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우리 교회의 발자취 | Chapter 2 The Church History
5. 성숙기(1996-2002) | Maturity Period
날마다 가르치며 전도하는 교회
서소문교회 50주년
새해 새 모습, 새 모임
찬양예배 환원
주보 3절·6면 시대를 맞다
사역자 변동
졸업 예배
체육대회 열다
지역 청소
서소문교회 대학청년회 방문
올림픽에 참가하다
15차 전교우 수련회—예닮원에 입촌(入村)하다
<입촌자 주의사항>
1. 모든 집회에 전원 참석합니다.
2. 시간을 엄수합니다(기상·식사·집회·취침시간).
3. 시설을 아끼고 사용 후 깨끗이 청소하여 제자리에 둡니다.
4. 물과 전기를 절약합니다. 샤워실 화장실 세면실을 사용한 후는 물이 완전히
잠겼나 확인합니다.
5. 주위를 청결하게 유지하며 제반 규율과 질서를 지킵니다.
6.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보호합니다.
7. 독충에 유의하여 잔디에 앉거나 숲에 들어가지 아니합니다.
8. 모든 식사는 야외 식탁에서 식사함을 원칙으로 하며 자기가 식사한 자리를
자기가 청소합니다.
9. 배식을 받을 때 자기가 먹을 만큼만 받고 남겨서 버리는 일이 없도록 유의합니다.
10. 육의 양식을 대하기 전 영의 양식(외울 요절)을 암송합니다.
11. 은혜 받는 데만 전념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사회 이야기는 삼갑니다.
12. 라디오나 TV청취, 외부와의 연락을 금합니다.
13.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수련회 본부로 연락합니다.
이 집회를 위해 강사 김명준 목사는 유달리 치밀한 계획 속에 빈틈없이 말씀을 준비한 듯 했다. 집회기간 중 그는 하이라이트인 ‘성장 시리즈’를 다음과 같이 전개해나갔다. ((새벽집회는 ‘물가에 심은 나무—아무리 해도 안되더라’(시 1:1-3), ‘이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자’(빌 2:12-18), ‘하나님의 음성’(요 10:27 / 삼상 3:1-14), ‘기뻐할 이유가 있다’(빌 4:4-7)등의 말씀으로 이끌었다 주일 낮 예배설교는 ‘나의 별명은 무엇인가’(행 11:19-26), ‘브라가의 골짜기’(역대하 20:20-26)였다 마지막날인 다섯째 날 새벽은 안수기도회로 이끌고 그날 낮 ‘서로 격려하라’(히 10:19-25)— ‘든든한 교회가 되어라’란 메시지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해의 목표 ‘날마다 가르치며 전도하는 교회’와도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성장키 위한 치유—이젠 속 사람도 건강하게 살자'(엡3:14-21)
‘성장을 위한 시작—나는 누구일까'(창2:7-17/시139:1-24)
‘성장을 위한 회개—교만의 그 쓴 뿌리'(벧전5:5-7)
‘성장을 지속하는 삶—이젠 찬송하며 살자'(시150:1-6)
‘성장을 위한 원동력—그 능력의 원천은 어디인가?'(행1:4-8)
‘성장을 위한 마지막—나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 것인가?'(살전4:13-18)
러시아 단기선교
중고등부와 영어부 7명은 8월 5〜24일 기간동안 김도수 선교사가 사역중인 상페테르츠부르그로 단기선교를 다녀왔다. 인솔자는 대니 한 목사였다. 이를 위해 성도들이 1만 불을 모금, 절반은 단원활동 보조비로, 나머지는 현지교회에 필요한 물건 구입에 사용됐다. 단기선교단은 8월 5일 월요일에 출발했고 9월29일 찬양예배를 보고간증회로 가졌다.(사진 49)
8월중 행사
여름동안 무더위와 각종 행사와 쉬었던 성경공부반이 9월에 일제히 개강했다.
매주 일정은 이러했다.
•월요어머니성경반: ‘영적성장의 정상에서’ / 월요일 오후12시30분〜2시/제1교육관/김에스더 사모
•제2남전도회 성경반: 이사야서/화요일 오후8〜10시/제1교육관/김영덕 목사
•목요어머니성경반: 창세기/목요일오전9시30분〜10시30분/예닮원/김에스더 사모
•금요어머니성경반: 로마서 12-16장(생활편)/금요일 오전9시30분〜11시30분/친교실/김영덕 목사
•버겐경로학당 매주토요일 오전10시 오후1시 제2교육관
•토요지역 청소: 팰리세이드팍 타운을 위한 봉사의 일환으로 매주 토요일 오전6시30분부터 한 시간동안 브로드애브뉴를 청소했다.
그해 가을 한국학교는 9월 28일부터 이듬해 2월 5일까지 총16주 계속됐다.
유아·유치·초등학교생을 망라한 토요반은 매주 오전9시30분부터 오후12시30분까지 계속됐다. 장소는 팰리세이즈팍의 본당이었다.
주일반은 중고등·대학·장년반을 위한 것으로 매주 주욜 오후3시〜5시30분에 예닮원에서 실시됐다. 수업료는 1인당 150불(+교통비 70불)였고, 가족중 두번째 사람은 120달러(교통50불) 등이었다.
9월 29일 주보에는 특히 아름다운 기사가 실렸다. 이마르다 집사가 몸이 불편하거나 바깥출입을 못하는 교우들의 머리와 손발톱을 깎아주려고 자원봉사를 나선 것이다. 월·목요일 점심시간부터 저녁 사이였다. 사실상 이민 생활을 하다보면 나이 많은 어르신네들이나 환자 중에서 그런 궂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한 둘이 아닌데도 돌봐줄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 마르다 집사는 그런 이들을 평소 온정과 사랑의 눈길로 눈여겨 봐 왔기 때문에 이귀한 봉사에 선뜻 나설 수 있었을 것이다. 마르다—이름[名]다운 봉사였다.
바자문화 정착
바자회는 우리 교회의 기성문화로 정착되다시피 해마다 열리고 발전해 나갔다. 이를테면 바자전문가들이 되어간 것이다.
그해 건축바자는 10월4〜5일 이틀간 열렸다. 임마누엘회, 남녀전도회, 대학청년부까지 총동원된 이 바자는 예년의 전통음식과 밑반찬 외에 “새로운 아이디어나 모든 팔 수 있는 물건”들을 도네이션 해 달라는 주문도 했다.
주보 간지에는 “우리가 서로 마음을 합하여 힘껏 일할 때에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날 줄 믿으며 하나님께서는 큰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는 신앙고백이 들어갔다.
올해는 “김칫병은 깨끗이 씻어주시고 입을 옷은 세탁해 가져오면 좋겠다”는 귀띔도 살짝 곁들였다. 간혹 교우들이 집에서 급히 가져오다 미처 씻지 않고 찌끼가 그대로 남은 병이나 식구들이 입다가 빨지 않았거나 세탁소에서 손질하지 않은 채 그대로 도네이션 하는 사례도 더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치를 만들 자원봉사자도 찾고 있었다. 김치와 밑반찬도 해마다 약간씩 종류가 바뀌곤 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연연히 하다보니 이력이 붙어 손쉽게 더 맛있고 잘 만들 수 있는 것, 교인들이 선호하는 종류가 파악됐을 것이다. 또 간혹 특별한 김치나 반찬 전문가가 기라성처럼 새롭게 등장하거나 반대로 형편상 못 나타날 경우도 있다.
바자에 내놓은 김치는 배추포기김치, 막김치, 깍두기, 파김치, 오이김치 등, 밑반찬은 오징어무침, 멸치볶음, 깻잎, 연근조림, 마늘종, 무장아찌, 미역줄기볶음, 고추장아찌, 오이장아찌, 콩자반, 간조기 등이었다. 전(부침)종류는 빈대떡, 생선전, 고기부침, 게살부침 등이었고 그밖에 김밥, 튀김만두, 잡채, 떡볶이 등도 나왔다.
바자 수익금은 총 2만여 불이었다.
감격에 겨운 찬양
음악부(부장 이인용)는 96년도 성탄축하 찬양예배를 앞두고 10월부터 연합찬양대원 모집에 나섰다. 모집안내문은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부르는 찬양’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옵니다.
늘 여유 없이 이리 쫓기고 저리 밀리면서도 교회와 더불어 살아온 한해를 돌이켜보면, 우리를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그분의 변치 않는 사랑과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 사랑 속에서 그를 우리의 구주로 시인하고, 그 말씀을 배워 세상살이에서 실천하고자 살아온 우리의 힘에 겨운 시도들은 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섭리와 사랑에 감동되어 나온 것들임을 시인합니다. 그 사랑에 감격합니다.
96년 12월 15일 저녁 성탄축하찬양예배가 교회 음악부를 중심으로 준비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아무 제한없이 금년 성탄을 찬양으로 맞이하실 분들이면 누구나 이 찬양에 참가할 수있습니다. 우리의 음악적 재능의 부족은 여러 지휘자 분들이 도와주시게 될 것이므로 염려하지 않아도 되지만 우리 구주 예수를 찬양하는 뜨거운 마음만은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교회활동에 참여하지 못하신 분들, 찬양하고자 하는 권사님들, 감격찬 인생의 귀한 순간을 소유하고 싶은 젊은이들. 사람의 이목을 끌 것은 아무 것도 없으나 하나님과는 늘 교통하는 귀한 분들, 다 참석하십시오.
우리의 부족한 목소리를 모아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우리를 구원하시러 죽고 살아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힘껏 찬양합니다.
…(중략)…노래 잘하는 분들의 모임이 아니므로 감격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할 믿음의 형제, 자매를 초청합니다. 쑥스러움 없이 그냥 오시는 그 순간부터 같이 노래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참석하시는 분들의 96년 겨울, 할렐루야를 부르는 여러분의 성탄은 분명히 의미있는 인생의 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996. 10. 11
당회장 김창길 목사
음악부장 이인용 장로
이를 위한 첫 연습은 10월 10일 저녁부터 가졌고 7시30분에 참가자를 위한 식사도 준비되어 있었다.
예닮원 도서실 운영
예닮원 구내 도서관이 성도들의 정성어린 도서 기증으로 10월 27일 현재까지 총 800여권을 소장하게 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대여시간은 목요일 12시(정오)〜오후 2시, 주일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였다. 윤희선, 구자섭 집사가 봉사하고 있었다.
제7회 구역찬송가대회
제7회 구역찬송가대회가 11월10일 예닮원에서 개최됐다.
음악부는 이를 앞두고 자유곡 악보 사본을 미리 제출하도록 했다.
대학청년부는 당일 주차장 안내와 베이비시팅을 맡아했다. 공평을 기하기 위해 예년처럼 미리 무작위로 짜여진 순서대로 진행됐다. 반주는 예년처럼 참가팀을 전체 3부분으로 나눠 이정희, 배승아, 박미순 씨 3명이 교대로 맡았다. 처음 시작 때 다음 구역이 본당에 착석, 그 외의 구역은 친교실에서 관람한 후 한 구역이 끝날 때마다 순서에 따라 본당으로 이동한 후 착석케 한 것이다. 김영일 집사와 박광자 권사가 진행한 이날 대회의 심사위원과 평점 배려는 별도 표와 같았다. 시상은 1·2·3등에 트로피 및 부상을, 기타 4·5·6 등 은혜상·화목상에 아차상·못말려상까지 수여했다.
출석부문 심사위원들에게 분배된 출석채점표에는 각 구역 재적수와 출석수, 중간점수와 어린이 등을 배려한 가산점을 매길 수 있는 채점란까지 갖춰져 있었다. 또 전체 평점표에는 구역별 지정곡(253·401장)과 자유곡 곡목이 적혀있어 어느 때보다 확실한 평점을 할 수 있게 배려했다. ((평점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괄호속은 구역장·권찰) 특등:12구역(유동우·조정애)/1등:23구역(염충국·구자섭)/2등:21구역(최재식·유숙영)/3등:22구역(임용성·정만님)/4등:11구역(곽광덕·조용림)/5등:17구역(조동천·임란영)/은혜상:9구역(이기종·한상량)/화목상:10구역(박병태·최승경)/노력상:18구역(유강윤·최순재)/아차상:24구역(장재열·황매화)/못말려상:3구역(김진·천춘심)))
중·고등부 연말 찬양잔치
추수감사절을 맞아 11월 20일 수요기도회는 특별 찬양예배로 드렸다. 각부 성가대 솔로이스트 및 지휘자들이 참여하는 특별찬양팀과 함께 경배와 찬양을 통해 감사와 사랑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이어서 중고등부 성가대도 11월 24일 주일에 성가발표회를 가졌다.
부흥케 하옵소서
와 보라, 구역예배로!
제2여선교회 첫 번째 수련회
예닮원에 나무심기
4월 13일 97년 교구대항 성경퀴즈대회
그해의 체육대회
러시아 단기선교
중고등부 러시아단기선교팀 ((러시아선교 참가자는 김창길 목사, 오안순 권사, 허필연 집사, 제임스 리 전도사, 캐롤 손 전도사, 김영민, 양수진, 이수인, 필립 김, 황수진, 김유근, 김지헌, 에릭 장, 박주현 등 14명이었다.))이 6월 13일에 개최한 ‘미션의 밤’에 366불, 전교우 체육대회 당시 팥빙수 봉사로 980불을 각각 모금했다. 또 7월 11, 12일 이틀간 중고등부 학부모회가 협력, 바자를 통해 헌옷과 헌책, 장난감, 모자, 물안경, 액세서리, 기타 팥빙수, 핫도그, 비빔밥 등을 판매했다.
선교여행의 회비는 2,000불이었고 기간은 8월2〜18일이었다. 러시아선교를 위한 교우들의 헌금은 총 1,936달러였고, 교우들이 씨앗, 참기름, 여자용 옷 등을 기부했다.
한편, 김 목사는 러시아선교여행 중 상페테르츠부르그에서 그곳 장로교회 대예배 설교, 찬양교회 설교, 시골교회 설교, 가나안 신학교 강의, 선교사 면담과 선교사 대접 등을 하고 돌아왔다. 단기선교팀은 하기학교와 노방전도, 고아원 생활을 마치고 모스크바 방문 후 돌아왔다.
축구의 선구자 장기호 집사 소천
본 교회 장기호 집사가 그해 7월 18일 55세를 일기로 타계, 20〜21일에 장례식이 볼크장의사에서 거행됐다. 장지는 조지 워싱턴 기념묘원이었다. 김귀남 권사의 남편인 고 장 집사는 일찍이 1977년 본 교회 체육진흥후원회 회원으로서 교회체육과 축구 발전 ((1982년 6월, 제6회 미 동부지역 봉황대기 축구대회에서 장기호 집사가 이끄는 뉴저지청년회가 4연승을 했고 최우수선수로 우리 교회 변효남 교우가 뽑히기도 했다.))에 크게 기여했다. 84년에는 서무부장으로도 헌신했고, 85년에는 전도상을 받기도 했다.
1942년 10월 25일생인 그는 1962년 대한민국 청소년축구 국가대표선수를, 65년에는 국가대표선수를 지냈다. 80년부터 본 교회 서리집사였고 89, 92년 대뉴욕축구연합회 회장을 지냈으며, 95년에는 초대 뉴저지축구협회 회장도 역임했다. 그는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축구발전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에 심혈을 기울였다.
1남 2녀와 두 손녀를 두었고 목사 사위(엄태용)도 두었다. ((본서의 320쪽 1992년도 첫 부분 참조.))
사진 51. 임마누엘회가 된장, 고추장을 팔아 모은 자금이 교회묘지(임마누엘 동산) 구입의 태동이 되었다.
Members of Emmanuel Senior Group prepare food for the Church Bazaar. Proceeds to contribute to Emmanuel Hill Cemetery.
교회묘지(임마누엘 동산) 구입 바자
그해 8월 24일에 교회묘지를 마련했다. Westwood Cememtry였다. (사진 51)
한 기(基) 당 4백 불이었고, 임마누엘 회원은 350불이었다. 신청기간은 9월 14일까지였고 그 후로는 600달러였다. 9월 초 묘지구입위원회를 확정했는데, 위원장에 정주섭, 부위원장 김인선, 총무 이상근, 서기 최영선, 회계 황종태 등이었다.
묘지구입을 위한 바자도 했었다.
“임마누엘 회원들이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교회묘지 구입을 위해 기도하면서 깨끗하게 조미료나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은 정갈한 토속된장, 고추장 홈메이드가 있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친교실로 내려가셔서 가져가시기를 바랍니다. 임마누엘회에서는 빈 김치병을 모집합니다.”
예닮원 성전건축 바자회
10월 10〜11일 이틀간 건축바자회가 팰리세이즈팍 본당에서 열렸다.
