회당을 마련한 뒤 첫 번째 본격적인 첫 대외행사로 제25회 동노회 봄철 정기노회가 본 교회당에서 있을 예정이었다. 그래서 준비위원장으로 양호식 장로를 임명했다. 한편, 5월 31일 주일에는 헌당예배를 겸하여 임직예배를 드리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헌당예배 준비위원장으로는 이명호 장로를 임명했다.
노회원들을 위한 식사 준비는 청년여전도회가, 헌당예배 음식은 여전도회가 맡기로 했다.
당회장 김 목사는 헌당·임직예배 초대의 글을 내외 성도들에게 띄웠다.

((헌건자(獻鍵者): 대표로 건물을 바치는 자))

헌당·임직예배를 드리다

5월 31일 오후5시에 예정대로 교회당 헌당예배 및 안수집사·권사취임 예배를 감격과 기쁨의 눈물 속에 가졌다. (사진 27)

사진 27. 임대하여 사용하던 캘버리 교회를 $500,000.00에 매입하여 헌당예배 겸 임직자 취임예배를 드렸다.
Inauguration worship service for church officers and dedication worship service at the Calvary Church after the place was purchased for $500,000.00

모범 교회를 향한 씨름

자체교회당을 마련하게 되면서 교회는 안팎으로 모범적인 교회가 되기에 힘썼다. 특히 경건한 예배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부터는 외부손님도 자주 출입하게 되므로 꼭 필요한 훈련이었다.
3월초에는 예배 중 경건을 위해 강단 뒷문을 봉쇄했고, 3월 15일부터는 예배실로 들어오는 순서대로 회중석 앞자리부터 6명씩 앉기로 했다. 그날 또한 봉사부 주최로 교회당 안팎을 대청소했다.
3월 29일에는 예배·안내부에서 온 교우들에게 경건한 예배를 위한 특별사항을 부탁했다.

• 미리 오셔서 은혜 받기 위해 기도 드립시다.
• 오시는 순서대로 앞좌석부터 6명씩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 아기를 동반한 어머니들은 유아실(방음유리방)에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 기도 중에 도착한 분들은 문밖에서 기도를 마친 후 조용히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 기도시간에 물건을 옮기거나 눈을 떠서 무엇을 쳐다보지를 마시고 간절한 맘으로 기도에 아멘으로 응답하십시다.
• 예배 중 교우나 안내위원은 응급시 외에는 출입을 삼갑시다.

모범적인 교회가 되려는 노력은 5월중에도 나타났다. 그 즈음은 바깥 주변에 많은 신경들을 썼고, 이를 위한 교우협력사항이 5월 10일 주보에 게재됐다.

• 교회당에 오가실 때 건널목 길을 이용하고 자녀에게 신호등 지키기를 가르칩시다.
• 어린이들이 교회 울타리 밖을 나가지 않도록 보호하십시다.
• 울타리 나무를 헤집고 다니지 낳도록 합시다.
• 교회 주위에 휴지를 깨끗이 주워 깨끗한 교회를 유지합시다.
• 잔디깎기와 잡초 제거에 앞장섭시다.
• 가능하면 교회에 오실 때 정장을 하시기 바랍니다.

1인1불 선교헌금운동

그해부터 대외 선교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우선 3월 8일에 전도부 주최 ‘1인 월1불 지원 선교운동’이 시작돼 당일 교우들 앞에서 설명회가 있었다.
4월 12일 제직회는 전도부 주관으로 백형무 목사의 필라델피아 개척교회에 400달러를, 한국은목교회(김환천 전도사)에 300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또 1인1달러 선교모금운동은 당시까지 약570달러가 모금됐고, 9월21일 제직회 당시 1,281달러로 보고됐다.
이 선교기금은 해외선교를 위해 총회 선교부로 보내기로 했다.

성금요일 가상7언 연합예배

그해 4월 17일 동노회 뉴저지시찰회(시찰장:이성재 목사) 주최로 연합 성금요일 가상칠언예배 및 성찬식이 본 교회당에서 오후8시부터 거행됐다. 시찰회 소속 목회자 7명이 십자가상의 주님의 일곱 말씀을 차례로 3분씩 설교하고, 찬양은 포트리한인장로교회 성가대가, 특송은 본 교회 음악사역자들이 담당했다.
성찬식은 정인영 목사가 집례했고, 가상7언은 이성재, 정인영, 전도식, 김창길, 김용주, 장세택, 김춘실 목사가, 축도는 부노회장 박석린 목사가 맡아했다. 참가교회는 모두 9교회였다.

Teen을 위한 부흥회

중·고등부 ‘십대를 위한 부흥회’가 금요일인 4월 24부터 주일인 26일까지 개최됐다.
강사는 과거 본 교회에서 교육부 사역을 한 바 있는 이학권 목사였다. 이 행사를 위해 교사들이 특별휴가를 내기도 했다. 25일은 슬리핑백을 갖고 와서 교회에서 철야모임을 지냈다. 26일은 중·고등부 예배 후 오후 3시에 학생간증과 함께 학부모들을 위한 신앙교육 세미나도 가졌다. 제목은 ‘자녀들을 위한 신앙교육을 어떻게 하나?’였다.
그밖에도 주제강의, 그룹토의, 기도와 찬양, 복음성가, 게임 등이 교과목으로 진행됐다.

음악예배를 드리다

1987년 5월 24일 오후5시 본 교회 성가대 주관으로 음악예배를 가졌다. 당시 성가대원들은 모두 20명이었다.
물론 과거 70년대 초창기부터 교회 음악행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모두 축하행사 정도였고 소규모였다. 또 순수하게 음악예배만 따로 드린 적은 없었다.
87년 당시는, 새 지휘자로 임명된 최윤정 교우가 줄리아드 음대를 갓 졸업했고, 최승혜 교우도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기 임박한 무렵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최윤정 교우는 3월초 본 교회 예배를 돕는 기악중주단의 리더로 임명돼 활약하다가, 일약 성가대 지휘자로 부상했다. 당초 3월 1일자로 임명된 기악중주단 단원은 바이올린에 최윤정, 김 엘리자벳, 송정훈, 첼로에 허윤정 교우였다. 그러나 최윤정의 지휘자 재임기간은 짧았다.
3월6일 주보에 따르면 최승혜는 시애틀에서 공연도 했고, 졸업 후 한국에서도 귀국연주를 했다.
본 교회는 음악인 자원이 비교적 풍부했다. 역대 지휘자들이 대부분 한국이나 미국의 명문음대 출신들이었고, 성악가 기악연주가들이 많이 들 오고가면서 독창·독주를 하거나 성가대에서 봉사했다.

성가대 조직

뉴저지한인장로교회 성가대
대  장 이명호 장로
총  무 김상진 집사
지  휘 최윤정
반  주 최승혜 / 경 운
소프라노 박광자 구자섭 고순희 이윤성 김은숙 박연서 박민서 송 란
앨    토 박정예 이인순
테    너 최정규 김명걸 김경열 유대영 김은성
베 이 스 조인기 김상진 천동학 송인원 김성인
마침 그날 반주자 최승혜 교우가 학업을 마치고 귀국하기 때문에 저녁예배 후 송별회로 이어졌다. 오르간 반주자 경 운 양은 또 88년 6월 7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가진 데 이어, 17일 서연화 양(서삼덕 교우 장녀)의 피아노 연주도 대구교향악단과 협연으로 있었다.
그해 가을에는 새로 김홍일 지휘자가 부임, 성탄절을 위한 메시아 공연을 준비하여 실행하게 된다.

제직회 위임제 부활

6월 초 제직회에 제직 총원 87명의 과반수인 44명이 참석치 않아 제직회를 그 다음주로 연기한 일이 있었다. 원인은 주로 1·2부 예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 일로 인해 이듬해인 88년 2월 7일 제직회 때 서면상으로 위임할 수 있는 위임제를 부활시키기로 결의했다. 한편 그날 제직회때 김 목사는 “교회 주변 이웃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메시아’ 연주회에 도전하다

1987년 연말에는 본 교회 사상최초로 ‘메시아’(Messiah) 연주회를 가졌다.
오라토리오(Oratorio·聖譚曲) ‘메시아’는 바로크 시대 독일작곡가 조지 프레드릭 헨델이 영국에 귀화한 뒤 오페라 공연이 파산지경에 이르렀을 당시, 찰스 제넨스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과 성취를 중심으로 성경에서 발췌 나열한 구절들을 갖고 작곡한 작품이다.
‘예언과 탄생’, ‘고난’, ‘부활과 영생’ 등 모두 3부로 구성된 이 대곡의 전53곡을 헨델은 식음을 거의 전폐하다시피 단 20여일 만에 완성했다. 이 작품을 쓰면서 그가 거듭난 체험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메시아’는 1742년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자선음악회로 초연됐다. 당시 합창단원 수는 45명이었다.
해마다 부활절과 성탄절 시즌에, 전세계 교계에서나 세속계에서나 어김없이 연주되는 메시아는 타이틀로나 내용과 규모 면에서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독교적 음악작품이며, 성경이 베스트 셀러이듯 가장 많이 연주돼온 곡이기도 하다. 특히 하이라이트인 코러스 ‘할렐루야’는 폴리포닉(polyphonic)과 호모포닉(homophonic) 등을 조화시켜 합창효과를 최대한 살렸다.
본 교회는 ‘메시아’ 중 주요곡을 발췌 선정해 연주하기로 했다. 그해 9월 6일에 갓 부임한 김홍일 신임 성가대 지휘자가 기안한 계획이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87 성탄축하 음악예배에 관한 건’이란 안건을 작성해 제출했다.
기안서 내용을 보면, “기본적으로 본 교회 교인들로만 전곡을 찬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독창자 초빙에 관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한하여 지휘자가 결정하여 하기로” 했다. 당시 ‘메시아’ 연주에 필요한 합창단원수는 도표와 같았다.(표 31)
각 준비위원들의 업무는 다음과 같았다.(표 32)

표 31
연주 예상 인원

표 32
준비위

남성·여성 파트담당 : 연습에 차질이 없도록 성가대원 연락. 출석 독려.
관리담당 : 악보와 가운, 출석부 관리.
홍보담당 : 프로그램 및 포스터 제작, 홍보와 신문광고.
회계담당 : 연습 중 간식과 음식을 준비 제공. 예산 관리.

‘메시아’ 연습 호소와 실적

성탄절을 위한 ‘메시아’ 연습계획은 15회 연습 및 2회 리허설로 주일연습 12회, 토요일 연습 3회, 리허설은 공연일 하루 전 2회 등이었다. 이를 위해 예산을 모두 3천불로 짰다. 10월 26일에 김상진 성가대 총무는 ‘메시아’ 합창단원들에게 다음 공문을 냈다.

할렐루야
‘메시아’ 연습에 참가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메시아’ 연습이 여러 성도님들의 간곡한 기도와 헌신적인 봉사 가운데 한 걸음 두 걸음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져 나가는 이 기쁨을 귀 성도님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번의 메시아 공연이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곡 자체도 상당한 수준의 음악적인 기술이 필요하거니와 음악적인 기술이 있다하더라도 연습을 게을리 하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또한 더 많은 인원이 참여해야만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는 곡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 일이 제대로 될 것인가 하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연습에 한번도 빠짐없이 참석하여 주신 분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향후로도 빠짐없이 연습에 참가해주시길 부탁드리며 연습에 자주 빠지신 분에게는 여러 가지 바쁜 일로 피치 못해 빠지셨음을 충분히 이해하며 웬만한 일들보다는 이번 연습에 시간의 우선 순위를 할당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동봉해 드리는 연습 참가내용을 참고하시고, 연습을 못하신 곡에 대해 신경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이번의 거룩한 일에 동참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1987. 10. 26
성가대 총무 김상진 드림

연습은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본의 아니게 빠질 수 있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교회 안의 이런저런 사역을 맡은 이는 더더구나 그렇다. 대표적인 예로, 당시 가장 바쁜 이들 중 한 사람인 K교우에게 전달된 연습실적서는 이러했다.(표 33)

표 33

아무러나, 이런 고되고도 알찬 연습과 기도를 통하여, 그해 ‘메시아’ 첫 연주회는 성도들에게 엄청난 감동과 은혜를 끼쳤다.

‘메시아’ 연주회 막을 열다

1987년 12월 20일 드디어 첫 ‘메시아’ 연주회가 개최됐다.
‘메시아’ 연주회 초대의 글을 당회장 김창길 목사는 이렇게 썼다.

아브라함에게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시던 우리 하나님은 저희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가르침을 받던 조국 대한민국을 떠나 이역만리 떨어진 북미까지 보내셨습니다.
여기 뉴저지 허드슨 강변 언덕에 제단을 쌓은 지 15개 성상이 흘렀습니다.
모일 때마다 우린 작은 입으로 찬송을 불렀습니다.
한참은 찬송이 두 볼을 적시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찬송은 하늘에서 와 닿았다는 소망이었습니다.
언제나 찬송은 마음을 가다듬는 예배였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넓은 대지 위에서 나그네가 되어 부르는 찬송을 통하여 당신은 우리에게 기쁨과 감사를 주셨습니다. 처음 이십 명이 부르던 찬송이 이제는 백여 명이 부르는 우렁찬 오늘의 찬송이 되게 하셨습니다.
또 우리에게 신나게 찬송을 부를 마당(교회당)을 주셨습니다.
이제 눈이 내리고 날씨는 차가운 때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순례자로 사는 우리에게 찾아오신 아기예수께 우리 다 함께 찬양 드립니다.
그 동안 수고하신 성가대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당회장 김창길 목사

첫 메시아를 부른 성가대원들은 다음과 같았다.
대    장 / 이명호
총    무 / 김상진
소프라노 / 박광자 고순희 구자섭 이민숙 김혜숙 김혜경 정현진 조항인 장영수                  김인선 신현숙 최민희 박민서 김혜희 김경희 이성옥 송  란
앨    토 / 박정애 이인순 이은진 김은숙 유정순 유현숙 박현서 윤영희 지윤희 윤귀련
            김연준
테    너 / 최정규 김명환 김경열 김낙중 김명걸 이진수 박대현 유대영 김은성
베 이 스 / 조인기 이진호 김상진 천동학 김성인 송인원 홍용화 이영종 김공환

그 해 연말 각부 총회

연말에 모든 각 부서들의 정기총회가 일제히 열리곤 한다.
모든 부서의 총회가 다 귀중하겠지만, 1986년도 12월 14일에 열린 남전도회 총회 중 서기 양철순 집사가 낭독한 전 회의록(85년도 분)을 훑어본다.
장    소: 본 교회 본당
사    회: 이명호 회장
참석인원: 13명
찬    송: 308장
기    도: 이진수 총무
성경말씀: 디모데후서 4장 1절
안   건: 명예회장 추대, 고문, 각 부서장 소개 및 사업계획 발표
  1. 각 부서장 소개
        고문 김기태, 총무 이진수, 회계 최재식, 서기 양철순, 봉사부장 김경열
          2. 86년도 남전도회 명예회장으로 이명호 집사가 조영진 집사를 추대, 만장일치로 통과됨.
         3. 각 부서장 사업계획 발표.
A. 사업부장 서태호
① 월간지(임마누엘 지 2호)를 발간하여 회원들의 신상 및 사업 정보 교환
② 각계의 전문인들을 초빙하여 강연회 개최(강재준 교우 세무강좌)
③ 헌신예배는 되도록 대예배 시간을 피한다.
④ 야외예배 준비는 청년회에서 담당
⑤ 선교사업(한국교회 지원) 본 교회를 상대로 하며 한국에 심장병 어린이들을 돕는다.
B. 전도부 김명걸: 준비 미비로 차기 발표 예정.
C. 총무 이진수: 각 부서의 활동을 위해 적극 협조하며 월간지 발간을 꼭 성공시키겠다.
D. 서기 양철순: 모든 서류는 양식을 만들어 교회의 역사를 기록할 수 있는 자료가 되도록 하겠다.
E. 회계 최재식: 남전도회 회비는 매월 5불 이상으로 하며 회비를 적극 갹출하겠으며 특별한 행사 때는 찬조금 내지 찬조물을 환영한다.
   주기도 : 다같이

아듀, 아쉬운 87년이여!

