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8 완벽한 인도 / 행10:1~23

20160228 완벽한 인도 / 행10:1~23

행 10:1-23/완벽한 인도

160228 사순절 주일설교

 

완벽한 실수

4년 전 여러분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읽어주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에서 쉐릴 스튜어트라는 이가 그의 외할아버지에 대해 쓴 글입니다. 그는 1930년대 대공황 시절 시카고에 살았던 목수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교회에서 교인들로부터 기부받은 옷을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 중국의 고아원으로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해서야 그의 웃옷 주머니에 있던 안경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며칠 동안 집과 교회를 샅샅이 뒤진 끝에야 무슨 일이 일어난지 깨달았습니다. 그의 안경이 떨어져 구호품 상자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대공황기에 여섯 자녀를 키워야했던 그는 당시로서는 거금인 20불짜리 안경을 잃은 것이 적잖이 속상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주님? 하나님의 일을 했는데 도리어 귀한 안경을 잃어버리다니요!’

몇 달 후 그 중국의 고아원을 운영하는 선교사님이 교회에 오셔서 설교를 하였습니다. 선교사님은 몇 달 전 보내준 옷상자에 대해 감사하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것 중 가장 저를 감동시킨 것은…’ 선교사님은 그 때의 감동을 다시 느끼는 듯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안경이었습니다. 공산당이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에 제 안경을 포함해 모든 것이 부서졌습니다. 저는 앞도 못 보고 심한 두통으로 고생했습니다. 동료들과 매일 이 문제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 때 여러분이 보내주신 옷상자가 도착했는데 놀랍게도 제일 위에 이 안경이 놓여있지 않았겠습니까? 도대체 여러분은 바다 건너 제게 안경이 필요하다는 것과 제 눈의 도수까지 어떻게 정확히 아셨습니까?’

교인들은 모두 그 선교사님이 다른 곳에서 온 구호품과 혼동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뒷자석에 앉아있던 쉐릴의 외할아버지는 조용히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선교사를 위해 그의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상자에 넣으신 하나님의 손길을 방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에피소드에 붙인 제목은 ‘완벽한 실수’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실수처럼 보이는 일조차도 사실은 완벽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완벽한 섭리

우리 삶은 온통 설명하기 어려운 우연과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세상의 기원과 현재를 무수한 우연과 시간이 결합한 결과라고 설명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한다면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연으로 가득찬 보이는 세상 뒤에는 필연으로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고후 4:18입니다.

(고후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신 하나님이 오묘한 계획 아래 놀라운 능력으로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 일이란 바로 인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구원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사도행전을 통해서 만납니다.

오늘 읽은 사도행전 10장은 사도행전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는 반환점 같은 곳입니다. 전반부에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탄생한 교회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복음을 전파하며 성장해가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후반부에서는 그 복음이 팔레스틴의 경계를 넘어 땅 끝까지 퍼져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환에는 적지않은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전할 주체인 유대 기독교인들이 복음전파의 대상인 이방인들에게 가지는 혐오감과 적대감입니다. 전통적으로 이방인을 개처럼 여기는 유대인의 혐오감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을 침략해 지배해온 헬라인들과 로마인들에 대한 적대감이 그것입니다. 이 혐오감과 적대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방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지 못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의 태도를 바꾸시기 위해 교회의 수장인 베드로와 이방인인 로마의 장교 고넬료의 만남을 계획하셨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은 우리의 삶이 흔히 하는 생각처럼 무의미한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분명한 목적과 의미를 가진 필연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음의 구절들을 보십시오.