바자공문이 퍽 정성을 들인 내용이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주님의 이름으로 초대합니다. 예닮원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젠 이 터를 아름답게 가꿔야 할 우리의 일이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아래와 같이 건축바자회를 준비하고 여러 교우들을 초대합니다. 아울러 함께 나눠 쓸 수 있는 물건들을 도네이션도 해주십시오.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이 일에 우리 함께 동참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주안에서
특히 11일 저녁은 온 식구가 교회에서 외식하는 날로 교인들을 적극 유치했다. 교우 사업체로부터의 물품 도네이션도 환영하고 있어서 의류와 모자 등을 대량 기증한 교우들도 있었다.
‘웃긴다 상’ 신설
제8회 구역찬송대회가 10월 26일 예닮원에서 개최됐다.
늘 비슷하면서도 매번 대회운영 방식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해는 심사 ((그해 심사위원은 다음과 같았다. ▷ 출석: 김영덕, 조한경, 정은혁 목사, ▷음악: 이상원, 김홍일, 박현, 이장원 지휘자. ▷ 태도: 김창길, 한태헌 목사, 집계: 이인용 장로, 서강민 집사.)) 배점에 있어 예년과 달리 출석과 음악 점수 만점을 똑같은 40점씩으로 매겼다. ((과거에는 출석점수(40점)가 음악점수(30점)보다 보통 10점 더 많았었다.))
시상 내역도 강화됐다. 1·2·3등과 ‘은혜상’, ‘화목상’, ‘아차상’, ‘못말려상’ 등 기존 상 종류에다 새로 ‘엄숙상’과 ‘웃긴다상’, ‘대기만성상’ 등이 새로 추가됐다. 엄숙상은 미소보다는 근엄한 표정을 즐기는 팀 때문에 생긴 듯 하고, ‘웃긴다’상은 실력보다는 유머나 표정 등으로 한참 웃기는 구역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대기만성'(大器晩成)상은 실력은 그렇더라도 격려하기 위한 ‘장려상’ 격으로 마련한 듯 했다.(표45)
지정곡도 예년과 달리 3곡(204·484·500장)을 정했다. 아마도 너무도 뻔한 곡들을 갖고 반복하기 보다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또 자유곡에서 찬송가가 너무 적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유곡은 전년도부터 진행돼온 경향대로 24개 팀이 부른 곡들중 찬송가는 불과 5곡뿐, 나머지 19곡은 모두 경배찬양곡 아니면 복음송들이었다. 또 ‘내가 만일 나비라면’, ‘지존하신 하나님’ 등 비교적 새로운 곡들도 눈에 띄었다. 대회 도중에는 대학청년부의 특별순서도 곁들여졌다. 제8회 구역찬송대회 결과는 별표와 같았다. 한편 구역예배 실황을 녹화한 비디오가 각 구역마다 1개씩 배부돼 구역예배 때 구역원들과 함께 시청할 기회를 가졌다. ((비디오 작가 조정태 집사가 제작한 것이었다.))
제5회 문학의 밤
11월 8일에는 대학청년부 주최로 제5회 문학의 밤이 개최됐다.(표 46)
‘선택’이란 주제를 내건 이번 문학의 밤의 내용은 합창과 남성·여성중창·기악이중주 등 음악과 시와 수필 등 문학작품낭송 등으로 이어졌고 II부는 연극 ‘죽으면 살리라’로 이어졌다.
예닮원 목사관 헌납
11월중 김낙중(이은진) 집사 가족이 예닮원 곁 2.16에이커 땅과 테니스장, 수영장 등이 달린 저택을 값을 지불해 봉헌했다. ((김낙중 집사(2001년 5월 장로 장립) 가족은 사업상 후로리다로 잠시 이주하여 있을 때 본 교회에서는 건축 헌금을 실시, 이에 그들이 참여치 못하였다가 다시 뉴저지로 이사오게 되면서 건축헌금에 동참하지 못함을 섭섭히 여겨 이를 봉헌하게 된 것이다.))(사진 52)
감사절 찬양
그해 추수감사절은 보다 의미 깊게 보내려고 각별한 정성을 기울여 특별음악순서와 이벤트들을 준비했다. 감사절 당일인 11월 23일밤은 음악예배로 드리고 수요일인 11월 26일에는 ‘예수 이름 높이세’ 란 주제 아래 ‘97 경배와 찬양의 밤’을 가진 것이다.(표 47, 48)
한편 제 1남선교회원들은 추수감사절 시즌에 사회사업의 하나로 불우한 이웃을 위한 터키 구입비로 750달러를 모금해 11월 24일 팰리세이드팍 시 사회봉사부에 기증했다.
안수집사·권사 선출투표
11월 30일에는 안수집사 30명, 권사 15명을 선출하기 위한 공동의회가 1〜4부 전체예배에서 실시됐다. 각부 예배 마다 투표위원장과 위원들이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용지는 안수집사는 후보자 70명의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나열된 푸른빛 투표용지에 유권자 1명당 30명까지, 권사는 핑크 빛 종이 위 58명의 후보들 중 15명까지 표기하도록 했다. 기표 방식은 이름 곁칸에 O표를 하는 방법이었다. ((투표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피택안수집사: 최재식 임용성 정해양 유동우 김영일 차태준 김환욱 유강훈 유승삼 민의홍 염충국 김홍일 곽광덕 박현 임경무 남대현 이전무 차원빈 이상화 박기헌 이문세 서강민 오승렬 이용규 유강윤 주요식(26명). 피택권사: 허필연 오민자 이수온 권정숙 어혜숙 안상기 강애자 계정숙 안상배 최봉숙 구자섭 김인식 곽정례 김경희 배동희(15명)))
여선교회 5개로 분할
당회는 12월 7일부로 여선교회를 모두 5개로 분할했다. 날로 늘어나는 교인 수를 나누어 부서를 보다 효과 있게 운영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4·5여선교회는 새로 탄생한 셈이다. 그리하여 이듬해 1월말까지 전5여선교회의 임원단 조각이 마무리됐다. 제4여선교회의 초대회장은 김영미, 5여선교회는 김현희 교우였다.
그해 성탄축하예배
1997년도 대내·외 활동일지
날마다 더하는 교회
새해 첫 주일, 김창길 목사는 ‘1998년 새해 첫 아침을 열며’란 신년사를 내보냈다. ((이 신년사는 영어권 교우들을 위해 영어로도 번역돼 배부됐다.본서 메시지 모음 참조.))
목회자로서 온 교우에게 복을 비는 새해 인사와 함께, 그해 표어를 ‘날마다 더하는 교회’(행 2:47) ((이 표어는 1991년도와 같은 것이었다.))로 정했다고 서두를 열었다. 그 해는 새 성전 건축과 신앙교육, 세계선교, 지역사회 발전 등에 구체적 관심을 갖는 한 해가 될 것을 바랐다. 특히 김 목사는 교우 전원이 나뉘지 않고 함께 예배할 수 있는 성전을 열망했다.
“4부에 걸쳐서 계속 이어지는 주일 대 예배의 숨가쁜 진행 속에 성도들이 따로 주님 안에서 교제할 시간조차 찾지 못함을 늘 가슴아파 하면서 장년 뿐 아니라 모든 교회학교를 합해서 1,000명을 넘는 온 교우들이 다 함께 한 자리에 모여 같이 예배할 수 있는 성전을 짓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주시기를 소망해 봅니다.”
예닮원의 28에이커 땅에 온 교우가 다함께 예배할 큰 성전을 짓는 것은 단지 현 건물이 좁고 불편하기 때문만 아니라,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선교사업의 확고한 기틀을 잡을 수 있고, 2·3세 들에게 코리언크리스천으로서 민족적 정체성을 불어넣을 후세신앙교육의 구심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새해부터 예닮원의 새 본당 건축의 재정적인 초석으로서 교회 전체예산의 10분의1을 건축기금으로 적립할 것이라고 김 목사는 밝혔다. 아울러 새해 중 제1교육관 확장공사를 하여 “자녀들이 앉을 자리가 없어 문밖에서 서성거리는 일이 없도록 할 계획”이라고 다짐했다.
예닮원의 드넓은 공간에 비해 자녀들 특히 유치부가 마음놓고 뛰놀 놀이시설이 미비된 점도 새해에 보강할 계획이었다. 그 즈음 교회는 또한 중고등부 전담 목사를 계속 물색 중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선교사업과 관련, 러시아에 단독 파송한 김도수 선교사 3년 지원계획을 3년간 더 연장키로 결의했다. ((김 선교사 3년 지원계획은 전년도인 97년으로 만료됐었다.)) 또 앞으로는 러시아뿐 아니라 타 국가에도 더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한 해가 되기를 김 목사는 소망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 목사는 성도들 자신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끝으로,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이 미국 땅에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아시안-아메리칸으로서의 자리매김을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우리 한국이민교회는 세계인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이민사회 속에서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에 대해 품위 있는 한국타운형성에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작게는 우리의 말과 행위를 늘 삼가 조심하고 차를 파킹하는 것에서부터 가게를 꾸미는 것에 이르기까지 미국사회 속에서의 한국인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는 데 힘써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속한 팰리세이즈팍이 한인동포들 때문에 제2의 플러싱이 됐다 ((플러싱(Flushing): 뉴욕 퀸즈(Queens)의 수도와 같은 중심지. 1639년 퀘이커교도들이 최초로 정착, 화란어 ‘플리셍겐’(Vlissengen)으로 명명했다가 후에 영국식인 플러싱으로 바꿨다. 플러싱 타운십은 1838년에 형성됐고, 18〜19세기에 유치원으로 유명했다. 70〜90년대에 한국·인도·중국계 아시안 이민이 대거 진입했다. 한인 밀집지역은 가히 코리아타운이라고 할 수 있으나 무질서한 한글간판, 200곳을 넘도록 지나치게 밀집된 한인교회, 주일날 주차공간 등의 문제가 지역사회 일각의 ‘골칫거리’가 되어있다. 플러싱 중심가 메인스트리트는 이미 90년대 후반기부터 차이나타운이 되었으며, 한인상가도 점차 노든불러바드 선상 베이사이드 등으로 북상하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스스로 모든 점에 자제하고 선한 일에 부(富)한 신앙 있는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또한 적어도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주일날만큼은 우리 신앙의 선조 대대로 이어져온 주일성수에 대한 태도에 있어 분명한 결단이 있어야 되리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릴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날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위대한 결단의 자리에까지 나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새해 새 일꾼
새해 초 당회는 영어부 서리집사를 임명했다. 서경미, Sung Park, Jin Yon, 정은주, Joseph Siu, Yoon Kim, Robert Cho 등이었다. 획기적인 조치였다.
묘지관리위원장으로 김인선 장로를 임명했다. 한편 지난해 연말에 뽑은 피택 임직자들을 위한 교육이 새해 첫 주부터 예닮원에서 시작됐다.
1월 11일에는 도서부장 차원빈 집사, 차장 이혜숙(b) 집사를 임명했다. 당일 1·2·3·4부 예배 후 당회장실에서 서리 집사 인터뷰가 실시됐다. 24〜25일에는 권일연 목사(팰리세이즈장로교회)를 초청, 제직회 수련회로 가졌다.
교회학교를 위해서는 교장 김창길 목사, 교육담당 교역자 한태헌 목사, 교육부장 최영선 집사, 교육부 차장 양승효 집사와 팰리세이즈팍과 예닮원 각 교육부서의 지도자와 부장, 부감 등을 임명했다. 지도·부장·부감 등 교회학교 부장단의 첫 모임은 2월 8일 본당에서 있었고 석달에 한번씩 식사를 나누며 모임을 갖기로 했다.
미소 양의 미소
새해 초인 1월 3일에는 본 교회 대학청년부에서 많은 활동을 해온 김미소 양이 남진현 군과 혼례를 올렸다. 식은 예닮원에서 김창길 목사 주례로 거행됐다. 김미소 양은 대학청년부가 주최한 문학의 밤에서 특히 맹활약을 해왔다. 바로 전년도인 97년 11월초 문학의 밤 때도 그러했다.
준비성 있는 예배를
새해 2월 8일부터는 예배담당자인 집예·기도·설교 담당자들이 예배시작 10분전에 강단위로 올라와 기도와 찬송으로 은혜롭게 예배를 준비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온전하고 신령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분위기를 정돈시켜갔다. 바른 교회, 바른 예배상을 심기 위해 꼭 필요한 조처였다.
유봉제 권사 하늘나라 입국
2월 11〜12일에는 정든 교우 한 분이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다. 허필수 집사, 허필연 권사의 모친인 유봉제 권사(88세)였다. 평북출신인 유 권사는 일찍이 1977년 자녀들 초청으로 도미, 미국에 오신 후에도 깊은 신앙으로 자녀와 손자들을 훈육했고, 기도생활을 지속하다가 이 해 2월 10일 04시 20분 플러싱병원에서 생시에 그토록 앙모하던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로 올라가셨다.
슬하에 3남4녀를 두었고 1946년 기독교에 입교, 세례를 받고 70년에 중곡동교회(한승직 목사)에서 권사로 피선됐었다. 장지는 조지 워싱턴 기념묘원이었다.
교회행정 뉴스
2월 22일 주보에는 ‘교회행정’이라는 타이틀 아래 몇 가지 주요 알림 사항이 기재돼 있었다. 교회행정 사항은 그 후로도 수시로 주보소식란에 떠오르곤 했다.
1. 본 교회는 한소망교회 건축을 위해 3천불을 도네이션 했습니다.
2. 당회는 E. Edsall 불러바드의 교통안전을 위해 시장과 경찰서장에게 신호등이나 정지사인을 설치해 줄 것을 서명으로 요청했다.
3. 예닮원 출입행로에 안전운전을 위해 2개의 범퍼를 설치하였사오니 운전하실 때 특히 어린이들을 주의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또 3월 1일에는 이런 교회행정 뉴스가 떠있었다.
“3월부터는 교회당 문 열고 닫는 일을 사찰 책임 하에 됩니다(대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회). 예닮원 관리인은 주중근무시간 밖에서 일하는 외에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전화를 받습니다. 교회 비서는 주일예배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습니다.”
업무 분담을 확실한 책임 하에서 한다는 뜻일 게다. 7월 12일 주보 교회행정 난에 다음 사항이 기재됐다.
수요기도회와 새벽기도회 기도순서를 맡으신 분은 3일전에 기도원고를 작성하셔서 부목사들께 지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헌금위원은 15분전에, 안내위원은 30분전에 교회에 도착하여 기도모임으로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헌금위원 좌석은 뒤가 아니라 앞이 됩니다.
성경과 찬송가는 이름을 쓰셔서 꼭 지참하시고 분실하신 분은 친교실 커피가 있는 곳 근방에서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수요예배 때에 어린이와 같이 오신 부모님들은 찬양시간은 함께 드리고 설교시간은 아래층 비디오실에서 크리스천 비디오를 관람하도록 준비됐으므로, 아이들을 비디오실로 내려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강영우 박사 초청간증과 교육세미나
3월 7〜8일에는 제1·2·3 남선교회 주최로 강영우 박사 초청 간증과 교육세미나를 예닮원에서 개최했다.
강영우 박사는 이틀간 ‘교육을 통한 성공의 비결’(마 25:14-30), ‘세상을 이기는 신앙교육’(요일 5:4, 골 3:2)이란 제목으로 강의했다.
강박사는 시각장애자의 몸으로 연세대 문과대학을 차석 졸업하고 피츠버그 대 교육학석사, 심리학 석사, 교육학 전공을 하고 1976년에 시각장애인으로서는 한국 최초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 인디애나 주 교육국 특수교육부장, 노스이스턴 일리노이 대학 교수로 일하면서 루즈벨트재단 고문, UN 세계장애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는 수많은 저서도 써냈다. ((6개국어로 번역 출간된 ‘빛은 내 가슴에’, ‘어둠을 비추는 한 쌍의 촛불’, ‘교육을 통한 성공의 비결’, ‘강영우 박사의 성공적인 자녀교육법’ 등이 널러 알려졌다. ‘어둠을 비추는 한 쌍의 촛불’은 MBC-TV에서 ‘눈먼 새의 노래’라는 특집극(안재욱·김혜수 주연)으로 방영됐고 속편이 미국에서 제작 방영될 예정이기도 했다. 강박사는 또 라벗 슐러 목사의 수정교회(Crystal Cathedral)에서 한 간증이 미 전역과 해외각국에 방영되기도 했다.))
앤젤스보이스 중창단 공연
3월 22일에는 한국의 실로암안과병원 김선태 목사가 이끄는 ‘앤젤스보이스’ 중창단이 미국순회 연주 차 본 교회에 들렸다. 합창지도를 맡은 김 목사를 포함, 모두 12명으로 이뤄진 이 중창단은 주일 찬양예배 시에 본교회를 방문, 성곡과 간증을 비롯, 우리 가곡과 동요, 민요 등 여러 노래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인들에게는 오랜만에 그리웠던 우리네 노래를 들려줘 애틋하고 정다운 감동을 안겨주었다.
이 중창단은 음악전문인들이 아닌 간호사와 행정부 직원들이지만 짧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연습을 하여 국내외에서 많은 연주를 해왔고 이 해는 본 교회를 비롯, 동부지역 6교회에서 공연을 했다.