그해 말에도 예년처럼 12월 31일에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12월 28일자로 교인들에게 보낸 담임목사의 연말 편지를 훑어보자.
주 안에서 한 가족인 뉴저지 한인장로교회 교우들이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함께 우리에게 주어졌던 1987년도 이제는 다 저물어 갑니다. 주님 앞에서 지난 일년동안을 되돌아보면서 생각하고 반성한다는 것은 아쉬우면서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교회는 송구영신 예배를 12월 31일(목) 오후11시에 본당에서 드립니다.
우리 모두 새해의 첫 시간을 주님의 전에서 경건하게 맞이하십시다.
주님은 새해에 우리들의 생애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롭고 기쁜 일들로 전개시켜 주실 것입니다. 동봉한 기도카드를 가족들과 의논하셔서 쓰십시오. 아직도 주위에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치 않으신 분이 계시면 그들을 주님에게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이름을 기재하십시오. 한국에 계시든지 타국에 계시든지 가까운 곳에 계시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마음을 열게 하시고 움직여 주님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본 목회자는 일년 동안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 드립니다. 지난 수년 동안 여러분의 기도  카드의 기도 제목들이 응답 받았습니다.
1987. 12. 28
  여러분의 종  김 목사 드림

그해의 기타 이벤트 일지

2월 14일(토) 한국학교, 뉴욕한성교회 한국학교 견학.
제2회 교회학교 교사수련회(강사:이수지 전도사)
22일공동의회에서 안수집사 및 권사 3인 선출투표 실시.
안수집사 이진수·조영진, 권사: 박정윤 김귀남 등 각 2인씩 당선.
여전도회 성경공부를 월2회 제2주와 4주 예배 후 갖기로 함(강사: 김혜희 전도사).
3월 1일 삼일절 기념예배. 기악중주단 리더 최윤정 임명.
(바이올린: 최윤정·김엘리자베스·송정훈/첼로: 허윤정)
강단 후문 폐쇄. 3월부터 새벽기도회를 본당에서 갖기로 함.
3월 6일(금) 여성 세계기도일 북부뉴저지 연합기도회(본 교회당).
8일  전도부 1인 월1달러지원 선교운동 설명.
 김목사가 워싱턴서울장로교회(박중석 목사) 낮 예배설교 및 특강인도
 주제: ‘한국 이민교회 -이대로 좋은가?’.
15일  예배 후 각부 월례회, 안수집사·권사후보 교육.
27〜29일(금-주) 동노회 여전도회 연합부흥회(뉴욕한성교회/강사:남정숙 박사).
29일  아기세례·학습·세례.
 저녁예배 후 김형주 집사 송별회(2년4개월간 성가지휘하면서 뉴욕대학  교 석사과정 마치고 귀국).
4월 19일  부활절 예배.
5월 1일(금)  한국서 제작된 새 교회 간판 부착(동판. 이명호 장로 기증).
27〜5월1일 김 목사 크로스웨이 성서연구반 수강(갈보리기도원).
5월 3일  어린이주일. 총동원주일(전도부 주관). 예배 후 전 교우 기념촬영.
10일  어버이주일.
16일(토)    중·고등부 그레잇어드벤처 다녀옴.
17일  춘계야유회(톨맨 주립공원).
24일  오후찬양예배를 성가대 주관 음악예배로 갖다.
 교회당 대청소(봉사부 주관).
 최승혜 반주자 송별회.
31일  교회당 봉헌예배 및 안수집사·권사 임직예배
6월 17일  매주 목요일 어머니 기타반 개설하다(지도 이인숙 집사).
20일  교회학교 교사들 세미나 참가(강사: 임창복 장신대 교수)
23〜26일(화-금) 미주한인장로회 제12차 총회(동부교회·포코노수양관.
 본 교회 총대 강동열 장로.
7월 5일  매주 1부 예배 후 하층에서 커피와 다과가 준비됨.
11일(토)    어머니성경반, 밸리포지 국립공원 야유회 다녀옴.
19일  예배 후 여전도회 임원과 회원들 동노회 여전도회 제1회 수양회 참석.
 장소 : 마라나타수양관/강사:정영환 목사(뉴욕한성교회).
7월 31〜8월 2일(금-주) 제6차 전교우수양회 개최.
 장소 : 갈릴리기도원, 강사:권순국목사 (나이아가라한인교회)
 설교 :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것(살전 1:2-4)
         은혜받은 자(눅 1:26-38)/환난의 의미(롬 5:3)/
 바울의 철저한 신앙(행 27:20-25)/복 있는 가정(시 128:1-6)/
궁극적인 질문(창 1:26-31)/현세와 내세(눅 16:19-31).
어린이수양회도 동시 진행(강사: 조유경 전도사)
8월  10일(월-수)   어린이여름성경학교 개교(강사:조유경 전도사)
      16일 광복기념주일.
매주일 예배 후 1〜2시 교회학교 교사 성경공부(지도:이명호 장로).
  17〜20일(월-목) 노회교육부 주관 수양회에 김 목사와 김혜희 전도사 참가.
  27〜27일(월-목) 중·고등부 ‘아멘87’ 수양회 참가(33명).
9월     6일 김홍일 신임 성가대 지휘자 부임(서울음대 졸).
        8일(화) 뉴저지 시찰회 본 교회서 회집.
        13일 장년부 성경공부 개시(오전10시 30분-55분 / 인도:강동열 장로).
   19〜20일 중·고등부 신앙수련회(강사:빌리 박·랜 추·김규형 전도사)
당회장 컵 골프대회(필립 로텔라 골프클럽).
입상자 : 메달리스트: 김성민, 챔피언: 차민석,
 1등: 이헌일
 2등: 이세형
 3등: 이완구, Longest: 강기중, Nearest: 조영진,
행운상: 정주택.
        동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성경퀴즈대회서 본교회 팀 3등 입상(어머니 기타반 특송).
성가대 메시아 연주 대원 모집.
청년여전도회, 선교 헌금함 제작 비치.
10월 6〜7일(화-수) 미주한인장로회 동노회 제26회 정기노회 개최(뉴욕한성교회).
본 교회 총대 정주섭·강동열 장로 참석. 정 장로 부노회장에 피선됨
10월 11일 김낙중, 황성남 집사의 안수집사 인준통보와 소개.
18일중·고등부 교육전도사로 빌리 박 전도사(프린스턴신학교 교역학석사) 부임.
23〜25일(금-주) 부흥성회. 강사 김창엽 목사(리버티신학교 교수).
25일설립15주년 및 헌당 1주년 기념주일.
31일(토) 임마누엘회, 필라델피아 랭캐스터 메노나이트 촌과 모형 성막 순례.
중·고등부 교회연합친선배구대회 참가(프린스턴 신대)(사진 28)
11월 15일 본당에서 갖던 새벽기도회를 겨울동안 하층 주교실에서 갖기 시작.
18〜19일(금-토) 어린이부 교사들 프린스턴신학교 강습회에 참가(5명).
25일(수)서연화 양(서삼덕-구영자  장녀/줄리아드음대 피아노전공) 밀워키
교향악단과 협연.
29일오후 프린스턴신학교 복사중창단 초청 음악예배(설교:호성기 목사).
31일매달 마지막 토요일에 성경반 개시. ‘기독교교리’(강사: 이진수 집사).
12월 6일 1부 예배를 오전 9시로 변경.
각부 총회.
13일성찬식.
20일오후8시에 성가대 제2회 헨델 ‘메시아’ 공연.
예·결산을 위한 공동의회.
25일성탄절. 교회학교 특별순서 공연.
88년도 서리집사 임명식.
27일오후1시 성경암송대회 개최.
입상자 : 1등:이정희 권사/2등:이진수 집사/3등:오안순 권사/4등:박영주 집사/5등:오순덕 권사
바디매오선교회 초청 찬양·간증의 밤
31일(목)송구영신예배.

사진 28. 임마누엘회
Members of the Emmanuel Association of Senior Adults

1988년

말씀의 확신에 바로 서자

Glory! 또 다른 새해가 밝았다.
한해 목표는 ‘말씀의 확신에 바로 서자!’(딤후 3:16)—바울이 디모데에게 교훈한 바람[願]이었고 우리들의 소망이기도 했다. 88년은 모두들 몸도 맘도 ‘팔팔’ 살아 움직이는 한 해가 될 듯했다.
첫 주일인 1월 3일에는 청년여전도회가 새 임원명단을 발표했고 10일에는 여전도회 총회가 있어 역시 새 임원들을 선출했다. 10일 예배 후에는 이태호 집사(박정윤 권사)댁에서 성가대 및 교회학교교사 초대 신년만찬회가 성대히 베풀어졌다.
교회는 새해에 교회관리인으로 김성인 집사를 임명했다. 금요일인 15일에는 어머니기타반이 연습곡을 녹음한 테이프를 제작, 출판기념예배를 드렸다. 찬조금은 선교비로 지출될 것이었다. 1월 22〜23일에는 예년처럼 제직수련회를 개최했다. 강사는 뉴욕한길교회 박석린 목사였다. 또 24일에는 신년 첫 제직회로 모였다.
같은 청년여전도회는 친교실에 성미함(誠米函)을 설치했다. 2월 7일에는 신임제직들을 소개한 뒤 신임전도사 2인을 위한 학비지원예산 총6,000달러 정도를 전도비, 예비비, 구제비에서 돌려쓰기로 통과시켰다. 그날 또한 새해 구역담당자들을 발표했다. 제직회 부서 책임자는 뒤늦게 2월 26일에 함께 임명됐다.

2부 예배 및 2부 성가대 시대 개막

그해 2월 14일에는 본 교회 집사 출신으로 뉴욕장로회 교역학 석사과정 중이던 김진양 전도사가 부임하면서, 교구장과 1부 예배 성가대 지휘 등을 맡게 됐다. 과거 서울교육대학 교수를 역임하기도 한 김 전도사는 목사 안수를 받은 뒤에는 본 교회의 개척 지교회를 섬기게 된다. 김 전도사는 곧 1부 예배 성가대 조직 준비에 나섰다.
1부 성가대는 곧 호산나성가대로, 2부 성가대는 알렐루야 성가대로 명명된다. 2월 28일부터는 2부 예배로 나뉨에 따라 두 성가대가 각각 찬양을 맡게 됐다.

컴퓨터 시대 열다

20세기말과 21세기 정보시대의 총아인 컴퓨터.
요즘은 컴퓨터 없이는 ‘안 되는’ 세상이다. 교회를 예로 들어보자.
목사님의 설교 원고 준비로부터 교회 행정 정책의 기획수립과 각부 사업계획, 재정 예·결산 산출과 관련 기록 일체, 모든 자료와 도표, 책자의 출판 및 인쇄와 발행, 문서보관, 네트워크를 통한 가상회의, 교회 주보나 회보를 장식해주는 아름답고 화려한 그래픽디자인, ‘쿨’(cool)하고 ‘핫’(hot)한 멋진 프레젠테이션, 각종 시청각 기기와 가히 환상적인 멀티미디어, 어린이를 위한 성경 전자게임…
그뿐인가. 인터넷을 통하여 국제사회에 우리 교회를 소개하는 웹사이트. 한인 1세는 아직 몰라도 1.5〜2세 성도들에겐 필수적인 정보통신망인 전자메일(e-mails)과 친교와 상담, 교신용 채팅 등등. 우와…! 이러다간 앞으로 컴퓨터 없이는 아예 ‘작동불가’(?)한 교회도 생길지도 모른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미 컴퓨터와 인터넷을 중심한 소위 ‘사이버교회’(Cyber-church)도 늘어간다.
교회일꾼들도 성직자와 교역자는 물론 교사들, 비서 등 웬만한 교회 직원에 이르기까지, 컴맹들은 이제 교회사역도 하기 힘들어졌다. 성가대 지휘자나 연주자들만 해도 기초적인 ‘Noteworthy’로부터 ‘Finale’에 달하는 컴퓨터 기본프로그램, MP3 플레이어로부터 컴퓨터에 연결된 키보드연주, 고도의 신서사이저에 이르는 음향프로그램 등 각종 음악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익혀야 하는 시대가 됐다.
좋든 싫든 교회는 이제 사회의 대표적인 첨단 컴퓨터 활용 단체로 되어 있다. 컴퓨터에 ‘묶여’ 산다고 해야 할지…
그런데 말난 김에, 우리 교회 컴퓨터 시대가 열린 때는 언제일까? 1988년 3월 27일 주일 주보 교회소식란에는 이런 뉴스가 떴다.
“남전도회(회장 이진수 집사)에서는 교회에 컴퓨터 일체를 기증하셨습니다.”
‘일체’라는 말은 컴퓨터 본체는 물론, 기본적으로 내장된 한글 워드프로세서 등 교회 사역에 꼭 필요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모니터와 프린터 등 주변기기 세트 전체를 뜻함일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은 흔해빠진 스캐너 등 그래픽에 필요한 프로그램이나 이메일, 인터넷 등은 활용되지 않았다.

컴퓨터는 20세기초에 이미 개발됐지만, 컴퓨터 문화는 1980년대 말기쯤부터 국내외에 전반적으로 활짝 꽃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까지도 개인이나 회사의 컴퓨터가 전자 ‘장난감’과 방불한 원시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엉성한 기기와 프로그램이 많았다. ‘펜티엄’ 이전, 기억에도 흐릿한 386, 486 시대. 한글 2.0… 시대.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개발돼 나왔지만, 각종 소프트웨어가 한창 개발단계여서 워드프로세서나 주소록, 입출고 상태 따위를 기입해 넣는 전자장부 등에 해당하는 기초적인 프로그램을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90년대 전반기를 벗어나면서 한인사회에도 컴퓨터문화가 급격히 발전해 나갔다. 각 한국어 신문의 활자는 이미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 사이에 레이저프린터로 뽑은 깔끔한 컴퓨터 활자로 바뀌어갔다.

아무튼 88년 3월에 본 교회가 ‘컴퓨터 일체’를 구입은 했으나 당장은 어떤 혜택을 주었는지 주보 상으로는 나타난 바가 별로 없다가 몇달씩 지나면서 컴퓨터 한글프로그램으로 제작한 순서지가 선보이기 시작했다.
예컨대 그해 5월6〜8일에 열린 남전도회 주최 제1회 신앙강좌의 주보는 텍스트가 모두 컴퓨터 폰트였다. 교회주보에는 6월 12일자 광고란에 컴퓨터 폰트가 첫선을 보인 듯 하다. 당시는 한글 폰트가 오늘날처럼 발달하지 못한 데다 출력기가 값비싼 고급 레이저프린터가 아닌 이상 글씨가 과히 깔끔하지 못했다.

일찍이 본 교회에는 몇몇 컴퓨터 과학자도 있긴 있었다. 우리 교회에 다니면서 스티븐스 공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김일영 교우가 그 한 사람. 주보 상으로는 1983년 사순절에 본 교회로 전입교를 한 기록이 있고 그해 10월 김남연 씨를 본 교회로 인도한 연유로 전도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본 교회 체류기간은 짧았다. 그해 석사학위를 받고 가족과 함께 83년 12월초 취업 차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컴퓨터 연구에 관한 본 교회 주보의 첫 번째 기록은 1989년 6월 25일 본 교회 이휘봉 집사가 남전도회 주최 컴퓨터 교양강좌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이 집사 역시 스티븐스 공대 컴퓨터공학 석사출신이었다.

사진 29. 스티븐스 공대 기독학생회 창립예배
Opening worship service of the Christian Student Association at the Stevens Institute of Technology.

스티븐스 공대

호보큰에 있는 스티븐스 공과대학(Stevens Institute of Technology·SIT)은 우리 교회랑 인연이 깊다. 교회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이기도 하지만 한인 유학생들이 늘 끊이지 않고 본 교회를 거쳐갔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원 기숙사생들이다.(사진 29)
1870년 설립된 스티븐스는 매사추세츠 공대(MIT) 등과 함께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명문으로 한국을 비롯한 해외 유학생들도 많이 온다. 학생들·교수진·산업체가 일체가 되어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개념부터 실제 마켓화(化)에 이르기까지 함께 개발하는 교육환경 ‘테크노제네시스’(Technogenesis)로 유명하다.
응용과학 연구에 역점을 두며 산업과 환경 문제 등 실질 분야의 문제 해결에 크게 기여해왔다. 교양과정 외에 기술공학(엔지니어링), 컴퓨터공학, 기술관리 분야 등의 학사, 석사, 박사학위 과정이 있다. 근래에는 ▷엔지니어링스쿨, ▷응용과학·인문학부, ▷테크놀로지·매니지먼트 학교 등 3개 스쿨로 재편했다. 맨해튼 미드타운 맞은 편 허드슨 강 건너 자리잡은 55 에이커 넓이의 캠퍼스는 공원처럼 조성돼 있고 다양한 스포츠 시설이 갖춰져 있다. 라크로스(하키의 일종)팀인 ‘덕스’(The Ducks·‘오리 떼’란 뜻)를 비롯한 남녀 테니스, 크로스컨트리 등 운동경기의 뜨거운 열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1,400명의 학부, 2천명의 대학원생들이 재학중이며 교수진은 120명 규모이다.
본 교회에는 스티븐스 말고도 프린스턴 신학교나 맨해튼의 컬럼비아, 뉴욕대학교(NYU) 등 명문대의 유학생들이 늘 찾아와 신앙생활을 하며, 89년에는 각 구역들 중 유학생들을 위한 구역이 편성됐다.

부활절 메시지

그해 부활절을 앞두고 교회에서는 특별한 공문을 발행했다.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을 이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다시 사신 주님 앞에 다 나와 예배 드립시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새벽 주님을 찾아 무덤에 갔습니다.
그러나
거기엔 이미 주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빈 무덤이었습니다.
무덤엔 주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부활주일엔 죽음을 이긴 흰옷(깨끗한 옷)을 입고 백합처럼 겸손하고 순결하게 예배드립시다.
성찬식이 있습니다. 회개와 기도와 감격으로 임하시길 바랍니다.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주님께 감사의 예물을 기쁘게 드립시다.
부활절 헌금봉투를 함께 보내드립니다.
그럼 부활주일 아침에 교회에서 뵈옵길 바랍니다.
1988년 부활절  아침을 기다리며
  당 회 장  김창길
재정부장  이명호  드림
4월 10일 주보에
“부모님들은 예배후 어린이들에게 특별한 보살핌을 주시기 바랍니다. 밖에서 놀 때에 찻길로 나가다가 자동차에 몇 번 치일 뻔한 일이 있습니다. 각별히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국학교 효율화

그해 5월부터는 한국학교를 보다 효율적인 교육을 위해 5월부터 토요일 오전부터 오후12시30분까지 개설했고, 스쿨버스도 운행했다. 한국학교는 다음과 같은 공문을 띄웠다.
뉴저지 한인장로교회 한국학교 개강에 즈음하여 알려드립니다.
교우 여러분께:
어느 덧 살며시 다가온 봄기운에 모든 것이 훈훈하게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주님의 은총과 더불어 우리 교우님들의 마음 속 깊숙이까지도 더욱 더 훈훈해지기를 기도드리며 아래와 같이 뉴저지한인장로교회 한국학교 개강에 관한 세부사항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아    래
대   상:   유치원생부터 6학년까지
학기  봄:   2월 셋째 주부터 6월 셋째 주
     가을:  8월 셋째 주부터 12월 셋째 주
과목   1교시 한글(초급 중급 고급) 09:30〜10:20
            2교시 국사 10:30〜11:20
            3교시 미술·음악 11:30〜12:20
등록금: 학기당 $80 per person
                     $60(한 가정의 두 번째 학생)
                     $40(한 가정의 세 번째 학생)
장소: 뉴저지한인장로교회
교통편: 스쿨버스 운행(승차비 별도 추가)
5월 1일에는 한국학교가 2명의 교사를 추가로 찾는다는 광고가 교회소식란에 실렸다.

