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1 하나님 나라를 보는 사람 / 행6:1~15

20160221 하나님 나라를 보는 사람 / 행6:1~15

행 6:1-15/하나님 나라를 보는 사람

160221 사순절 중 주일설교

 

진정한 영웅

지난 2월 초 과테말라 겨울단기선교팀이 모든 일정을 은혜 가운데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주에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비통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선교팀의 운전도우미로 수고했던, 현지 생명수교회의 목회자 동생이자 유스사역자였던 더글라스 스티브 형제가 두 아이를 학교에서 데리고 오던 길에 집 앞에서 갱단의 총격으로 순교하고야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한 때 갱단에 몸담았다가 예수님을 믿고 과거를 청산한 후 생명수 교회의 신실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 후 갱단에서 지속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을 받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결국 집 앞에서 차를 타고 지나가며 갱단이 쏜 7발의 총격을 받고 순교한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의 두 아이 릴리안과 마이클 중 7살 난 아이 마이클이 아버지가 순교하는 장면을 다 목격한 것입니다. 우리는 스티브 형제가 천국에 있을 것을 믿습니다. 마이클이 충격을 이겨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는 어떻게 생명의 위협을 이겨내며 믿음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신앙 때문에 작은 경제적 손해만 봐도 시험에 들고, 조금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분을 참지 못 하고 믿음을 지키기를 주저하는 우리가 볼 때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스티브 형제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영웅입니다. 사도행전은 우리에게 그런 믿음의 영웅들을 여럿 소개해줍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이고 그런 영웅 중 한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스데반 집사입니다.

영웅전

스데반은 초대교회에서 구제업무를 담당시키기 위해 선출한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헬라파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벌인 복음의 반대자들과 논쟁에서 그를 당해내지 못 하자 반대자들은 사람들을 매수하여 그를 모함합니다.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공격하고 하나님을 모독하였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이런 죄는 곧 투석형에 처해 사형시켰기에 스데반은 이제 꼼짝없이 돌에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 온 몸의 뼈가 부스러지고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돌로 치는 투석형이 얼마나 무서운 형벌인지요!

누군가가 여러분에 대해 거짓말로 비난하고 모욕을 하면 어떤 기분이 드십니까? 그 모함으로 여러분의 돈이나 직장을 잃거나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거나 건강을 잃어야 한다면요? 억울하고 답답하여 잠도 안 오고 죽고 싶고 또 그 거짓말장이를 죽이고 싶지 않을까요? 바로 그런 일을 당한 스데반의 반응이 15절에 등장합니다.

(행 6: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런 일을 당하고도 어떻게 얼굴이 천사와 같을 수 있단 말입니까? 천사의 얼굴이란 어떤 것일까요? 천사를 본 사람은 없지만 상상하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일단 분노와 미움이 가득한 얼굴은 아닐 겁니다. 걱정과 초조함으로 가득한 얼굴 역시 아니겠지요. 원통하고 답답한 고통이 가득한 얼굴 역시 아닐 겁니다. 그럼 무엇이 가득할까요? 평화와 기쁨과 사랑이 가득한 얼굴이 아닐까요? 평범한 우리들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반응입니다. 모함과 위협 앞에서 평화와 사랑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수퍼파워가 아닙니까? 사도행전에는 이런 수퍼파워를 지닌 수퍼히어로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한두 곳만 살펴봅니다.

(행 5:46) (채찍질과 협박을 당한 후)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함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행 16:25) (많은 매질을 당한 후 감옥에 갇힌)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뺨만 한 대 맞아도 분해서 잠이 안 오고 욕설 한 마디만 들어도 원통해서 그 적개심을 누그러뜨릴 수가 없는 우리들이 볼 때 사도행전의 이 사도들의 모습은 진정한 수퍼히어로의 그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퍼파워의 근원

도대체 모욕도, 모함도, 매질도, 협박도 무너뜨릴 수 없는 평화와 기쁨과 감사를 품을 수 있는 수퍼파워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사도행전은 곳곳에서 그 비밀을 이렇게 밝힙니다.

(행 2:4) (오순절날)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행 4:8) (종교지도자들의 추궁을 당하여)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행 4:31) (대제사장의 협박을 받은 이들이)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그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성령님은 진정 현실 속에서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수퍼 파워의 근원이십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들은 수퍼 히어로가 됩니다. 일단 그 힘으로 충만해지면 협박도, 매질도, 모함도, 정죄도 심지어 죽음도 그 평화와 용기와 능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충만함이 우리 안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기에 이런 충만한 힘을 갖게 되는 것일까요? 그 답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 속에 등장합니다.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 2: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마지막 때에 주님이 성령을 누구에게 부어주십니까? 만민입니다. 거기에는 자녀들, 늙은이들, 젊은이들을 가리지 않으며 심지어 남종과 여종, 종들에게까지 부어주십니다. 누구나 수퍼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무엇을 경험합니까? 장래 일을 말하고 꿈을 꾸고 이상을 봅니다. 장래일과 꿈과 이상은 모두 그들이 보게 되는 비전을 가리킵니다. 이 비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시작되어 그 분의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비전입니다. 이 나라는 모든 죄와 악, 불의와 모순, 고통과 절망, 눈물과 한숨, 사탄과 마귀가 멸망받아 더 이상 남아있지 않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참되고 영원한 평화와 기쁨과 행복과 만족과 생명과 풍요와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오늘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모든 아픔과 괴로움을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대지가 온통 평화의 흙으로, 대기가 온통 기쁨의 공기로, 하늘이 온통 은혜의 빛으로 가득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일단 보게 되면 다시는 다른 것을 사모하고 싶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한 사람을 예수님은 이런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마 13:44) 천국(하나님 나라)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

일단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게 되면 즉 그것의 형언할 수 없는 가치를 깨닫게 되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 애쓰는데 기뻐하며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베드로, 스데반, 빌립, 바울, 실라 같은 수퍼히어로들은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보았고 보고 있었고 더욱 더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 비전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어놓기를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 나라를 보고 있는 스데반의 보십시오.

(행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성령충만의 실체

스데반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의 실체입니다. 성령충만은 본질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미리 보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있노라면 그 나라의 영광과 기쁨이 충만하게 우리 안에 채워집니다. 우리 안에 채워진 그 영광과 기쁨은 태양의 빛 에너지가 열 에너지로 변해 지구 위에 내리듯 우리 밖으로는 사랑과 담대함의 능력으로 뿜어져나갑니다. 이것이 성령충만의 외적 현상입니다.

오늘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불행이 있다면 이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보잘것없는 풍요와 쾌락에 젖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더 이상 사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지 못 하고 살아가는 인간은 결국 이 세상의 비전 밖에는 볼 것이 없습니다. 세상의 비전이란 차갑고 어두운 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조금 더 벌고 좀 더 편하게 살고 좀 더 즐기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삶이며, 소화하고 배설하는 기계와 다를 바 없는 삶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지 못 하는 이들이 그러므로 인간을 원숭이의 후예요, 잘 작동하는 기계와 다를 바 없다고 묘사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분노하고 갈등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도의 진정한 복과 능력은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기 위해서는 성령충만으로 우리의 눈이 열려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위해서는 기도의 자리를 떠나지 말고 성령님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 우리는 또 다시 걱정하고 근심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다투고 성내고 빼앗고 움켜쥐는 세상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 하는 수퍼파워로 충만하여 사랑과 용기의 광선을 세상을 향해 내뿜으며 세상을 치유하는 수퍼히어로로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의 수퍼파워가 여러분 안에 충만하시길 축복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