한편 실로암안과병원은 1986년 2월 17일에 개원, 10여 년간 수십만의 한국 맹인들과 실명 위기에 처한 수백만 저시력자들에게 무료 안과진료와 개안수술로 어둠에서 빛을 찾아주는 선한 사역을 해왔다.
또한 중국과 필리핀, 뱅글라데시 등 해외도 방문, 선교와 함께 진료사업을 펼쳤다.
프린스턴 2세 목회자 장학기금 만찬
4월 16일 목요일에는 프린스턴신학대학원 한인동문회가 주최하는 프린스턴 2세 목회자를 위한 장학기금 모금만찬회가 대원(Palisadium)에서 열렸다. 한인동문회 회장이 본 교회 장화인 장로인 데다 김창길 목사 등 본 교회 교우들이 여럿 참여하고 있었다. 당시 현 부교역자를 비롯, 본 교회를 거쳐간 수많은 부교역자들이 프린스턴 출신이었다. ((프린스턴은 미국장로교에 속한 동부의 명문신학교로, 샌프랜시스코, 맥코믹 등과 함께 한인들이 선호하는 신학교의 하나다. 위 3개 신학교에 모두 아시안사역센터가 설치돼 있다. 프린스턴은 오랜 기간 선교사들, 아시아교회들 사역자, 국내 아시아계의 훈련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런 체계적인 노력은 신학대학원 맥코드 총장 재임시절부터 시작돼 1980년 이상현 교수(조직신학·한경직석좌교수)에 의해 구체화됐다. 그후 길레스피 총장 부임후 1983년 가을부터 공식 아시안 아메리칸 신학·목회 프로그램이 개설됐고 이듬해인 84년에 이상현 박사가 디렉터로 선임됐다. ‘미국장로교 한인교회사’ 151〜152쪽 참조.)) 이 모임은 호성기 목사의 개회선언, 김춘실 목사의 기도, 회장 장화인 장로의 인사말, 이상현 박사의 격려사, 부회장 박영미 목사의 동문회 보고, 특별순서와 프레드릭 커셀 부총장의 주제강연, 김창길 목사의 축도 등으로 진행됐다. 당시 후원자는 본 교회 및 여선교회 등 13개 교회와 3개 단체, 약 100명의 개인들이었다.
행복에의 초대
대학청년부 주최 ‘행복에의 초대’ 모임이 4월 18일에 열렸다.
“예수님께서 오늘 당신을 진정한 행복으로 초대하십니다”란 글귀로 초대하는 이 행사는 저녁식사와 Skit, ‘행복을 향하여’, ‘인터뷰’, ‘Response’(카드작성), 티타임, 주기도 등으로 진행됐다. 대학청년부는 문학의 밤을 비롯한 대외행사에서 반드시 ‘Response Card’를 통해 대학청년부에 대한 관심을 일궈냈다. ((이 Response Card 내용은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등을 묻는 난과 함께 다음 설문내용을 곁들였다. ( ) I would like to join this group an learn more about Jesus. ( ) I need more time. Let me think about all this, but I won’t hang up if you contact me later. ( ) I just came here for a visit and don’t want to join this group. Any other comments.))
37명의 임직예배
그해 4월 26일, 안수집사 및 권사 임직예배가 거행됐다. 23명의 안수집사와 14명의 권사 등 모두 37명을 한꺼번에 임직시키는, 본 교회사상 가장 큰 임직행사였다. 전년도 11월 30일 공동의회에서 교우들이 투표하여 뽑은 이들이었다. ((당초 안수 집사, 권사임직 대상자 중 현재 유급직원(풀타임)에게는 당분간 항존 직분 받는 것을 교회 건덕(健德)상 당회가 허락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교회직원의 임기를 마친 후에 취임을 허락하기로 했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은 교회비서인 오민자 집사와 예닮원 관리인 차태준 집사였다.))(표 49)
이날 행사 중 가장 중요한 순서로서 직임선포 때 이렇게 선언했다.
“본 뉴저지 한인장로교회 당회장인 나는 지금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직책과 권위를 가지고…(안수집사 전원 이름)…씨가 미주한인장로회뉴저지한인장로교회안수집사 된 것을, 그리고 …(권사 일동 이름)…씨가 미주한인장로회 뉴저지한인장로교회 권사 된 것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라. 아멘.”
음악사역자 자체 조달
당회는 5월 3일, 한혜정 집사를 2부 예배 및 호산나 성가대 오르간 반주자로, 4부 독창자였던 김선미 교우를 유년부 2·3부 성가대 지휘자로 각각 임명했다.
몇 년 전부터 교회는 자체 내에서 교회음악 사역자들을 찾는 경향이 있어왔다. 타지에서 전문음악인을 구하는 데는 어려움도 있을 뿐더러, 평균 재임기간도 짧은 데다 시행착오도 없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반면 교우가 자원해서 무보수로 일할 경우, 하나님의 교회의 재정도 크게 절약할 수 있었다. 교회예산 중 인건비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교회마다 공통된 현상이다.
세 번째 성경퀴즈
5월 10일 제3회 교구대항 성경퀴즈대회가 개최됐다.
참석인원은 약150명이었다. 대회선수들은 각 구역대표와 대학청년부 대표로 총26명이었다. 이영종·박은숙 집사가 진행한 이 대회는 예선전이 있은 후 결승전 단체전 등이 방청객 퀴즈와 함께 행해졌다.
출제와 채점관리, 부저판 제작을 한 봉사자들도 있었다. ((출제는 부목사들, 채점관리는 이용규, 이혜경 집사, 상품준비는 임용성, 김근희 집사가 수고했다. 참고로, 그해에 상품관리자들이 정성껏 준비해 행사 전 방청객 앞 테이블에 모양 좋게 쌓아놓은 상품의 구입 및 포장 총예산은 850불이었다.)) 출제범위는 구약에서는 출애굽기, 신약에서는 에베소·빌립보·골로새·빌레몬서 등이었다.
채점은 교구별로 예선 40점, 방청객 퀴즈 10점, 결승전 20점, 단체전 30점 등 100점 만점이었고 개인별로는 결승진출자 6명에 대해 각기 맞춘 문제수의 합산을 기준으로했다. 시상은 참석자 전원에게 단체상을, 예선 결선 때 주자들이 못 맞힌 문제를 맞히거나 방청객 몫의 문제를 맞힌 이들에게 방청객상을, 구역대표 26명 전원에게 참가상을, 예선 결선에서 개인별 최다득점 순으로 1위부터 장려상까지 개인상을 수여했다. ((대회 결과는 이러했다. 우승: I교구, 준우승: II교구. 1등: 제17구역(임란영), 2등: 3구역(김경희)·20구역(안종옥). 3등: 대학청년부(이동수). 장려상: 1구역(안병구).))
진행방식은 교구별 구역은 I교구(1〜12구역)와 대학청년부 등 총13구역과, II교구(13〜25구역 등)로 나눠 진행됐다.
예선전은 각 교구별로 제비를 뽑아 3조로 만들고 진행을 먼저 I·II 교구 양측이 별도로 4개씩 출전구역팀이 각각 2번씩 나와 5문제씩 풀어 총 4회에 걸쳐 1명씩 모두 4명의 결승진출자를 가린 뒤, 3번째는 출전구역 5개에 총 6문제씩 출제, 역시 결승 진출자 2명씩을 뽑아 교구별로 3명씩, 전체 6명을 결승전에 진출시켰다.
결승전에서는 총 15문이 출제됐는데, 각 구역대표가 교구별로 자리해, 교구 우승을 목표로 해답하지만 동시에 개인별 상을 목적하고 있어서 서로 상의할 수는 없었다.
단체전은 단어 알아맞히기로 각 교구의 결승 출전자 2명에게 15개의 단어가 적힌 종이를 주고 1분내로 각기 해당된 교구 방청객들에게 설명, 문제에 주어진 단어 하나를 맞출 때마다 1점씩 배점했다.
성경퀴즈는 해가 갈수록 더 조직화되고 전문화되어 간 것은, 연륜을 쌓아가면서 자연스런 성향이었고, 전체 교회규모와 구역 규모가 커갔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국어 중고등부 신설
5월 10일 당회는 한국어 중고등부 반을 신설했다. 6월 첫주일인 7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담당교역자로는 정은혁 목사가 선임됐다. 예배시간과 장소는 4부 예배 때, 예닮원에서였다. 아울러 교사로 봉사할 교우와 학생들을 찾고 있었다.
예닮원을 봉헌하다
본 교회의 예닮원 점유 여부가 타운으로부터 완전 허가를 받아, 5월 31일 예닮원 성전봉헌예배를 드렸다.(표 50)
예배도중 건축위원장 정주섭 장로는 이렇게 경과보고를 했다.
주의 성전이 어찌 아름다운지 내 영이 주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뜻이 오늘 미국 뉴저지한인장로교회의 예닮원이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미국 80만 동포와 2천여 교회들 중에, 특별히 오클랜드의 28에이커의 땅을 주신 것은 우리 뉴저지한인장로교회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일들을 감당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1. 한국적 기독교신앙의 전통을 미국 땅에 심고,
2. 우리의 자라나는 2세들로 하여금 코리안아메리칸으로서의 민족적 주체성을 가진 기독교적 인격을 형성해가도록 훈련시키며.
3. 다가오는 21세기를 세계선교의 비전을 실천할 역군들을 배출하며
4.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이 세계에 공헌하는 교회와 신앙, 문화와 예술을 나누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1991년 건축위원회가 구성된 이래 현 본당과 교육관의 증축 개수하는 비롯하여 초등학교, 공장, 체육관, 유대인회당, 오피스빌딩 등 11곳 이상을 새 성전 후보지로 답사하였으나 교회입주허가와 은행대부, 위치, 기타 문제 등으로 정하지 못하고 있던 중, 거래시장에 몇 년 동안 240만 불에 나와있던 현 건물과 부지를 우리 주 하나님이 기적적인 은혜로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가격과 조건에 허락하셨습니다.
1994년 3월, 건물주와 가격 180만 불, 다운페이먼트 500만 불에 잔금은 연리 7%(월 불입액 $17,000), 오너 모기지와 시 정부로부터 교회허가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한 후 전문가를 고용하여 5월에 오클랜드 타운에 교회허가를 신청하고 공청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타운 안에 대형교회가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는 시 기획위원회의 까다로운 조건과 토론, 또 주민들의 우려로 8월 2일 시장과의 예비조정회의 및 8월 11일, 9월 8일과 22일 세 차례의 공청회를 거쳐 그들을 설득시켜 2년 안에 주차장 시설을 확장 개수한다는 조건으로 300명수용, 교회수양회관 및 여름학교 임시허가를 받았습니다.
그후 시 정부와 합의한 대로 14만 불을 들여 주차장 시설을 개수했을 뿐더러 하나님 앞에 좀 더 아름다운 교회당을 바치고 교우들이 예배하고 친교하기에 불편이 없도록 냉난방 장치에 9만 불, 내부 천장 개조, 부엌시설, 기도실, 소예배실, 강단시설, 미화작업과 기타 등에 11만 불, 지붕공사에 4만 불, 가로등 및 전기공사에 4만 불, 운동장을 넓히고 어린이놀이터를 확보하는 데 11만 불, 낡은 벽의 석면제거에 25,000불, 수양관 상하수도 개수에 2만불을 들였습니다.
또 현재까지 변호사비 38,000, 토목설계사비 35,000 불, 건축설계비 4,000 불 및 교회허가신청 및 감리비 26,000불 등 총580,000불을 온 교우들이 헌금하여 바쳤습니다.
또 한 교우가 개인적으로 대지 2에이커와 사택을 봉헌하여 예닮원 땅이 28에이커로 늘어났습니다. 또 화강암으로 된 정문, 임마누엘회를 위한 온돌방, 그리고 청소년을 위한 악기 일체, 본당 의자와 강대상,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계단, 정구장, 피아노, 나무와 화초, 이렇게 남모를 헌물과 헌신을 여러 교우들이 하셨습니다.
또한 1995년 5월 1일부터 매월 17,000불씩 납부하기 시작한 모기지 월 분할금은 2004년 6월 1일이 만기였으나 그동안 하나님의 축복으로 140,000의 원금을 더 갚을 수 있었기 때문에 현재로는 2003년 3월 1일이 만기일입니다. 바라기는, 그 이전에 원금을 완납할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합니다.
아울러, 지난 1998년 5월 14일, 오클랜드타운 공청회에서 약속한 대로 공사를 마무리하고 지역사회 일부를 아름답게 꾸밀 수 있었으며, 주민 공청회에서 만장일치로 정식허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인 것을 고백합니다. 머지 않아 이곳에 세워질 하나님의 새 성전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것을 바치는 헌당예배를 허락해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나이다.
이 오클랜드교회를 통하여 교회를 봉사하고 민족을 봉사하며 미국을 봉사하며 세계를 봉사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태어나는 꿈을 갖고, 하나님의 원대하신 섭리와 경륜 안에서 역사의식을 갖고 부름받은 세대의 사명을 다하는 저희들이 되고자 합니다.
주후 1998년 5월 31일
뉴저지한인장로교회
118명이 졸업하다
6월 7일에 그해 교회학교 졸업예배가 거행됐다.
교육부장 최영선 집사가 인도한 이날 예배에서 중고등부 부장 황종태 집사의 기도, 유년주일학교 성가대의 찬양 후 한태헌 목사가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또 최영선 교육부장이 학사보고를, 학교장 김창길 목사가 졸업증서 수여와 치사를 했다.
그해 졸업자는 유아부가 19명, 유치부가 22명, 초등부가 24명, 중등부가 18명, 고등부가 17명, 대학교가 13명, 대학원이 5명 등 총 118명이었다.
한 지붕 한가족 체전(體典)
6월 14일 주일은 한 지붕 한가족으로 다같이 모여서 즐거운 야외예배 겸 체육대회로 푸짐한 잔치를 갖고자 합니다. 부득이 참석치 못하시는 분들은 아침 8시에 팰리세이즈팍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전체 야외예배는 10시에 예닮원에서 있겠습니다. 또한 각 구역에서 준비한 맛있는 점심을 든든하게 드시고 오후에는 멋지게 실력을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참! 오늘 체육대회에는 구역원 어느 누구라도 한 종목 이상 게임에 꼭 참석하셔야 합니다. 각 구역장님은 아래 경기종목에 1명 이상 선수명단을 금주 수요예배(6월 10일) 시까지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각 구역장님들 구역식구들의 명찰을 반드시 준비하셔서 부착시켜 주십시오.
그리고 이번 ‘한지붕한가족 체전’의 하이라이트인 경품 추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자리에 없으신 분은 제외됨을 알려드립니다. 다시 한번 한 지붕 한 가족 체전에 빠지시는 없기를 바라며 간편한 운동복과 운동화 차림으로 모두 예닮원으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김도수 선교사 휴가 차 귀환
6월 28일 반가운 손님이 왔다. 3년간 러시아 상페테르츠부르그 현지에서 사역해온 김도수 선교사 가족 5명이 두 달 동안 휴가 차 예닮원에 유한 것이다. 김 선교사는 충성스럽게 헌신해왔고 특히 수년 째 매년 본 교회 러시아단기선교팀을 맞아 함께 협력사역을 계속해 왔었다. 아들 로이 군이 갑자기 쓰러진 일로 온 교우들이 합심기도를 하기도 했다. 본 교회는 김 선교사와 1차 3년 지원 언약 만료 후 2차로 돕고 있는 중이었다.
김 선교사는 7월 5일 주일 2·3·4부 예배 때 ‘종말론적 믿음’(롬 12:1-2)이란 설교도 했다. 또 7월 7일에는 당회 주최로 김 목사 가족을 위한 디너파티가 예닮원에서 시무·협동장로 내외, 해외선교부장 내외, 부목사 내외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8월 23일에는 그의 두 번째 선교보고가 있었고 예배시간에 러시아선교를 위한 헌금도 했다. 8월 30일 당회와 해외선교부는 러시아 상페테르츠부르그에 지교회를 설립키로 하고 매월 500불 비용 6 개월분을 미리 1주 전 헌금한 3,000불을 보냈다. 이 지교회는 김도수 선교사의 인도로 러시아인들과 고려인들을 위한 선교기지가 될 것이었다.
새벽기도회 대표기도와 토요찬양
7월 19일부터는 평일 새벽기도회를 위한 대표기도자 명단이 주보에 게재되기 시작했다. 아울러 9월부터는 토요 새벽기도회 때 성가대 찬양이 개시됐다.
매달 첫째 주는 대학청년부가, 둘째 주는 여선교회가, 셋째 주는 남선교회가, 넷째 주는 임마누엘회 등이었다. 이것은 대단한 기획이요, 여건과 인원이 허락되는 중대형교회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물론 새벽기도회 때 찬양하는 교회가 많지만, 미주한인교회에서는 결코 쉽지 않고 정말 드문 일이다.
9월 13일 주보 소식란에는 그 주간 새벽기도 담당자 명단과 함께 다음 권면이 떠올라 있었다.