(행 10:3) 하루는 제 구 시쯤(오후 3시)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행 10:5)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행 10: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행 10:20)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성령님께서 고넬료에게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시고 베드로에게는 의심하거나 꺼려하지 말고 고넬료에게 가라고 하십니다.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을 성령님께서 마치 중매를 서듯이 주선하고 계십니다. 교회의 선교역사를 바꾼 두 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하나님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완벽한 인도 

이 원리는 우리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미주 땅에서 이민자로 살며 뉴저지장로교회의 교인으로 섬기고 한 여자와 한 남자와 가정을 이루고 자녀와 부모와 함께 살고 어떤 직장에 다니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역사를 바꾸는 만남 뿐 아니라 모든 성도의 삶의 역사를 바꾸는 만남에도 관여하고 계십니다. 뉴저지장로교회 교인이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혹은 아내와 함께 살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일터에서 일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 어떤 이들은 만남에 이르는 과정 때문에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섬기던 교회가 깨져서 어쩔 수 없이 이 교회 왔어요, 사기결혼 당했는데 물리지를 못 해서 억지로 사는 거예요, 사기를 당해서 비지니스를 망하고 입에 풀칠하려고 어쩔 수 없이 이 직장 다닙니다… 이런 과정이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보다 훨씬 말도안되는 상황에 몰려 인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떨어진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그의 이름은 바로 요셉입니다. 그는 형제들에게 미움을 사 죽을 뻔 하다가 노예로 팔려버렸습니다. 종살이와 감옥살이로 청춘의 13년을 보낸 이 젊은이가 후에 다시 만난 형들에게 한 말입니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 형들의 악행을 통해서도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신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을 믿었기에 이 젊은이는 우리가 아는 요셉이 되었고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이 원수같은 남편과 이 이기적인 아내를 만난 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이 사람이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반쪽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지옥같은 일터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제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실패한 것 같은 이민생활로 미주 땅으로 인도하신 이가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완벽하게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믿음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이 믿음으로 성도는 사는 이들입니다.

 

완벽한 믿음 

6.25전쟁이 발발하던 해 남대문교회의 한 27세의 젊은 전도사가 가족, 약혼녀와도 생이별을 한 채 정처없는 피난길을 떠납니다. 피난 중 인민군에게 잡혀 국군패잔병으로 오인받아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버려졌는데 이번에는 미군에게 인민군패잔병으로 오인받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힙니다. 육신의 고통보다 더한 억울함으로 괴로워하던 중 한 쪽 다리를 잃고 병상에 누운 중공군 소년병이 부르는 찬송소리에 충격을 받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그는 자신이 당한 고난의 목적과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인민군, 중공군을 가리지 않고 포로수용소의 병자들을 심방하고 치료하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포로석방이 이루어어지던 그 해 그러나 그는 석방을 보지 못 한 채 어느 환자를 씻겨낸 후 쓰러져서는 다시 일어나지 못 했습니다. 그는 소설가 정연희의 책 ‘내 잔이 넘치나이다’의 실제 주인공인 맹의순 전도사입니다. 그의 추모예배에 구름처럼 몰려든 중공군 병동의 환자들이 통곡을 하며 읽어내려간 긴 추모사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평화의 왕자, 화평의 사도, 인애의 왕, 우리에게 사랑의 주인이셨던 맹의순 선생이 가시다니…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던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를 경멸하고 무시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온화했고 우리를 돕는 그의 행동은 희생정신으로 언제나 꾸밈없이 여일했습니다… 우리는 대개가 그 무엇인가에 몹시 화를 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적이 따로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원망스럽고 우리를 전장에 보낸 이들을 죽도록 원망했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맹선생은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밤 신음소리가 낙수처럼 쏟아질 때 선생은 인자의 큰 그릇이 되어 우리들의 온갖 고통과 신음을 다 받아내고 하나하나 편안히 잠들도록 잠재워주시는 천사로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선생의 한 손에는 성경책이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물통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선생은 움직이지 못 하는 환자를 골고루 만져 주고 주물러 주심녀서 그렇게도 간절히 기도를 하십니다. 우리는 그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지만 그 기도를 듣고 있으면 고통이 사라지고 잠 못 이루던 육체가 편안한 잠을 이루곤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우리는 모두 통곡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맹선생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맹의순을 만났던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그가 성자였다고 고백합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처지를 그저 불운으로만 여겼다면 수용소에서 저주하고 원망하다가 생을 마쳤거나 요행이 수용소룰 벗어나서도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불행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삶에 목적과 의미가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그 곳에 보내신 이유가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빛나는 별과 같이 빛나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와 교회는 그저 운 나쁘게 떨어진 수용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도착한 선교지입니까?