성서대학이 개설되다

뉴저지한인성서학원이 먼저 1988년 4월 26일 본 교회에서 개설됐고 그해 연말에 성서대학으로 개칭하기 시작했다. 성경을 체계적으로 매주 화요일 오후6시30분부터 9시 15분까지 공부할 수 있었고 그해 봄 학기는 10주간이었다.(표 34)

표 34
학생모집

김춘실 목사가 집례한 개교예배에서 원장 김창길 목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딤후 3:14〜17)는 말씀을 전했다. 본 교회 표어와도 일맥상통했다.
1학기 교수별 교과목은 다음과 같았다.
강세대 목사: 신약개론, 이희철 목사: 모세5경, 손길용 목사: 기독교교육개론,
김춘실 목사: 교과과정·교수법, 이학권 전도사: 고대교회사
안내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성서대학을 소개했다.
“우리 학교는 어느 한 교파나 한 교회만을 위하는 입장을 초월하여 독선적이거나 신앙적인 편견 그리고 사이비종파에 빠지지 않도록 경건한 신앙과 말씀에 대한 올바른 탐구로 영적인 성장은 물론 힘있는 그리스도의 역꾼으로 혼탁한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와 생명의 빛을 발하는 건전한 신앙함양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학교 설립 목적:
평신도 훈련을 통한 교회 지도자 및 사회봉사자 양성
성서의 올바른 이해를 통하여 사이비종교로부터 그리스도의 진리 수호
교회학교 교사의 자질 향상을 위하여 이민2세와 이민교회 교육에 기여
선교사역자를 양성, 복음전파에 기여
학과  및 연한: 성서과: 2년 제
신구약 성서 일반과 신학기초
주교사과: 기독교교육과 신학기초
학기 : 3월 첫 주부터  5월 제3주까지(13주)
9월 첫 주부터 11월 제3주까지(13주)
88년   1학기 과목 / 성서과: 모세5경 신약개론 교회사 경건회
주교사과: 기독교교육개론, 신약개론, 교과과정 및 교수법 등

어머니 기타반

어머니 기타(guitar)반은 타 교회에는 흔치 않은, 독특한 우리 교회 자체활동이었고 자체문화였다. 우리 교회의 대외적인 홍보는 물론, 테이프를 제작해 벽지 선교에 활용하기도 했다. 이인숙 집사가 맨 처음 지도를 시작한 어머니 기타반의 반장은 오민자(a) 집사였고 고문은 강동열 장로였다.(사진 30)

사진 30.
어머니 기타반 연습광경
Women’s Guitar Club

매월 수강료는 20달러였다.
6월 5일 주보에는 테이프 홍보광고가 났다.
“어머니 기타반의 두 번째 찬양테이프가 교회당 출입구에 놓여 있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가져가시고 옆에 도네이션 함이 있습니다. 여기서 모금되는 전액은 벽촌에 선교기금으로 쓰입니다. 격려해 주시고 협조하시기 바랍니다.”

여전도회, 통성으로 합심기도

6월 11일 토요일 여전도회 월례기도회가 열렸다. 강사는 김에스더 사모였다. 여전도회가 이날 통성기도에서 마음과 입을 모은 기도 제목들은 이러했다.
자신들의 회개
목사님과 교회를 위하여
전도사님들을 위하여(김혜희 / 김진양/오제나 전도사).
이명호 장로님(김혜희 전도사) 입국 수속을 위하여
교육관 구입을 위하여
우리 교회가 돕는 지교회와 교역자들을 위하여
필라중생교회(백형무 목사) 전도부
서울은목교회(김환천 전도사) 전도부
강원도 상노내산교회(황규찬 전도사) / 청년여전도회
경기도 만정영생교회/청년여전도회
남해섬교회/남전도회
강원도 가곡교회(이영희 목사) / 임마누엘회
남양만 반석교회 / 임마누엘회
우리들의 자녀를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남북통일·88올림픽·대통령과 국회의원)
미국을 위하여(세속주의·물질만능주의·향락주의)
당시는 일시 귀국한 이명호 장로와 김혜희 전도사의 비자문제가 장기간 해결되지 않아 특히 여전도회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고, 교육관 구입, 그리고 그해로 다가온 88올림픽 등이 특이한 기도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미국을 위한 기도가 부정적인 대상들을 제목으로 삼은 점도 흥미롭다.

공간 공간 공간 확보를 위하여

그해 6월 교육관 건축을 위한 기도 광고가 주보에 실리기 시작됐다.
7월 17일에는 교육관 구입위원 17명을 임명했다. 구입위는 현재 사용중인 교육관을 255,000달러에 구입하기로 결정하여 10월 2일 정기 제직회에서 통과시켰고, 10월 16일 교육관 구입을 위한 공동의회를 열어 역시 통과시켰다.
한편 교회당 관리부는 본당이 좁아 늘릴 것을 예상하고 본당 회중석 의자 10개를 한국에 주문했다. 개당 500달러인 이 의자를 봉헌할 이들은 관리부장(양호식 장로)에게 신청하라는 주보광고도 났다. 그리하여 7월 29일에 한국서 의자가 도착했다.

그해의 기타 이벤트 일지

2월 25일 오후9시 청년여전도회 목요기도 개시.
26일오르간반주자 경 운 교우, 줄리아드 음대 졸업 리사이틀.
중·고등부, 매주 금요일밤 특별활동 개시.
주중 팰리세이즈팍 한인 어린이 야구단 모집. 린버그스쿨.
1부 예배 찬양을 호산나성가대가, 2부 예배 찬양을 알렐루야성가대가 맡다.
3월 5일 교회학교 수련회(강사 김종훈 전도사/한성교회)
6일88년도 각부 부서 책임자 임명.
교구장·구역장·권찰 연석회의.
어머니기타반(지도 이인순 집사) 기초반 재 신설.
각 구역 말씀인도자 임명.
20일청년여전도회 선교기금 모금 점심바자(그릇당 $3).
성가대 및 교회학교 교사 임마누엘회 초대 만찬회(조영진 집사 댁).
주중 동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집회(뉴욕한성교회). 강사: 주선애 교수.
27일남전도회, 교회 컴퓨터시설 일체 기증.
오후예배를 적절한 시간으로 조정.
4월 1일 뉴저지시찰회 주최 성금요일 가상칠언 예배(포트리한일교회).
2일고 김권석 목사(뉴욕한성교회) 유고출판기념·제4주기 추모예배.
3일부활주일. 성찬식.
5〜6일 27차 동노회(필라델피아한인장로교회) 본교회 총대: 정주섭, 이명호
장로. 본 교회 장로2인 투표 허락. 총회총대로 김 목사와 정 장로 선임.
17일장로 2인, 안수집사 신임(2인) 및 선출(3인)을 위한 공동의회 개최.
안수집사 피택자: 김낙중 황석남 서태호 고수광
한국학교 개강.
본교회 어린이합창단 조직. 지휘: 박근연 선생(전 선명회합창단 노래지도)
4월 29일〜5월 1일  중·고등부 부흥회. 강사 정민용 전도사.
5월 1일 어린이주일.
저녁예배 때 중·고등부 부흥회 강사 정민용 전도사의 락 뮤직과 펑크스타일, 신앙교육에 관한 메시지.
6〜8일제1회 신앙강좌(남전도회). 주제: 이민과 신앙. 강사: 이상현 박사
7일한국학교 개교.
8일부모님주일.
9일뉴저지시찰회(뉴저지초대교회).
뉴저지교회연합회 총회(뉴저지제일교회)
12〜14일 부모님 주일기념 임마누엘회 여행.
22일오후 어머니기타반 주최 찬양예배(테이프 제2집 제작 봉헌).
6월 초 주중 김에스더 사모 졸업(프린스턴 신학교/교역학 석사).
6월 5일 2부 예배후 루이스 모리스카운티 파크에서 야유회.
20〜24일  김 목사와 정주섭 장로가 미주한인장로회 제12차 총회 참석.
26일88년도 서리집사 추가 임명(7명).
2일임마누엘회 뉴욕유람선(Circle Line) 관광.
7월 17일 교육관 구입위원(17명) 임명.
선교일환으로 17N Waldwick, Ramsey, Ridgewood, Paramus에 어머니 성경반 개설(광고).
1부 예배에 주일학교 개시.
중·고등부 교사 이인용 집사, 회계보조 김경숙 집사 임명.
24〜26일  제7차 전교우수양회(포레스트 수양관).
강사 김호일 목사(서소문교회).
설교:‘주님의 요청’(눅5:1-11), 지도자의 자세, 신앙인의 무장, 마귀를 대적하라,
마태복음 강해.
26〜29일 한인세계선교대회(KWM·장소: 시카고 위튼대)에 김 목사 참가.
29〜31일  어린이여름캠프(70명 참가).
8월 1일 중·고등부 캠프(Stroke State Forest)
8〜11일노회교육부 주최 수양회에 김 목사 참가.
8월 7일
12〜14일어린이여름성경학교(매일 학생 110명 이상/교사 10여명/학부모 20명 참석).
14일 광복주일.
15〜18일 중·고등부 수련회 ‘아멘88’(Camp Comanche). 37명 참가.
19〜21일  청년회 수련회(포레스트수양관). 13명 참가.
20일 한국학교 2학기 개학.
21일 청년여전도회 헌신예배(설교: 김에스더 사모/‘믿음의 인내’/욥42:1-6).
29일 청년여전도회 월요기도회(강사:김에스더 사모)
처음으로 1부 예배 회집 수가 80명 넘다
9월 4일 중·고등부 헌신예배(강사 이학권 목사)
청년여전도회 세미나(강사 이인숙 교수/‘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
6일 뉴저지성서신학원 2학기 개강.
11일 남전도회 헌신예배(설교: 송병기 목사).
오르간 반주자 유영은 집사, 피아노 부반주자 김영수 집사 임명.
집사장립 행사위원장으로 강동열 장로 임명.
18일 여전도회 헌신예배(강사: 이인숙 교수).
안수집사 교육.
여전도회 성경공부반(지도: 김에스더 사모).
주중 뉴저지 시찰회(본 교회당).
25일 김낙중 황석남 서태호 고수광 집사 안수예배.
29일   한국서 본당 회중석 의자 도착.
 10월   2일 교육관을 255,000달러에 구입키로 위원회가 결정. 제직회에서 통과 (사진 31)
4〜5일동노회(벧엘기도원 총대 정주섭/양호식 장로). 김진양 전도사고시 합격.
8일 임마누엘회 사과따기.
15일 청년여전도회 선교바자·거라지 세일.
16일교육관 구입을 위한 공동의회.
청년여전도회 선교 점심바자(곰탕).
20〜23일   부흥회. 강사 김계용 목사(나성영락교회).
설교 : 복음(요3:16-18), 선택의 의미(요15:16/빌3:12-14),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행2:1-4/37-47), 그리스도의 편지(고후3:1-3),
23일제직수련회(설교: 김계용 목사).
청년여전도회, 동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성경퀴즈대회 참가(개인 3등).
30일창립 16주년 기념예배.
89년도 예산위원회 임명.
11월 6일 대학부·청년부 교육담당 이학준 전도사 부임(프린스턴신학교).
25〜26일  중·고등부 부흥회.
12월 4일 가족찬송가경연대회(남전도회 주관).
1등: 조인기, 2등: 장대영, 3등: 박병태, 4등: 김영일, 5등: 김성인,
6등: 이형목 (이상 가족들).
8일 매주 목요일 12시30분 어머니성경반 II(야고보서).
11일예결산 공동의회.
헨델의 ‘메시아’ 공연(성가대).
17-18김목사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장로교회 제직수련회 인도.
각부 총회.
중·고등부 헐벗은 이웃돕기 의류수집 캠페인.
24일 교회학교 주최 성탄축하예배.
중·고등부 양로원 방문 성탄축하 연주.
25일성탄절. 성탄축하연(여전도회 주관).
성경암송대회(야고보서·전도부 주관)
26〜28일 뉴저지교협 주최 호산나청소년전도대회 참가(뉴저지제일교회)

사진 31. 제1교육관 겸 사무실
The first educational building and administrative office

1989년

내 집을 가득 채우라

새해의 목표는 ‘내 집을 가득 채우라’(눅 14:23)였다. 자못 도전을 주는 표어였다.
사실, 이제 본당도 교육관도 마련돼 그나마 상당한 공간이 확보됐으니, 주님의 집을 채우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새해에 기쁜 일은 1월 29일 부로 교육관 계약이 완결되어 몰기지 신청에 들어간 것이다. 한달 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이 나돌았다.
한편 신년벽두에 첫주일을 맞은 1월 1일, 성찬식을 거행했고, 8일에는 제직부서 임명과 각 기관 정·부회장 연석회의를 가졌고 당회 부서 책임자를 임명했다. 당회서기와 재단이사장에는 강동열 장로, 건축위원장으로는 정주섭 장로가 각각 선임됐다.
새해 초에는 성가대에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8일에 성가대장으로 양호식 장로가 임명된 것 외에 14일 오르가니스트 경 운 양이 퀸즈한인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89년도 호산나 성가대 총무로 황석남, 알렐루야 성가대 총무 김명걸, 부총무 김성인 집사가 각각 임명됐다. 3월 5일에는 알렐루야 성가대가 새 대원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한편 교육부 주요 일꾼인 교회학교 부장들은 어린이부에 박현서 집사, 중고등부에 이인용 집사, 청년대학부에는 이진수 집사가 각각 임명됐다. 1월 20〜22일에는 전통에 따라 제직수련회가 정인영 목사를 강사로 실시됐다. 1월말 신년도 제직구성이 마무리됐고 구역도 재편됐다.
새해구역은 총 11개로 유학생 구역, 서울구역까지 편성됐다. 서울구역은 서울에 있는 본 교회 출신 성도들의 말씀·친교모임이었다.

월례 연합기도회 개시

그해 2월 6일에는 본 교회사상 중대한 결정 한가지를 내렸다.
매월 제3주 금요일에 기관 연합기도회를 갖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2월 23일 금요일에 첫 연합기도회가 시작됐다. 임마누엘회·남전도회·여전도회·청년여전도회 등이 적극 참여했다. 이 월례 연합기도회는 가장 중요한 영적 전통이 되어야 한다.
사실 성도의 영성생활에서나 교회에서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드물다.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그리고 “모이기에 힘쓰라”고 교훈한다. 각자의 개인경건 시간과 새벽기도 외에도 최소한 한 달 한번 하루저녁만이라도 모든 기관이 합심기도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교회가 영적으로 하나된다는 뜻이었다.
물론 하나님은 개인의 골방 기도, 두 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함께 하는 기도도 들으시지만, 사무엘 시대의 미스바 금식총회(삼상7:5-6), 에스라-느헤미야 시대의 수문 앞 광장 성회(느헤미야8장)처럼 온 무리가 함께 드리는 기도도 기뻐 흠향하신다.
이 월례 기도회를 통해 우리 교회는 많은 응답과 영적 체험과 능력을 얻게 된다.

한국학교 반 증설

한국학교 증설과 새 교사 확보와 관련, 2월 26일 주보에 이런 소식이 게재됐다.

“한국학교는 학생이 50명이 넘으므로 반 하나를 증설하고 이경희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뉴저지한인장로교회 한국학교가 이제 모두 5반과 미술과 음악 그리고 한국 역사반이 있습니다. 1학기는 6월 첫째 주에 방학을 합니다. 본 교회 교우 자녀들에게는 장학금을 지원하며 한글교육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최초 교회 비서 임명되다

1989년 2월 26일 오민자 집사가 교회비서로 인선이 돼, 3월 1일자로 정식 부임했다. 본 교회 사상 최초의 비서이며 2002년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다.
교회가 자체건물들을 마련하고 보니, 교회 행정 실무 내용이 여러 가지로 복잡다단해져 사무원 겸 교회 비서의 존재는 긴요했다.
또 그만큼 업무가 가중되는 직책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 집사는 비서로 임명된 이래 2002년 현재에 이르도록 지금껏 충성을 다하며 봉사해왔다. 오 비서의 근무시간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정규 근무 외에 토요일도 오전9시부터 오후1시까지였다. 교회 어느 직분보다 업무가 과중한 오 집사는 9월 첫 주에 첫 휴가를 갖기도 했다.
오 집사는 후에 권사로 피택되었으나 사무원과 현직 권사직을 겸임하기가 어려운 실정이어서, 퇴직하면 자동으로 시무권사로 취임하게끔 배려되고 있다.

성서대학 과목 2개 과정 재편

3월 7일의 뉴저지 성서대학 개강을 앞두고, 학교당국은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두 과정을 만들었다.
매주 화요일 오후 6시 30부터 10시까지는 소선지서, 바울서신 교회사(현), 이단연구(성서과) 바울서신, 예배학, 이단연구, 교회사(현)였고, 매주 수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는 모세오경과 교회사, 신약개론 강의가 있었다.