“매주 토요일 새벽기도회는 전교우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찬양드리고 기도의 제단을 쌓는 일입니다. 다함께 오셔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고 우리의 마음을 토하여 아뢰십시다.”
9월 13일에는 남선교회가 셋째 주 새벽기도회 찬양연습을 한다는 뉴스를 시간과 함께 알리고 있었다.
필리핀·한국 단기선교
8월 9일부터 22일까지 필리핀, 22일부터 28일까지 한국 선교를 위한 18명의 선교팀*을 떠나보내면서 온 교우들의 기도를 부탁하고 있었다. 8월 9일 찬양예배 시간에 선교팀을 위한 예배와 함께 헌금을 드렸다.
그해는 특별히 ‘단기선교 기도카드’라는 북마크를 교인들마다 나눠주고 기도를 촉구했다. 이 북마크에는 이런 내용들이 자잘한 글씨의 한글로(뒷면은 영어로) 담겨 있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9-20).
1. 이번 선교여행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2. 선교팀원들에겐 단기선교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심을 삶 속에서 경험하고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는 계기가 되도록.
3. 성령님의 도우심과 함께 하심으로 좋은 열매를 맺는 선교여행이 되도록.
4. 선교팀원들이 사랑의 띠로 주안에서 하나되어 주의 일을 할 수 있도록.
5. 하나님께서 선교팀원들 마음 속에 필리핀 사람들과 한국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시기를.
6. 주님주신 능력과 지헤로 문화의 장벽을 잘 극복하고 또한 그곳 문화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시기를.
7. 무사히 주의 일을 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보살펴 주시고 건강하게 하시며 넘어지지 않게 그들의 믿음을 붙들어 주시기를.
8. 불평 불만하지 않고 오직 기쁨과 섬기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9. 우리가 선교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알고 배울 수 있게 되도록.
10. 우리 교회가 이번 선교여행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커다란 소망을 갖고 선교하는 일에 더욱 더 열심히 봉사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인도하여 주시기를.
약 1주 후 책임자 한태헌 목사로부터 선교를 잘 하고 있다는 전화 연락이 오기도 했다. 선교팀은 8월 28일 전원 무사히 도착했고 9월 6일 대예배 시간에 한태헌 목사의 설교 등을 통해 단기선교보고를 했다.
한편 그 해 9월 남미에 파송할 선교사를 모집하기도 했다. (표 51)
한국 수해 교회 돕기
그해 여름, 한국은 태풍을 동반한 심한 폭우로 곳곳에 물난리가 났다.
본 교회가 돕는 한국 미자립교회로부터 현지 피해 소식을 듣고, 8월 구역예배 헌금은 모두 한국에 수해의연금으로 보내기로 했다.
모은 헌금은 모두 3천 불이었다. 본 교회가 도와온 동두천 다비다교회로부터는 건물이 완전 수몰된 사진과 함께 딱한 내용의 서신이 왔다. 해외선교부는 한국 미자립교회 18교회에 일제히 편지를 띄워 피해상황을 보고 받고 돕기로 했다.
8월중 현지의 답신들이 속속 도착하자 복사해서 교인들에게 배부했다. 경북 영양군 신당교회(김영주전도사)의 경우, 교회건물 뒤 둑이 무너지고 성도들 농경지가 손실을 입었다는 소식이었다. 안동 장사리교회(남두섭 전도사)는 비참했다. 다행히 예배당과 사택은 피해가 없었으나, 교회 주변 논밭들이 모조리 침수되어 가을수확을 기대할 수 없었고 몇 명 안 되는 교인들은 논밭 전체와 과수원 등 6천여 평이 몽땅 물에 잠기고 집안 가재도구와 양식이 쓰레기가 돼버렸다.
젊은 나이로서는 교회 안에 하나뿐인 집사네가 막 심어놓은 특수작물 2천 평이 물에 휩쓸려가고 농기계도 침수돼 못쓰게 됐고 권사 가정도 논밭 2천여 평이 침수했다는 소식이었다. 당시는 한국이 IMF로 한창 몸부림치던 시기였다. “비록 시골이지만 IMF 때문에 가뜩이나 움츠려들어 있는 데다 홍수피해까지 겹쳐 내년도까지 피해가 이어질 것 같아 큰 기도제목입니다”란 하소연이었다.
동두천 다비다공동체(전우섭 목사)는 동두천 사상최초로 시 전역이 침수되면서 공동체식구들이 몸만 빠져나가 산 위의 학교교사로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공동체 쉼터와 본관건물 등이 젖고 파손되고 가전제품과 승합차 등 운송교통수단이 다 망가져 총7,600만원 규모의 손실을 호소해왔다.
전남 선월교회(정종섭 전도사)는 태풍으로 지붕이 날아가고 전기가 두절돼 수리 및 가설비만 약 3백만 원 든다는 보고였다. 충남 보령 신덕교회(유재운 전도사)는 “농작물 피해로 성도들 가정이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하나님 은혜로 잘 회복되리라 믿고 위해서 기도할 뿐입니다”라고 썼다.
신덕교회당 역시도 지붕이 날아가고 서까래가 부러지고 벽에 금이 가 교우들과 주민들이 동원돼 세운 쇠파이프들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택의 책들도 모두 젖고 가전제품도 무용지물이 된 가운데 온 교우들이 눈물로 기도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전남 승주의 월용교회(노의태 전도사)는 인명 가옥피해가 없어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교인 8가정이 논밭 수천 평이 매몰되거나 침수 당했다며 조목조목 상세히 피해상황을 밝혔다. 모두 눈물 없이는 읽어나가기 어려운 편지들이었다. 아무튼 본 교회가 도와온 교회들로부터 피부로 체감되는 현지소식들이 더욱 정다움과 밀착감, 그리고 주님 안에서 하나됨을 새삼 느끼게 한 계기였다. 그후 10월중 해외선교부는 다비다 공동체 등 7개 미자립교회에 총 1만 불의 지원금을 농협을 통해 보냈다.
신사참배 회개모임
9월 10일에는, 대뉴욕지구원로성직자회(회장 권영진 목사)가 본 교회에서 ‘신사참배 60주년 회개예배’를 드렸다. 뉴욕광복회장 허태형 장로가 이끈 당일 예배에서 본 교회 조한경 부목사가 ‘섬기며 사는 인생’이란 말씀을 전했다. 이어진 특별기도 순서에서는 원로 양동석 목사가 신사참배 결의에 대한 회개를, 최진섭 장로가 교회의 새로운 사명을 위한 특별기도를 했다.
그 즈음 한국교계에서는 해방 후 처음으로 신사참배 회개운동이 펼쳐지고 있었다.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모 교회인 평양 산정현교회의 정신을 이어받은 여러 한국 교회 등에서도 적극 앞장섰다. 뉴욕 거주자로서는 평양 산정현교회의 유일한 생존성도인 안도명 원로목사(뉴욕한인장로교회)도 한국에서 초청 받아 회개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는 보고였다. ((안도명 목사: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순교자들의 애국정신과 발자취를 미주지역에 심으려 애써온 목회자. 주기철 목사의 옥고 시절과 사후, 평양 산정현교회 전도사로 일했다. 현재까지 미주에서는 유일한 증인으로 생존해 있으면서 당시에 관한 증언을 해왔다. ‘역사의 새 방향’, ‘신사참배반대투쟁정신사’ 등 저술. 그밖에도 수년 전 소천한 김경진 장로(뉴욕산정현교회 설립자)도 주기철 목사 관련 증인들 중 한 명이었다. ‘순교성자 주기철 목사-나는 죽어도 영원히’(김경진 저·1988년) 참조.))
그해 초가을은
소슬한 바람이 예닮원 뜰을 스치면서, 그윽한 국향(菊香)이 풍겼다. 10월초 목요어머니성경공부반이 드린 80개 국화화분이 화사하기 그지없었다. 마리아의 나드(Nard) 같은 소중한 헌신이었다.
파란 하늘을 하나님께 영광 돌릴 그림으로 수놓는 두 교우 아티스트의 미술작품 전시회도 한층 가을분위기를 돋우었다. 주광수 집사가 9월 3일부터 10월 26일까지 세인트피터즈 교회에서, 김상호 교우 ((이광우 권사 4남.))가 10월 2일부터 12일까지 한양문화센터에서 각각 개인전을 열었다.
시월 첫 주말인 3일에는 드넓은 그린필드와 창공을 백구로 누비고 가르는 전교우 친선골프대회가 Nevele 리조트호텔 골프장에서 열렸다. ((골프 입상자: 메달리스트 심서구, 1등 김봉재, 2등 박영식, 3등 유동우, 근접상 황종태, 장타상 김인선.)) 경비를 제외한 모든 수익은 선교와 구제헌금으로 사용된다고 주최측은 알렸다.
천고마비 ((天高馬肥.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 때. 즉 가을을 뜻한다.))의 시즌에 우리는 뭐니뭐니해도 영혼을 살찌워야 한다. 10월 9일부터 10월 11일까지는 피종진 목사(남서울중앙교회)를 초청, 부흥성회로 가졌다. 전국과 해외로 집회를 매우 자주 다니는 국제적인 부흥강사였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는 사람, 앉은뱅이의 소생이 주는 신앙의 교훈, 최고의 목장, 하나님의 성전에 재료가 될 사람, 고통하는 시대의 신앙생활 등의 설교를 했다.))
추계바자 철이 돌아와, 모든 선교회와 영어부가 정성껏 아기자기한 아이템들을 준비하고 가을바람처럼 교우들의 마음 문을 노크해댔다. 모시는 글은 “예닮원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젠 이 터를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우리들의 일이 있습니다”란 인사로 글머리를 열었다. 정말 해야 할 일들이었다.
한국인의 표상인 김치로부터 맛깔스럽고도 정갈한 밑반찬들, 고소한 냄새로 뭇 콧등을 확 사로잡는 튀김 전병 등 온갖 먹거리들, 즐비한 새 옷과 잡화, 중고품… 그리고 17일 저녁은 온 식구가 교회에서 외식하는 날이었다. 매주 토요일 새벽기도회를 마친 뒤에는 제3남선교회가 주관하는 히스패닉계를 위한 베이걸(bagel)과 커피 제공 사역에 대학청년부도 맞장구치며 매주일 70달러씩 선교헌금을 하고 있었다.
뉴욕한인 언론계의 고참 조종무 집사가 매일 저녁 한 시간씩 엮는 ‘허드슨 강변을 따라’는 11월로 다가가며 농담(濃淡) 짙어질 팰리세이즈 단애(斷崖)의 가을무드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정녕 가을이다.
11월 5일부터 7일까지는 임마누엘 회원들이 쉐난도 국립공원과 버지니아로 훌쩍 나들이를 간다고들 했다.
제9회 구역찬송대회
해마다 빠짐없이 개최해온 구역찬송대회의 아홉 번 째 잔치가 이 해에도 11월 1일 주일에 예닮원 친교실과 대학청년부 예배실에서 성대히 열렸다.
짜임새 있고도 조촐하게 준비된 그해 대회는 박현, 유방원 두 집사의 진행 아래 (미리 사전에 추첨했던 기존방식과 달리) 사회자가 무작위로 추첨해 호명한 구역부터 나와 불렀다.
이 해에 두드러진 점은 출석성적만 갖고 1, 2위를 가름하는 전원출석상이 추가되고, 전년도의 익살스런 ((아차상, 못말려상, 웃긴다상, 엄숙상 등.)) 이름의 상들 대신 ‘노력상’, ‘아이디어상’ 등 좀 점잖은 네임이 새로 들어갔다는 것. 또 “입·퇴장 시 태도도 점수에 가산된다”는 정중한 엄포(?)도 미리 통보됐다. 순서를 마친 후에는 친교실에서 다과와 음료수를 들기도 했다.(표 52)
10,000 송이 꽃을 에덴에
그해의 기획당회
1998년도 대내·외 이벤트 일지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99년이 밝았다.
김창길 담임목사는 새해 첫 아침을 열면서, 1년 후이면 2천년 대에 돌입하게 될 시점에 섰음을 돌아보고, 시작보다 마지막이 더 중요함을 우선 상기시켰다. 아울러 보이는 것에만 관심 있고 보이지 않는 것에 무관심한 세태 속에서, 우리는 소외되어 보이지 않는 무리에게 관심을 두자고 당부했다.
특히 교회구조와 제도, 교회당 건물과 교인수, 예산 크기보다 교회의 신앙노선—성수주일, 십일조, 헌신봉사 등—이 우선적이며 양보해선 안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새해에는, 과거 남의 교회당을 빌려야했던 우리 자신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빚 갚는 심정’으로 히스패닉 계 노무자를 위해 교회당을 빌려주고 교역자 청빙부담을 대신하는 등 스페인어 예배를 시작하게 되며 한인교회가 필요한 지역에 교회개척, 그리고 러시아와 필리핀에 이어 멕시코에 선교사를 파송할 전망이었다.
99년에는 중고등부를 위한 풀타임 목사를 청빙할 예산을 마련해놓고 구체적으로 물색하고 있었다. 교회예산의 무게가 2세 교육에 더욱 실려갈 것이었다.
새해 목표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마 28:19〜20)로 정했다. 새해 첫 설교는 마침 방미 중인 나채운 목사(장신대학교 명예교수)의 ‘지나간 때와 남은 때’란 메시지였다. 나 목사는 우리가 늘 대하는 찬송가 속 주기도의 문맥을 다듬는 등 교계의 바른 개혁에 크게 기여해온 학자였다.
첫 주일 4부 예배 후에는 공동의회를 갖고 결산 예산 통과와 함께 교우들에게 연말보고서를 배부했다.
새해 벽두 본 교회 첫 사건은 이윤규 장로가 1월 1일 영원한 본향으로 떠난 것이었다. 황해도 사리원 출신(1929년생)인 고 이 장로는 1970년 서울상도동 남현교회에서 장로로 피택됐고 87년 도미, 본 교회 출석하다가 1990년 4월초 협동장로로 선임되어 이 날에 이르렀다. ((유족은 부인 김정신 집사 아들 이동수 집사, 며느리 한상숙 집사, 딸 이은주 집사, 사위 조동천 집사에 손자손녀가 4명이었다.))
영어부는 1월 8〜10일 라마나욧 기도원에서 겨울수련회를 갖고 새 마음을 가다듬었다. 강사는 본 교회 Danny Han 목사였다. 9일에는 성경지도자, 구역장, 권찰 등 구역봉사자를 위한 수련회가 개최됐다. 10일에는 새 교우 환영회가 열렸다.
만발한 각종집회
1월말부터 은혜로운 집회가 줄을 이었다.
1월 20일에는 대학생선교회(CCC)가 마련하는 간증집회가, 24일에는 북한에서 11명의 가족을 이끌고 탈출한 김만철 집사의 간증집회가 있었다. 2월 11〜14일에는 남전도회가 주관하는 신앙강좌로 강사는 그동안 본 교회가 도와온 성루 다비타 공동체의 전우섭 목사였다. 3월 18〜21일에는 춘계대부흥회가 김동호 목사(서울 동안교회)를 강사로 열릴 참이었다.
‘남성중창단을 구합니다’
새해에 제2남선교회가 남성중창단을 모집하고 있었다.
1월 24일 예닮원에서 찬양예배 후 중고등부 예배실에서 갖고 첫 연습에 들어갔다. 2월에 남선교회 주최로 있을 간증집회를 위해서였다. 우리 교회는 그동안 남성중창단이 간혹 필요에 따라 선보일 때가 있었지만, 지속적이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일례로, 1990년 12월 23일 어머니합창단이 주도한 성탄축하예배 때 남성중창단이 찬조출연하기도 했다.
남성중창은 보통 파트별 ((제1테너, 제1베이스, 제2테너, 제2베이스.))로 1명씩 4명으로 구성된 4중창(Male Quartet)과 파트마다 2명씩 8명으로 이뤄진 복사중창(Double Male Quartet)이 흔하다. 한인교회에 남성중창단이 혼성중창이나 여성중창 또는 합창만큼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우선 여성(女聲)이나 혼성처럼 화려하지 못하고, 이민남성들이 바깥일로 바빠 연습하기가 만만치 않은 데다 전통적인 중창곡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으로 보인다. ((남성중창곡은 남성의 보이스가 음역이 좁기 때문에 혼성합창곡 악보를 그대로 사용해선 안되고, 제1테너가 자유자재로 높은 음역을 낼 수 있도록 편곡된 곡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혼성4부 합창곡의 알토 파트를 뒤집어 1옥타브 올린 꼴과 비슷하다. 제2테너가 찬송가의 테너처럼 높은 소리를 내어선 효과가 없고, (알토에 해당하는) 제1베이스와 보통 1옥타브 이상의 간격을 둬야 한다.))
또 단선율 중심의 현대교회음악의 영향으로 클래식한 4부 합창과 중창이 전반적으로 퇴조를 이룬 까닭도 있다. 남성중창은 화음과 음색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기막힌” 멤버를 만나기가 쉽지 않으며 특히 고운 톤의 하이 테너와 깊고 중후한 베이스를 구하기가 가히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러나 웬만큼 소리와 호흡이 맞을 경우, 잦은 연습으로 상당량 커버된다. 그런 만큼, 본 교회 남선교회의 활약이 크게 기대되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조직된 남선교회중창단은 2월 12일 간증집회 때 첫선을 보였다.
