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9:1-5/끝나지 않은 전쟁
210228 3.1절예배
소녀들의 전쟁
꼭 한 번 보시도록 권하고 싶은 영화가 있습니다. 2016년에 개봉한 귀향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경북 상주 곶감집 귀염둥이 딸로 태어난 그녀는 15세에 중국 지린시 위안소로 강제로 끌려가 4년 동안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학대와 유린을 당하며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왔습니다. 많은 불운한 소녀들이 위안소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일제에 의해 학살되어 할머니처럼 증언할 기회를 얻지 못 했습니다.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 ‘불태워지는 처녀들’에는 학살당한 소녀들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식민지 말기 일제는 전쟁을 수행하던 동아시아 대부분 지역에서 위안소를 운영하며 적게 잡아도 5만, 많게는 수십 만에 이르는 위안부를 납치, 인신매매, 취업사기 등으로 동원하였습니다.
이 영화소식을 접한 때부터 마음에 짐이 생겼습니다. 한편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는 바람과 다른 한편 뉴스와 증언으로만 들어도 힘든 일들을 생생하게 묘사된 영화로 봐야 한다는 괴로움이 밀고당기기를 거듭했습니다. 이 영화를 아내와 함께 보다가 슬픔과 참담함을 피할 길이 없어 많이 울었습니다.
내일은 102주년을 맞는 3.1절이며 오늘은 3.1절 기념예배입니다. 되새기고 싶지 않을 만큼 아픈 우리 할머니들의 아픈 기억을 지금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분들의 고통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께서 한국에서는 최초로 위안부로서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용기있게 증언하기 전까지 이 분들의 고통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채 묻혀 있었습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시작된 초기 할머니들은 오히려 손가락질을 당하기까지 했습니다. 뭐가 자랑스럽다고 부끄러운 과거를 끄집어내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계속되는 고통
일본정부의 입장은 일관됩니다. 일부 정부인사들이 유감을 표했지만, 민간인들이 저지른 일이며 정부는 관여하지 않았고 도의적으로는 미안하나 법적인 책임은 없다는 것입니다. 일부 극우인사들은 심지어 위안부들이 돈을 벌기 위해 계약을 맺고 스스로 뛰어든 매춘부였다는 왜곡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할머니들이 돈을 노리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구사회에 왜곡된 거짓을 퍼뜨리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불거진 하버드대학 로스쿨 교수 존 마크 램지어의 논문 논란이 대표적 예입니다. 미국에서 출생했으나 어린 시절에 일본으로 건너가 성장한 그는 다양한 경로로 일본정부와 단체로부터 금전적 후원을 받아왔으며 2018년 일본정부가 수여하는 국가훈장인 욱일중수장을 수여했습니다. 지금은 미쓰비시 그룹이 조성한 하버드 대학 연구기금으로 만든 자리인 미쓰비시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그는, 작년 자신의 논문 ‘태평양 전쟁에서 성매매 계약’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성노예나 전쟁범죄 피해자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계약을 맺고 전장으로 달려간 매춘부였다고 주장해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주장은 당연히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엄청난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전세계 학자들의 반박과 시민사회의 비판을 다 소개하자면 오늘 설교시간을 다 써도 모자랄 겁니다. 이 시간에 가장 최근 소식 두 가지만 소개합니다.
UCLA대학 마이클 최 교수가 시작한 램지어 교수의 논문철회를 요구하는 연판장 서명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하버드 경제학 교수를 비롯하여 저명한 학자, 연구자 2,400여 명이 지난 어제까지 동참했습니다. 지금도 그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램지어 교수와 직접 녹음된 인터뷰를 한 하버드대학 로스쿨 석지영 종신교수는 뉴요커지 기고문을 통해 램지어 교수 주장의 모순을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버드 역사학과 교수들을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램지어 교수는 한국인 위안부 여성들의 매춘계약서를 단 한 건도 확인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램지어 교수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그가 인용한 매춘계약서는 10살 난 일본 소녀 오사키가 일본에서 맺은 것이었습니다. 10세 소녀가 맺은 매춘계약서를 합법적 계약으로 주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일본인 소녀가 일본에서 맺은 계약을 한국인 위안부의 것인양 인용한 것은 심각한 왜곡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애초 램지어 교수를 지지한다는 서한을 보냈던 버클리대학의 베리 교수와 컬럼비아대학의 웨인스타인 교수도 다른 학자들의 반박문을 읽은 후에는 램지어 교수 지지 입장을 철회했습니다.
한 가지만 더 소개하자면 지각있는 일본학계와 시민단체조차도 그의 왜곡된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한 일본 도시샤대 이카가키 류타 교수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1990년대 이후 이어진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합니다. 관점은 둘째 치고 학술 논문으로 문제가 크다고 지적합니다. 일본역사학연구회 등 4개 학술단체도 3월 14일 공개세미나를 열어 논문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을 예고했습니다.