사진 32 어린이 야구단 ‘토바이어스(Tobias)’팀
The children ‘Tobias Baseball’ team

어린이 야구단 Tobias 탄생

1989년의 최대 센세이션 한 가지는 본 교회 어린이 야구팀 ‘토바이어스’(Tobias)의 탄생이었다.(사진 32)
일찍부터 본 교회는 야구에 뭔가 있었던 모양이다. 70년대 역사를 보면, 1977년 홍무승 집사가 야구팀을 조직해 5월 7일 리틀 야구에 출전했다는 기록이 발견된다. 그러나 그 뒤로 이렇다할 후속활동이 없었다가, 전년도인 1988년 2월에 ‘팰리세이즈팍 한인어린이야구단을 모집한다’는 주보광고가 나갔다.
다시, 89년 3월 5일 주보에 ‘뉴저지한인장로교회 소년야구단’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나갔다. 모집자격은 7〜13세였고 첫 모임은 3월 25일 오후3시에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 작성된 ‘뉴저지한인장로교회 소년야구팀 사업계획’에 따르면, 매주 토요일 오후2시부터 연습과 시합을 갖기로 했고 그해 예상 경기만 해도 다양했다.
버겐카운티 리틀리그 팀과 대전, 한국일보 주최 리틀리그대회, 뉴욕야구협회 주최 리틀리그대회, 뉴욕야구협회 주최 대회 우승 시 파견 참가하게 될 한국의 전국리틀리그 야구대회(한국) 등이었다.
팀 구성은 신청선수가 30명 이상일 경우 A·B팀으로 나누기로 했다. 첫 예산(1989년도)은 2,970불로 잡았다. 소년야구팀의 임원진은 다음과 같았다.

대 표 : 김창길 목사
주 무 : 이항목 집사
감 독 : 김수룡
코 치 : 장 훈·김중신

예산 중 코치 사례비(연료비 포함)는 1인당 월 50달러였다. 교회측은 코치 유니폼 값을 지불하고 선수용은 각 가정에서 부담키로 했다.
지도 스태프는 한마디로 든든했다. 김수룡 감독은 과거 김해 낙동중학교와 부산상고의 투수를 지냈고, 당시 뉴욕한인야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었다. 서울고교, 연세대 타자를 지낸 장 훈 코치는 전국고교·대학교 야구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여러 번 수상한 데다 프로야구 ‘빙그레 이글즈’ 외야수였으며, 당시 뉴욕중앙일보 기자로 재직 중이었다.
고 김택수 대한체육회장의 아들인 김중신 코치는 뉴욕한인야구협회 대표팀 주장선수였다.
그리하여 4월 1일 토요일에 ‘Tobias’(토바이어스) 창단 예배를 드리고 첫 연습에 들어가, 토요일마다 오러델 공원에서 연습을 했다.
6월 11일에는 테나플라이중학교에서 뉴욕의 신광교회, 한빛교회 소년야구단과 친선게임을 가졌다. 17일에는 한국일보사 주최 야구대회에 참가했다. 감독과 코치 팀이 좋았던 만큼 발전도 빨랐다.
10월 8일 오후에도 뉴욕한빛교회 야구단과 친선게임을 한바탕 치렀다. 뉴욕 퀸즈의 키세나파크의 부스 메모리얼 야구장에서였다. 여세를 몰아 28일에는 뉴욕야구협회 주최 청소년야구토너먼트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 토너멘트를 끝으로 일단 방학에 들어갔고, 1990년도 4월 롱아일랜드 펙필드에서 연습을 하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야구단은 ‘야구학교’를 겸해 재편됐고 1990년 4월 11일에 개학했다. 입학등록금은 50달러씩이었다.
야구돌풍이 불었는지, 90년 4월말에는 교회대항 친선야구게임을 위한 청장년 야구팀도 구성돼 실밴파크에서 연습을 했다. 90년 10월 20일에는 가을 리틀리그전이 레오니아 실밴 파크 야구장에서 열려 토바이어스 A, B팀이 모두 참가했다.

교육관 사용허가 받다

89년 9월 4일 교육관 공청회가 열려 드디어 사용허가를 받았다.
온 교인들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렸다. 교육관 사용허가가 남에 따라 모든 교역자들의 사무실이 교육관으로 옮겨졌고, 본당의 각 방은 모두 교회학교 교실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해 연말에는 교육관 지하실을 새로 꾸며 유치부와 임마누엘회에서 주일날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한편 당회는 이듬해 3월18일부로 교육관 구입 건축위원회를 구성했다.
건축위원장: 정주섭, 회계 조영진 외에 11명 위원을 두었다.

조영진 목사 전임 교역자로 부임

9월24일에 전임 부교역자로 조영진 전도사가 부임했다. 그는 10월 8일 오후 청년회 헌신예배 때 첫 설교를 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역대하 15:2)이란 제목이었다.
조 전도사는 서울신학대학, 뉴욕신학대학원, 미주장신대학 등을 졸업하고, 뉴욕한인중앙교회에서 다년간 근무했었다. 뉴욕한인중앙교회 담임 조덕현 목사의 아들이기도 하다.
조 목사는 11월6일 본 교회당에서 목사안수를 받았고 11일 안수기념 설교를 했다. 그는 훗날 뉴저지초대교회를 시무하면서 그 교회의 성장에 이바지한다.

여전도연합 성가경연대회

10월15일에 오후에는 동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성가경연대회가 본 교회에서 개최됐다.
대여섯 교회가 모인 가운데, 증경회장 오안순 권사가 기도를 했고 김 목사가 ‘새 노래로 여호와를 찬양하라’(시l49:1)라 설교를 했다. 이 경연대회에서 본 교회 여전도회 성가대는 3등을 차지했다.
19일에는 여전도회가 학부형들을 위한 교육세미나를 갖고 뉴욕시 교육국의 안영희 박사를 초청해 자녀학교 교육과 미국의 제도, 부모의 역할 등에 관한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첫 개척교회를 설립하다

12월 3일 오후5시에 교회창립 17주년 기념 개척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그동안 전도부가 기도하고 조사해오던 중 뉴저지 브런스윅에 브런스윅한인장로교회를 개척하기로 하고 12월 첫 주일에 본 교회 찬양예배 겸 창립예배를 드렸다. 당회는 개척교회 교역자로 권오경 전도사를 결정했다.
권 전도사는 페어리디킨슨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에서는 경북대, 계명대 등을 거쳤다. 부임당시 미주장신대학 재학 중이었다.

초대의 글

뉴저지한인장로교회는 18년전 뉴저지 땅에 초석을 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헤로 저희 교회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창립17주년기념 지교회 설립을 위해 전교우들은 합심기도하고 전도부는 기획하고 준비하던 중 브런스윅 지방의 주택개발로 인해 한인동포가 증가함에 따라 장로교회의 필요성을 느껴 브런스윅 한인장로교회를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담임교역자를 위해 기도하던 중 진실하고 사명감이 투철하고 능력이 게신 권오경 전도사를 파송하기로 했습니다…(하략).
개척장소는 689 Laurel Pl. North Brunswick, NJ 08902였다.
창립예배는 김창길 목사가 집례하고 연합성가대가 찬양을 했으며 설교는 전도식 목사가, 기타 신희성 목사 김대업 목사 등이 순서를 맡아했다. 초기에는 본 교회에서 지원을 해야 했으므로 피아노 반주자를 비롯, 여러 명의 예배 지원자를 매주 교대로 보내기도 했다.

청년남전도회가 탄생하다

이 해 연말부터는 남전도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키 위해 만35살까지를 청년남전도회로, 36〜55살까지를 남전도회로 분리시켰다. 당일 2부예배 후 남전도회 정기총회가 열렸고, 청년남전도회는 12월 3일에 총회를 가졌다.
12월 중순에 확정된 청년남전도회 초대임원단은 다음과 같았다.

회장 김성인, 부회장 김공환, 총무 이인택, 회계 박해철, 서기 천동학

풍성한 성탄·연말 잔치

80년대의 마지막 성탄절인 그해 크리스마스는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
남전도회는 12월 10일 오랫동안 준비해온 연극 ‘제4호 법정’을 포트리의 Fort Lee Historic Park Auditorium에서 공연했다. 초대권 없이 선착순으로 210명이 관람할 수 있었다.(표 35)

표 35. 연극: ‘제4호 법정’ / 성탄찬양 :로저 스트라더의 칸타타 ‘사랑의 왕’이 공연

12월 17일 찬양예배는 성탄시즌을 위한 성가대 음악예배로 드렸다. 로저 스트라더의 칸타타 ‘사랑의 왕’이 공연됐다.
한편 12월초 호산나 성가대 반주자 김미경 씨가 새로 부임했다. 김씨는 서울음대와 줄리아드 음악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대학교에서 박사과정 중이었다.
그해 교회학교의 성탄축하예배도 24일 오후7시에 개최됐는데 역시 여느 해보다 풍성했다.
예배는 이앤지 양의 기도, 성구교송, 그리스도와 교회, 어린이들을 위한 성탄절 기도, 성경레슨 요한복음 3:16, 마태 1:21, 조영진 전도사의 ‘그 이름 예수’(He Shall be Called Jesus)란 설교 등으로 진행됐다.
축하순서는 미가엘 성가대의 성탄찬양과 3,4학년의 성구암송, 1,2학년의 성탄찬송, 5,6학년의 성탄극, 유치부의 성탄축하, 중·고등부, 청년부 순서 등으로 이어졌다. 25일은 오전 11시에 성탄축하예배를 드린 후 여전도회·청년여전도회가 준비한 축하만찬을 즐겼다.
31일에 학습 세례식을 거행했다.
12월 31일에는 그해 마지막이자 80년대의 마지막 주일예배를 드렸다. 오후 찬양예배는 임마누엘 헌신예배로 드려졌고 밤11시에 송구영신예배를 드렸다. 다들 한복을 입고 나와 아쉬운 한 해를 보내고 대망의 90년대를 맞는 새해인사를 나눴다.
새해부터는 예배시간이 대폭 변경될 예정이었다. 특히 유아부를 위한 비디오 방영을 2부 10시, 3부 12시에 실시했다. 주일 영어예배도 오후2시에 드리기로 했다.

80년대 교회성장과 교인증가율

교회의 성장은 하나님의 뜻이다.
누구든 이를 부정할 수 없다. ‘성장’이란 두 글자를 싫어한다면, 어린아이로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어느 교회든 성장요소는 갖추고 탄생한다. 모든 정상적인 어린아이가 성장과 성숙 요소를 갖추고 태어남과 다름 아니다. 문제는 이 성장요소를, 충분한 영양공급과 주변환경 조성 등 성숙 요건을 통하여 활성화시키고 극대화 시켜나갈 때, 성장과 성숙이 제대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본 교회는 일찍이 70년대 설립초기부터 충분한 성장 요소를 갖추고 있었음이 엿보인다. 교회가 갓난아기시절, 초대목회자 장영춘 목사가 시무하던 당시마저도 교회성장의 잠재력(potential)과 가능성은 존재했다. 장승칠 목사 대(代)에도, 이희철 목사 대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목회자들의 잦은 이임이 주원인이 되어 지속적인 성장 뒷받침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8년간 상승하강의 굴곡 신세를 면치 못했다.
김창길 목사 부임 당시에도, 초기와 대동소이한 33명으로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그의 부임 첫해인 1980년 말 재적교인수가 53명이었다. 정확하게 20명이 늘어난 숫자다. 본서 부록에 있는 연도별 각종 명단의 장년재적교인명단과 재직교인수 도표 등을 참조해 보면, 80년대 전반기를 거치면서 비교적 꾸준히 교인수가 늘고 80년대 후반기부터 눈에 띄게 교인수가 불기 시작했다. 특히 1987년부터 91년 사이에는 가히 폭발적이라 할만큼 사상최대치의 상향곡선을 이룬다.
1987년부터 매년 재적 교인 수를 보면, 221명에서 326명(88년), 394명(89년), 532명(90년), 706명(91년)이었다. 뉴욕·뉴저지의 이민교회로서는 보기 드문 이 놀라운 증가세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들의 기도, 목회자를 비롯한 사역 팀의 헌신도 있었지만, 아울러 하나님이 내신 외적인 조건도 좋았다. 한인 밀집지역에 자체교회당을 얻은 데다 한인교인 고유의 정서와 생리에 맞는 여건이 갖추어져갔고, 문화·행정·교육 시스템이 완비돼 가면서 성장 조건이 극대화된 결과일 것이다.

숨은 일꾼, 숨은 손길

잘되는 곳은 어디나 숨은 일꾼이 있게 마련이다.
김창길 목사는 “히든(hidden)으로 봉사하는 교인들 때문에 교회가 성장한다”고 강조하고, 대표적인 사례로 전문성을 지니고도 무보수로 봉사하는 김영숙 권사, 이혜경 집사 등을 꼽는다.
김 권사는 오르간 반주로 여러 해 말없이 봉사해왔고, 이 집사 역시 많은 노력과 투자로 배우고 익힌 ‘학문’으로 교회학교에서 묵묵히 봉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보수를 받는 일인데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밖에도 매주일 본당의 커피 끓이기, 차량 운전, 교회강단을 미화하는 꽃꽂이 등등 일일이 손길이 닿아야 할 일들을 말없이 감당하는 숨은 봉사자들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김 목사는 아울러, 과거의 숨은 일꾼이던 이진수 집사(현 포항공대 교수)를 잊을 수 없다며 추억에 잠긴다. 자진해서 하는 봉사의 차원을 넘어, 그렇게까지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아낌없이 희생할 수 있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진수 집사는 우리 교회에 출석하면서 유학생들을 모아 성경을 가르치곤 했다. 당시 그의 거처는 교회로부터 1시간 45분 정도. 왕복 3시간 반이 걸리는, 결코 가깝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매주 어김없이 달려와 성경지도를 담당했다.
식견 높은 과학자 지망생들에게 그들의 눈 높이 만큼 성경을 가르쳐야 하니 그 준비는 오직 힘들었겠는가. 이론을 앞세우기로 말한다면 그보다 더한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더욱이 과학과 기독교를 조화시켜야 하는, 아니 하나님을 우위에 놓아야 한다는 대 전제 밑에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집사는 부인과 세 아이와 함께 혼다(Honda) 차를 몰고 네 시간 가량 다니는데 차에 에어컨이 없어 덥고 운전시간이 길어, 아이가 차에서 토하는 일도 가끔 있었다. 하루는 나성영락교회에 있는 그의 어머니 이금성 권사가 김창길 목사에게 장거리전화를 하여 “목사님, 제 아들에게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나가서 봉사하라고 목사님이 직접 말씀해 주세요! 제 말을 듣질 않습니다. 제발 그렇게 하도록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부탁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집사가 4년 반이 넘도록 그렇게 봉사하여 길러낸 후예들이 지금 우리 교회 중추적 일을 맡아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지금 팰리사이즈팍에 소재한 본당을 구입할 때 은행에 담보를 제공해야 했는데, 교인 대다수가 담보 제공을 망설이고 있을 때, 이진수 집사가 선뜻 내놓아 많은 교인들이 그 뒤를 따르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의 모든 봉사와 헌신을 하나님은 지켜봐 오셨고 장차 하늘의 상급으로 갚으시리라.