한편 2월 13일의 간증집회를 위해 제1·2·3·4·5여선교회 찬양팀도 모집하고 있었다. 인적자원 면에서는 여성들이 월등히 우세한 것이 사실이었다. ‘성 대결’은 아니지만 말이다.
러시아에도 예닮원교회가
새해에 러시아의 상페테르츠부르그 예닮원교회가 창립됐다.
당회장 김 목사와 정주섭, 조영진, 장재열, 이원규 4명 장로는 1월 29일부터 2월 5일까지 러시아 예닮원교회 창립예배를 위해 출국했다가 돌아왔다. 김도수 선교사가 시무하는 교회였다. 당회원들은 창립예배 순서를 골고루 맡아했고, 찬양교회와 성페테르츠부르그 장로교회 등 주변교회에서도 설교와 기도 순서를 담당했다.
김 목사는 또 가나안신학교에서 2시간 강의를 했고, 장로들이 현지 선교사와 신학교교수 대접, 장갑, 목도리, 모자 등 의류제품을 기증하는 등 큰 선행을 실천하고 돌아왔다.
노회회관 건립을 향하여
1월 24일에는 뉴저지노회의 항존직 신년하례식이 땅끝교회에서 열렸다. 목회자,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이 모두 참여했다.
본 교회가 소속된 뉴저지노회는 지난 1996년 선교 및 지역사회봉사와 2세 교육 등을 위한 신앙의 구심점이 될 노회회관 건립을 결의, ((노회회관 건립의 목적은 산하 교회의 일치협력을 위한 공동공간 마련, 산하 평신도훈련을 위한 뉴저지성서대학, 노회사무실(노회·총회·지교회 역사자료 등 보관), 학원선교센터, 개척교회를 위한 단기 임시장소, 지역사회 봉사활동 프로그램 실행 장소 등 다목적 센터로서였다.)) 그 동안 산하교회와 목회자, 장로들의 협력으로 10만 불에 육박한 모금을 해왔다. 이 해에도 노회회관 건립준비위원장이 본 교회 김목사였다. ((부위원장 김원재 장로, 회계 김기태 장로.))
헌금자의 명단은 회관 건립시 정면에 기념판으로 영구 보존할 계획이었다. 노회는 매회 결산의 십일조를 노회회관 건립금으로 결정, 전년도에도 지불했었다. 99년 1월 23일 현재 모금총액은 86,341.89불. 기부한 개인은 12명, 교회는 13교회였다. ((당시 배부된 보고전단지 참조.))
기독문학교실 발족
2월말 문서선교부(부장 최영선)에서는 「예닮원」지 7호 원고모집과 함께 기독문학교실 회원을 모집하고 있었다. 3월 7일 예닮원 도서실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본 교회 기독문학 동호인들의 모임인 ‘예닮원 문우회’가 발족되었다. 초대 회장엔 최영선 집사(수필가)가 피선되었다. 대상자는 글짓기를 기초부터 배워 받은 바 은혜를 글로 표현하고 문서선교를 하고싶거나 소질은 있는데 계발 기회가 없거나 한글맞춤법을 익히고 싶은 이들, 좋은 문학작품을 읽고 싶거나 각종 장르의 믿음의 글을 쓰고 싶은 이들, 작가등단을 하고픈 사람들 등이었다.
월1회 동우회 성격의 정기모임을 갖고 기존 등단 작가 초청도 하고 기성작가의 작품을 읽고 공동제 창작활동도 하며 예닮원 지에 발표기회를 부여하는 것 등이었다. 또 출판기념회를 주관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주최한 첫번째 행사가 8월달 김창길 목사의 시집출판기념회였다.
변경 조정된 선교구도
그해 봄부터 본 교회의 선교 및 지원대상 교회가 현저히 변경 조정됐다.
주보의 ‘후원기관 및 교회’ 명단이 3월 28일자부터 확 바뀐 것이다. 바뀐 내용을 보면, 우선 선교사들 중에는 그 동안 대학청년부에서 도와온 우간다 배상호 목사 대신 영어부가 지원하는 필리핀 스티븐 시버트(Steven Siebert) 선교사로 대체됐다.
또 한국 미자립교회는 그 동안 경기·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 등 다양한 지역의 18교회를 도와왔으나 다수가 자립했기 때문인지, 그렇다고 판단된 때문인지, 11교회로 대폭 축소됐다. 그 대신 학원선교로 중앙대학교의 곽영철 목사 ((본 교회 창립 멤버. 70년대부터 집사였고, 훗날 뉴저지제일침례교회 담임목사였다.))를 해외선교부가 계속 지원하고, 병원선교 대상으로 실로암안과병원(김선태 목사)을 돕고 있었다.
예닮원 춘경
4월 중 예닮원에 봄꽃심기 캠페인이 교우들을 손짓하고 있었다.
봄맞이 청소. 꽃나무 심기 “꽃나무를 심는 봄입니다. 예닮원을 아름답게 만들고 예닮원의 미래를 위하여 지금 나무를 심으십시다. 희망자는 예닮원 나무를 명시하여 헌금하시면 됩니다.”
예닮원의 전체 화단 공간을 13개 자치회별로 나눠 아름답게 가꿨다. 한편 복스럽게도, 12구역 유학생구역의 류승현 집사(고기옥 교우)는 어린 아들을 ‘예닮’ 군으로 명명, 29일 돌예배를 갖기도 했다. 예수님을 닮을 좋은 아들이 될 것이었다.
어르신 초청잔치
가정의 달을 맞아, 5월 1일 뉴저지 일대 한인 어르신들을 예닮원에 초대, 한마당 경로잔치가 펼쳐졌다.(사진 53)
예배는 조한경 목사 집례로 정주섭 장로의 기도, 조영진 장로의 성경봉독, 여선교회의 특송, 정광호 목사(그레이스감리교회)의 설교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 김창길 목사의 환영사 등으로 진행됐다. 이 잔치에는 350여 어르신들이 모여 점심과 레크리에이션으로 흥겹게 보냈다. 어르신 각자에게 참기름과 깨소금 선물도 선사했다. 임마누엘회는 행사를 위해 버스1대를 대절했고 남녀선교회원들이 바비큐 등 음식준비, 안내, 찬양과 픽업 등을 맡아했다. 또 DuPan에서 빵 200개를 도네이션했다.
예닮원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다
5월 2일 찬양예배는 예닮원 오케스트라 창단예배로 드려졌다.
교육부장 황종태 집사가 인도한 이날 예배는 오케스트라의 바흐코랄 전주, ‘어둔 밤 쉬되리니’ 찬송 연주, 이윤정 대원의 기도, 김창길 목사의 말씀 ‘악기로 찬양하라’(시150:1-3), 오케스트라 단원소개, 주기도(말로테)와 알렐루야(모차르트), ‘공화국 전승가’ (Battle Hymn) 연주 등으로 진행됐다.
김근희 집사가 이끄는 예닮원 오케스트라는 바이올린 주자가 모두 14명, 첼로 5명, 플루트 4명, 클라리넷 6명, 트럼펫 2명, 오보 1명, 피아노 1명 등 모두 33명이었다.
123명 졸업
99년도 교회학교 졸업예배가 6월 6일 예닮원에서 개최됐다.
이날 예배는 교육부차장 어혜숙 권사의 기도로 시작, 인도자의 성경봉독(벧전2:9), 호산나성가대의 찬양, 한태헌 목사의 설교(Make A Difference), 교육부장 황종태 집사의 학사보고, 학교장 김창길 목사의 졸업증서 수여와 기념품 증정, 학교장 치사 등으로 진행됐다. 당일 졸업생은 유아부 9명, 유치부 22명, 초등부 29명, 중등부 16명, 고등부 31명, 대학교 10명, 대학원 6명(총123명)이었다.
야후! 가족타임 만세
교육부는 부모 양쪽이 모두 일하기 때문에 여름방학동안 도무지 가족여행을 다닐 수 없는 어린이들을 위해 여행사를 통한 단체여행을 준비했다.
대상은 5〜12학년, 기간은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2박3일간이었고, 대상지는 미 건국초기 정착촌이었던 플리머스였다. 좋은 견학장소였다.
참가비는 1인당 245불이었는데 이중 1백 불은 교회가 보조했다. 주보에는 부모님들이 동행하시는 것도 환영하지만 부모님들은 교회보조가 없다고 밝혔다. 이 이벤트에는 모두 36명이 참가했다. 참으로 소중한 기회였다.
떠나온 그리고 떠날 사람
그해 여름에는 예술의 향취가 어리는 행사가 거행됐다.
김창길 담임목사의 시집 ‘떠나온 그리고 또 떠날 사람’의 출판기념회가 8월 22일 예닮원에서 열린 것이다.(표 53) 이는 문서출판부가 주관하였다.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한국을 등지고 떠나온 우리는 태평양을 건너 미 동부까지 왔지만 또 떠날 사람들이 아니던가.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곤 한다. 우리는 또한 나그네다. 잠시 이 세상에 왔다가 주님의 세계로 입성할 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떠나온 그리고 떠날 사람’이란 제목부터가 눈길을 끈다. 출판기념 감사예배는 1, 2, 3부로 나뉘어 1부 예배, 2부 축하회, 3부 축하연 파티로 이어졌다. 2부에서는 대표작 낭송, 축하 연주, 서평 등의 순서가 있엇다.(사진 54)
사진 54. 김창길 목사 시집 ‘떠나온 그리고 떠날 사람’ 출판 감사예배를 마치고
Rev. Kim and others, after the dedication service of the “Those Who have Departed and Those to Depart” publication
지역사회를 위하여
8월 26일에는 당회가 팰리세이즈팍 한인타운 발전을 위해 예닮원으로 동네 유지를 초청, 만찬을 하며 수고를 위로했다. 대상자는 상가주인, 학교교사, 경찰, 의사, 상록회 임원, 뉴저지한인회 임원 등이었다. 지역사회의 유대도 강화하고, 특히 한인사회와 한인교계가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찬양세미나
8월 26, 27일 이틀간은 최혁 목사 초청 찬양세미나가 열렸다.
최 목사는 이틀간 ‘찬양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임재하심’ 등의 제목으로 열강을 펼쳤다.
첫날 이사야 43;21을 주제본문으로 한 강의에서 그는 서론적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찬송이란 어떤 찬송인지를 구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3 단어 ‘바라크’(창9:26), ‘야다’(창29:35), ‘할랄’(삼하 22:4, 창 12:15, 삿 16:24) 를 중심으로 강의한 뒤 우리는 어떻게 찬양드려야 하나 묻고, 감정(히브리어 cantilation)과 새노래로 불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둘째 날 시 27:8을 주제본문으로 한 강의를 통해 최 목사는 감동이 있는 예배와 그렇지 못한 예배의 차이는 무엇이며 하나님이 에배를 통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색했다.
‘하나님의 임재’(파님·습 3:17), ‘친밀감이란 무엇인가’(아 1:1-3) 등에서 임재와 친밀감의 차이를 말하고 찬양은 찬송가사의 힘과 음악의 힘으로 하나님과의 친밀감(시 22:3)을 도우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어떻게 체험할 지를 말했다(렘 29:11-13, 출 3장, 3:18-23, 요 20:22, 행 2:1-4, 4:31-33).
또 9월 29일 성가대 수련회 예배 때는 ‘내 얼굴을 찾으라’(시 27:8)는 설교를 했다.
아, 오순덕 권사님!
그해 10월 17일, 본 교회 오순덕 권사가 85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오 권사는 일찍이 70년대 말기에 본 교회 협동권사로 재임하다가 81년 5월 시무권사로 취임해 온갖 충성을 다해왔다. 오안순 권사 다음으로 본 교회의 두 번째 역대 시무권사이면서 80년대에 취임한 첫 권사였다.
오안순 권사와 함께 나란히 본 교회가 늘 자랑하고 존경해온 두 ‘오 권사’님으로서 초기 여선교회 일에 헌신하고, 81년 11월 임마누엘회 창립 당시 초대 부회장으로 선출돼 역동적으로 일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도 전도상과 성경공부상도 골고루 타는 등, 범사에 늘 앞장서서 본을 보였다. 이젠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을 것이다. 권사님, 보고파요!
영어회중 지 교회로 분가
10월말에 당회는 엄청난 결정을 내렸다.
2세들의 선교를 위하여 또 미주한인장로회 내 영어권 회중을 위하여 그동안 영어 목회와 교육담당 지도자 한태헌 목사(Danny Han)가 지도해온 영어부를 본 교회의 지교회로 분가시킨 것이다. 그리하여 ‘Joy Christian Fellowship Church’이 11월 첫 주부터 독립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우리 교회가 세우는 첫 영어권 지교회인 셈이었다.
본 교회 영어부는 본 교회 자녀들과 중고등부 출신을 위해 오후 1시15분에 본당에서 Joseph Lee(이웅조) 목사가 계속 지도하기로 했다. 한편 JCF가 독립해나면서 그 동안 쓰던 기타, 드럼, 앰프, 마이크 등 악기와 음향기기 일체를 갖고 갔기 때문에, 다시 고스란히 필요했다. 약 1만 불 어치였다.
장로 8인 투표선거를 하다
그 해는 새로 장로 8인 투표 선거를 치렀다.
사전에 30세 이상 70세 이전 후보자들의 명단을 발표했다. 피선거권이 있는 후보자는 협동장로 3명, 안수집사는 36명, 협동안수집사는 6명, 서리집사 113명 등이었다. 투표과정이 길어지기 때문에 1, 2차로 나눠 먼저 10월 31일에 1차 투표를 치른 결과 444명의 유권자들이 투표했는데도 당선권인 3분의 2(296표) 득표자가 단 1명도 없었다. 그래서 그 다음 주 주보에 다만 최다 득표자 16명을 서열대로 나열했을 뿐이다. 당선자가 하나도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예배를 여러 차례로 나누어 드리는 것도 이유가 되었다
제10회 구역찬송대회
제10회 구역찬송대회가 예닮원 대학청년부 예배실에서 개최됐다. 그해의 가장 큰 특징은 사전추첨 또는 사회자가 즉석 무작위 추첨하던 방식이 아니라, 순번을 구역번호 순서 그대로 진행한 것이었다. 즉 1구역부터 가장 먼저 등단했다.
사전 발표된 지정곡은 찬송가 168·268장과 ((주보에 사전 기재된 지정곡 중에는 164장까지 모두 4곡으로 되어 있었으나 후에 취소됐거나 오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복음송 110장 등 지정곡 수가 전년도보다 늘어난 데다 최초로 복음송이 지정곡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예년과 차이가 있었다. 지정곡이 매년 늘어난 것은 팀 자신들에게나 심사위원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셈이었다. 그해 26개 엔트리 팀 중에는 예년 같은 2개 구역 통합 팀이 하나도 없었다. 그만큼 구역들이 발전했다는 뜻이겠다.
이 해 팀들이 선택한 지정곡들의 선호도를 엿보면, 찬송가 268장(온 세상 위하여)이 14팀으로 가장 많았고, 168장(하나님의 나팔소리)이 7팀, 복음성가 110장이 단 2개팀이었다. ((총평점표 순서상에는 2개 팀이 아직 곡을 밝히지 않고 있었고 한 구역은 지정곡이 아닌 ‘선한 싸움’이란 또다른 자유곡을 택했다.)) 자유곡은 수년 전부터 지속돼온 성향 즉 찬송가보다 복음성가(또는 경배찬양곡)를 선호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참가곡목을 밝힌 24개 팀들 중 찬송가를 자유곡으로 택한 팀은 단 4팀이었고 나머지 20개 팀은 모두 찬송가 밖의 곡을 택했다. 곡들 중에는 어린이 찬송가 중에서 가사를 바꿔 부른 ‘어기영차 오클랜드’ 같은, 풍토 내음이 다분히 풍기는 곡도 있었다. ((바로 이 곡을 부른 8구역이 대상을 차지했다.))
구역의 있는 모습 그대로 출전하다보니 구역원 재적수가 가장 많은 팀은 40명이 대거 출연했고, 가장 적게는 3명이 나온 팀도 있어 대조적이었다. 그해 부문별 심사평점 배정은 출석 30%, 태도 40%, 음악성 30%로 태도에 가장 비중을 두었다. 그 결과는 별 표와 같다.(표 54)
경배와 찬양의 밤
1999년 대·내외 활동 일지

새롭게 하소서(Renew Us)
21세기 문턱으로 접어들었다.
엄밀히 말해서, 서기 2000년은 20세기의 마지막 해이고, 2001년이 사실상의 시작이다. 그래도 다들 2000년을 21세기의 초두로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 당회장 김창길 목사도 그해 연두사에서 ‘오늘부터 새 밀레니엄의 시작입니다’라고 서두를 열었다.