끝나지 않은 전쟁
아마 여러분들은 램지어 교수의 왜곡을 이미 잘 알고 있어서 저의 이런 설명이 불필요하다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그들의 거짓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을 장황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이미 말씀드렸듯이 할머니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극우세력의 진실왜곡이나 이에 동조하는 램지어 교수와 같은 친일파 학자들의 왜곡은 전력으로 싸매고 감싸도 치유되기 어려운 할머니들의 상처를 더욱 곪게 만드는 2차, 3차 가해입니다. 그들에 의해 할머니들은 돈을 위해 매춘을 했고, 지금도 돈을 위해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고, 부끄러운 과거를 드러내어 한일관계를 망치는 존재로 매도되고 있습니다. 견디기 힘든 모욕이요, 상처를 날카로운 칼로 헤집는 만행입니다. 할머니들의 고통은 우리 민족의 고통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한민족의 딸들이었고 우리의 어머니요, 할머니입니다. 그들의 눈물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의 어머니, 아내, 딸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둘째는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이들과 현혹되는 이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입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일부 한국학자들과 유투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심지어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반박하는 미국의 여러 학자들에게 ‘당신들은 외부인이니 위안부 문제를 논할 자격이 없다.’는 이메일을 보내고 램지어 교수를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하버드대와 논문이 실린 학술지에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의 이름과 주장을 일일이 제 입에 올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들만 봐도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다만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분들이 그들의 거짓에 현혹되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입니다.
셋째는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일본에 복수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밝히고 합당한 사죄를 통해 과거를 청산하여서 미래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더 이상 원한에 사로잡혀 서로를 멸시하고 증오하는 일이 반복되도록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의 비극을 끝내기 위해 만든 위원회의 이름이 무엇이었습니까?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아니던가요? 진실을 밝혀야 화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왜곡하면 원한도 풀리지 않고 화해도 되지 않고 결국은 쌓인 한이 어떤 방식으로든 두 나라를 모두 다시 불행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역사교육을 받지 못 하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그들의 선조가 저지른 만행을 또 다시 저지를 수 있고 한을 풀지 못 한 한국의 젊은이들은 일본을 향해 언젠가는 터질 증오를 쌓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망각과의 전쟁
그러므로 우리는 진실을 밝히고 식민지의 잔재를 청산하고 마음까지 해방된 대한민국을 건국하기 위한 독립전쟁을 여전히 치르고 있습니다. 그 치열한 전장에 가장 가혹한 고통을 감내하신 할머니들을 내세워 둔 채 우리는 뒤로 빠져 버린다면 다시 한번 그 분들이 거짓에 유린당하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선조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 목숨을 버리고 처자식을 희생시키기까지 했는데 우리가 자랑스러운 조국의 미래를 위해 아무런 희생을 치르지도 않는다면 과연 후손들에게 어떤 선조로 기억되겠습니까?
할머니들이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그 분들의 마음에서 식민지의 그늘을 걷어내기 위해 해야할 일입니다. 후손들이 더 이상 원한과 증오의 유산으로 고통당하지 않고 화해와 번영의 길로 나갈 수 있도록 해야할 일입니다. 그것은 진실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망각과 치르는 전쟁입니다. 할머니들의 고통을 기억해야 합니다. 거짓과 왜곡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의 편에 서서 외쳐야 합니다.
우리가 잊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자녀들에게도 이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를 위해 교육부에서도 다음 주에는 일제히 위안부 문제를 가르치기로 하였습니다. 가정에서도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자녀들을 데리고 공원을 가거나 외식을 하실 때 잠깐 시간을 내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위안부 기림비를 방문하는 것입니다. 어디 있습니까? 좀 멉니다. 팔팍예배당에서 차로 무려 3분이나 달려야 도착하는 팔팍도서관 마당에 있습니다. 11년 전 2010년 세계 최초의 위안부 기림비가 바로 우리 교회 팔팍예배당이 있는 이 팔팍타운 공립도서관에 세워졌습니다. 자녀들과 지나는 길에 잠깐이라도 들러서 위안부기림비 앞에 꽃을 한 송이 두고 기도해 보십시오. 5분이면 됩니다. 자녀들이 왜 여기 꽃을 두냐고 묻겠지요? 그러면 우리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과 계속 되고 있는 싸움과 잊지 말아야 할 뿌리에 대해 잠깐이라도 설명해 주십시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미국정부가 처음으로 건립한 위안부기림비도 방문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13년 버겐카운티 정부 법원 앞에 건립된 이 기림비는 미국에서는 4번째지만 미정부 이름으로 건립된 최초의 기림비이기도 합니다. 팔팍예배당에서 딱 11분 거리입니다. 이 곳에는 나치의 홀로코스트 피해자 추모비와 아르메니안 대학살 추모비, 아이리쉬 대기근 추모비와 흑인노예피해자 추모비 등도 함께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역사교육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잊지 않는 것이 함께 싸우는 것입니다. 점점 잊혀져 가는 할머니들의 증언 중 한 분의 목소리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영상> 우는 할머니들의 곁에서 함께 울 이들은 누구입니까? 저와 여러분과 우리의 자녀들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