1989년 주요 대내활동 일지

1월 1일 신년예배. 성례식 거행.
1월 8일 제직 임명
각 기관 정·부회장 연석회의.
당회 부서 책임자 임명
성가대장 양호식 장로 임명.
14일89년도 성가대 총무 임명 황석남(호산나)/김명걸(알렐루야) 부총무 김성인.
20〜21일 제직수련회(강사 정인영 목사).
21일한국학교 개강
29일교육관 계약이 끝나고 몰기지 신청 중.
89년도교회학교 각 부장 임명. 어린이부: 박현서, 중·고등부: 이인용,
청년대학부: 이진수.
89년도신규 구역편성 및 담당자 임명.
11개 구역 편성 유학생 구역, 서울 구역도 추가.
새해 제직부서 임명
2월 6일 청년여전도회 헌신예배(설교 김에스더 사모)
매월 제3주 금요일에 기관 연합기도회(임마누엘회·남전도회·여전도회·청년 여전도회) 결정.
10〜11일 청년대학부 수양회(포코노수양관).
12일임시공동의회.
20일중·고등부 스키여행.
24일각 기관 연합기도회.
26일오민자 집사를 교회비서로 인선. 3월1일자로 정식 부임.
3월 5일 3·1절 기념주일. 알렐루야 성가대 대원모집.
뉴저지한인장로교회 소년야구단 모집
7일뉴저지성서대학 개강.
19일인도네시아 선교를 위한 1인1달러 선교모금.
24〜26일  중·고등부 부활절 수련회(리벤젤수양관).
26일부활주일.
31일이명호 장로-김혜희 전도사 부부 비자해결로 서울서 도착.
4월 6일 매주 목요일 제2기 교리기초 성경반(지도: 김창길 목사).
주중 여전도회, 선교바자 위한 연쇄금식기도.
20일교육관 클로징 완결.
21일월례연합기도회(여전도회 주관). 설교:최석주 장로(서울 충현교회).
21〜22일 중·고등부, 프린스턴신학교 부흥회 참석(강사: 빌리 박 전도사).
교육관 뒷마당 청소.
29일여전도회·청년여전도회 공동 선교바자(7,612 달러 모금).
5월 1일 교육관 주변정리 계속.
건축위원 임명.
11일어머니성경반 룻기 시작.
14일어버이주일. 남전도회 연례 친교식사 봉사.
19〜20   임마누엘회, 버지니아 윌리엄스버그 관광.
전교우 야외예배.
청년여전도회 주최 아기 출생을 위한 기도회(이애경·이혜영·임주홍·정윤희).
26〜27일  대학·청년부 수련회(Voorhees·이진수 집사 댁).
6월 1일 빌리박 전도사 전임·풀타임 청소년 목회자 임명(학생·학부모 상담·성경지도 및 그룹활동 자녀문제 지도/사무실:교육관2층).
4일서연화 양(서삼덕 교우 장녀) 1부 예배 피아노반주자로 임명.
6일뉴저지성서대학 1학기 종강 ‘대화의 모임’.
졸업축하예배(빌리 박 전도사 설교).
6월 19〜22일 교단 총회(시카고노스팍대)에서 강동열·이명호 장로 목사고시 합격.
25일남전도회 주최 컴퓨터 교양강좌(강사: 이휘봉 집사).
빌리 박 전도사, 미국순회 전도여행 출발.
6월 중 11E. Edsall Blvd. 선상에 위치한 제1교육관을 255,000달러에 구입.
14〜16일 성서대학 제1회 신학공개강좌. 강사:박준서 목사(연세신과대 구약교수) ‘신앙의 본질’(창 12:1-3) / ‘젖과 꿀이 흐르는 땅’(신 11:8-9) / ‘성서에 나타난 고난의 의미’(벧전 2:19-21).
7월 21〜25일 전교우 수련회(벧엘기도원). 강사:림인식 목사(노량진교회).
회비제 폐지. 설교제목: ‘마음에 합한 사람’(행 13:20-23) / ‘온유하라’(마 5:1-5) / ‘구령의 열매’(요 15:1-8) / ‘봉사생활’(눅 19:30-37) / ‘골고다의 언덕’(마 27:33-44) / ‘그리스도의 지체’(고전 12:12-31) / ‘일하는 사람’(창 1:1) / ‘예수께 바치자’(요 6:9-15).
7월 말 사찰 강영상 집사 사임.
8월 1일〜3일 어린이수양회(포코노 벧엘기도원).
2일교육관 사용을 앞둔 타운 공청회. 주민 반대로 9월 초순 재 공청회 때까지 교육관과 뜰 사용 불가해짐.
7〜10일‘아멘89’ 청소년수련회(포코노수양관/인도: 빌리 박 전도사). 26명 참석.
8월 18일 남전도회 주최 연합기도회.
오제나 전도사 8월말일 부로 사임(서울 인턴십 관계. 3년 4개월 시무).
9월 4일 교육관 오후8시 공청회에서 사용허가 받음.
5일뉴저지성서대학 개강
9일한국학교 개교.
11월 26일 89년도 새교우환영회.

89년도 주요 대외이벤트 일지

2월 24〜26일 동노회 여전도회 부흥회/강사: 남정숙 사모.
3월 12일 동노회 여전도회 연합회 총회(한성교회). 여전도회·청년여전 도회 참가.
24일성금요일 가상칠언 연합예배·성찬식 / 뉴저지한일장로교회.
26일부활절새벽연합예배(뉴저지영락교회) / 설교: 김창길 목사(눅 24:1-12) /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4월 10〜14일 재미교역자 목회세미나(LA)에 김창길 목사 참가.
     21〜22일 중·고등부, 프린스턴신학교 부흥회 참석(강사: 빌리 박 전도사).
5월 29일 뉴저지교협 총회에서 김창길 목사가 부회장 피선.
6월 19〜22일      김 목사·정주섭 장로 총회(시카고노스팍대)총대로 참석.
7월 27〜8월23일 김 목사, 서울 서소문교회 부흥회 인도.
8월 14〜18일 비전89에 대학청년부 참가(롱아일랜드 Hofstra대).
8월 18일 뉴저지장로회 선교대회(강사:김상모 목사) 참가.
8월 28〜30일 연합 선교대회/주제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강사:박조준 목사/장소 : 포트리고교.)
10월 4일 한인장로회 뉴저지노회 본 교회에서 회집, 창설. 본 교회 강동열 장로 부노회장 피선.

1990년

땅 끝까지 이르러

대망의 90년대에 돌입했다. 21세기를 불과 한 데케이드(decade) 앞둔 것이다.
당회는 1990년도 교회표어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 1:8)로 제정했다. 21세기를 10년 앞둔 현 시점에서 ‘뉴저지장로교회’ 호(號)가 교회 본연의 과업인 주님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 ((교단이나 교회에 따라 ‘대명'(大命) 또는 ‘선교대명’이라고도 부른다.))쪽으로 기수를 돌리자는 신호였다.(사진 33)

사진 33. “세계는 우리의 교구”
The world is our parish.

70년대의 발아기와 격동기를 거쳐, 80년대에 점차 성장 발전하여 하반기에 자체성전도 얻는 등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내실을 기해온 본 교회가 이젠 드높이, 더 멀리 눈 들어 세계 선교의 웅대한 비전을 향해 전진하자는 뜻이었다. 주님도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 4:35하)고 말씀하신다.
새해 첫 주일인 7일, 성도들은 90년대의 첫 메시지에 귀기울였다. 당회장 김창길 목사는 사도행전 1장8절을 본문으로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는 말씀 가운데 새해 표어의 취지를 전했다. 그해 첫 성찬식으로 마음을 새롭게 했고, 당일 오후 찬양예배는 김계용 목사(나성영락교회)를 강사로 연합 제직수련회를 겸했다.
그해 표어 달성을 위해 전도부는 1월중 선교사모집 광고를 다음과 같이 주요 한국어 신문에 게재했다.

“뉴저지한인장로교회는 1990년도 표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 1:8)에 의하여 올해에 세계선교를 위하여 오지에 나가 선교할 분을 찾습니다. 본 교회는 미주한인장로회 총회에 속해 있으며 복음적인 신앙과 타 교단들과 연합 활동하는 미국 NCC ((미국기독교교회협의회(National Council of Churches of Christ)를 뜻함. 정식 약칭은 NCCC이지만, ‘NCC’로 더 자주 불린다. 본 교회의 교단인 미주한인장로회는 1987년 11월 7일 NCC의 32번째 회원교단으로 가입했다. 미주한인장로회 20년사 14쪽 참조.))에 가맹했으며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과 자매교단입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측과는 1986년에 선교협정을 체결했다. 주2)와 같은 책 같은 쪽 참조.))

선교대상지역은 필리핀과 남미. 선정된 선교사는 미주한인장로회 총회 파송선교사가 되며 본 교회가 생활비 전액과 선교활동비를 보조한다는 조건이었다.
둘째 주일인 1월 14일에는 김 목사가 지 교회인 브런스윅한인장로교회의 당회장으로서 성찬식과 제직 임명식을 이끌었다. 그 즈음까지 브런스윅 쪽 주일예배에 본 교회의 지원단이 계속 동참하고 있었다.
19일에는 첫 전 교우 철야기도회를 황의곤 목사(반석교회)를 강사로 가졌다. 새해를 기도로 시작하고 맞자는 열망에서였다. 전교우 기도회는 특별 행사가 없는 한 매달 꾸준히 지속됐다. 전년도(89년) 4월부터 배부하기 시작한 매달행사 스케줄도 여전히 발행되고 있었다. 한편, 신년 첫 대외행사로는 1월 8일 월요일 뉴저지교협 신년하례기도회가 글렌포인트호텔에서 개최됐다.

다양한 새해 변동사항

새해 첫 주일부터 전 3부 예배로 편성됨에 따라 예배시간이 변경됐다. 1부는 오전 8시, 2부 10시, 3부 정오12시였고, 2·3부에는 주일학교가 곁들여졌다. 또 영어예배가 오후2시부터 시작되고 오후 3시에 갖던 찬양예배는 7시로 늦췄다. ((그러나 교우들의 정상을 참작, 6월 17일부터 찬양예배가 재차 오후 3시로 환원된다.))
새해부터는 교회학교 어린이부가 오전 10시부터 11시 사이에 본당 하층에서 모임을 갖게 됐고, 중고등부는 2월 4일부터 한국어예배와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자못 큰 변화였다.
예배 내용에도 변동이 왔다. 헌금시간에 감사헌금 명단을 부르지 않고 회계집사가 주중에 담임목사 책상에 봉투를 놓으면, 목회자가 위하여 기도하는 형식으로 바꾼 것이다. ((1990년 1월 21일 주보 교회소식(#6항) 참조.))
“주보 발간을 위한 컴퓨터 식자를 구입해야하는 데 4천 달러가 든다”는 광고도 나왔다. 당시만 해도 각종 컴퓨터 부품과 프로그램의 값이 비쌀 때였다. 그후 2월부터 본 교회 주보가 깔끔하게 나왔고, 잔글씨로 보다 많은 교회소식을 담고 있었다.

표 36
경로학당 시간표

버겐경로학당 개설 ((버겐경로학당[(Bergen 敬老學堂]: 버겐카운티(Bergen County) 안에 자리잡고 있어 우선 지명을 땄다. ‘경로’는 물론 나이 많은 웃어른들을 잘 받들어 모시고 섬긴다는 의미. ‘학당’은, 훈장이 동네 코흘리개들을 가르치던 서당(書堂)보다는 더 큰 규모의, 우리 민족의 고대 교육기관. 그 뿌리는 고려 초기 내지 고구려 시대로까지 소급된다. 전체적인 인상이 고풍 어린 정취랄까 옛 멋이 물씬 풍기는 토속적인 이름이다. 참고로, 최근 미국 전역의 여러 한인교회에 이와 비슷한 연로자 대상 부속 교육기관이 속속 설치하고 있다. 본 교회는 한인교회 중에서는 퍽 이른 시기인 90년대 초에 이미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교양·교육센터를 갖추어, 앞서가는 셈이었다.))

그해 1월 27일에 본 교회 부설기관인 버겐경로학당이 처음 개설됐다.(표 36)

“금번 뉴저지한인장로교회에서는 뉴저지 버겐카운티와 인근에 거주하시는 남녀노인(55세 이상)의 미국 내 생활에 보다 더 원활하게 적응함과 황혼기에 처한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외로움과 무료함을 서로 위로, 격려함으로 여생을 보람있게 지내도록 위와 같은 내용으로 경로학당을 개강하오니 많이 오셔서 듣고 보고 서로 사귀면서 보람된 여생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당시 신문광고 내용(뉴욕한국일보).))
개강일은 마침 설날[舊正]이어서 경로잔치를 겸하여 베풀었다. 임마누엘회가 주도하는 이 학당은 매주 토요일 무료로, 성경과 영어공부, 교양강좌 등을 각 1시간씩 제공하면서 오락과 친교도 나누게 했다. 2월에는 학당 어르신들이 여가를 즐기시라고 남전도회가 바둑 3세트, 장기 1세트를 기증했다.
4월 6〜7일에는 봄 여행을 다녀오고, 늦가을 연로자들을 위한 독감예방주사를 실시했고 연말에는 뉴욕주 온천에 다녀오기도 했다. 가을철인 9월 8일에는 같은 내용으로 9월 학기를 개강했다.
버겐경로학당은 지역 한인 원로들이 교양과 견문도 넓히고 여가도 즐기면서 아울러 신앙도 기를 수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어르신네들의 인기 높은 ‘명당’이 되어간다.
특히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온 지구촌 인구가 21세기로 갈수록 고령화현상을 보이면서 연로자 목회사역이 날로 중시돼 가는 차제에 경로학당은 임마누엘회와 함께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김 목사 본 교회 성역 열돌

90년 2월로서 김창길 목사가 본 교회에 부임한 지 10년째로 접어들었다.
2월 11일 주보에 “오늘은 김 목사님께서 부임하신 지 10주년 되는 날입니다. 과거에도 목사님이 수고하셔서 오늘의 이 교회를 이렇게 부흥시켰지만, 앞으로 더 많이 수고하여 은혜로운 교회를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희망사항이 보인다.
본 교회 6대 담임목회자인 김 목사는 정확하게 1980년 2월 10일 주일에 정식 부임했었다. ((본서 117쪽 참조.)) 그때까지는 캐나다 토론토장로교회 교육목사로 사역 중이었다. 김 목사가 오기 전인 70년대의 본 교회는 목회자의 잦은 이동으로 지속적인 부흥과 성장을 할 여유가 없는 혼동과 격동기로 점철됐었다. 그의 부임은 참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임마누엘, 성지순례 길에 오르다

임마누엘회가 그토록 오래 벼르고 오매불망해온 성지순례가 결국 그해에 성사됐다.
2월 18일부터 13박14일 일정으로, 김창길 목사의 인솔아래 강신원 권사, 강동열, 정주섭 장로 등 모두 17명 ((기타 순례단 이름: 오안순 오순덕 이정석 김금이 박순자 이영자 허필연 정시화 정봉숙 김향란 김혜정 이순옥 전백임.))의 순례단이 이스라엘–이집트–로마 등을 둘러보았다. 1인당 참가비는 1,850달러였다. 순례자 일행은 3월 3일에 무사히 돌아왔다.
80년대 초 임마누엘회 창립 이래로 그 동안 웬만한 국내외 명승유적지는 거의 다 훑다시피 탐사해온 회원들로서는 성지순례가 가장 큰 목표중의 하나였음이 물론이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어하는 성지순례는 아무 때고 무작정 갈 수 있기보다 현지 기후와 상황이 이상적인 최적기(最適期)에 맞춰가야 하므로, 전문여행사와 현지가이드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아열대성 기후이므로, ‘이른 비’와 ‘늦은 비’, 여름과 겨울철을 미리 살펴 방문해야 성경에 나오는 네게브 광야의 계곡이나 샤론 평원의 아름답고 현란한 들꽃무리 등 자연식물도 관찰할 기회가 생긴다. 테러사태가 빈발하여 중동평화가 위태로운 때는 더구나 함부로 만만히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아무튼 임마누엘회는 성경으로만 읽으며 꿈에도 그리던 곳들—주님이 돌풍을 잠재우시고 또 제자들을 돌보러 물위로 걸어가시고 모닥불에 물고기를 구워 잡수신 그 갈릴리 호수, 믿음의 선진들이 누비던 곳, 요셉과 모세와 파라오의 터전, 출애굽 현장, 초기교회 흔적 등을 바쁜 일정 속에 부대끼며 구경하고 왔다.
말하자면 평생 소원 한가지를 이룬 셈이다. 임마누엘 회원들은 그 뒤 교우들에게 들려줄 얘기 거리, 보고할 ‘건덕지’가 많았다. 그후로도 성지순례는 기회가 닿는 대로 반복된다.

영원한 성지순례

우리의 지상최고의 최종 성지순례 목표지는 어딜까? 물론, 에덴동산보다 더 아름다운 저 하늘나라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길이길이 살며 즐길 곳이다. 우주역사의 완성점이기도 하다.
김 목사가 이끄는 임마누엘회 성지순례단이 현지를 둘러보고 있는 동안, 하늘나라에서 성지순례 중인 분이 있었다. 바로 김창길 목사의 모친인 안마리아 권사였다. 안 권사는 그해 2월 25일 한국 서울에서 영원한 본향 길에 올랐다. 주일날이었다.
고 안마리아 권사는 80년대 초 아들 김창길 목사의 부임이래 본 교회에 적을 두고 명예권사로 추대됐다. ((본서 130쪽 참조.)) 순교자 김동철 목사의 사모로서, 순교자 안길선 목사의 누이동생으로서 한국 교회사의 산증인이기도 했던 안 권사의 몸은 서소문교회의 기념묘지인 서소문동산에 안장됐다. 곁에는 1959년 미국 유학도중 앞서간, 고인의 맏아들이자 김창길 목사의 맏형인 김창권 성도도 나란히 묻혀있다. ((서소문교회50년사 93쪽 참조.))
비슷한 시기인 2월 20일, 본 교회 김수룡 집사의 부친도 부산에서 별세, 주님 품에 안겼다. 김수룡 집사는 미동부야구협회 회장이자 본 교회 Tobias 어린이야구단 감독이기도 했다.

성서대학 첫 졸업식, 2학기 개강

뉴저지성서대학이 그해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3월 10일 오후 7시에 거행된 제1회 졸업식전에서는 본 교회 중진 제직을 비롯한 13명이 감격과 영예의 첫 졸업을 했다. ((제1회 졸업생: 구자섭 김공환 김경숙 김성인 김영숙 박병태 이수희 이인용 장혜경 정주섭 조영진 조인기 황석남 (가나다순))) 아울러, 성서대학은 3월 6, 7일에 2학기 개강을 했다. ((요일별로 2 과정으로 나눠진 과목과 담당교수진은 화요일: 모세5경(한진희)·신학개론(강세대)·고대교회사(이학권)·청지기학(조덕현)·기독교교육(김창길), 수요일: 소선지서(박종만)·현대교회사(이학권)·바울서신(안태호)·이단비판(이승재) 등이었다.)) 학기 당 등록금은 200불. 교회학교 및 한국학교 교사들에게는 100불씩 장학금 혜택을 주었다.
1988년 4월 26일 본 교회 부설기관으로 개교한 성서대학은 당초 ‘뉴저지한인성서학원’이란 이름으로 출범, 뉴저지성서신학원으로도 불리다가 현재 이름으로 개칭됐다. 성서대학은 한동안 우리 교회에서 운영하다 90년대 하반기에 뉴저지노회로 이관되어 노회측이 전담 운영케 된다.(사진 34)

사진 34.제1회 뉴저지성서대학 졸업식을 마치고
Following the first commencement ceremony of the New Jersey Bible Institute

1인1불 선교헌금 실적 발표

전도부에서는 2월 25일자로 ‘1인 1불 선교헌금’ 관련 보고를 했다.
전년도인 1989년도에 연52가정이 참가, 총1,531불의 모금실적을 올렸고 그중 1,434불을 3차에 나눠 송금 지출했다는 내용이었다. 지원대상 선교사는 인도네시아의 김의정-박연화 선교사로, 이리안자야 자야푸라에 거주 중이었다. ((SIL, P.O.Box 54 Jayapur, Irianjaya, Indonesia.))
전도부는 한편, 선교 헌금봉투는 늘 교회입구 책상 위에 비치돼 있으니, 봉헌자 이름과 가족 수 및 해당 달을 적어 예배 때 헌금하거나 전도부 회계(배동희 집사)에 제출해달라는 요령과 함께 “복음일선에서 수고하는 여러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부탁도 곁들였다.