김 목사는 21세기에 우리가 모르는 미래와 과학의 도전으로 인간의 삶과 의식구조, 가치관에 대변혁이 올 것으로 내다보고, “세월은 조용히 흐르지만 세상 안에 사는 사람들은 변하고 있다”고 가늠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역사를 창조하는 새 인간, 창조적 자아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첫 주일 설교도 ‘새롭게 하소서’(롬 12:2)였다. 우리 교회가 새 세기에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려면, 첫째로 새 천년에 나 자신부터 새 사람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이런 귀띔을 했다.
“우리 교회는 혹 많은 사람을 잃고 있진 않습니까? 소외시키고는 있진 않습니까? 얼마 전 남편을 여윈 50대 여성이 본 교회에 몇 달 출석하다가 알아주거나 인사해주는 사람이 없어 외롭다고 했습니다. 자기도 어딘가 모임에 끼고싶고 자신의 외롭고 아픈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하답니다.”
둘째로는, 새 천년 대에 새 교회당을 마련하게 될 것을 감사했다. 이에 관해 김 목사의 말을 대강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5월이면 예닮원 모기지가 끝납니다. 몇 주 째 교회당에 앉을 자리가 없어 되돌아간 이들이 있습니다. 조이고 조여 앉아도 자리가 모자랍니다. 700명이 동시에 예배드릴 본당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땅이 있다고 우리 맘대로 못 짓고 타운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당은 우리가 그려, 우리가 세울 겁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고 계십니다. 믿고 순종하면 지난날처럼 기적을 주십니다. 교회당 건축은 기도 외에 딴 방법이 없습니다. 부르짖을 때가 지금입니다!”
셋째로, 새 천년에 지역사회 봉사를 해야 할 것을 당부했다.
팰리세이즈팍과 오클랜드에 왜 한국인교회가 있어야 하는가. 우선 한인동포들 때문이다. 이 지역에 존재하는 역사의식과 책임을 느껴야 한다. 서로 갈리기 쉬운 한인공동체, 나뉘기 쉽고 오해하기 쉬운 한인들과 시 정부간에 상호이해, 협력, 화해의 다리가 돼야 한다.
교회는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을 실천해야 한다. 사랑이 있으면 성공한다. 힘이나 큰소리로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함께 해야 한다. 교회는 민족과 세계인들에게 화목을 베푸는 역할을 감당하는 다리, 평화조성자(peacemaker)가 돼야 한다. 우리의 손이 필요한 곳에서 자원봉사에 앞장서야 한다.
Y2K 무사통과
세상에서는 1999년 12월 31일 자정부터 그해 정초에 Y2K대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했는데, 별 일 없이 감쪽같이 지나갔다. ((Y2K란 ‘Year 2000’ 즉 2000년 정초에 발생할지 모르는 컴퓨터 재난이었다.)) 본 교회에서도 1999년 4월 남선교회 주체로 Y2K 대비 세미나가 열리기도 했다.
각계에서 철저히 준비한 때문인지, 아니면 그 자체가 허무맹랑한 존재였던지 Y2K의 꼬리는 ‘종적’이 묘연했다. Y2K는 컴퓨터에 사용되는 연대자리 수를 1900년대에는 앞의 천과 백 대 두 자리 수를 생략하고 뒤의 두 자리만 사용해왔다가 ((예를 들면 1999년은 99년으로 표기하는 방식이다.)) 00년으로 시작되는 2000년대에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한 재난이었다. 예컨대 ‘00’으로 기재할 경우, 2000이 아닌 1900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식의 발상이었다. 부분적으로 그런 재난이 발생하기도 했다.
99년 연말을 앞두고 세계적인 Y2K 공포현상이 퍼졌고,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핵전쟁이나 사막전쟁을 방불케 하는 철저한 대책을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강구했다. 장기간 비상시를 위한 곡물, 통조림, 라면 같은 비상식품, 비상의류, 비상식량 준비를 위한 곡물분쇄기, 배터리와 휴대형 발전기나 손전등 등 비상에너지, 식량탈취 등 동네에서 예상되는 아귀다툼에 대비책 같은 별의별 기발한 준비들을 하고 있었다.
Y2K 대비 아이디어를 다룬 엄청난 양의 책과 소프트웨어 등이 팔려나가기도 했고 그 때문에 떼돈을 번 사람도 없지 않았다.
구식 코볼(cobol) 컴퓨터 용어를 쓰는 자동차나 냉장고, 당장 필요한 현금인출기(ATM)와 신용카드구좌 등에서도 모종의 재해가 예상됐었다. ‘이젠 다 끝장’이라는 종말론까지도 대두됐다. 나머지 사람들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를 하든지, ‘될 대로 되라’ 또는 ‘퀘세라세라’ 식으로 자포자기하든지 그랬다. ‘내일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노라’고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12월 31일 밤을 꼬박 새운 사람들도 다수였다.
그런데… 정작 2000년 1월 1일 새벽…이렇다할 아무 별 일이 없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인간은 정말 미련한 것이, 뻔히 보면서도 미리 준비하지 못하다가 급작스레 서두른 것이 다행히도 허상(虛想)으로 끝났다. 물론 각국 정부와 구식 컴퓨터를 사용하는 기업체들이 엄청난 예산과 각고의 노력 끝에 별 피해를 보지 않은 셈이었다.
결국 Y2K는 21세기 초입을 뒤흔들만한 별난 존재가 못되었다.
심서구-그는 누구인가
새해 벽두부터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결국 Y2K는 21세기 초입을 뒤흔들만한 별난 존재가 못되었지만 새 세기에 우리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인물이 ‘히든’으로 있었으니 그는 심서구 집사였다.
당시 교회 버스의 노후로 인한 잦은 고장을 묵과할 수 없다고 생각한 임마누엘회에서, 밴 버스 구입을 위하여 바자를 갖기도 하고 뜻 있는 몇 사람에게 손을 펴 보기도 했다. 여의치 않았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심 집사. 그 나머지 부족액을 채워주었다. 뿐만 아니라 추가로 한 대를 더 사서 패이 오프, 하나님께 헌납한 것이다.
지금도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 몇 없다. 왜냐하면 본인이 그 사실을 흐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 편찬위에서 면담을 요청했을 때도 “그건 장인(조영진 장로)이 하신 거예요”하며 만나기를 피한다. 조 장로 또한 절대 내가 아니라며 막무가내, ‘절대’를 부친다. 심 집사가 봉헌한 것이었다(사진 55).
여기서 심 집사의 신앙경력(?)을 보자. 1990. 9. 16. 가족들(모친: 심순정 집사, 형: 심정구 집사, 형수: 심욱진 집사 등)과 함께 교회에 등록을 한다. 당시 주보에 의하면 서구 군으로 기재되어있다. 1992년 12월 20일에 학습, 1993년6월 20일에 세례를 받았다.
1993년 2월 20일에는 조문숙 양을 신부로 맞는다. 우리교회 조영진 장로(양연이 권사)의 딸이다.
그들 내외는 아이들을 갖기 전까지 성가대에서도 열심히 봉사해 왔다. 심 집사는 현재 소속 남선교회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골프를 즐겨 교회 내 골프대회에서 몇 차례 메달리스트 상을 받기도 했다.
결코 많이 있는 자가 아니다. 큰그릇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새해 동정
새해에 몇 가지 변동사항이 생겼다. 우선 1월 1일부로 만61〜65세 남녀회원 자치기구인 ‘제2임마누엘회’를 ‘소망회’로 이름을 바꿨다. 새해부터 새벽기도 시간이 오전5시30분에서 6시로 변경됐다. 주보도 멋진 그래픽디자인으로 새 시대에 맞게 변모했다. 본 교회 역사상 가장 깔끔한 모습이었다. 또 과거의 3절 형식에서 2절형으로 컴백하면서 글씨를 되도록 작은 폰트로 줄였다.
1월 5일에는 장화인 장로의 부친 장행진 집사가 하늘나라로 앞서 가셨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교회와 뉴저지노인회 등 지역사회 일에도 열심이었다가 만년에 9년간 투병 중이었다. 슬하엔 1남3녀와 10명 손들을 두었다. 그러나 이원규-장화인 장로 부부의 맏딸 줄리 양이 22일에 결혼하는 경사도 겹쳤다.
그 즈음 교회 예배장소가 비좁아 제직들은 되도록 4부 예배를 이용할 것과 앞자리부터 채워달라는 권고와 함께 예닮원행 버스 편 시간표를 알리고 있었다. 교육부에서는 2부 예배중 유치부 자원교사를 찾고 있었다. 또 2000년 인구조사(Census)에 참여할 것을 당부하면서 설명회도 가졌다.
삼일절 기념예배
그해 3월 1일 수요일은 예닮원에서 삼일절 기념예배로 드렸다.
3·1절기념예배위원장 김인선 장로가 진행한 이날 예배는 특별히 교독문 69번의 화답과 함께 어머니합창단의 찬양, 김창길 목사의 ‘삼일절과 기독교’란 메시지, 김영일 집사의 독립선언서 낭독, 애국가 제창, 원로성직자회 회장의 만세3창 등으로 이어졌다. 또 삼일절 노래도 불렀다.
예닮원 십자가 완공
예닮원을 가꾸고 꾸미는 일은 해가 바뀌어도 여전했다.
3월 중순에 예닮원 뜰의 십자가와 성찬상, 기도대 등이 완공되어 앞으로 예배와 결혼, 장례, 음악회 등 여러 옥외 행사들이 가능케 됐다. 이 일을 위해 10여 ((차원빈(유성희), 박상호(박순인), 최창환(최수자), 이상화(김원희), 황종연(황형단), 장재열(어혜숙), 이원규(장화인), 김영일(구자섭), 염충국(박은숙), 임용성(김연옥), 류재길(조성자), 황종태(이혜경), Mary & Joseph)) 교우들이 봉헌했다.(사진 56)
봄이 돌아와 예닮원 뜰에 나무심기 운동도 재개됐다. “예닮원의 미래를 위해” 나무심기를 원하는 이들의 도네이션을 요청하고 있었다. 나무 종류는 소나무, 벚나무, 콜로라도 블루나무 등이었다.
Y2K도 별탈 없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이다. 이제 새로운 세기를 맞으며 그간 오! 오클랜드, 예! 예닮원의 일지를 입수하여 소개하는 것도 다른 의미가 있을 성싶어 여기에 소개한다. 그것은 11곳을 찾아다닌 결과였다(표 56)
부활을 기념하는 찬양경배의 밤
부활은 고난으로부터 시작이다. 종려주일에는 “이번 주간은 고난 주간인데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봉사의 수고를 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부탁이 주보 위에 떴다.
그해 부활절시즌에 글로리아찬양팀 ((글로리아 찬양팀(Gloria Praising Team)은 다음과 같이 구성돼 있었다. 대장: 최재식. 총무: 임경무. 기획: 이우봉. 찬양인도: 한상우. 보컬: 최재식·임경무·이우봉·유강훈·유동우·김문희·조혜숙·최미라·김윤이. 반주: 김희순(바이올린), 정자영(피아노), 이혜경(신서사이저), 윤기제(베이스기타), 이명숙(오버헤드프로젝터), 오재옥(엔지니어).))과 함께 하는 일곱 번째 찬양과 경배의 밤이 4월 19일 수요일 밤 열렸다. 찬양경배의 팀은 해가 갈수록 성도들의 힘을 돕고 영적 자양분을 제공하는 유익한 행사임을 모두들 느끼고 있었다.
특히 부활절을 맞아 고난과 부활을 깊이 묵상하고 기리는 마음은 성도마다 한결 같았다. 이날 순서는 대강 다음과 같았다.
한편 그해 연말의 제8회 경배와 찬양의 밤은 11월 29일 제20구역 성도들과 드라마 ‘사랑’ ((담당자: 김은주·문래숙·임경무·조성준·한보경.)), 선교합창단의 특별찬양 등으로 진행했다.
교인들 자기 채점
그해 4월 27〜30일 김호식 목사(서울 예닮교회)를 강사로 개최된 부흥회를 계기로 교인들의 자기 채점표가 배부돼 모두들 기록하기도 했다. 이 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그밖에도 김호식 목사는 ‘맥아더의 자녀를 위한 기도’, 제임즈 가필드의 생활신조 10개, 자녀교육 10계, 부부생활 10계 등 도움되는 십계와 박목월 시인의 ‘어머님의 성경’ 교송시(交誦詩)도 소개했다.))
2000년도 전교우 야외예배·체육대회 진행
6월 18일 전 교우 야외 예배 및 체육대회가 개최됐다. 당일 오전 10시 예닮원 십자가 상 앞 잔디밭에서 통합대예배를 드렸고, 연합성가대가 김홍일 집사 지휘로 찬양을 했다.
식사시간에는 예년처럼 담임목사의 구역별 축복기도도 진행됐다. 구역장들이 사전에 구역원 식구들의 기도제목을 작성 제출했다. 전 교우 운동회와 함께 구역별 장기자랑도 곁들여졌다.(표 57, 58, 59)
정우의 하늘나라 입성식
8월 3일에는, 그 동안 오래 앓아오다가 하늘나라로 떠난 최정우 어린이의 천국 입성예배가 거행됐다. 최창화(홍은숙)집사의 아들이었다.
페이터슨 Cedar Lawn 묘원에서 거행된 정우의 장례는 김창길 목사의 집예로 진행됐다. 모두들 찬송가 293장 ‘천국에서 만나보자, 그날 아침 거기서’를 부른 뒤 정주섭 장로의 기도, 여선교회원의 조가에 이어 김 목사가 ‘어린이가 들어가는 천국’(마 18:2〜5)이란 메시지를 전했다. 또 유족대표 최창화 집사의 인사말도 있었다.
그동안 최정우 어린이를 위해 성도들이 늘 그리고 틈날 때마다 간절히 합심 기도를 해왔다. 언젠가 저 푸른 하늘 저너머 영원한 곳에서 모두들 정우를 만나게 되리!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최창화 집사네는 그해 11월 9일, 다시 새 아들을 하나님께 선물로 받았다.
김창길 목사 회갑을 맞다
김창길 목사가 그해 회갑을 맞아 7월 9일 예닮원에서 조촐한 감사예배를 드렸다.(표 60)
내외 하객들이 많이 모여, 지난 60여 성상을 살아오면서 아울러 본 교회에서 20년간 성역(聖役)을 감당해온 김 목사의 이날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김 목사의 세 아들 규호(Paul)·규창(Peter)·규선(Philip)은 이제 다들 거의 장성했건만, 김 목사는 회갑이란 나이가 믿어지지 않게 여전히 젊고 동안(童顔)이다. 김 에스더 사모도 그러했다.
김 목사 부부에게는 앞으로도 ‘은퇴’라는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온유 겸손하게 모든 것을 참아가며 한 교회에서 여태껏 충성을 다하여 교인들에게 정성을 쏟아왔기에 더욱 그럴 것이다.
열 한번 째 구역찬송대회
그해 9월 17일에 열린 구역찬송대회는 옥외에서 실시됐다.
예닮원 축구장에 구역별로 텐트를 치고 배치하여 앉은 후 실시한 것이다. 그해 심사기준은 출석 30%, 음악성 30%였고 준비 및 창의성이 40%였다. 지정곡은 405, 414, 466장이었다. 자유곡은 참가팀 26개 구역 중 찬송가를 부른 구역은 단 3개 구역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복음성가와 찬양경배노래였다. 60〜70년대에 애창되던 아주 옛날 곡으로부터 최신 곡까지 매우 다양했다.
찬양경배 노래가 많은 것은 해마다 글로리아프레이즈팀이 주최하는 찬양경배의 밤을 통해 배운 때문이었다.
그해의 대회 사회는 전반부 사회를 조종무·조혜숙, 후반부를 유동우·김연옥 위원들이 따로 맡아 흥미 넘치게 진행했고, 심사는 예년과 같이 교역자들과 성가대 지휘자들이 맡아했다. 또 그밖에도 방송, 녹화, 촬영, 주차안내, 상품관리, 순서진행, 무대 장치, 간식준비 등을 준비위원들이 정성껏 맡아했다.
결과는 대상에 제12구역(구역장 김민/권찰 양혜정), 1등 10구역(홍영석/이인숙), 2등 13구역(이애자/이혜숙), 3등 24구역(류재길/서윤희), 장려상 18구역(유강훈/최희숙), 인기상 21구역(김현/임경순) 등이었다.
장로 5인 투표
10월 15일과 22일, 장로 5인 투표를 위한 공동의회가 소집됐다.
전년도인 1999년에 장로 8인 선출을 위한 투표를 2차에 걸쳐 실시했었으나 당선권 득표자가 전혀 없어 이해에 5명을 줄여 재실시한 것이다. 후보자는 안수집사 35명, 협동장로 2명, 서리집사 120명이었다.
1차 투표 결과 김낙중(121표), 황종태(159), 최영선(154), 양진(149), 차원빈(118), 김진(110), 이상근(92), 염충국(86), 서태호(55), 김영일(45) 등으로 나와, 이중에서 5명만 뽑는 2차 투표에 들어갔다.