분업화돼 가는 음악 사역

1990년은 특히 본 교회 성가대가 현저한 발전과 함께 분업화된 시기였다. 교회음악은 자고로 교회개혁 및 성장과 불가분의 함수관계에 있다. 이것은 구약시대의 성전음악을 봐도 알 수 있다. ((고대 구약시대 히브리 성전음악의 기틀을 놓은 사람은 선지자 사무엘이었고(삼상10:5), 다윗과 솔로몬은 이를 극대화시켰다(역대상6:31이하, 15:16이하 16:41-42, 23:5-6, 25:1이하, 역대하5:12-13, 7:6, 9:11). 그후 여호사밧·히스기야·요시야 왕의 종교개혁 때도 성전음악은 재차 활성화된다(역대하20:21이하, 29:25-30, 35:15). 포로시대 이후에도 성전음악의 전통은 맥맥히 이어지나 현저히 약화된다(에스라3:10-11, 느12:24, 시137).))
구약시대 레위 지파(Levite) 성전음악인들이 고대 레위의 세 아들의 3계열 ((제사장과 성전 사역자 직분을 맡은 레위의 후손들은 선조인 레위의 아들 3형제—게르손(Gershon), 고핫(Kohath. 후대에는 그핫-Kehath이라고도 불렸다), 므라리(Merari)—에 따라 3계열로 나눠져 있었다(민3:17). 성전음악인들 역시 위의 3계열로 분할됐다. 역대상 6:33-48 참조.))에 따라 헤만(Heman), 아삽(Asaph), 여두둔(Jethudun) ((여두둔은 에단(Ethan)과 동일 인물이다. 히브리 원어의 어원이 같음. 또 주 15)의 역대상·하서 성구들을 대비해 보면 알 수 있다.)) 3형제의 계열로 분업화되어 효과적으로 제사음악을 맡아 연주했다. 우리 교회 성가대 역시 이와 비슷하게, 할렐루야 ((할렐루야 성가대는 주보 상에 자주 ‘할렐루야 성가대’로 표기되기도 했다. 둘 다 자주 쓰이지만, 할렐루야(Alleluia)는 ‘h’ 사운드를 사용하지 않는 라틴어에서 왔고, 할렐루야는 히브리 원음대로 표기한 것이다. 할렐루야는 노래를 뜻하는 히브리어 ‘할랄’ 동사의 권유명령형인 할렐루(Hallelu)와 여호와 하나님을 뜻하는 ‘야’(Yah 또는 Jah)과 합해진 것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의미이다.)), 호산나, 가브리엘 성가대로 나뉘어져 있은 것이다.
3월 25일에는 3부 할렐루야성가대 독창자 김경희 선생이 새로 부임했다. 그 무렵, 88년 9월25일 취임한 안수집사 4명이 교회에 헌납한 야마하 피아노(U3E)가 도착해 성가대실에 놓았다. 본당 내 피아노는 반주자들만 사용하도록 했고, 사용 시에는 담당자에게 허락을 받도록 했다.
한편 호산나 성가대를 지휘하던 김진양 전도사의 이임으로 자리가 빈 후임 지휘자로는 이병천 집사(브니엘콘서트콰이어 지휘자)가 5월 첫 주부터 부임했다. 그러나 두 달도 채 못된 7월중 사임했다.
그후 10월 1일 새로 이한섭 집사가 부임했다. 그는 서울음대 성악과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음대대학원 출신이었다. 90년 10월부터는 주보 앞표지에 3개 성가대의 이름과 각 음악사역자들의 이름이 동시에 나란히 기재되고 있었다.
또한, 청년여전도회에서는 89년 말부터 매주 화요일 성경공부와 함께 어머니합창단 연습을 해왔다. 지휘는 김정화 교우, 반주는 김남주 집사였다.
어머니 합창단은 3월 27일에는 어머니들을 초청해 자축연을 가졌고, 10월 28일 교회에서 창립18주년기념 음악예배 때 첫 공연을 함으로써 공식 ‘데뷔’를 했다. 12월 23일에는 성탄축하 음악예배를 주도했다. ((본서 294쪽 참조.)) 그전에도 다양한 모임에서 이미 선을 보이고 있었다. 한편 기타 그해 상반기의 주요 음악행사로, 1월 21일 찬양예배는 서울 대학합창단 초청 음악예배로 드려졌다. ((서울 대학 합창단은 전국경연대회에서 우승한 합창단이었다. 당일 주보 참조.))

센서스를 장려하다

그 즈음 연방 상무부 센서스국이 주관하는 90년도 인구조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미국이 10년마다 하는 행사였다. 교회에서는 센서스에 미처 응하지 못한 교우들을 돕고 있었다.

“Census ’90(인구조사)을 아직 하지 못하신 분은 꼭 하시기를 바라며 조사용지를 잃어버렸거나 작성하시기 힘든 분은 Billy 전도사님께 말씀드리면 협조해 주십니다. 인구조사는 교포들의 ((당시는 ‘교포'(僑胞)라는 용어를 많이 썼으나 90년대 후반기로 가면서 점차 ‘동포'(同胞)란 말이 자리잡는다. ‘교포’는 몇 가지로 재미한인들에게는 모순된 말이다. 즉 고국인 한국의 입장에서 일컫는 말로서 타국에 얹혀 삶을 암시하므로, 해외의 한국 공관이나 특파원을 포함한 재외 한국언론 지사, 지상사 등에서 한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해외한인들이 스스로 ‘교포’라고 함은 자신을 제3자로 정의하는 우스운 명칭이 돼버린다. 더욱이 이미 미국시민이 되어 미 국적을 지닌 한인들에게는 교포라는 말이 걸맞지 않다. 그보다는 한인, 동포, 동족 또는 겨레란 말이 더 어울린다. ‘본국’이란 말도 그렇다. 미 시민권자들의 본국은 미국이지, 한국이 아닌 것이다. 대신 모국, 조국, 고국이란 말을 써야 할 것이다. 이 당시 동포란 말이 잘 사용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친북파들이 이 용어를 즐겨 쓰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참고로, 한국의 석학 겸 정치인이던 김동길 교수는 그의 글에서, 그 옛날 아침마다 재래식 변소의 인분을 치워주며 “똥 퍼요!”라고 부르짖던 인부들을 아침마다 ‘동포여!’를 거듭거듭 부르짖는 애국자로 비유했다. 한인이나 동포, 동족, 겨레 등 허고 많은 좋은 말들이 있는데 구태여 ‘교포’란 말을 골라 쓸 필요가 있는가.)) 지위향상에 큰 도움을 주는 일이므로 누구나 다 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주권 없는 분들도 해 주시기 바라며 신원에 대한 보장은 미국정부가 책임집니다.” ((1990년도 주보철 참조.))

센서스는 소수계의 혜택과 권익신장에 도움이 되는 일면도 있으나 매번 부정확한 수치(數値)가 나오기 일쑤였다. 90년도 센서스도 한인들 수가 상상외로 적게 집계된 것 등 많은 문제를 내비쳤다.

사랑의 대외 봉사

사순절 막바지인 성금요일 뉴저지노회가 본 교회당에서 가상칠언예배를 드릴 때, 본 교인들은 타 교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아래층에서 비디오로 동참했다.
4월 중, 본 교회는 ‘사랑의 쌀’ 모금을 하여 한국일보사를 통해 1천 불을 보냈다. 남전도회는 어려움에 처한 동포소녀 앤지 양을 돕기로 하여 848달러를 모금, 가족에게 전달했다. 그후 7월중 앤지 양으로부터 고맙다는 카드가 왔다.
4월 22일 찬양예배 때는 볼리비아 선교를 다녀온 이학권 목사의 선교보고를 듣고 현지에 전기가 없어 예배를 못 드리는 교회를 위해 4개의 개스램프를 보내기로 하여 참석자들이 헌금을 했다.
하반기에는 청년회가 성탄절을 앞두고 집 없는 이들을 위한 옷 수집을 하기도 했다.

4월의 봉사와 헌신

봄이 다가오자 교회당 안팎과 교육관 뒤 정원을 꾸며 줄 교우를 찾고 있었고, 3월 마지막 주일에 청년부 회원 일동이 이에 응해 대청소를 했다.
또 부활절에는 순결한 백합화를, 가을에는 청초하고 화사한 국화 화분, 성탄절에는 화려하고 진홍빛 포인세티어를 시절에 맞춰 자진하여 기쁘게 강단에 바치는 교우들이 해가 갈수록 많아졌다.
일찍이 어린이찬송가 작가 앨리스 클리터(Alice Jean Cleator)는 부활절을 위해 이런 시를 읊었다. ((‘Beautiful Lilies, White as the Snow’(1900년 작). 새찬송가 599장, 인터넷 자료 등 참조.)) 눈처럼 하얀 저 백합화 부활의 아침 노래하네/주 예수 다시 살아나신 즐거운 이날 활짝 피었네/흰 백합화는 주 예수님, 부활의 날을 축하하네/우리 다 함께 온 정성 다해 부활의 소식 전파하자. (하략)
이 해 부활절에는 모두 18명의 교우들이 눈처럼 흰 백합화를 제단에 드렸다.

기도제목이 구체화된 전교우기도회

얼마 전부터 교회는 매달 셋째 금요일에 전교우기도회를 갖곤 했는데, 이 해도 1월 19일, 2월 16일, 3월 16일 등 금요일에 내·외부 강사의 설교를 곁들여 가졌다. 기도회 때마다 간단한 순서지가 배부됐다. 1·2부로 나누어 전반부는 성경봉독과 설교, 헌금까지 골고루 갖춘 예배형식이었고 후반부는 통성기도, 개인기도로 이어졌다.
그런데 4월 20일 순서지를 보면, 기도회 양식이 다소 바뀌었다. 1·2부를 하나로 합쳐 예배형식을 간소화하는 대신 기도시간에 강조점을 두고, 통성기도-대표기도-찬송 등을 교대로 하거나 대표기도 또는 합심기도로 일관하기도 했다. 가장 큰 변화는 기도제목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는 점이다.

분가해 나가는 일꾼들

김혜희 전도사와 함께 본 교회에서 집사 때부터 성실히 봉직해온 이명호 장로는 3월 4일자로 시무장로직을 사임, 4월 19일에 열린 뉴저지노회 제2회 정기노회 때 한국선교사로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어서 22일에는 대예배 때 안수기념 설교를 하기도 했다.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사 30:18-26)라는 은혜로운 메시지였다.
아울러 목회보조사역자로 헌신해온 부인 김혜희 전도사도 5월 20일 사임서가 수리됐다. 이명호 목사는 9월16일에 ‘한국선교센터’를 개설해 본 교회 김 목사가 다녀오기도 했다. 나중에 이 목사는 한국에 ‘한마음교회’를 개척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80년대에 이명호 장로 부부가 우리 교회에 많은 봉사와 공헌을 했다. 주보 소식란에도 어지간히 오르내렸다. 한때는 한국에 나갔다가 비자문제로 막혀 여러 달 머무는 통에 온 교우들이 주님께 매달려 간구한 적도 있다. 귀한 일꾼들이다.
4월 29일 당회에서는 지난 2년 3개월간 전도사로 시무해 오며 호산나 성가대를 지휘해온 김진양 전도사의 사직원을 수리했다. 그는 5월 28일 아내 유영은 집사와 함께 미주장신대학을 졸업했다. 과거 호산나성가대 지휘와 반주자로 헌신했던 ((본서 139쪽 1980년 ‘교회음악 사역의 면모’ 항 참조.)) 두 사람은 곧 본 교회 지 교회를 개척하면서 목사안수도 받는다.

유행(?)하는 가족모임

남전도회는 5월12일 남전도회 가족모임의 밤을 가졌다. 가정의 달에 적절한 모임이었다. 이인용 집사가 이끈 이날 예배 때 조영진 전도사가 ‘잔칫집과 같은 교회’(요 6:53-56)란 설교를 했고 2부 코이노니아(친교) 시간도 이끌었다.
이어서 6월 16일에는 중고등부 가족의 밤이 개최됐다.

주보의 탈바꿈

5월말부터는 본 교회 주보의 모습이 바뀌었다. 그 동안 써온 교회 앞 전경의 펜화 그림 ((본당 전경을 펜으로 묘사한 주보 표지그림은 본당 헌당식을 갖던 1987년 5월말 화가 김양숙 교우가 직접 그린 것으로, 이 해까지 거의 만4년간 사용돼 왔다. 이 그림은 90년대 후반에 다시 주보표지 그림으로 쓰인다. 80년대사 ‘주보 이야기’ 참조.)) 대신 교회 정면을 찍은 사진이 청색 1도로 실리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교회 전경을 비교적 가까이서 담았기 때문에 아치형 교회이름 간판이 분명히 눈에 들어와 시원스럽게 보이고, 옆으로는 주차해놓은 교회 밴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교회 벽돌 색이 짙은 데다 건물 자체가 강조되느라 상대적으로 배경이 약화돼, 주보 표지 그림으로서는 다소 어두워 보였다. 이를 의식했는지 한 두 번의 실험단계를 거쳐 이듬해인 91년 11월 24일 주보부터는 간판도 보이고 건물 측면도 비스듬히 강조된, 보다 더 밝은 사진이 실리기 시작했다.

본당 주변과 파킹

본 교회가 80년대부터 겪어온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팰리세이드팍 본당 주변에 교인 승용차 주차 건이었다. 후에 구입한 예닮원은 대지가 드넓어 특별한 주차문제는 없었지만, 본당은 주택단지의 주민 밀집지역상의 난점으로 건물은 마련했어도 넉넉한 자체 주차장을 갖추지 못한 때문이다.
본당 구입 전후에나 90년대에나 이 문제로 많은 고통을 치러왔고 주보 교회소식란에도 뻔질나게 경고나 호소문이 떠오르곤 했다. 특히 80년대 본당 구입 직후에는 교인들의 더블파킹과 무단주차, 본 교회 어린이들의 안전관리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일 지경이었다. 동네와 시경 등의 수도 없는 교통질서 호소를 듣기도 했다. 한번은 팰리세이드팍 시 경찰서장으로부터 직접 정중한 관련통보를 받기도 했다. 그해 5월 27일에는 주보에 이런 경고가 떴다.

“교회당 앞길과 옆길에는 파킹을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뒤에서 오는 차들에 방해를 줍니다. 여러분의 자동차들은 길가나 Volk Funeral Home 파킹할 수 있습니다.”
또 11월 4일에는 이렇게 당부했다.

“교회 앞과 옆길을 건너실 때 신호등을 지키십시다. 보행로를 꼭 이용하시고 아이들이 뛰지 않도록 조심시키십시다. 부모님들은 어린이들의 교통질서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호일 목사 초청 부흥사경회

5월31〜6월3일에는 부흥사경회가 시작됐다. 강사로는 서소문교회 김호일 목사를 초청했다. 매주일 아침 서울기독교방송에서 설교도 담당해온 김 목사는 집회기간 중, ‘교회의 본질’(마16:13-20), ‘기도의 능력’(마6:5-13), ‘청지기론’(고전4:1-5), ‘소문난 교회’(살전1:1-12), ‘합한 자’(행9:10-19), ‘시험의 광장’(마4:1-11), ‘너희가 믿느냐’(마9:27-31), ‘그리스도의 지상명령’(행1:6-11)등 은혜롭게 말씀을 전했다. 끝 날인 6월 3일 오후에는 제직회 수련회까지 인도했다.(사진 35)
서소문교회는 본 교회 김창길 목사의 모교회로, 본 교회 교인들 중 다수가 거기 출신이다. 우리와는 자매교회이며 양측이 오랫동안 좋은 사이를 유지해오고 있다.
한편, 비슷한 기간에 호산나90뉴저지복음화대회가 포트리 고등학교에서 5월25〜27일 사흘간 열렸다. 강사는 나성동양선교교회 임동선 목사였다. 임목사는 27일 2, 3부 설교를 본 교회에서 하기도 했다.

사진 35. 김호일 목사 초청 부흥회
Revival Service, with guest speaker Rev. Hoil Kim

김창길 목사 뉴저지교협 회장 피선 ((뉴저지한인교회협의회10년사(뉴저지교협/1998년), 당시 한인언론 보도기사(뉴욕한국일보·뉴욕중앙일보) 참조.))

그해 6월 4일 본 교회 김창길 목사가 제4대 회장에 피선, 1년간 뉴저지지역의 120여 한인교회를 대표하게 됐다.
본 교회당에서 있은 뉴저지교회협의회 제4차 정기총회에서 당선된 김창길 신임회장은 취임인사에서 교회간의 유기적 협력을 위해 우선 교회주소록 발간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최초로 뉴욕교협과의 공동교회 주소록이 발간됐다.
1990〜91년 1년간 김창길 회장이 이끈 제4대 회장단은 여느 해보다 대 사회봉사에 주력했다. 뉴저지교협의 제4회기 주요 사업은 이러했다.
90년  7월 7일 고 이희철 목사(성광장로교회) 장례식 주관.
7월 14〜15일베뢰아파 귀신론 비판 강연회(강사: 원세호 박사).
9월 16일 브루클린 처치애브뉴 사태 피해 한인 돕기 후원금 모금주일.
10월11일 동유럽·중공·소련선교여행보고(박재영·안모세 목사)
10월25일 브루클린 처치애브뉴 한인 장봉재, 박만호 씨에 각 $1,000 전달.
11월 12일 브루클린 한인교회협의회 방과후 프로그램에 $1,000 전달.
11월 14일 뉴욕·뉴저지교협 합동 주소록 발간 결의.
11월 27일 북한선교여행 보고(윤명호 목사).
12월 16일 제3회 성탄축하연합음악예배.
12월 30일 교협뉴스 창간 배부.
91년 1월  7일 신년하례만찬기도회(쉐라톤호텔/230명 참석).
3월  9일세미나 ‘성서번역과 목회자 신학’(박창환 교수)
3월  22〜24일 ‘91 호산나청소년전도대회(1000여명 참가).
3월  31일 부활절새벽연합예배

간염 격퇴 작전 ((의학관련 자료는 다음 책을 참조했음. 「최지원 장로회갑기념논문집」(1997년·꾸밈출판사) 2부 의료상담 편.))

7월 1일 주일 2부 예배 후 30살 이상 중년교우들 중 희망자를 위한 간(肝) 검사가 무료진단으로 실시됐다. 참가 의사는 한수웅, 한혜원, 신전식 박사 등이었다. 당일 간 검사를 한 교우들은 모두 197명. 주사를 맞아야 할 교인들은 8월 21일 교회버스로 단체로 가기도 했다.
한인들 중에는 간염환자가 유난히 많다. 전염성이 강한 간염은 A형으로부터 B·C·D·E·G·미상형 등 다양한 유형이 있으며, 강한 전염성 때문에 에이즈보다 더 중시되곤 한다. 원인은 음주과다, 화학약품과용, 병원균에 의한 주사바늘 오염 등 다양한데, 악화되면 간경화, 간암 등을 유발할 수 있고 심하면 간 이식수술을 해야만 되는 경우도 있다.
한인 간염환자가 흔한 이유 한가지는 인정이 많다보니 사이좋게 술이나 음식을 함부로 나눠먹는 관습 때문이다. 90년대에 뉴욕의 어느 한인교회에서 교인 상대로 457명을 진단한 결과, 약10%인 44명이 B 또는 C형 보균자였고 2명은 간염으로 사망했다. 항원과 항체가 전혀 형성되지 않고 음성반응을 나타내어 주사를 맞은 사람은 275명이었다. 예방주사를 안 맞을 경우 감염위험성은 상존한다. 항원과 항체가 형성되지 않아 음성인 경우는 예방주사를 최소 3번 맞아야하며, 사람에 따라 5번 이상 맞아야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이희철 목사 작고

90년 초여름, 이웃교회인 포트리 성광장로교회의 이희철 목사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별세했다. 측근의 말을 종합해 보면, 7월 7일 뉴저지 북부 Route17 도로선상에서 사고를 당해 당일 3시 15분경, 55세를 일기로 운명했다. ((본 교회사 109쪽 각주 38 참조.))
뉴저지교협 제1회기 부회장을 지내기도 한 고인의 장례식은 교협(당시 회장 김창길 목사)에서 주관했고, ((뉴저지한인교회협의회10년사(뉴저지교협/1998년) 9, 31쪽과 기타 당시 한인언론 보도를 참조했음.)) 7월 11일에 발인예배가 거행됐다. 장지는 조지 워싱턴 기념묘원이었다. 이어서 7월 23일에 열린 장신대학 동문회(회장 김창길 목사)도 추후 고인의 부인을 방문해 조의를 표했다. ((당시 뉴욕주 톨맨 공원에서 열린 미주동부장로회 신학대학 1990년도 총회에서 논의됐다. ‘장로교 시보'(미국장로교전국한인교회협의회 발행) 1990년 7월 31일자 등 관련 보도 기사 참조.))
고 이희철 목사는 1976년 4월 13일 본 교회 제5대 목사로 부임, 1979년 9월까지 시무하고 귀국,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했다가 재차 입국해 성광교회를 시무하던 중이었다. 그는 80년대에 본 교회를 방문해 설교를 한 적도 있고, 본 교회 부설 뉴저지성서대학의 개교 초기에 모세 5경을 강해하기도 했다.

Tobias 만세! ((뉴욕한국일보 1990년 6월 20일자 섹션A 1면, 6면, 10월 24일자 스포츠면 참조.))

1990년은 Tobias(토바이어스) ((Tobias는 ‘하나님은 선하시다’의 히브리어 문구. 영어식 발음은 ‘토바이어스’에 가깝다. 히브리어로는 토비아스이다. 본서에서는 ‘토바이어스’로 통일했다.))의 해였다. 여름·가을 리틀야구대회를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본 교회 토바이어스 리틀야구 A·B팀은 그해 6월 16일 뉴욕 브롱스의 J.F. 케네디고교 야구장에서 열린 제11회 동부 리틀리그 야구에 출전, Tobias A는 우승을, B는 4위를 차지했다. 또 김규호 군이 최우수선수상, 박종우 군이 승리투수상, B팀이 응원상을 받기도 했다.(사진 36)

사진 36. 토바이어스(Tobias) 리틀 야구단
Tobias LIttle League Baseball team

13살 미만 동포 어린이들을 위해 미동부야구협회(회장 김수룡) 주최, 뉴욕한국일보 주관으로 개최된 이 경기에는 모두 5개 팀이 참가, B조 1위로 결승 진출한 한빛교회의 주니어타이거스팀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경기는 TobiasA, 뉴욕신광교회의 ‘호세나’ 팀, 뉴욕한국학교팀이 A조, 주니어타이거즈와 TobiasB가 B조로 나눠 조별로 대결한 뒤, 승자와 패자가 각각 1·2위, 3·4위 전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열띤 각축전…토비아스A팀 우승’이란 타이틀로 한국일보가 1면에 대서특필한 기사는 익사이팅했다.

“이날 경기의 백미는 역시 토비아스A팀과 주니어타이거즈팀 간의 결승전으로, 두 팀은 초반 타력전에서 후반 투수전으로 바꿔가며 연장전으로까지 들어가는 각축전을 벌였다.”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야구전을 즐겨본 탓인지 어른선수들의 행동을 그대로 흉내내 관중들은 “깜찍하다”는 둥 “겉멋이 들었다”는 둥 코멘트를 하기도 했다. 모두 9살 미만의 ‘진짜 꼬마들’인 TobiasB는 이날 발을 구르며 형들을 응원,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9월 16일 3부 예배 후에는 지난 2년간 야구단 감독 김수룡 집사가 편집한 야구학교의 기록을 담은 비디오테이프 시사회를 갖기도 했다. 또 야구학교 가을학기를 9월 8일 개학했다.
10월 20일 추계 리틀리그야구대회에서도 역시 Tobias A(이하 토A)팀이 우승, 그해의 2관왕이 됐다. 레오니아의 실밴파크 야구장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토A는 각 3개팀씩 A·B조로 나뉘어 치러진 예선전에서 한빛타이거스 A팀과 각각 2승 전적으로 나란히 결승전에 진출해 맞붙었다.
이날 개인상도 Tobias가 휩쓸었다. 이덕영 선수가 2타점 2루타로 최우수선수상을, 신준섭군이 최우수감독상, 박종우 투수가 승리투수상을 각각 받아낸 것이다. 이날 주심은 88올림픽 야구심판위원이었던 윤희준 씨가 맡아 돋보였다. 김수룡 협회장의 말대로 이날 경기는 나이 어린 TobiasB 등에는 절대 불리한 게임이었다.
한편 야구학교는 12월 16일 종강예배를 가졌다.

선교 선교 선교!

1990년은 선교가 유난히 강조된 해였다. 그해 교회표어 자체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1:8)였다.
당회는 다가올 창립 20주년 기념 해외 파송 선교사를 보내기로 결정해, 김창길 목사가 6월중 한국에 가서 직접 인터뷰하고 돌아온 보고를 했다. 선교사 후보는 양승환 전도사와 정득수 목사였다. 교우들은 선교사 선정문제를 놓고 많은 기도를 해왔다. 달마다 드리는 전교우 기도회의 주요 기도제목이기도 했다.
7월중에는 특수임무를 띠고 중국대륙을 방문한 이들이 많았다. 우선 강동열 장로는 선교를 겸한 친족 방문을 위해, 오순덕 권사도 친족방문을 위해, 김에스더 사모는 버클리대학 기독학생회를 인솔하여 중국과 일본을 3주 동안 다녀왔다. 김 사모는 8월 26일 청년회 헌신예배 때 ‘세계선교와 우리의 비전’(마28:18-20)이란 설교를 통해 일본·중국 선교보고를 했다.
이어서 김창길 목사도 8월27일부터 9월8일까지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유고슬라비아, 동독 등에 선교여행을 다녀왔다. 미국 전역에서 10명의 목회자들이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변천하고 있는 나라들의 교회를 시찰하고 헝가리 신학교 개교식에도 참석했다. 김 목사는 9월 30일 찬양예배 때 동구권 선교여행 보고를 했다.
10월 21일 임마누엘회 헌신예배 때는 강동열 장로도 보고를 했다. 한편 당회는 11월중, 콜롬비아 선교사로 박용규 목사 ((당시 충북 청주시 상당교회 부목사.))를 임명하기로 했다.

1부 예배 가브리엘 성가대 탄생

7월 29일부터 1부 예배 성가대의 찬양이 시작됐다.
지휘는 이상원 집사가 맡았다. 대원으로 봉사하기 원하는 사람은 새벽시간에 가까운 오전 7시30분에 나와야 했다. 큰 봉사거리였다.
사람들의 목청은 정신 의식과도 비슷하여, 보통 오전 11시는 돼야 완전히 풀리기 시작하고 저녁쯤에 가장 좋은 소리를 낸다고 한다. 아무래도 오전 중의 무리한 성대 사용은 삼가는 것이 좋다. 아무리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성악가더라도, 이른 아침에는 거칠고 둔탁한 소리를 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전세계의 주일 낮 예배도 오전 11시 전후로 통일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성가대뿐 아니라 전 교인이 찬송가를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일날 이른 아침부터 노래해야 하는 1부 예배 성가대는 자연히 무리 없는 소프트한 소리를 낼 수밖에 없고, 그 시간에 특별한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은총과 기도와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성대를 돌보지 않고 희생하는 그들의 봉사가 참으로 가상하다!
1부 성가대는 추후에 ‘가브리엘 성가대’로 명명됐다. 가브리엘(Gabriel)은 성도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천사이므로 ((단8:16, 9:21, 눅1:19, 26 참조.)), 첫 시간에 새벽을 깨우며 주님 영광을 나타내는, 그야말 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성가대에 적합한 이름이라 할만하다.(사진 37)

사진 37. 가브리엘 성가대원들(가운데 줄 맨 우측이 지휘자 이상원 집사)
Gabriel Choir members (at far right, middle row, Conductor Deacon Lee.)

한편 그 즈음 교회는 호산나 성가대 지휘자를 구하고 있었다. 신문광고에는 본 교회에 관한 소개와 함께 지휘자의 자격조건을 열거했는데, “현직 본 교단 산하 지휘자나 뉴저지지방의 교회 성가대 지휘자는 응할 수 없다”는 조건이 흥미로웠다. ((1990년 7월 중 뉴욕한국일보 하단 광고 스크랩을 참조했음.))

제2교육관 특별헌금과 구입

8월 26일은 교육관 구입을 위한 헌금을 낮 예배 중에 했다. 예산액은 10만 불이었는데, 실제 헌금이 작정까지 포함해 총 96,410불이 드려졌다. 당일 주보에는 이 헌금의 취지가 실렸다.(사진 38)

사진 38. 제2교육관 전경
Second Educational Building

“오늘은 예배 중에 교육관을 위한 특별헌금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정성된 헌금을 통해 미국 땅에서 2세들이 신앙과 학문을 훈련받을 장소를 허락하십니다. 이 일에 우리는 기쁨과 감사로 참여합시다.”
그날 점심도 청년남전도회가 바자로서 제공, 판매금을 교육관 헌금으로 내놓았다.
이리하여, 지난 1989년 3월 1일 제1교육관 ((11 E. Edsall, Boulevard에 위치 구입가역 $255,000))을 구입한 데 이어, 이 해에 제2교육관을 구입, 12월 15일에 클로징, ((원래는 11월 5일 클로징 예정이었으나 연기됐다. 1990년 11월 4일 주보 소식란 참조.)) 비좁은 교육공간을 한층 더 확보하게 됐다. 제2교육관은 245,000불에 구입했다. 이로써, 본 교회는 본당과 함께 모두 3개의 부동산을 보유한 셈이 된 것이다. 여기에 훗날 예닮원이 추가된다.

환자교우들을 위한 기도

7월 전교우 기도회 때의 순서지를 보면, 서경미 양의 건강회복과 그녀의 믿음과 부모님과 치료하는 손길을 위하여 온 교우가 간절한 합심기도를 했다. 또 가정에서나 구역예배와 주일예배 때 계속 기도해 달라는 광고가 주보에 계속 실렸다. 그 밖의 환자들—김병수 장로와 김지희 양, 최봉숙 교우 등을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는 당부가 있다.
11월에는 서원희(최미선) 교우의 아들 스티븐 군이 입원한 뒤로 기도회 때 김 진 집사와 함께 포함됐고, 12월 그해 마지막 전교우 기도회 때 다시 서경미 양을 위해 집중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듬해도 여전히 서경미와 스티븐을 위한 기도는 계속된다.

개학, 개강 시즌

빌리 박 전도사는 2년 10개월 시무 끝에 ((빌리 박(Billy Park) 전도사는 1987년 10월 18일 자로 중·고등부 교육전도사로 부임했었다. 당시 프린스턴신학교 교역학 석사과정 중이었다. 1989년 6월 1일부터는 전임·풀타임 청소년목회자로서 학생·학부모 상담·성경지도 및 그룹활동 자녀문제 지도 등을 해왔다. 본 교회사 87, 89년도 부분 참조.)) 9월 학기부터 대학원에서 연구하기 위해 보스턴으로 떠났다. 훗날 그가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대학교에서 사역하게 되면서 본 교회가 선교헌금으로 지원하게 된다. 그밖에 몇몇 교우가 타지 학교 개학을 위해 떠나갔다. 빌리 박 전도사가 떠나고 난 공석은 이내 채워졌다. 9월말 최정훈 전도사가 중등부를, 남 웨슬리 전도사가 고등부를 맡게 된 것이다.
한국학교와 경로학당, Tobias 야구학교 등이 9월 8일 한꺼번에 개강을 했고, 뉴저지 성서대학도 9월 11일에 개강했다. Tobias는 12월 16일에 종강예배를 가졌다. 여름철에 잠시 쉬던 청년여전도회 성경공부와 어머니 합창반도 9월4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발전 일로(一路) 한국학교

흑인작가 앨릭스 헤일리 ((Alex P. Haley(1921〜1992). 「뿌리」 (Roots-the Saga of an American Family·1976년작)로 스핀간 메달을 받았다. 「뿌리」는 1767년 감비아(Gambia)에서 노예상인들에 의해 납치돼 신대륙으로 팔린 선조 Kunta Kinte의 족적을 더듬어 12년간 추적하고 연구한 대작으로, 1977년에는 8부 작 텔레비전 드라마로 구성돼 미 전역에 방영됨으로써 주가를 높였다. 이 드라마의 최종 에피소드는 미 역사상 최다 시청자를 끌었다. 물론 그 뒤로도 재방영됐고 한국서도 번역 방영됐다. 「뿌리」는 흑인계를 비롯한 소수민족 전통문화 유산의 소중성과 노예제 폐지의 타당성 부각, 소수인종 민권 앙양 등에 간접 기여했다. ‘World Book’ 9권(‘H’) 참조.))는 자신의 뿌리인 선조 쿤타 킨테의 발자취를 찾아 검은 대륙의 감비아까지 두루 누볐다. 우리의 영적 뿌리는 하늘에 있지만 ((요17:16 참조.)), 우리고유의 문화 전통적 뿌리는 조국 대한민국에 두고 있다. 한국학교는 2세들에게 우리네 전통문화의 뿌리를 일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무렵 본 교회 한국학교가 6년째를 맞아 착실히 성장발전하고 있었다. 1990년 11월 21일자 중앙일보는 본 한국학교를 다루면서 “이제 개교 6년째를 맞지만 학교운영에 있어서 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체계가 잡힌 학교”라고 썼다. ((뉴욕중앙일보 ‘한국학교탐방’ 시리즈의 17번째로 본 교회가 다뤄졌다. 이 부분에서 신문 보도내용을 일부 참조했음.))
90년 가을학기 현재 본 교회 한국학교의 학생 수는 90여명. 초기의 30〜40명에서 크게 늘어났다. 학급수도 3개 학급에서 9개 학급으로 많은 신장률을 보였다. 학생 중 3분의 1이 비(非)교인 자녀들이어서 지역사회 봉사기능도 빼놓을 수 없었다.
당시 학제는 유치반부터 초등학교 ((당시는 한국에서 아직 ‘국민학교’, ‘국민학생’ 등으로 부르다가 90년대 후반에 ‘초등학교’, ‘초등학생’으로 고쳐 불렀다.)) 6학년까지 기초·초급·중급·고급 등 4개 급으로 구분, 급별로 2반씩 모두 8반에다 1년 과정인 중고등부 특별반을 포함, 모두 9 반이었다. 수업은 토요일 9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진행됐다. 3시간 수업 중 2시간은 한국어를, 나머지 1시간은 특별활동을 했다. 특별활동은 태권도, 음악, 미술, 한국역사 등이었다.
본 한국학교의 강점은 한국역사교육이었다. 신문기자와의 대담에서 교감 김성인 박사는 “한국어는 가정에서나 다른 학교에서도 배울 수 있지만, 한국역사는 아무 곳에서도 배울 수 없다”면서 “한국인의 뿌리를 세우는 데 한국역사 교육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사 교육은 학습수준에 맞춰 이야기한국사, 한국사 I·II로 나눠 실시했는데, 교사들의 열의와 필요성을 깨달은 학생들의 진지한 태도로 소기의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더욱이 한국에서 한국사 관련 시청각교재와 영웅·위인전 등을 다량확보, 학생들이 늘 손쉽게 한국역사를 접할 수 있게 했다.
한국학교는 제1교육관을 교사로 활용하는 데다 교회로부터 연4천불의 지원을 받아 유능한 교사와 교재 확보 등에 무리가 없었다. 또 90년 연말로 구입 완료한 제2교육관을 방과후학교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한국학교는 그해에 4년 과정을 이수한 10명의 졸업생을 냈다.