22일 찬양예배 때 장로투표를 하기 전 김창길 목사는 ‘우리가 바라는 장로’(딤전 3:1-7)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예배후 유권자 148명이 투표를 실시한 결과, 99표 이상 당선권에 든 사람은 차원빈, 양진, 최영선, 김낙중 집사 등 4명이었다.
교회와 교육관 증축을 위한 공청회 씨름
10월 16일에 그 동안 오래 기도해왔고 2번 연기됐던 본당 교회증축 허가가 주민공청회를 통과했다. 이어서 11월 달에는 교육관 증축을 위한 공청회를 위해 다시 기도에 들어갔다.
참으로 기도 없이는 기적이 있을 수 없고 또 기도 없는 교회가 존재할 수 없음을 새삼 깨닫게 하는 끈질긴 영적 전쟁이었다. 교회 구입과 점거, 신축과 증축에 일일이 공청회가 필요한 미국의 상황은, 반드시 전 교우의 기도를 요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하나의 훈련인 셈이다.
2000년 행복에의 초대
그해 대학청년부과 주관하는 ‘행복에의 초대의 밤’이 10월 28일 개최됐다.(표 61)
당시 대학청년부는 9월 3일자로 갓 부임한 이철훈 목사를 지도자로 모시고 재적 60여명 되는 밝고 활기찬 젊은 형제 자매들로 매주 토요일 밤 팰팍 본당 친교실에서 심도 있는 성경공부와 간단한 친교를 갖고, 주일 오전에는 예닮원에서 자연을 즐기면서 예배를 드리거나 다양한 행사를 가졌다.
그해 행복에의 초대의 글머리는 이렇게 열렸다.
어느 덧 겨울 문턱에 앞선 쌀쌀한 10월에 여러분들과 이런 따뜻한 자리를 마련하게 되어 먼저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1993년부터 시작되었던 문학의 밤은 1998년에 이름을 ‘행복에의 초대’로 바꾸고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열어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오랜 기다림’이라는 제목, 우리가 아직 주님을 모르거나 때로는 주님을 잠시 떠날지라도 변함없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사랑을 널리 전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수화, 신앙고백, 시 낭송 등등…
가끔씩 크리스천으로서 참 모습을 잃고 살지나 않는지 우리를 돌아보고 주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모든 프로그램을 주님의 간섭아래 우리 대학청년부 회원들이 작은 정성으로 준비했습니다.
각자의 바쁜 시간과 어려움 속에서도 협력과 기도로 마련한 자리니 여러분들과 함께 우리의 젊음과 신앙을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그해 연말
2000년도 주요 이벤트 일지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2001년이 밝았다.
김창길 목사는 신년메시지에서 새해 표어를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로 정했다고 밝히고 주의 나라 증거와 기도에 힘쓰고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회, 베푸는 교회로 자리매김 할 것을 희구했다.
특히 봄철에 본당을 증축, 교회당을 찾아왔다가 자리가 없어 그냥 돌아가는 일이 없게 할 것과 본당층계를 오르내리기 힘든 병약자와 지체부자유자를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계획을 밝혔다.
“어떤 계층 사람들이라도 쉽게 편히 찾아와 주님을 만나는 열린 교회가 돼야한다”고 그는 역설했다. 또 교회설립 29돌을 맞아 300명 전도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김 목사는 아울러 지역사회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는 동포사회의 양심과 구심점이 돼야 합니다. 동포를 위해 미국민으로서 투표권 캠페인을 교회가 앞장서야합니다. 남을 도우려면 힘이 있어야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팰리세이즈팍과 버겐카운티가 한인밀집지역임에도 불구, 한인 시의원이 단 1명도 없으며 한인학생들이 30%나 되는 타운에 한인교육위원이 고작 1명뿐임을 개탄했다. “아무리 우리끼리 해봤자 우리 얘기가 주류사회에 관철되지 않습니다. 우리 2세들이 진출하도록 앞장서 밀어줘야 합니다.”
특히 중요한 다음 문제를 지적했다. “우리 자녀들이 의학계통 대학입학을 위해 병원 등에 가서 자원봉사 하는 일은 있어도 타운을 위해 자원봉사 하는 예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김 목사는 그러나 본 교회가 매년 참여해온 메모리얼퍼레이드 행사와 오클랜드의 3개 교회가 드린 연합성탄음악예배 등은 한인계를 대표하고 서로 이해하고 협동한 좋은 기회였다고 평가하면서 “우리는 미국 안에 서울을 만들지 말고 뉴욕메트로폴리탄을 만들어가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우리 교회는 특히 금년 중 히스패닉계에 교회당을 빌려주어 빚을 갚는 계기를 삼고자 했다. ‘뉴저지한인장로교회’를 ‘뉴저지장로교회’로 이름을 바꾼 것도 한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인을 위한 교회이기 위한 맥락에서였다. “한국어·영어·스페인어로 예배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김 목사는 또 장학위원회를 독립시켜 미국과 세계에 기여할 인재를 많이 기르고, 사회사업 봉사위원회를 두어 전문상담인과 소셜워커를 통해 제반 이민문제와 노인복지 문제 등을 해결할 참이었다. 이는 “타국에 선교사 1명 파송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쁜 새해 동정
2001년도 교회일람을 위한 세대별 자료 기록용지가 교인들에게 배부됐다. 이 서류를 박스에 제출하면 효과적인 교회요람을 만들 수 있는 동시에 교회 식구들의 현황과 동향 파악에 도움되는 자료다. 식구이름과 생년월일, 호주와의 관계, 주소와 구역, 전화번호, 가게, 직장 등을 밝히는 내용이었다.
그해 신임집사는 남자가 28명, 여자가 26명 모두 54명이었다. 이 신임집사들이 1월 13일부터 교육받고 있었다. 자질과 역량을 갖춘 일꾼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밖에도 모든 연례정규 활동이 예년처럼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새해부터는 수요예배 때 어린이들을 위한 수요교실을 따로 운영할 계획이었다. 부모들이 어린이들을 친교실에 맡기고 본당에서 맘놓고 예배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주보 소식란은 각부서의 새 일꾼들의 이름을 소개하기 바빴다. 그해 당회원 신년하례식은 9일 장재열 장로 집에서 열렸다.
1월 중순경에는 예닮원 간판부착 건을 놓고 주민공청회를 가진 결과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1월 30일부터 2월 2일까지는 김기홍장로(해군중앙교회 장로) 초청 신앙간증집회가 ‘주여! 주님 뜻대로 살기 원합니다’란 주제로 열렸다. 문우회는 1월중 김정기 시인을 초청, 조성자 회장 집에서 ‘행복한 시 쓰기’ 모임을 가졌다.
선교 캠페인
1월말 주보에는 엘살바도르의 박기창 선교사를 돕기 위한 기도운동 광고가 떠올랐다. 그 즈음 현지를 강타한 지진의 엄청난 피해와 여진의 위험이 있으므로 깨어 경성하여 기도하자는 부탁이었다. 해외선교부(부장 장재열 장로)는 2월 4일 박선교사 사역을 위한 차량헌금을 주관했다. 그해 단기선교는 엘살바도르와 러시아로 떠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2001년도 단기선교 팀 모집광고가 4월초 배포됐다.
한편 유초등부 교회학교는 전년도 연말 본당과 예닮원 교회학교에서 북한 어린이 돕기를 위해 모금한 1,000달러를 8월 중순 총회 북한선교부에 전달했다. 코흘리개들이 고사리 손길로 모은 고귀한 정성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바친 것이다.
뮤지컬 ‘호세아’(Hosea) 공연
2월 7일 저녁 여선교회가 뮤지컬 호세아를 연출, 발표했다.(사진 57)
준비관계자들은 “처음에 시작하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갈 수 있었던 힘은 기도의 확신과 하나님이 계획하셨다는 믿음이었다”고 술회했다.
뮤지컬을 연습하면서 선지자 호세아를 통해 창녀 고멜과 결혼하게 하시고 방황하고 음란했던 고멜을 끝까지 용서하고 사랑하게 하신 그 분이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또 “그분의 손에 못을 박고 외면했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우리의 죄를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온 성도들과 함께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고 그 사랑과 은혜를 함께 나누자고 당부했다.
뮤지컬 호세아 스태프
연출: 조혜숙
기획: 박계영
안무: 한보경 정찬혜 김윤이
녹음: 남진현
음악: 한대위 김윤이
출연
호세아: 황종상
고멜: 조혜숙
바알(포주): 정찬혜
남자솔로: 염충국
거리의 여자들:
최미라 박계영 인혜연 한혜연 한보경
김미경 양현경 김윤이 유재은 정순남
예닮학교 개교
한인2세 어린이·청소년들을 위한 본격적인 전인교육의 장 예닮학교가 2월 중순 문을 열었다. 안내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뉴저지장로교회에서는 오클랜드 예닮원에 우리 2세들을 위한 테니스장과 축구장, 컴퓨터랩을 갖춘 전인교육의 새 공간을 갖고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을 양성할 목적으로 예닮학교를 시작하며 학생을 모집합니다.
개강: 2001년 2월 17일
장소: 예닮원
대상: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들
기간: 2001년 2월 17일〜6월 9일(총16주·부활절 휴강)
시간: 9시30분부터 2시 30분까지
9:30- 9:50 성경말씀
10:00-10:50 한글교육 I
11:00-11:50 한글교육 II
12:00-12:30 점심식사
12:30- 1:20 컴퓨터·인터넷 교육
1:30- 2:20 뮤직 & 아트, 또는 악기 레슨(옵션) 태권도·테니스·한국무용·SAT준비 클래스 오픈 예정·어머니교실 오픈 예정(컴퓨터·지점토·성경공부)
등록금: 첫 자녀 $220 둘째 자녀 $200(악기레슨비 별도).
교재대: $15
팰리세이즈 본당에서 9시에 밴 운행. 오후3시 본당 도착(좌석한정).
교우들의 지역사회 진출
단기선교팀 모집
아홉 번 째 ‘경배와 찬양’
장학기금 모금
성가대 수련회
단기선교단 파송
아, 9·11!
항공기 4대의 탑승객 전원은 몰사했고 현지 피해자를 구하려고 투입된 경찰관과 소방관, 비상구조대 다수가 희생됐다. WTC는 충돌 비행기에 가득 채운 연료와 폭탄의 엄청난 고열과 폭발력으로 삽시간에 상층부가 타버려, 30여명에 달하는 피해자들이 건물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죽는 모습, 건물이 먼지구름 속에 쏟아지듯 힘없이 무너져 내린 광경 등은 텔레비전으로 생생하게 중계 방영돼, 전세계인들에게 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사건으로 한인들을 비롯한 수천 명이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다. 또 당시 사건 목격자들이 후유증과 정신이상 증세를 앓기도 했다. 현장 주위의 여러 한인상점들을 비롯한 기업체와 단체들, 직원들이 생활기반을 잃기도 했다. 한때 세계재정마저 위협할 정도로 미국경제가 휘청거렸다.
사건현장인 ‘그라운드제로’에서는 이듬해 6월까지 근10개월이란 장기간 동안 건물 폐허 제거작업과 동시에 시신발굴 작업이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들의 시신 또는 소지물이 발견되면서 가족들을 안타깝게, 슬프게 했다. 또 전국교계는 이를 계기로 기도와 영적 각성에 들어갔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시 찾는 현상도 벌어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악의 세력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전국에 테러 경계 비상계엄령을 내렸다. 미 국방부와 정보기관은 테러범들이 모두 아랍계로 배후세력이 아프가니스탄에 머물고 있는 오사마 빈라덴(Osama Binladen)이 주도하는 알 카에다(Al Quaeda)임을 밝혀내자, 영국 등과 연합군을 구성, 아프가니스탄을 대상으로 보복전쟁을 벌였다.
알 카에다가 숨은 지역과 은신 동굴을 파괴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장기집권 해온 과격파 회교인 탈레반(Taleban)들을 축출했다. 때를 같이 하여 우편물을 통한 탄저균 테러도 발생해 우편국 직원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죽었고, 전국에 생화학 테러에 대한 엄청난 공포심을 자아냈다. 이듬 해에는 사건의 여파로 이스라엘에서 대 테러전이 펼쳐져 팔레스타인 계의 자살폭탄 사건 등이 연이어져 다시 한번 중동평화가 조각났다.
이 사건은 21세기 전쟁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으면서 온 세계국가가 테러에 공동 대처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안겨주었다. 아울러 서구 기독교권과 중동 이슬람권간의 사상전 내지 종교전을 방불케 했다. 그러나 선의의 무슬림들에 대한 이해 및 관용 캠페인이 벌어져 이슬람 알고 알리기 운동을 통해 종교다원주의가 폭넓게 퍼지고, 다수의 이슬람 지지자들과 개종자를 낳는 부수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미국을 위해 기도합시다
9·11테러 후 첫 주일인 9월 16일 주보에는 이런 메시지가 떴다.
“미국을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는 한국인인 동시에 미국에 사는 시민입니다. 그 동안 미국에 와서 영주권, 시민권을 받고 좋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좋은 집, 좋은 직장에 다니고 정부의 혜택을 입으면서 그 동안 미국을 위한 기도가 적었던 것을 회개합니다. ① 부시대통령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미국의 안정과 질서와 번영을 위해, 세계평화를 위해, 올바른 결단을 내리도록 ② 각료들이 대통령을 협력하여 하나되어 위기를 극복하도록 ③ 군인과 경찰들이 사기를 잃지 않고 용감하게 국가를 지키도록, ④ 희생자 유족들이 위로와 앞날을 위하여 ⑤ 부상자들의 빠른 치료를 위하여.
아울러 그날 있을 예정이던 제12회 구역찬송대회를 10월 7일로 일단 연기했다가 그해에는 치르지 않기로 했다. 당일 찬양예배는 예닮원에서 연합구역예배로 가지면서 9·11당시 죽음의 순간 기적적으로 탈출한 주익수 집사(현대증권사장)의 간증이 있었다. ((주 집사의 현대증권은 WTC 78층에 사무소를 두고 있었다.)) 또 당일 피해자 돕기 헌금을 했다. 앞서 14일에 있은 목요새벽기도회 때도 2,300여 불의 성금을 모금했다. 그리하여 총 12,600불의 성금을 한인방송 ‘라디오서울’을 통해 전달했다.
16일 주보 상으로 알려진 바, 본 교회 교우 중 WTC 테러의 실제적 또는 정신적 피해자는 WTC 53층에 근무하던 이지원 교우(양승효 집사 장녀), 오피스에 진입하지 못한 배민성 교우, 사업장에 들어가지 못한 윤대희 집사(마루레스토랑), 보스턴에서 여객기를 타고 오던 매제를 잃은 서종수 교우 등이었다.
한편 최강석 집사(‘싸우스 폴’ 근무)는 WTC 빌딩과는 무관하지만 당일 그 시간대에 시카고로 출장 가려고 뉴어크 공항에서 비행기에 타고 있었는데 귀가 조치되었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앞서 뜬 비행기가 범행에 이용된 비행기였다고.
23일 저녁에는 오클랜드 타운지역 희생자를 위한 추모행사가 인디언힐스고교에서 열려 본 교회 연합성가대가 참여했다. 또 본교회 사회부에서는 차량 부착용 성조기를 배부했다.
10월 20일 새벽기도 후에는 최창화 집사 인도아래 20여명이 참사현장을 답사한 자리에서 김 목사가 기도를 이끌기도 했다.
대학청년부, 찬양의 밤 개최
그 즈음 찬양경배 행사가 잦아지고 있었다. 글로리아 찬양팀은 해마다 해왔고, 이해에 시작된 젊은이들을 위한 예닮원의 열린 예배에서도 물론 매주일 찬양경배가 행해지고 있었다. 20세기말부터 21세기초에 걸쳐 발전된 찬양경배의 특징 한가지는 의식무용(liturgical dance)을 곁들이는 예가 잦아졌다는 점이다.
대강절(Advent) 시즌인 12월 1일에는 대학청년부가 찬양의 밤을 가졌다. ‘하나님의 마음’이란 주제로였다. 대학청년부는 또 12월 24일 성탄이브 새벽에 새벽송을 돌기도 했다. 인류를 위해 태어나신 그리스도를 반기는 영광의 노래이기도 했고, 그 옛날 어릴 적 크리스마스 시즌의 아름다운 추억을 일깨우는 노스탤지어였다. 젊음을 불태우는 그들의 ‘글 집’ — 그 표지들 중에서 몇 개를 발췌하여 순서 없이 여기 싣는다(표 62).
찬양의 밤(대학청년부)
말씀 이철훈 목사
CCD(Christian Contemporary Dance) /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강석호·김정윤·이영우·이은정)
Duet / ‘나의 마음이 아파 오네’(박세용·정진호)
Drama / ‘God’s Heart’(강석호·정진호·채진희)
찬양경배 및 중보기도/대청부 찬양팀
표 62. 그간 대학청년부에서 발행한 ‘글 집’ 중에서 뽑아, 그 표지들을 순서 없이 여기 싣는다.
Covers of the Journal written by Church College/Young Adult Group
2001년도 대내외 일지
내 지경을 넓히라(Enlarge My Boundary)
2002년은 본 교회가 뉴저지 땅에 초석을 놓은 지 30성상을 맞는 해다.
당회는 ‘내 지경을 넓히라’는 새해 표어를 설정했다. 김창길 담임목사는 신년사에서 “하나님이 지경이 좁았던 것을 넓혀야겠다”고 선언했다.
“그 동안 믿노라고 하면서 신앙의 울타리를 좁게 쳤던 것을 회개합시다. 큰 신앙으로 내 생각과 경험과 지금까지 익숙했던 삶의 형태를 넘어설 수 있는 넓은 믿음으로 말입니다. 사랑의 대상도 넓혀나가고 가깝게 통하는 친한 사람만 사랑할 것이 아니라 나를 해치고 미워하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기도생활, 전도와 선교, 커뮤니티 동참도 넓혀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2002년도 예산 196만 불을 믿음으로 세웠다. 선교와 구제에 20%, 교육 25%, 교회시설 유지에 15%, 교회당 건축적립금으로 13%, 인건비 15% 등으로 할당했다.
또 전년도에 하지 못했던 본당증축을 위해 80만 불을 별도로 책정했다. 기왕의 건축헌금 50만 불과 올해 건축적립금 24만 불을 합하면 74만 불이 된다.
새해에는 어르신들인 소망회, 임마누엘회 회원들을 비롯, 갓 이민 온 교우들의 편의를 위해 사회사업가 보조를 파트타임으로 두어 통역과 번역, 관계청 방문 등을 담당하고, 자문도 두기로 했다.
전년도에 새로 개척한 예닮교회를 위해 매월 3천불이 지불되고 몽골, 중국 선교도 시작됐다. 2002년 단기선교팀은 러시아, 엘살바도르, 중국 3국으로 파송된다. 엘살바도르의 경우 현지인교회 2곳을 개척했는데 본 교회 권사 1명이 단독지원하기로 했다. 교육분야의 경우, 몇 년 동안 물색 중이던 적절한 중고등부 전임교역자로 Steve Lim을 찾게 돼, 본당과 예닮원 중고등부를 전담케 됐다. 또한 어린이들과 지역민 자녀들의 한국어교육을 위해 전액장학제도를 마련했다. 고급반 증설, 교과과정 재편과 함께, 교육시설을 공사 중 예닮원으로 이전케 됐다.
심방을 강화하기 위해 목회경험이 원숙한 심방전담 목사를 2월 첫 주에 초빙, 교인 가정을 자주 심방하고 아울러 150여명의 60세 이상 원로들과 경로학당 목회를 돕기로 했다.
또 지역사회에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더욱 감당키로 했다.
“우리는 팰리세이즈팍과 오클랜드 두 타운에 살고 있습니다. 버겐카운티와 뉴저지주, 미국을 위해 일하는 교회입니다. 소금은 생선 속에 있어야 합니다. 빛은 세상을 비춰주어야 합니다. 지난해도 9·11 참사 추모회와 메모리얼데이 퍼레이드에 참여했고, (본인이) 시장자문위원으로 매월 오클랜드 성직자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올해는 우리 교우들이 미국인들과 함께 예배하고 친교하는 모임을 가져 서로 남이 아니라 함께 미국에 사는 크리스천 시민으로 연대감을 깊이 나눠 서로 돕고 위하여 사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특히 교회탄생 30돌을 맞는 올해에는 교회창립부터 과거사를 정리해 현 주소를 확인하고 미래를 창조해 가는 밑바탕으로 삼기로 했다. 올해 30주년 행사에는 창설자, 창립교인, 과거 본 교회 출신으로 타주나 한국, 타국에 옮겨간 옛 교우들을 초청하는 홈커밍 선데이를 마련할 계획이다.
새해 변동 사항
새해 첫 주일인 1월 6일에는 공동의회를 가졌다. 그 동안 오래 학수고대해온 새 중고등부 교역자로 스티브 임 전도사가 풀타임으로 본당과 예닮원에서 시무하기로 했다.
그해는 구역을 보다 효율적으로 분할하여 총 교구장 아래 10명의 교구장 장로들을 두기로 했다(별표 참조). 당회는 또 30년사 출간을 위한 편찬위원회를 구성했다. ((최영선 정주섭 이인용 오안순 유방원 장화인 조종무 오민자 김영일 유동우 김성인 조성자 안정옥 김진 황종태 임경순 최창화 최영준)) 아울러 30주년 기념행사 전체를 총괄하고 협의할 협의체로 창립30주년기념행사준비위원회도 구성되었다(부록 “교회창립30주년기념행사위원회” 참조).
2002년 단기선교 준비
2002년 단기선교를 앞두고 2월초부터 일찌감치 단기 선교팀(SMT 2002) ((SMT는 Short-Term Mission Teams의 약자.))을 모집에 들어갔다.
매력적이고 깔끔한 브로셔(팸플릿)도 만들어 거의 매주 배포했다. ‘땅 끝까지 이르러’란 타이틀을 단 이 브로셔는 선교담당 이철훈 목사의 명의로, 지난해 모집내용과 대동소이한 내용이었으나 이 해는 중국이 추가됐다.
선교에 열정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되 팀당 15명으로 인원을 제한했고, 선교비는 ((엘살바도르 $1,300, 러시아 $1,600, 중국 $1,700.)) 절반은 본인부담, 절반은 지원자 부담이었다. 또 각자는 10명씩의 기도후원자가 필요했다. 사역내용은 현지 사역자들 ((러시아: 김도수, 엘살바도르: 박기창, 중국: 박성호.)) 돕기, 청소년수련회, 어린이여름성경학교(VBS), 기도행진, 개인전도, 영어교실, 중보기도, 문화언어교육, 음악교실, 청년수련회, 찬양사역 등이었다.
엘살바도르, 러시아에서는 노방전도도 계획됐다. ((공산국가인 중국에서는 불가하다.)) 특별히 이 해에는 1주 정도 해외사역할 치과·내과·외과 등 의료선교팀과 영어와 컴퓨터를 가르치며 선교사 지원사역을 할 인턴단기선교사도 모집하고 있었다.
단기선교사 인터뷰가 3월 30일에 시행됐고 선교훈련은 4월 6일부터 주말에 시작됐다. 그후로는 팀별 준비모임으로 가졌다. 한편 그해 선교일정은 엘살바도르 7월 27일〜8월 4일, 러시아 7월 31일〜8월 13일, 중국 8월 1일〜15일이었다.
부활절 음악예배
부활절 음악예배는 종종 있어 왔던 행사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태어난 지 30년을 맞는 본 교회, 그해의 음악예배는 의미가 달랐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이젠 결혼도 해서 새 가정을 이루어야 하는 그런 나이가 아니던가. 사람이 태어나 잡다한 일들을 겪게 되지만 이 나이가 되면 다시 숙연한 생각을 갖게도 되는 것이다.
그 해 부활절 음악예배는 팰리세이즈팍 본당에서 열렸다. 얼마 있으면 교회 앞부분이 헐려 그 모습을 새롭게 나타낼 것이다. 정든 문턱, 지성소로 향하는 길목이 변화의 물결을 타고 새 모습으로 선 보인다지만 그 아쉬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아쉬움을 가슴에 품고 부활절을 맞게 되었다.
음악예배는 역시 예년과 같이 연합성가대가 연주를 맡았다. 80여 명의 대원이 한 자리에 섰다. 지휘에 정권호 집사. 반주는 그의 부인 양혜정 집사가 담당했다. 내레이터들(이우봉, 김윤이, 쥬요식, 김재훈, 박진호)이 전하는 메시지와 깊숙이 젖어드는 음악의 감동은 은혜 충만이었다.(사진 59)
2002년 3월 31일 부활절 음악예배에 연주된 곡은 Join W. Peterson 작곡, ‘기적을 행하셨네’였다. 듀엣은 조혜숙, 주요식이 담당했다. 눈물을 훔쳐내면서 지휘하는 정 집사의 손끝을 따라 남성대원들이 먼저 훌쩍거리더니 연주 도중 예제서 눈물을 닦느라 연신 손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자기들이 성가를 부르면서 거기에 먼저 도취된 것이다. 이렇게 불러진 찬양이 어찌 관중석에 앉아있는 교우들에게 은혜를 끼치지 않을 손가. 연주가 끝나고 담임 목사의 축도가 있은 후 서로를 보니 성가대원들과 교우들 대부분의 눈에는 불게 충혈되어 있었다. 은혜의 한마당이었다.
30주년 기념 문예작품 모집
교회탄생 30돌을 맞아 기념문집으로 꾸밀 신앙수기와 문예작품을 그해 3월 10일부터 모집하기 시작했다. 신앙수기나 문예작품 ((제목: 우리 교회, 이민자, 나그네, 꿈 외 자유 택일.)) 등이고 시상내역은 대상과 우수상, 가작 등으로 대상에는 트로피와 상금 $1,000.00을 수여했다. 한편 우수상은 각 장르별로 시 1명, 산문 1명, 수기 1명 등 3명에게 각각 트로피와 상금 $500.00씩 수여됐다. 이 공모를 위해 주요 일간지에 공고하고 홍보에 주력해 왔다. 결과에 의하면 산문, 시, 수기부문을 망라하여 총 46편(시: 34편/11명, 수필 : 4편/4명, 수기: 8편/8명)의 작품이 응모하였다. 심사위원으로는 전 미동부한국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시인 김정기 선생 외 최영선(수필가), 김창길(목사·시인)으로 구성되었다.
시상은 창립기념예배를 드리는 8월18일에 실시했다. 입선된 작품들은 본교회 교회보인 ‘예닮원’지에 싣는 기회도 부여되었다. 한편 교회보 「예닮원」지를 ‘30주년 기념특집’으로 발행했다.
심사 결과 입상자는 다음과 같다. ▶ 대상 : 방병호 시 / “나그네” ▶ 우수상 : 시부문 : 장진순 “나그네” / 산문(수필) 부문 : 김선정 “옷걸이” / 수기부문 : 김정자 “내가 살아야 할 땅” ▶ 가작 : 시부문 : 윤 숙 “나그네의 동지” / 산문(수필)부문 : 전애자 “탈출구” / 수기부문 : 김한나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
본당 증축 시공예배
본당 증축 시공예배가 4월 18일 거행됐다.(사진 60)
좁은 자리 때문에 왔다가 그냥 돌아가는 교인들이 숱하게 많아, 목마름으로 오래 기다려온 작업이었다. 김창길 담임목사가 집례한 이날 예배는 정주섭 장로의 기도, 김창길 목사의 ‘주님께서 세우시는 교회’(고전 3:10-11)란 메시지, 건축상황보고, 당회원 일동의 첫 삽 뜨기 등으로 진행됐다. 특별히 뉴저지교협회장 신명동 목사의 축도로 이날 행사를 매듭졌다.
이 공사로 지체가 불편한 교우들이 에레베이터를 이용하여 바로 교회당에 입당할 수 있게 되었다.
시공업체는 이미 강석건설로 선정됐다.
한편, 이 공사에 있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연속 기도회를 가졌다. 내용은 기도 자원서를 작성하여 하루하루 자기가 기도하며 금식할 수 있는 시간을 적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모아진 기도 자원서는 매일 맡은이들에 의하여 연속적으로 기도가 이어져 갔다. 기간 중 새벽기도회와 다른 예배 때에도 집례자가 오늘의 기도 담당자를 위한 증보기도를 잊지 않는다. 이처럼 입체적인 기도, 상호 협력된 기도로 매일 하루를 열었다. 어쩌면 우리교회는 이미 이런 기도에 대하여 익숙해 있는 것이다. 교회의 어떤 어려움이나 건축을 즈음해서는 늘상 기도로 대처해온 까닭이었다.
새벽기도와 주일 1부 예배, 수요예배만은 본당에서 그대로 드렸다. 그 외 주일 대부분의 예배 장소를 예닮원으로 옮기고 교인들 수송작전을 폈다. 이에 따라 대형 버스도 대절하고 정확한 배차를 실시하고 안전을 위하여 담당 조영진 장로가 선두에서 지휘를 했다. 본당에서 드려지는 몇 번의 예배도 공사 진척에 따라 예닮원으로 옮겨 예배할 수도 있다고 토를 달았다. 이 공사는 공사일로 계상하여 6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시작된 것이었다.
교인들의 기도는 물론이고 건축위원회(위원장 양호식 장로) 위원들의 노고, 감리, 시공업체, 관청 등 모두가 하나 되어야 하나님의 성전을 아름답고 튼튼하게 지어 바칠 수 있는 것이다. 굳어 가는 콩크리트 부분을 다시 깨는 일도 있었다. 부실공사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성전을 넓히는 일, 또한 내 지경을 넓히는 귀한 일이리라.
사진 61. 창립30주년 기념 뉴욕 메트로포리탄교우 테니스 대회에 앞서
Before the start of the Church 30-Year Anniversary Tennis Tournament
창립30주년 기념 테니스 토너먼트
창립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6월 8일과 9일 이틀간 예닮원 테니스장에서 뉴욕메트로폴리탄 지역 교우 대상의 토너먼트가 개최됐다.
김경열 체육부장이 인도한 이날 개회예배에서 30주년 준비위원장 박병태 장로가 기도를, 당회서기 장재열 장로가 성경봉독을 한 뒤 김창길 당회장이 ‘건강한 몸, 올바른 신앙’(사 60:1-2)이란 메시지를 전했다.
테니스장은 김낙중 장로가 97년 11월 목사관과 더불어 2.16에이커 땅을 헌납하여 세운 것으로, 교통사고로 하나님 나라로 간 대학청년부 고 김형주 군을 애도하며, 부모인 김환욱(김순은)집사가 1만 불을 헌금하여 기초를 닦기 시작했고 3명의 시무장로들이 ((장재열·이원규·김병수.)) 취임하면서 기념 축대를 쌓았다. 의미심장한 코트에서 기량을 다투었다. 그날 행사 순서지에는 다음 내용의 취지가 적혀 있었다.
1. 이민자들의 과로와 스트레스를 풀고 활력을 되찾기 위해.
2. 몰랐던 사람들과의 친교를 위해.
3. 가정·직장·교회를 통해 스포츠 정신을 발휘하도록.
4. 하나님이 주신 예닮원을 동포들 및 타 교회들과 나눠 쓰기 위한 오프닝.
뉴욕 메트로포리탄교우 테니스대회라고 이름 부쳐진 금번 대회는 성별과 연령에 관계없이 참가 할 수 있게 했으며 입상자에게는 트로피와 한국 왕복 비행기표 등 상품이 제공됐다. 시상식은 창립기념 행사일로 지키게 되는 8월18일에 실시했다. 6월8일 예선과 9일 본선을 거쳐 각축전을 벌인 결과 우승 채순형, 준우승 이근호, 3위 안재옥 선수가 차지했다.(사진 61)
이와관련, 김창길 목사는 신문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체육 경기를 통하여 이민자들의 심신을 단련하고 스포츠 정신을 고취시키고자 한다”며 “참된 영적운동은 건강한 몸에서 이루어지며 교회는 부흥회, 기도회, 예배 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 건강운동에도 참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앞으로 교회 시설을 동포사회와 지역 커뮤니티가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 나갈 것”이라며 “이번 테니스대회에 동포들의 많은 참석은 진정 바람직한 일”이었다고 첨언했다. 이 일은 우리교회 체육부장 김경열 집사와 그 외 부원들의 노력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전교우 야외예배 겸 체육대회
매해 있는 행사이다. 그러나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는 차제에 그 의미는 색달랐다.(사진 62) 서른 살이 되는 그 해, 6월16일 주보에는 머리 기사로 이렇게 실려 있었다.
야외예배 및 체육대회(오전10시): 별지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준비위원들의 지시에 잘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아, 유치부 어린이 체육대회는 1시부터 십자가상 잔디밭에서 있습니다.
그 별지는 주보 간지로 들어가 있었다.
6월 16일 주일은 주안에서 형제, 자매된 지체들이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예닮원에서 다같이 모여 예배드리고 친교를 나누고자 합니다. (중략) 구역식구들끼리 구역예배때 나누지 못한 은혜의 이야기도 나누시고, 또 다른 구역식구들과 또 우리 자녀들과 함께 체육대회, 오락회를 나누며 우의와 …(하략)
이어서 예배안내, 행사시간표, 각 행사별 준비위원 및 팀 구성, 협조사항으로 되어 있었다.
그 전날부터 날이 궂어 비가 오더니 전일 새벽기도회에서 비가 오지 않도록 김 목사가 기도했음인지 야외예배시간, 구역별 식사시간, 체육대회 하이라이트 시간에는 비가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지난 어느 해에서도 그러했다.
시상식과 경품 추천은 친교실로 옮기어 더욱 재밌게 진행되었다. 진행은 유동우 집사와 이신경 집사가 맡아 수고했다. 각 행사별 준비위원 및 팀 구성은 이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