구역예배보고가 주보에 오르다

그해 10월 28일부터 매주간 구역예배 상황이 주보 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 동안은 주보 뒷면 교회 소식란에 다음주 구역예배 예보만 올리곤 했으나, 그 주간부터는 주보 안쪽 예배순서 아랫난에 각 구역담당자와 함께 구역별 장소와 인원, 헌금 등 보고내용과 함께 내주 장소와 연락전화번호까지 수록되기 시작한 것이다. ((10월 28일자 주보에 ’10월 구역예배보고’가 처음 실렸다.))
이것은 구역예배 참여를 한층 더 북돋우는 동기가 되기도 했다. 또 그만큼 주보 편집 및 인쇄술이 발전했다는 얘기도 된다.

수적 성장과 목표 지향

그 무렵 교회가 수적으로 눈에 띄게 부흥하고 있었다. 전년도인 1989년 마지막 주일 교인 통계와 대비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도표 오른쪽 칸의 1990년 11월 11일은 교인 출석수가 가장 많은 주일가운데 하나였다.(표 37)

표 37
교인 출석 통계

우선 성인 모임 중 1부 예배 참석자수를 보면, 새해에 예배 회수를 3부로 늘린 것과 관계없이 교인수가 고정돼 있다.
2부 예배의 경우 참석자 상당수가 3부 예배 쪽으로 옮겨간 듯 전년도보다 준 것을 감안하더라도, 3부에 총 200명이 넘는 교인들이 새로 늘었다. 하나님의 은총일뿐더러 3부 예배의 추가가 성공적이었음을 시사한다.
90년도 주일찬양예배 참석인원이 ‘234명’으로 기재된 것은 구역대항 찬송경연대회에 가족들이 총동원된 결과다. 그 다음주일(11월18일) 찬양예배는 평상시 수준(49명)으로 되돌아갔다. 대체로 찬양예배 참석자 수가 변화가 심한 주된 원인은 특별행사가 있거나 오후행사를 참관 또는 참석하려는 외부 방문자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90년 연초에 시작된 주일 영어예배는 1월 14일 48명이 모였다가 그 다음주 절반이하로 급감(17명)하여 10명 안팎으로 유지된다. 방학 때인 8월중(25명) 중간 최다치를 이룬 뒤 다시 줄어들면서 11월 11일 당일을 비롯, 연말까지 숫자보고가 올라오지 않고 있다. 영어권 신자 다수가 학교 기숙사생 등 이동성이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어린이부의 경우, 유치부 규모만큼의 새 어린이들이 불어났다. 11월 11일 주보에는 “교회학교 어린이부가 200명이 넘게 모인다”는 희소식이 실렸다. 충분한 수적 근거가 있는 것이 10월 중순부터 그때까지 매주평균 180명 이상이었고, 직전 주일인 11월 4일은 유치부 65명, 유년부 134명, 합계 199명이었다. 중고등부 역시 수적 증가율을 보인다. 어린이부와 합하면 전체 교회학교가 300명을 바라보는 단계다.
수요기도회는 참가자 증강 목표가 하나의 숙원이 되다시피 한다. 11월 4일 주보에는 “수요일 예배에 만납시다. 금년 12월까지 수요일예배에 70명 참석하기 운동.”이라고 권면했다. 이 목표는 이듬해 5월, 70명 선을 돌파함으로써 일시 달성된다. ((이듬해인 1991년 5월 19일 주보에 “몇 주간 째 수요기도회에는 60여명이 참석하고 매일 새벽기도회는 25명 이상이 참석합니다. 기도하는 모임에 참석하기에 힘을 냅시다. 하나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란 뉴스가 실렸다. 사실 바로 그 전주 수요일인 5월 8일의 회집 수가 75명이었다. 참고로, 5월 8일 당일 교회증축위원회 모임과 함께 건축설계사의 브리핑이 있었다.))

연말 움직임

11월말에는 김흥교 목사를 부목사로 청빙, 12월 1일부터 시무하게 됐다. 본 교회 오기 전 서울서소문교회 부목사였던 김 목사는 본 교회 행정, 교육, 교구담당 목사 등으로 수년간 사역하게 된다. ((김흥교 목사는 그후 뉴욕한인중앙교회 부목사를 거쳐 가장 최근 뉴저지 보은장로교회를 개척한다.)) 김 목사는 12월 2일 ‘여섯 더하기 하나’(눅 13:10-17)란 메시지로 취임설교를 했다.
연말 당회는 팰리세이즈팍 타운의 주민과의 유대를 위해, 이듬해 연초에 시 공무원을 초청해 만찬회를 갖기로 했다. 교회학교 학생들의 음악과 고전무용, 태권도 등 특기와 장기 쇼, 구역별 음식 등을 준비하기로 했고, 영어가 유창한 사회자도 물색 중이었다.
그해 연말은 여느 때보다 더 감사한 분위기였다. 제2교육관을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성탄음악예배

그해 성탄시즌인 12월 23일 찬양예배 때 어머니합창단이 주관하는 성탄축하 음악예배가 성대히 열렸다. ‘뉴저지한인장로교회 어머니합창단’의 본격적인 첫 데뷔 행사이자 90년대의 첫 음악예배 겸 첫 성탄예배였으니 만큼 의미가 깊었다고 할 수 있다.(표 38)

표 38
성탄 음악 예배

순서지에는 “우리의 작은 목소리로 예수님의 탄생의 기쁨과 또 올 한해도 지켜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준비하였습니다”는 다소곳한 인사말이 올라 있었다. ((당시 대원 명단이 이러했다. 소프라노: 김현주 조항인 노준희 김에스더 정연미 임경애 이경희 안현숙 나혜균 박민서 한혜원 강진희 김정희 장혜경. 메조소프라노: 유정숙, 안정옥 이혜경 심희숙 최영희   박현숙 앨토: 김미경 박정예 이향금 김남주 박순상 홍순애 배연희.))
모두 27명인 단원들은 이상원 지휘, 이희령 반주로 ‘베들레헴의 여인숙’, ‘처음 노엘’ 등 다양한 캐럴의 화음으로 밤하늘을 별처럼 수놓았고, 어린이합창단, ‘작은 불꽃’ 중창단, 오르간·피아노 중주, 남성중창단의 찬조출연도 있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본 교회 성탄 축제는 크리스마스 당일 성탄축하예배 외에 성탄축하음악예배, 어린이성탄축하예배 등 다양한 내용으로 갖고 있었다. 그해 성탄절 이브에 있은 교회학교 성탄예배도 예년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됐다. 특히 음악성극 ‘솔티’(Psalty)는 큰 감격을 맛보게 했다. 1·2·3부 성가대와 가족들은 연말에 연합으로 평가회 겸 위로회를 가졌다. 대학생들을 위한 만남의 파티도 연말에 있었다.
한편 이에 앞서 16일 밤 허드슨장로교회에서 열린 뉴저지교협(회장 김창길 목사) 주최 제3회 성탄축하음악예배도 700여명이 참석하는 등 대성황을 이루었다. ((문정선 목사(찬양장로교회)가 집례한 1부 음악예배에서 김해종 감리사가 ‘하나님의 얼굴’이란 메시지를 전했다. 2부 음악순서에는 200여명의 연합성가대와 찬양남성중창단, 아가페관악합주단, 뉴저지Y여성합창단 등이 출연했다. 지휘자는 이병천 집사, 반주자 석경혜, 독창자는 메조소프라노 윤현주, 테너 박승녕 씨 등이었다.))

교협뉴스 창간과 이민사회

그해 12월 31일 뉴저지교협(당시회장 김창길)이 발행하는 ‘교협뉴스’가 창간됐다.
앞표지에는 허드슨교회에서의 제4회 연합 성탄축하음악예배 광경의 사진을 담았고, 꼭대기에 발행인 김창길, 주간 김철연, 편집인 오다위·이성현 등으로 표시돼 있었다. 실제 편집은 오다위 신부와 김철연 목사가, 원고정리는 이성현 목사와 본 교회의 김성인 집사가, 식자는 오마르다 집사가 맡아 수고했다.
창간사에서 김창길 교협회장은 여러 한인교계 관련 통계자료를 인용하고, 교회를 중심한 민족들이 미국에서 조기정착을 했고 사회에 많은 기여를 한 역사적 전례들을 열거했다.
초기 청교도들은 ((즉 필그림들(Pilgrims). 엄밀한 의미에서,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에 상륙, 최초로 정착한 영국 이민자들은 ‘청교도'(淸敎徒·Puritans)와는 다소 다른 ‘분리파'(Separatists)였다. 전자는 영국 국교회(Anglican Church) 제도 안에서 내부적으로 정화하기(purify·여기서 퓨리턴이란 이름이 나옴)를 원했던 반면, 후자는 국교회의 내적인 정화 여지가 없다고 봤기 때문에 더욱 박해를 받아 결국 화란으로 피신하게 된다. (훗날 초기 플리머스 교회를 시무한) 윌리엄 브류스터 장로가 1606년 영국 스쿠비에 설립한 분리주의 모임이 정부에 의해 불법화되자, 교인들을 이끌고 화란 암스테르담 도피생활을 거쳐 1609년 라이덴(Leiden)에 수십 년 정착했다. 그러나 2세들이 화란 문화에 물들기 시작하자, 신대륙 이민을 결심한다. 이때 윌리엄 브랫포드(플리머스 정착촌 초대총독)가 “이 무리는 순례자”라고 지칭한 데서 필그림이란 이름이 생겼다. 진짜 청교도는 필그림이 상륙한 수년 후에야 비로소 주변 지역에 도착하기 시작한다. 관련 인터넷 참조.)) 미국의 정신사의 기초를 놓아 오늘날도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그 신앙전통을 찾을 수 있다. 뉴저지와 뉴욕에 들어온 화란사람들은 개혁교회 전통을 심어 세계제일의 문명도시를 건설했고 앵글로색슨계는 성공회(영국 국교회)를 들여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비롯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을 배출했다.
루이지애나를 중심한 프랑스계와 나중에 이민 온 이탈리아계는 카톨릭으로 교육계에 공헌했고, 유태계는 회당을 도입, 특히 경제·문화예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민족(ethnic)이 됐다.
한인들은 보다 더 늦게 온 이민그룹이지만, 75〜80%가 기독교인들로서 교회생활 중심으로 이민생활을 개척, 정착해나가기 때문에 틀림없이 미국 주류사회에 공헌하고 성공할 것이라는 것이 김 목사의 전망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민교회의 역할과 교회지도자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하며 교협의 영향력도 막대한 것이다.
이어서 김 회장이 밝힌 교협뉴스 창간의 의의는, 1. 교파와 규모가 서로 다른 교회들의 단합과 협력, 2. 각 교회의 뉴스 전달의 창구 역할, 3. 지상강단과 연구발표를 통한 목회정보 교환, 4. 지역사회를 향한 한 목소리의 강화, 5. 문서선교지 역할 등이었다.

1990년도 주요 대내활동 일지

 1. 7. 신년주일. 성찬식. 연합 제직수련회(강사: 김계용 목사).
 1. 14. 지 교회 브런스윅장로교회 성찬식 및 제직임명식(집례: 김창길 목사).
 2.  1. 박희일·김인선 협동장로 임명.
 2.  8. 오순덕 권사에 공로패 수여.
 2. 11. 김창길 담임목사 본 교회 성역 10주년.
 2. 18. 서무부, 교인주소록에 수록하기 위한  각 가정 사진 촬영개시(김진 집사).
        교실 효율적 사용을 위한 설문.
 2. 18〜3. 3. 임마누엘회 성지순례.
 2. 25. 전도부, 1인1불 선교헌금 관련보고.
 3. 25. 3부 할렐루야성가대 김경희 솔리스트 부임.
 3. 10. 뉴저지성서대학 제1회 졸업식.
 4.  1. 이윤규 장로 협동장로 임명.
 4.  2. 대심방 개시.
 4. 11. Tobias 야구학교 개강.
 4. 28. 청년여전도회 바자회(총$3,976 모금).
 4. 29. 김진양 전도사 사임(지 교회 개척 차).
  5월중 청장년 야구팀 친선경기 차 조직.
 5. 12. 남전도회 가족모임의 밤.
 5. 20. 김혜희 전도사 사임(이명호목사와 한국사역 차).
 5. 27. 야외예배(Tollman Park). 300여명 참여.
 5. 31〜6.3. 김호일 목사(서소문교회) 초청 부흥사경회
 6. 16. 중고등부 가족의 밤
 7.  1. 여름성경학교 교사 수련회(교회당).
        각부 졸업예배(신학교 2명, 대학원 박사과정 2명, 석사·학사 각1명, 중고등부 18명, 초등학생 6명.
        어린이부 교회학교 교사강습회(강사: 조유경 전도사).
7.  9〜12. 어린이여름성경학교(본당).
7. 15〜17. 전교우수양회 강사: 이기경 목사(서울경동제일교회) ((제9차 전교우 수련회: ‘부름 받은 공동체’란 주제아래 열린 이 성회에서, 이 목사는 7월 15일 대예배 때 ‘부름 받은 공동체'(마16:13-20)란 설교를 한데 이어, 포레스트 수양관에서 ‘교회의 우선 순위'(요4:19-26), ‘뒷마당은 어떤가'(삼상1:10-23), ‘달란트'(마25:14-20), ‘드로아의 환상’(행16:6-10) 등의 메시지로 이끌었다. 오전집회는 창세기 공부로 이어졌다. 총경비를 교회가 부담한 이 성회에는 약160명의 교우가 참가했다.))
7. 23〜27. 중고등부 캠프(케이프메이 캠프장)
7. 29. 학습·세례·아기세례 거행
      1부 예배 가브리엘성가대 찬양 개시(지휘: 이상원 집사).
      미주장신대성가단 제1회 순회공연
(지휘: 이재숙 교수/반주: 김미경) ((반주자 김미경 씨도 우리 교회 반주자인데다 15명 단원들 중 본 교회 김진양 전도사, 유영은 집사 등 상당수의 교우들이 있었다.))
8. 16〜18. (목-토) 어린이성경캠프(벧엘기도원). 85명 참가. 회비: $60.
8. 26. 교육관 헌금(예산: 10만불/모금: 작정포함 $96,410).
9월중 빌리 박 전도사 보스턴으로 연구차 이임.
9.  8. 한국학교, 경로학당 개학.
9. 11〜12. 뉴저지성서대학 개강.
10.  1. 호산나성가대 이한섭 지휘자 부임.
10.  5〜6. (금-토) 임마누엘회 가을여행(플리머스-보스턴). 30명(최초로 버스대절).
10. 14. 새 신자 환영예배.
10. 28. 창립 18주년 기념예배. 기념 음악예배(어머니합창단 첫 공연).
11.  4. 구역대항 찬송가경연대회.
12.  1〜2. 청년남전도회 주최 찬양의 밤.
강사: 송병기 목사(목양장로교회).
12.  1. 김흥교 목사 부임. 사역 개시.
12. 15. 오후 제2교육관 클로징.

1990년도 주요 대외활동

 1. 28. 버겐경로학당 개교.
  4월중 ‘사랑의 쌀’ 모금($ 1,000) 한국일보사에 전달.
        남전도회 앤지 양 돕기 모금($ 848)전달.
 4. 19. 이명호 장로, 제2차 뉴저지노회서 한국파송 선교사로 목사안수 받음.
 6.  4. 김창길 목사, 뉴저지한인교회협의회 제4대 회장 피선.
 6. 19〜21. 미주한인장로회 15회 총회(본 교회 총대 김창길 목사·정주섭 장로). 김 목사 서기 피선. 김진양, 이학준 전도사 목사고시 합격.
 6. 24.〜27. 노회교육부 주관 중고등부연합 수련회(벧엘수양관).
            전체 135명(본 교회 30명) 참가.
 7. 14〜15. 뉴저지교협 주최 베뢰아 귀신론 비판강좌(에덴교회당). 강사: 원세호 박사.
 9.  6〜9. 뉴저지노회 제2회 뉴저지장로교선교대회(뉴저지초대교회).
            주제: 너희가 주라(막6:37). 강사: 이상근 목사(대구제일교회).
10. 16.(화) 제3회 뉴저지노회(총대 강동열·정주섭·양호식 장로).
10. 20.(토) 가을철 리틀리그 야구대회에 Tobias A·B팀 참가.
10. 20.(토) 뉴저지여전도회연합회 주최 이민자녀교육세미나(강사: 김득해 박사).
12. 16. 뉴저지한인교회협의회 제4회 연합 성탄축하음악예배 (허드슨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